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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양장의 변천에 관한 연구

Title
한국여성양장의 변천에 관한 연구
Authors
유수경
Issue Date
1989
Department/Major
대학원 의류직물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Doctor
Abstract
服飾은 한 社會의 文化를 반영한다. 文化는 服飾과 人間의 服飾生活에 영향을 미치며, 社會文化的 현상은 服飾에 반영된다. 韓國社會는 開化期 西歐文物의 流入과 함게 朝鮮朝의 傳統社會가 붕괴되면서 社會文化 전반에 變動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와 더불어 韓國女性服飾도 數千年을 지속하여온 固有服飾에 西歐의 洋裝이 도입되면서 커다란 변화의 국면을 맞게 되었다. 韓國女性服飾의 변천에는 한국사회의 近代化라는 社會的 背景이 전제되어 있다. 한국사회는 開港以後 近代化를 志向하는 노력이 계속되었다. 봉건적 사회체제를 變革하고 自主的 近代化를 추진하려는 主體的인 意識의 形成은 開化期 민족적 위기 상황에 대응하여 각 部門에 나타났다. 집권세력에 의한 위로부터의 改良과 開化派의 變革運動, 아래로부터의 民衆的 變革運動은 특히 文化, 敎育, 産業부문을 중심으로 여러 분야에서 추진되었으나 中途挫折을 겪게 되었다. 1905年 乙巳5條約 이후 日帝의 統監府 설치와 1910年 韓日合倂으로 韓國이 日本의 植民地로 變遷하면서 자주적 近代化의 노력은 民族運動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日帝時期의 物産奬勵運動, 敎育振興運動, 産業振興運動등의 추진이 그 단적인 표현이다. 이에 대해 日本은 철저한 탄압으로 沮止하였다. 35년간의 日帝植民地統治가 끝나고 1945年 解放이 되었으나, 밖으로부터 주어진 解放이 갖는 불완전성은 分斷과 左·右翼의 극심한 대립과 分斷國家 수립을 가져왔고, 이는 6.25라는 同族相殘의 비극으로 이어졌다. 한편 戰爭期間과 그 이후의 美軍의 주둔으로 美國 大衆文化는 選別的 收容이 아닌 일방적이며 무제한적으로 수입되었다. 특히 원조경제체제, 구호물자와 더불어 사회문화 각 부문에 영향력을 미쳤으며 服飾도 예외는 아니었다. 女性服飾의 기초가 되는 衣料에는, 開港以後 수입직물의 범람으로 傳統的 織物生産의 위축을 가져왔다. 정부는 殖産興業政策을 추진하는 등 제도적 개혁의 노력을 정주하였으나 실패로 돌아갔다. 다만 정부의 노력과 언론기간을 통한 계몽등으로 민간기업가들의 민족자본에 의한 織物工業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 일본은 社會令의 발표 등으로 한국기업의 발전을 억압하였다. 따라서 日本製 직물이 당시의 조선시장을 장악하였다. 한편 日帝時期에는 人絹(rayon)이라는 새로운 섬유가 등장하여 기존의 綿, 麻, 絹, 毛織物과 함께 衣料로 사용되었다. 解放後 얼마동안은 日帝가 남기고 간 기계설비에도 불구하고 기술과 원료고갈로 衣料不足을 겪었다. 織物産業이 제자리를 찾을 무렵 발발된 6.25는 산업시설을 파괴하여 또 다시 衣料가 부족하게 되었다. 따라서 軍服이나 救濟品을 재생하여 입었고 密輸品이 번성하게 되었다. 戰爭중에 유행한 마카오 양복지나 빌로드 옷감도 모두 密輸品이었다. 戰後社會에서 복구작업이 활기를 띠어가고 직물업계도 정부의 면직물 수입금지조치와 해외원조에 힘입어 점차 제자리를 잡아 발전하기 시작했다. 한편, 그동안 외국에서 개발된 나일론 등 합성섬유가 수입되오 女性服飾界는 衣料의 革命을 가져왔다고 할 수 있다. 女性의 價値觀 變化도 女性服飾의 變遷에 큰 몫을 차지하였다. 開化期以後 시작된 한국여성의 近代的 敎育은 女性의 意識變化와 여성이 사회에 진출하여 經濟的 活動을 하고, 이로 인하여 價値觀이 변모하는 계기가 되었다. 開化期에 시작된 한국 여성의 近代的 敎育은 日帝時期의 억압속에서도 그 범위가 확대되어 新敎育을 받은 女性들은 韓國社會의 女性服飾變遷의 推進主體가 되었다. 