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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시대 오문화의 기원과 형성

Title
춘추시대 오문화의 기원과 형성
Authors
이명화
Issue Date
1997
Department/Major
대학원 사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Doctor
Abstract
本文的硏究對象是從新石器時期到春秋時期長江下流地區吳文化. 50年代以來考古發掘報告中國各地發生了土着的新石器文化. 但是商周時期以來中國史硏究的視覺往往偏重于中原文化及其對其他地域文化的影響. 但是春秋時期的秦,吳,越,楚國還被認爲"夷狄"文化圈, 而且吳國和楚國都自己稱王. 本文作者認爲, 春秋時期中原以外地域的文化, 雖然沒有像中原地區的禮制一樣形成完備的體制, 但是他們却擁有與華夏文化不同的支配秩序和文化體系. 所以本文硏究的是長江下流吳地域的春秋時期形成的吳文化及新石器時代以來的土着文化傳統. 關于西周初期史, 『史記』等文獻資料"太伯仲雍奔荊蠻"的記載和丹徒烟墩山發現的"宜侯矢 ", 說明西周初期, 西周勢力伸展到吳地域. 寧鎭地區發現的西周初期的臺形遺址和大形土墩墓隨葬的中原靑銅器, 以及這些隨葬品以外的精美的陶瓷器,禮器,兵器和車馬器等靑銅器, 表明墓主的身分不是一般的平民, 可能已存在在能組織大量的勞動力的統治者. 統治者他們獨享的這樣的禮制和靑銅器等, 都說明西周初寧鎭地區在中原勢力的影響下已進入一個新的社會發展段階. 歷史文獻記載和"宜侯矢 "銘文資料, 以及西周初期的新型土墩墓的墓制, 都說明了西周時期在吳地域西周封國的存在. 所以當然要分析中原文化對吳地域的影響, 但是大部分的土墩墓的隨葬品不但是倣中原靑銅器帶有地方特色, 幷且隨葬中原靑銅器的土墩墓亦有吳地域土着的器物, 不等合中原文化的禮制. 這就是表明吳地域已經存在安定的土着文化, 所以雖然西周初期在吳地域設置了西周封國, 土着文化妨碍外來中原社會秩序及文化體系的移植, 中原勢力不得不結合土着文化. 吳地域土着文化的起源遡及到7000年前河姆渡新石器文化的發生, 其文化在南方自然環境的影響下産生了稻作農業和與此相連系的農具和生活文化. 新石器末期良渚文化遺址莫角山臺型建築遺址和人工堆築遺址, 表明當時存在擁有幾個小規模統治區域的比較大的統治權力. 從人工堆築祭壇遺址和墓葬出土的隨葬品中的玉琮,玉鉞,玉璧等玉禮器, 證明已存在主管祭儀行使權力的神權政治. 而且通過在太湖,杭嘉湖等廣大地域內, 出現同一樣式的玉禮器, 表明新石器末期在長江下流地域已出現以良渚地區爲中心包括杭嘉湖,太湖地區的大規模的政治權力. 雖然良渚文化還未達到靑銅文化段階, 但是可以爲長江下流地區産生 高發展土着文化. 在靑銅文化段階吳地域出土的銅刀,銅鏃等靑銅器, 與殷商靑銅器沒有什 區別, 所以說吳地域初期的靑銅文化可能收到了中原文化的影響. 但是, 四川三星堆遺址出土的帶有特色的靑銅器造形, 湖北盤龍城遺址出土的與商周靑銅文化相似的靑銅器, 江西新干大洋洲發現的商類型靑銅器及土着的靑銅器, 反映了在中原靑銅文化的影響下 在長江下流地區形成的土着的靑銅文化的發展. 特別是江西吳城遺址的石范說明收到商靑銅文化影響以前, 長江流域已經發生土着的靑銅文化. 所以吳地域的靑銅文化有一些商靑銅文化的因素, 但從總體上來說, 吳地域靑銅文化的起源于商時期在長江流域發展的靑銅文化. 從西周中期到春秋初期的吳國歷史, 未見諸文獻記載. 只有春秋中期以後登場的吳國被認爲姬姓諸侯, 同時也他們的文化被視爲"夷狄"文化. 文物資料反映, 西周以後吳地域內存在着中原靑銅器文化的影響, 雖然中原靑銅器的文樣裝飾有禮器的規律, 但是吳國的倣中原靑銅器的文樣沒有中原禮器的規律 竝且還擁有其他地域所沒有的移植中原的禮制. 春秋時代吳國已經建立土着的支配秩序和文化體系, 這可能妨碍中原社會秩序的移入. 