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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의 한복용 소재에 관한 연구

Title
해방 이후의 한복용 소재에 관한 연구
Authors
이은진
Issue Date
2000
Department/Major
대학원 의류직물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bstract
본 논문은 해방 이후의 한복용(韓服用) 소재에 관하여 고찰한 것이다. 여기에서 소재 라는 용어는 섬유나 사(絲)가 아닌 한복을 이루는 포(布) 즉 옷감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본 논문에서는 연대별 한복 소재 산업의 변화와 소재의 경향을 고찰하고 이를 토대로 연대별 소재를 5가지 유형으로 분류하였다. 분류된 각 소재들의 특성은 명칭, 섬유 재료, 직조상의 특징, 가공법 및 후처리, 사용된 연대, 계절, 용도 등을 중심으로 기술하였으며 그 실증 사진을 제시하였다. 연대별 소재의 경향은 다음과 같다. 45년에서 50년까지는 해방의 혼란 속에서도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인 틀을 세우고자 노력하였다. 사회 전반적인 혼란으로 이 시기의 의료(衣料) 사정은 궁핍하여 대다수의 사람들은 무명, 광목(廣木) 등을 사용하였고, 미국 및 우방으로부터의 구호품을 비롯한 여러 가지 의료(衣料)들이 유입되기 시작하였다. 또 일제 시대부터 민족 자본으로 존재하였던 조선견직(朝鮮絹織) 등 몇몇 기업에 의해 숙고사(熟庫紗), 조견단(朝絹緞), 뉴똥 등의 견직물(絹織物)이 생산되기 시작하였다. 50년대에는 해방 이후 독립국가로서 기틀을 세우고자 노력하던 중에 한국전쟁이 발발함으로서 다시 한번 혼란을 겪었다. 그러나 휴전과 더불어 전쟁의 복구가 생활필수품 산업 위주로 이루어짐에 따라 53년경에는 의료(衣料) 사정도 호전되었다. 이 시기에는 무명, 광목(廣木), 옥양목(玉洋木) 등의 면직물(綿織物)이 주로 사용되었고, 조선견직(朝鮮絹織) 등에서 조견단(朝絹緞), 호박단(琥珀緞), 뉴똥, 모본단(模本緞), 법단(法緞) 등의 견직물을 생산하여 의료(衣料)가 다양해졌다. 또한 해방과 한국전쟁 과정을 통해 유입된 나일론이 유행하여 다후다(Taffeta, タフタ), 곰보 나일론, 나야가라 등의 새로운 소재들이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으며, 외국산을 선호하여 홍콩, 일본 등지에서 양단(洋嚴), 벨뱃(Velvet, ビロ-ド), 오빠루(Opal fabric, オパ-ル) 등이 밀수입되어 사용되었다. 60년대에는 50년대부터 유입되기 시작한 합성섬유가 크게 유행을 하여 양장과 한복의 겸용으로 사용되었다. 이 시기에 한복용으로 사용된 소재는 레이스(Lace), 반짝이소재, 우라기리(うらきり), 후로킹(Flocked pile fabric, フロッキ-), 오빠루(Opalfabric, オパ-ル), 춘추 벨뱃, 지지미(ちぢみ) 등이다. 이들 소재는 표면의 입체감을 통해 장식성을 추구하는 것이 특징이었다. 70년대에는 전통 소재인 양단(洋緞), 뉴똥 등이 종래의 천연섬유뿐만 아니라 합성섬유로 만들어져서 그 관리와 가격 면의 실용성 때문에 널리 사용되었다. 이 시기에는 소재 자체의 표면 입체감을 통하여 장식성을 추구하였던 60년대의 경향에서 벗어나 소재의 표면에 금박, 수, 날염, 그림 등을 더함으로써 장식성을 추구하였다. 80년대에는 경제발전, 사회안정, 생활수준의 향상이 이루어졌고 86아시안 게임, 88올림픽을 개최하였다. 이에 따라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서 한복에 대한 관심도 고조되었다. 섬유 재료 변에서는 천연섬유를 선호하는 경향으로 바뀌었다. 또한 현대적 주거 환경의 변화에 따라 냉·난방이 일반화되면서 새로운 것을 통해 이윤을 추구하려는 업계의 판매 전략과 맞물려 한복용 소재의 계절 구분이 불분명해졌다. 이러한 경향에 따라 노방주(老紡紬), 모시 효과를 낸 실크 직물 등이 일명 사철깨끼 라고 부르는 4계절용 소재로 사용되었다. 90년대에는 4계절용 한복의 유행이 한풀 꺾이고 자연주의, 복고주의 경향에 영향을 받아 계절감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하였다. 모시, 항라(亢羅), 숙고사(熟庫紗), 갑사(甲紗), 자미사(紫薇紗), 모본단(模本緞) 등의 전통 소재들이 다시 등장하는 한편,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로 생활 한복으로 관심이 옮겨가는 경향을 보이기도 하였다. 90년대 후반에는 한복 입는 날의 선포, 한복 착용자의 고궁, 박물관 무료 입장 실시 등의 국가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IMF 등의 경기 침체에 따라 한복 산업도 위축되었다. 본 연구에서는 연대별 소재들을 다시 조직을 기초로 평직(平織), 능직(綾織), 주자직(朱子織), 사직(紗織)으로 분류하고 조직에 따라 분류할 수 없는 것들은 기타 소재로 분류하였다. 본 연구에 사용된 총 90점의 소재는 평직 30점, 능직 2점, 주자직 27점, 사직 10점, 기타 21점으로 평직과 주자직이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데 비해 능직은 상대적으로 매우 적은 것이 특징이었다. 또 편성물, 레이스(Lace), 첨모 소재 등의 기타소재도 21점으로 적지 않은 수를 나타나고 있는데 이러한 소재들은 주로 60년대에 양장용 소재가 한복용으로도 사용된 경우로 매우 특징적인 경향이다. 한편, 본 연구 과정에서는 현재 우리 나라의 한복용 소재의 명칭에 대한 분류와 정리가 되어 있지 않아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각 연대별로 다양한 소재가 등장하고 있는 것은 근본적으로는 기술 발전과 함께 소재 자체가 다양화되고 있기 때문이지만, 동일한 소재도 각 회사의 상품명, 원산지, 조직이나 가공의 미미한 변화 등에 따라서 서로 다른 명칭으로 부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학계와 업계가 함께 사용할 수 있는 분류와 명명, 소재집의 제작 등 전통 소재에 대한 체계적인 정리 작업이 절실히 요구된다. ;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scan the textiles having been used for Hanbok (韓服) since the 1945 Liberation. Now, at the threshold of the 21th century, it s a good time to arrange one side of the trends in Hanbok by looking into its textile development during the latter half of the passing century. This paper states those backgrounds and the situation of textile industry related to Hanbok. On the basis of this, the popularized textiles of each term and their characteristics are arranged according to times, names, seasons and uses for women or men. Photographs of real textiles and their structures are also presented. The trends of each term are as follows. From 1945 to 1950, in the middle of disorder of this Liberation term, people made efforts to found the basis of