또한, 韓末 救國運動의 차원에서 시작된 女性團體運動은 여성의 意識變化를 가져오고, 여성이 사회에 진출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와 더불어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여성인구도 점차 증가하였다. 이러한 사회적 배경하에서 여성의 가치관 변화는 1920年代 및 30年代의 新女性이 등장하는 요인이 되었고, 新女性들은 남녀평등을 주장하고 衣制改良을 先導하였다. 新女性들의 가치관은 전통적 가치기준과 갈등을 겪으면서도 일반여성 및 사회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解放以後 新敎育을 받은 여성은 더욱 확대되었고 이들의 사회활동도 더욱 多樣해졌다. 또한 戰爭으로 인한 傳統的 가족의 해체와 가치관의 변화로 西洋風을 모방하고 사치와 자유로운 생활을 즐기려는 ‘自由婦人型’의 여성상이 대두하여 사회의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新女性’이나 ‘自由婦人’에서 表出된 女性價値觀의 변모는 사회 전반에 걸쳐 여성에 관한 觀念의 변화를 초래하였고, 女性服飾에 있어서도 그들의 服飾이 곧 일반여성들 사이에서 모방되는 양상을 보였다. 다음으로 女性服飾의 變遷과정을 時期別로 살펴보았다. 韓國 女性服飾의 변화는 開化期 海外에서 귀국한 女流人士들의 洋裝에서 시작되었다. 1880年 以後 1905年 乙巳5條約에 이르기까지 女性服飾은 政府主導로 官服이 改定되었던 남성복과 달리, 외국에서 귀국한 여성들이 양장차림을 하고 돌아오면서부터 서서히 변화되었다. 이들의 양장은 대개 챙 넓은 모자에 S字 실루엣의 롱드레스(long dress)였다. 이러한 해외선교사나 귀국 여류인사의 양장에 자극을 받은 한국여성들은 한복의 불편함음 깨닫고 이를 改良하고자 하는 논의를 시작하였다. 특히 乙巳5條約(1905~1910)以後 사실상 國家主權이 상실된 조건하에서 日本의 植民地化作業이 확장됨에 따라 한국여성계는 愛國啓蒙과 救國意志의 표현으로 양장착용이 줄고 그 대신 한복을 개량하여 입기 시작하였다. 그 선도적 역할을 한 것은 각종 여성단체와 전도부인, 그리고 여학생들이었다. 韓日合倂 이후에도 이러한 변화는 계속되었다. 그리하여 장옷이 폐지되고 여자의 저고리가 길어졌다. 치마는 통치마로 그 길이가 점차 짧아지게 되었다. 한편, 여성의 외출이 잦아짐에 따라 쓰개치마나 장옷이 사라지고 쓰개치마 대신 우산이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여성들도 두루마기를 입게 되었다. 여성들이 장옷을 벗게 되어 머리가 노출되자 팜프도어(pompadour)라는 머리모양이 새롭게 등장했으며, 통치마 저고리에 양말이나 버선을 신고 구두를 신는 등 한복과 양장을 혼용하는 양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당시의 양장은 블라우스에 긴 스커트, 자켓의 투피스 차림이 많았고 여기에 모자와 양산을 더한 것이었다. 또한 이 때 淑明女子大學校 校服을 비록하여 간호원복등에 양장이 채택되기 시작했다. 韓日合倂 이후 日帝植民地 초기가 되는 1910年代(1910~1919)에는 日帝의 武斷統治에도 不拘하고 抗日 민족의식이 고취되면서 민족의 의상인 한복의 착용이 더욱 늘어났고, 특히 한복개량이 서서히 그 전파 범위를 넓혀갔다. 1914年 梨花學堂에서 시작된 어깨허리는 전국적으로 전파되었고, 저고리 길이가 길어지고, 통치마 길이는 짧아지는 변화가 계속되었다. 통치마가 등장하면서 재래식 속옷이 사라져 갔다. 머리 모양도 더욱 다양해져 팜프도어, 트레머리, 둘레머리 등이 있었다. 양장과 한복을 혼용하는 현상도 계속되었고, 두루마기 대신 한복에 코우트를 입는 경우도 있었다. 양장은 투피스나 원피스 스타일이 여전히 애용되었는데 1910年代末에 들어 스커트의 길이가 짧아지기 시작하였다. 1919年 3.1운동이 실패로 돌아간 후 1920年代(1920~1929)의 女性服飾은 洋裝化의 경향이 뚜렷이 나타났다. 이른바 「新女性」의 등장은 그들에 대한 사회적 비난에도 불구하고 복식계에 있어서 새로운 자극과 轉機를 가져왔다. 즉, 新女性들은 西歐의 유행을 추종하여 단발머리에 보이쉬 스타일(boyish style)의 짧은 원피스나 스커트 차림으로 사회의 이목을 끌었다. 