那 進入國家段階以後, 吳地域于存在着什 樣的統治秩序和祭儀等文化體系 ? 西周春秋時期雖然中原諸侯爲了保證自己的權力重視參加中原王朝的禮制, 但是吳國存在中原禮制之外 所以吳國爲了鞏固自己的權力, 不得不重視生産力和軍事力量. 所以吳國的靑銅器闕乏中原禮器的特徵, 竝且重視靑銅農工具比靑銅禮器. 西周春秋時期在吳國原始瓷和幾何印紋陶有可能代替靑銅器被用禮器. 悤之, 從史前時期以來吳地域土着文化 黃河流域新石器文化和中原文化直間接交流着發展, 旦是在吳地域有對應外來文化的安定的土着文化的成長. 竝且春秋時期吳國的强盛的基礎就是吳地域土着文化傳統. 所以秦漢時期對長江下流吳地域的一元的支配不容易的原因是除了邊方的地位以外, 還是在中原文化的外成長的地域文化的異質性. 本文希望對統一國家內吳地域的文化特性的形成過程 已往沒重視的蠻夷地域自己的土着文化傳統的理解貢獻 ; 본 논문은 오늘날 南京·上海·蘇州·杭州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吳地域의 新石器時代에서 春秋時代까지 형성된 지역문화에 관한 연구이다. 각 지역에는 신석기문화가 多元的으로 발생하였음은 이제 더 이상 부정할 수 없는 사실로 인정하게 되었다. 그러나 商周時代 이후 문명단계에 들어서면서 중국의 역사와 문화는 中原 王朝를 중심으로 주변지역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며 포섭해 가는가, 그리고 주변 지역의 토착문화는 중원문화와 어떻게 유합하였는가라는 시각으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春秋時代 秦, 吳, 越, 楚國은 당시에 여전히 夷狄文化圈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吳, 楚의 경우 스스로를 王이라 칭했다는 사실은 이들이 周王室을 정점으로 하는 公·侯·伯·子·男의 중원 지배질서 밖에 존재하였으며, 나아가 비록 중원의 禮制와 같은 완비된 형식은 아닐지라도 中原과는 다른 지배질서에 의해 中原文化와 대립하는 존재였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따라서 西周·春秋時代 中原地域에 周室의 禮制를 중심으로 한 華夏文化가 발전하는 것과 병행하여 蠻夷地域에서 발전한 토착적 支配秩序와 文化體系에 관하여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하에 본 논문은 揚子江下流 吳地域을 대상으로 中原文化圈 외에서 발전하는 토착문화의 전통과 春秋時代에 형성되는 남방지역 蠻夷文化에 관하여 연구하고자 한다. 吳國 初期史에 관하여 『史記』 등 문헌은 太伯仲雍奔荊蠻 설화를 전하고 있으며 丹徒 烟墩山에서 발견된 宜侯矢  는 西周初 吳地域에 西周 세력이 진출하여 封國을 설치하였음을 전한다. 그러나 이후 西周中期에서 春秋中期까지 吳國의 歷史는 문헌상으로 확인할 수 없다. 春秋中期에 비로소 중원의 역사무대에 등장한 吳國은 여전히 姬姓諸侯로 인식되고 있으나 그 문화는 夷狄視되고 있으며, 春秋中期 吳國 者減鐘의 銘文이나 문헌사료에 의하면 吳國은 스스로 稱王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들은 吳國의 역사는 중원과 비교적 고립되어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하였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일찍이 西周 세력이 진출하였던 吳地域은 왜 중원과 소원하게 되었는가? 