policy, economy, society, and culture. Because of the general disorder of society, the clothing situation was very bad, so the majority of people wore clothing of cotton (Moomyung 무명 or Kwangmok 廣木). Various textiles including relief goods from America and other friendly nations began to come in at this term. Silk fabrics like Chosun silk fabrics, having established with the capital of our nation during the Japanese Imperial Rule and existed then, and other factories. In the 50s, while people making efforts to set up much more independent country, the Korean war broke out and they suffered from another great confusion. but with the armistice, rehabilitation began along with the industrial concentration of daily necessaries. As a result, the clothing situation changed better. During this term, cotton(Moomyung and Kwangmok), muslin(Okyangmok 玉洋木), and Poplin were popularized. Chosun silk fabrics manufactured silk fabrics such as Chokyundan(朝絹緞), Hobakdan(琥珀緞), Newttong(뉴똥), Mobondan(模本緞), Po˘pdan(法緞). People could use more different kinds of textile then. In addition, Nylon, which began to come in during the Liberation and the Korean War, seized most of people. Such nylon fabrics as Taffeta, Kombo-Nylon, and Niagara(나야가라) were the favorites. Besides, they preferred foreign-made, so that fabrics like Yangdan(洋緞), Velvet, and Opal fabric were smuggled from Hongkong or Japan. In the 60s, Chemical fibers, beginning to come in from the 50s, were their favorites, with which they made Hanbok and Western style dresses as well. During this term, Lace, golden or silvery, fiber fabric, Woorakiri(ぅらきり), Flocked pile fabric, Opal fabric, Spring-and-Autumn Velvet, and Chichinu(ちちみ) were the materials for Hanbok. They were chemical fiber fabrics and their characteristics were to have an cubic and ornamental effect on the surface. In the 70s, Yangdan, Newttong, and other typical fabrics for Hanbok were manufactured with chemical fibers. Such chemical fiber fabrics widely spread because of their lower prices and practicality. During this term, the trend of the cubic and ornamental effect on the surface in the 60s disappeared. Instead, they intended to give the ornamental effect by putting gold foil, embroidery, printing, and pictures on the surface of the fabrics. In the 80s, with the economic growth, social stability, high standard of living, and 86 Asian Games and 88 Summer Olympic Games held in our country, people got much more interested in our country, people got much more interested in our culture, together with our traditional costume, Hanbok. According to this, people had a tendency to prefer natural fiber fabrics. And there were no seasonable fabrics for Hanbok during this term, as all-year-round fabric like Nobangzu(老紡紬) was in common use. In the 90s, above all-year-round fabric became unpopular under the influence of naturalism and reactionism, and seasonable fabrics reappeared. In spite of such governmental efforts as proclamation of "The Day of Wearing Hanbok." in December, 1996 and "Free Admission to Ancient Palaces and Museum for wearing Hanbok." in 1997, the Hanbok Industry became depressed under the IMF system we came across. But owing to the increasing interest in our typical fabrics like Mosi(紵), Mobondan(模本緞, 募本緞), and Hangra(亢羅) began to be in use again. Interviews and market research showed that there are too many problems in classifying and naming textiles, that is there are no consistent ways to do it. For example, one manufacturing process, another names the same kind after his own way. and other call it their own way according to its brand or company, etc. Moreover, a lot of technology having come in by way of Japan, inconsistency gets higher. Consequently, it is highly desirable that academic authorities concerned textiles should classify and name them consistently and make "a collection of Materials for Hanbok Clothing" through which our textiles could be called commonly 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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