그들은 단발에 크로쉐(cloche)등의 모자를 쓰고 원피스나 각종 자켓, 스웨터, 스커드 등의 옷차림을 선보였고, 코우트나 케이프(cape)를 유행시켰다. 한편 이 당시에 운동복이나 수영복도 처음 선보였다. 이러한 양장의 유행은 한복에도 변화를 가져와 한복의 통치마 길이도 무릎에 이를 정도로 짧아졌다. 또한 트레머리, 첩지머리외에 단발이 통치마차림의 여학생들 사이에도 번졌으며, 양말, 구두, 핸드백, 쇼올(shawl), 양산 등이 한복과 함께 사용되는 현상도 여전하였다. 1920年代에는 전통적인 여성의 신에도 변화가 있게 되었는데, 초혜나 당혜 대신 고무신이 등장하여 인기를 끌었다. 日帝後半期(1931~1945)의 女性服飾을 살펴 보면, 1930年代는 특히 여성의 양장이 다채로왔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여성들의 머리모양은 파마가 등장하였으며 모자도 다양한 것이 선보였다. 여성들의 服飾은 여성적인 실루엣이 유행하고 색체가 다채로와졌다. 즉 플레어(flare)형의 원피스나 스커트가 유행했고, 라그란 슬리이브(raglag sleeve)가 애용되었다. 韓服과 洋裝의 혼용은 계속 답습되었는데, 양산과 쇼올이 한복에도 매우 인기있는 품목이 되었다. 핸드백도 그 사용이 늘고, 신도 다양해져 운동화, 구두, 샌들 등이 두루 사용되었다. 그러나 30年代末 戰時體制가 되면서 日帝는 사치스런 衣生活을 금지시켰고 簡單服과 몸빼를 강요하여 일반여성은 물론 여학생의 교복까지 몸빼화되었다. 解放直後 우리 여성들은 나라를 찾은 기쁨에서 한복을 다시 입게 되었다. 그러나 경제난과 물자부족으로 日本軍服을 재생하거나 日帝時期부터 입던 簡單服, 몸빼 등을 계속해 입기도 하였다. 다른 한편으로는 密輸品과 美軍政下에서의 救濟品을 통해 양장을 입는 인구가 늘어났다. 물론 양장착용 인구의 증가에는 여성의 사회진출이 늘어난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었다. 이 당시에는 日帝末이래 여전히 밀리터리 스타일(military style)이 유행하였다. 1948年 大韓民國政府가 수립되고 사회가 안정을 찾아가면서 女性服飾도 점차 西歐化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을 때인 1950年 6.25 전란이 발발하자 女性服飾界는 또 다시 침체기를 맞게 되었다. 韓國戰爭期(1950~1953)의 服飾은 모든 시설이 파괴되고 물자가 소실되어 군복을 개조한 의복이나 구제품 의복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그러한 가운데서도 빌로드치마가 유행되어 대단한 선풍적 인기를 누렸으며, 슈츠(suits)와 플레어가 있는 코트도 유행하였다. 양장 스타일은 일부츠에서는 새로이 수입된 뉴 룩 스타일(New Look Style)을 착용하기도 하였지만 대개는 여전히 밀리터리 룩(Military Look)에 머물러 있었다. 개량한복 차림도 여전히 볼 수 있었지만 그 수는 전보다 줄고 양장차림이 늘어났다. 還都後 戰後復舊期(1953~1960)의 服飾은, 그 초기에는 여전히 軍服과 救濟品 의복 그리고 密輸品이 대부분이었다. 이 당시에 특이할 것은 나일론의 등장이다. 한편 전후복구가 진행되면서, 여성의 활동도 늘어났고 각종 매스컴도 발전하는 등 새로운 사회적 분위기에 맞추어 女性服飾도 더욱 발전하게 되었다. 즉, 매스컴의 발달로 西歐流行이 신속히 소개되어 유행하였으며, 이에 따라 머리모양이나 장신구, 구두 등도 더욱 다채로와졌다. 이 당시에 유행한 스타일로는 뉴 룩, H라인, A 라인, 엠파이어 라인(empire line), 색 드레스(sack dress), 맘모(mambo)바지 등이 있었다. 또한 여성의 사회활동의 증가로 양장착용이 늘어나 1960년을 기점으로 양장착용인구가 한복착용인구를 능가하게 되었다. 이러한 韓國女性服飾의 變遷은 開化期以後 한국사회가 近代化하면서 변화되었던 사회문화적 변화와 그 맥을 같이 한다. 