또 太伯·仲雍에 의해 荊蠻에 세워진 吳와 西周初 宜에 세워졌다는 西周 封國 그리고 春秋時代 吳國은 어떠한 관계인가? 春秋時代 吳國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에 이러한 문제들조차 불분명하다. 따라서 이와 같은 春秋時代 역사와 문화 발전의 특수성을 이해하기 위하여 新石器時代이래 吳地域의 土着文化의 성장에 관하여 연구하고자 한다. 吳地域은 일찍이 7000년전 華北의 건조한 지역과는 다른 자연환경에 적합한 稻作農業과 함께 농구·생활용기를 갖춘 신석기문화가 토착적으로 발생하였다. 신석기말기 良渚文化에서 발견된 莫角山 臺型建築基址와 人工堆築遺址群은 주위 몇 개의 중심지를 포괄하는 대규모 권력이 등장하였음을 표상한다. 그리고 이들의 統治權力을 상징하는 玉琮을 비롯한 璧·鉞의 형태 및 풍격은 太湖·杭嘉湖의 넓은 지역에서 일치하고 있다. 따라서 揚子江下流地域에는 新石器末期 단계에 良渚地域을 중심으로 주변의 杭嘉湖·太湖地域을 통합하는 中心的 정치권력이 등장하였다. 良渚文化는 비록 청동문화 단계로 발전하지 못하였지만 良渚文化인들의 원시신앙의 대상이었던 玉琮에 새겨진 神人獸面紋은 이후 중원 商周靑銅器의   紋의 原形을 연상케 한다. 따라서 장강하류지역은 일찍부터 토착문화가 발생하여 고도의 문화적 성취를 이루었을 뿐 아니라 華夏文明 형성에 일찍부터 기여하였다. 寧鎭地區에서 출토되는 銅刀·鏃을 비롯한 초기 청동기의 형태는 대부분 殷商 청동기와 거의 차이가 없다는 점에서 볼 때 吳地域 초기 청동문화는 中原文化 要素의 影響을 받았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揚子江流域 四川 三星堆遺址 청동기의 독특한 조형, 湖北 盤龍城遺址의 商 靑銅文化와 필적하는 수준의 靑銅器物, 江西 新干 大洋洲에서 발견된 商文化 靑銅禮器를 비롯한 土着的 靑銅器物 등 商代 揚子江流域에는 중원 청동문화의 강력한 영향과 더불어 토착적 청동문화가 발전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江西 吳城遺址에서는 石范이 출토되어 商 靑銅文化의 영향 이전에 揚子江流域에서는 독자적인 청동문화가 발생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吳地域 靑銅文化는 商 청동문화와 일치하는 면모가 있으나 이 지역 신석기 이래의 土着 住民에 의해 주변 揚子江流域에서 발달한 청동문화로부터 도입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후 西周初 寧鎭地區에는 臺型遺址와 더불어 中原靑銅器를 副葬한 土墩墓가 유행하기 시작하였다. 이들 西周初 大型土墩墓에는 中原靑銅器를 비롯해 정교한 陶瓷器 외에 禮器·兵器 및 車馬器를 포함하는 靑銅器가 부장되어 이들 土墩墓 주인의 신분과 지위가 일반 평민과 같지 않음을 나타낸다. 이와 같은 대규모의 土墩墓가 표상하는 바에 의하면 대량의 노동력을 조직할 수 있는 사회적 조직력과 지배력, 통치자의 고귀한 신분, 지배계층만이 독점하는 禮制와 靑銅器 鑄造 등 寧鎭地區는 이전과는 다른 사회발전 단계에 들어섰음을 나타낸다. 寧鎭地區에서 西周初 시작된 土墩墓는 역사 문헌 기록 및 宜侯矢  銘文자료가 전하는 西周에 의한 吳 封國의 설치의 바로 그 역사적 실체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예상할 수 있는 것은 중원문화의 流入과 移植이다. 그러나 이들 土墩墓에 中原 靑銅器物과 함께 부장된 대부분의 부장품은 지방적 색채가 농후한 中原靑銅器의 모방품이며 靑銅禮器의 조합도 중원의 禮에 맞지 않으며 묘의 크기와 禮器의 서열 관계도 일정치 않은 등 周禮와 차이가 있다. 