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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오농민전쟁에 관한 연구 : 사회경제사적 배경과 정치적 성격을 중심으로

Title
갑오농민전쟁에 관한 연구 : 사회경제사적 배경과 정치적 성격을 중심으로
Authors
김경순
Issue Date
1988
Department/Major
대학원 정치외교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Doctor
Abstract
本 硏究의 課題는 甲午農民戰爭의 社會經濟史的 背景과 政治的 性格을 究明하는 데 있다. 주지하다시피 甲午農民戰爭은 19世紀後半의 對內外的 危機狀況 속에서 농민층을 중심으로 反官-反地主, 反外勢의 抵抗勢力을 결집하여, 항쟁을 전개하였다는 점에서 한국근대정치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농민전쟁의 反官-反地主的 性格은 그 歷史的 趨移를 보면 1862년 壬戌民亂에서 그 端初를 나타내어 1870년대-1890년대를 거치면서 점차 성장하여 1894년 農民戰爭의 단계에 이르고 있었다. 그리고 反外勢的 性格은 1876년의 開國을 계기로 한 자본주의 경제의 침투와 그에 따른 농민경제의 파탄과정에서 형성된 배외의식이 1870-1890년대를 거치면서 점차 성장하여 農民戰爭의 단계에 이르고 있었다. 그러므로 본 연구는 1862년의 壬戌民亂으로부터 1870년대-1890년대를 거쳐 1894년 甲午農民戰爭에 이르기까지의 연속선상에서 그 정치적 성격의 변화과정을 검토하였다. 그 결과 각 단계에 있어서 社會經濟的 狀況의 변동과 관련한 농민층의 동향에서는 다음과 같은 정치적 성격이 나타났다. 19世紀前半의 朝鮮朝社會는 農民層分化, 身分制解弛에 따라 기존의 鄕村社會秩序가 동요되고 있었으나 朝廷의 對應策이 實學者의 制度改革論의 차원이 아니라 稅制改善論의 차원에 머무름에 따라 壬戌民亂이 발생하였다. 1862년 壬戌民亂의 參與勢力은 小-貧農層, 半農半雇層, 流民 등 農民層分化過程에서 몰학하였던 계층과 富農, 鄕任層 등 고을의 全階層이 三政弊端의 是正要求라는 동일한 목표를 가지고 민란에 참여하였으나 亂이 진행됨에 따라 鄕村內 階層間의 갈등이 露程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壬戌民亂의 단계에서는 몰락농민들이 동일한 경제적 이해관계를 바탕으로 한 계층의식의 단계에까지는 이르지 못하였기 때문에 민란의 樣相도 자연발생적이었으며 지역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그러나 朝廷의 현상유지책과 開國에 따른 자본주의 경제의 침투 결과, 농민층의 몰락이 가속화되어 갔던 사회경제적 조건에서 몰락농민층은 동일한 경제적 이해관계를 매개고 하여 계층적 결속의 기반을 마련해 가고 있었다. 그 결과 1870년대 1890년대의 일부 민란의 경우, 殘班層을 중심으로 민란지도부가 형성되어 민란을 事前에 준비하고, 鄭鑑錄 등의 民間信仰이나 東學의 조직을 매개로 하여 郡의 범위를 넘어 농민층을 규합하여 감으로써 지역성을 극복해 가고 있었다. 또한 火賊의 경우, 몰락농민층이 主體勢力이 되어 대규모로 집단화하는 경향을 보여 주면서 고을내 地主層, 富農層을 공격하는 데 그치지 않고 官을 공격함으로써 反官-反地主的 性格을 나타내기 시작하였다. 나아가 開國後인 1880년대 後半에는 火賊間의 紐帶結束이 형성되어 갔으며, ‘義擧伐倭’의 反外勢的 구호를 표방하기에 이르렀다. 1894년의 甲午農民戰爭은 그 蜂起初부터 檄文, 傍文, 布告文등을 통하여 閔妃執權勢力의 타도와 貪虐官吏의 처벌을 그 정치적 목표로 명확히 제시하였으며, 弊政改革案에서는 정치, 사회, 경제에 걸친 개혁구상을 밝혔었다. 농민군의 개혁구상은 균등한 토지소유의 실현 부패관료의 척결, 신분제의 타파, 외국상인의 商權侵害저지 등으로 집약되는데 이는 농민층의 지향하는 바가 反官-反地主, 反外勢的인 것임을 분명히 하여 준다. 弊政改革案에서 주목되는 것은 ‘土地均分’으로서 농민층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정치사회의 토대를 이루는 것이라고 하겠다. 나아가 農民軍은 執綱所를 설치하고 농민층 중심의 고을, 自治制 운영을 통하여 身分制의 폐지, 舊經濟慣行의 폐지 등 弊政改革을 실천함으로써 단기간이나마 朝鮮朝儒敎政治體制의 근본적 변혁을 시도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이 農民戰爭의 단계에서는 단순히 地方官 혹은 朝廷에 대하여 弊政是正을 요구하였던 壬戌民亂段階나 1870년대 1890년대의 反官-反地主的 民亂段階와 비교할 때 反官-反地主的 抵抗主體로부터 향촌사회변혁의 주체로 전화해 갔다고 할 수 있다. 또한 1870년대-1890년대의 단계에서 일본의 경계적 침투에 직면하여 단순한 背外感情에 머물렀던 ‘斥倭洋’의 政治的 指向은 농민전쟁의 단계에서는 농민층이 중심이 되어 對日戰을 목표로 保守儒林層, 吏胥層, 官軍을 결집해 가려 하였던 데서 ‘反外勢’의 抵抗主體로 확립되어 갔다고 할 수 있다. ;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amine socio-economic background and political character of Gabo Peasant War. As we know Gabo Peasant War is an important event in Korean politics. Because it was the anti-authority, anti-landlord and anti-foreign struggle in which peasants plays a central role. But this peasant was was the product of the Imsul-minlan(壬戌民亂, 1862) and sucessive anti-authority, anti-landlord rebellion, and anti-foreign struggle which occurred after the Opening of Country(開國, 1876) and the diffusion of capitalistic market relation in Korea. So the time span of this study in 1862-1894and the object of this study is the process of transformation of peasant movement. In the first half of 19th century, the existing order of the village community was disturbed because of differentiation of peasant and relaxation of estate order. But the counter-measure of the government was transient. In the long run the discontent of the peasant was increased and exploded in the Imsul-minlan. In the beginning all the members of classes participated in it. But the conflict between classes appeared on the surface gradually. But it could not develop into class-consciousness, so temporary and unsystematic. In this point the Imsul-minlan had limitations. But the common interest of peasant which was aggravated with the diffusion of capitalistic market relation and the lukewarm policy of the government gave an impetus to peasant coherence. As a result, a series of people’s rebellion after Imsul-minlan became systemaic, and overcame regional limitation. In this process, folk-relision(鄭鑑錄) and Donghak(東學) gave and ideological foundation. And on this ground they advocated anti-foreign slogan(義擧伐倭) in the long run. Gabo Peasant War, from the outset, presented political aim, and economic program clearly. Peasants participated in the peasant war proposed the equalization of land ownership, the punishment of rotten government officials, abolishment of estate order and the exclusion of the privilege of foreign merchants. These proposal expresses the character of the peasant war. In this war, peasant were transformed from resistance force to positive reformists of the existing social system. And the simple anti-foreignism of the previous rebellion was transformed into systematic anti-foreign poli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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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대학원 > 정치외교학과 > Theses_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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