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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두리에 관한 연구

Title
족두리에 관한 연구
Authors
김지연
Issue Date
1999
Department/Major
대학원 의류직물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bstract
본 논문은 조선시대 부녀자의 예관(禮冠)이면서 현재까지 전승되는 족두리(簇頭里)에 대하여 고찰한 것이다. 족두리는 그 유래를 12-13세기 몽골의 귀부인들이 착용하였던 복타크(БОГТАГ)에 두고 있고 고려 후기 몽골의 복속기를 거치면서 우리나라에 전래되었다.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이덕무의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최남선의 『고사통(古事通)』을 살펴보면 족두리가 원(元)의 ‘고고’의 영향으로 생겨난 몽골풍이라 하였다. 이 고고는 상기(上記)한 복타크와 동일한 것인데 ‘故姑’, ‘姑姑’, ‘固姑’, ‘顧姑’, ‘고古’, ‘고고’ 등으로 다양하게 표기되는 것으로 보아 단순한 차용어임을 알 수 있고,『장춘진인서방유람기(長春眞人西方遊覽記)』를 보면 “그 끝이 거위나 오리처럼 생겼으므로 고고라 이름지었다.” 고 하니 이에 고고라는 용어는 중국인들이 특히 복타크의 외관을 보고 붙인 명칭이라 하겠다. 한편 몽골의 옛 관습에 따라 복타크에 낙타털, 즉 족도르(jugdur>ЗОГДОР)를 붙인 경우에는 ‘족타이(chogtai)’라 별칭하였는데, 이 족타이가 우리나라의 족두리와 발음상 상당히 유사하여 족두리가 몽골에서 전래되었다는 설을 궁극적으로 뒷받침한다. 복타크는 매우 높고 위가 헤벌어졌으며 각이 첨예하게 되어있고 취우(翠羽)를 꽂은 모양이었으나 우리나라에 들어와 족두리로 발전하면서 그 높이가 낮아졌고 크기도 작아졌으며 위아래가 밋밋하게 되었다. 족두리를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조선조 후기부터이다. 당시 가체에 의한 사회적 물의와 폐단이 극에 치닫게 되자 영·정조대에 이르러 가체를 금지하고 족두리를 착용하도록 한 것에서 그 사용이 일반화된 것이다. 족두리의 유형을 분류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용도에 따른 분류이다. 족두리는 길흉을 막론한 여러 예식에 두루 사용되었기 때문에 칠보족두리, 꾸민 족두리로 대표되는 혼례용 족두리, 제례용 민족두리, 상례용 흰 족두리가 있다. 또 궁중의 소례복이나 반가의 성장에 족두리가 사용되기도 하였다. 둘째, 틀의 형태에 따른 분류이다. 족두리틀의 제양(製樣)에 따라 솜을 두어 만든 솜족두리와 솜을 두지 않은 홑족두리로 나눌 수 있다. 또 솜족두리의 일종으로 어여머리의 밑받침용인 어염족두리도 있다. 셋째, 꾸밈의 방식에 따른 분류이다. 여러 가지 보옥을 연달아 끼워 족두리의 상판에 세운 봉(峰)이 정수리에 하나만 있는 외봉(一峰)족두리와 주변에도 여러개 있는 다봉(多峰)족두리가 있다. 요즘은 주로 전통혼례나 폐백시 족두리가 대여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현황을 살펴본 결과 일반인들이 거리낌없이 구입할만한 족두리가 생산·유통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것이 그 문제점이었다. 이에 족두리가 우리의 실생활에 더욱 활성화되기 위해서 적당한 가격과 품질을 지향하는 제품이 보다 많이 생산되고 족두리에 친숙할 수 있는 분위기 조성을 위한 홍보가 더욱 필요하다고 생각되었다. 마지막으로 혼례용 솜족두리를 제작해 보았다. ; This is a study of CHOK-DU-RI(簇頭里), a black crown-like headpiece worn by woman on formal occasion in Chosun Dynasty, and has succeeded until now. CHOK-DU-RI was originated by BOKTAK, worn by Mongolian noblewomen and inflowed to the last period of Koryo Dynasty under occupation of Yuan. The documentary records of O-JU-YON-MUN-CHANG-JON-SAN-KO(五洲衍文長箋散稿) by Lee Kyu-kung, CHUNG-JANG-KWAN-JON-SUH(靑莊館全書) by Lee Tock-mu and KO-SA-TONG(古事通) by Choe Nam-sun verify CHOK-DU-RI is a custom of mongolian fusion that was affected by KO-KO of Yuan and was formed. KO-KO(故姑) is the same as BOKTAK(БОГТАГ). It is assumed KO-KO is a borrowed name, as its transcription varies. The name was given according to its appearance, which is certified by the record CHANG-CHUN-CHIN-IN- SEO-BANG-YU-RAM-KI(長春眞人西方遊覽記). It says that it can be simply named KO-KO, as its edge is alike a goose or a duck. In addition, KO-KO was called CHOGTAI in case of being added a camel fur, that is JUGDUR. CHOGTAI similarily pronounced with CHOK-DU-RI, which proved CHOK-DU-RI was originated in Mongol. The shape of BOKTAK is very high and wided toward the top, with the angle getting more pointed and a feather stuck on the side. But its height got lower and its size smaller as it did gradually Koreanized to a CHOK-DU-RI. The use of CHOK-DU-RI has been settled since the last period of Chosun Dynasty. It came to stay as a popular custom when King Young-jo and Jong-jo, wanting to do away with the corrupt practice of KA-CHE , encouraged women at that time to do their hairs with CHOK-DU-RI instead of KA-CHE. It is as follows the classification of CHOK-DU-RI. First, classified by a use, the group is divided into ceremonial use such as the seven treasures CHOK-DU-RI and jeweled CHOK-DU-RI, a use of sacrificial rites such as plain CHOK-DU-RI, and a use of funeral rites such as white CHOK-DU-RI. Hereby it is assumed that CHOK-DU-RI was used regardless of fortune. Secondly, it varies by its type of frame. There are SOM(padded) CHOK-DU-RI, HOT(single-layer) CHOK-DU-RI and O-YOM CHOK-DU-RI, a kind of SOM CHOK-DU-RI, formed a base of O-YOM-MO-RI. The third group by jeweling has WHE-BONG (single-pole) CHOK-DU-RI and TA-BONG (multi-pole) CHOK-DU-RI. Jeweled CHOK-DU-RI can be still seen being commercially lent and worn by the brides at nuptical ceremonies performed in tradition of fashion and when worn by a bride as she gives her parents to her parents-in-law. As a result of viewing the present product condition of CHOK-DU-RI, the author could point out the difficulty that there hasn t been any manufacturing conditions to produce CHOK-DU-RI properly in the aspect of quality and price for general public use. Hereby the author presented a device of activating the use of CHOK-DU-RI in our practical life, and lastly manufactured SOM CHOK-DU-RI for a ceremonial 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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