따라서 吳地域에는 西周初 封國이 설치되었으나 中原 文化의 이식에 對應하는 안정된 土着文化가 이미 발달하고 있었으며 따라서 중원세력은 이러한 土着文化와 결합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추측된다. 문물자료상으로 볼 때 西周이후 吳地域에는 여전히 中原 靑銅器의 모방기가 유행하여 吳國은 중원 청동기문화의 계속적인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중원 청동기는 禮器로서 문양장식에 규율을 따르고 있는 반면, 吳國의 中原 模倣 청동기는 중원 청동문양의 규율에서 탈피하고 나아가 吳地域 토착적 幾何印紋陶의 문양을 장식하는 등 자유자재로 변형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吳地域에는 다른 지역에서는 찾을 수 없는 吳地域의 독창적인 청동기물이 존재한다. 따라서 西周·春秋時代 吳地域은 중원 청동문화의 영향을 받았으나 중원 청동기가 표상하는 中原 禮制는 吳地域에 移植되지 못하였음을 나타낸다. 대신 吳地域에는 中原 支配秩序의 정착을 방해하는 안정된 土着的 지배질서가 형성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吳地域에 중원의 지배질서가 적용되지 못하였다면 국가단계에 진입한 이후 吳地域에서는 어떠한 지배질서와 이를 유지하기 위한 祭儀를 비롯한 문화체계가 성장하였는가? 西周·春秋時代 中原 제후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보증받기 위해 周室의 禮制에 참여하고 이를 위해 靑銅禮器 제작에 열을 올린 반면, 中原의 華夏文化 지배질서 밖에 존재하였던 吳國은 자신들의 권력 기반을 생산력과 군사력에 두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따라 吳國에는 靑銅農兵器가 발달하였으며, 春秋戰國時代 吳國을 비롯한 남방의 楚·越國의 빠른 성장은 이와 같이 일찍부터 시작된 耕戰體制에 의한 지배질서와 무관하지 않다. 吳地域 靑銅器에는 禮器로서의 성격이 결여되어 있는 대신, 西周·春秋時代에 吳地域에서 급격히 발전하는 原始瓷器와 幾何紋硬陶는 특별한 기물 즉 禮器로 기능하였을 가능성을 나타낸다. 따라서 華夏文化의 禮制와는 달리 吳地域은 原始瓷豆나 印紋硬陶를 禮器로 하는 祭儀 체계가 형성되었던 듯하다. 본 논문을 통해 吳地域의 土着文化는 史前時期이래 黃河流域 신석기문화를 비롯해 이후 中原文化와 직·간접적인 교류를 갖고 발전해 왔으나, 한편 吳地域에는 외래문화에 대응하는 안정된 土着文化가 성장하여 왔음을 확인하였다. 또한 春秋時代 吳國의 강성함은 바로 이러한 吳地域 土着文化의 성장에 기초하였음을 확인할 수 잇었다. 따라서 秦漢時代 揚子江下流 吳地域에 대한 중앙의 一元的 지배가 용이하지 않았던 원인에는 邊方으로서의 지위외에도 中原文化圈외에서 성장해온 지역문화의 異質性이 작용하였으리라 생각한다. 이와 같은 吳地域에 형성된 고대문화에 관한 본 연구는 통일국가내 지역문화 특성의 형성과정을 비롯하여 이제까지 非文化地域, 낙후한 지역으로 인식되었던 南方 蠻夷地域에서 성장한 土着文化 體系를 이해하는 기초 작업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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