따라서 이러한 사회적·문화적 배경은 服飾의 변천에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으며, 앞으로 이에 관한 本格的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 Clothing reflects the culture of a society. Culture influences clothing and the attitudes of the wearer. In various fields of Korean society and culture, changes took place with the introduction of western civilization and the collapse of the feudalistic system in the Yi dynasty. In addition western style clothing brought changes to the traditional clothing of Korean women which hadn’t changed in the past thousand years. But these changes were influenced by the modernization of Korean society. Ever since the opening of the ports, Korean society, with great effort, pursued modernization. People began to feel pressure to the open the country more rapidly, which as a result, forced them to modernize their country through their own efforts and to reform the feudalistic system. There arose a reformation movement both from the ruling power and from the people, especially in the fields of culture, education and industry. Unfortunately, however, all these fields suffered a setback in the midst of their development. In 1950, the Japanese government set up a residency-general in Korea as required by the Eulsa 5 treaty, and in 1910, the Consolidation of Korea and Japan eventually colonized the country. This redirected the people’s effort from independent modernization toward a movement for independence. For instance, they started the Local Product Encouraging Movement, the Education Promotion Movement and the Industry Promotion Movement which were subsequenty severely prohibited by the Japanese government. The Land finally achieved Liberation in 1945 after thirty-five years of colonization. Nevertheless, the country was divided into two parts and there was an extreme antagonism between the right and left wings, which resulted in the establishment of two separate governments, one in the North and the other in the South. And eventually the Korean War broke out. During and after the war, American culture was unilaterally and unlimitedly imported along with the presence of the U.S.Army. The Aid-Economic System and the relief goods had an especially tremendous influence on every aspect of Korean society and culture. Clothing was no exception. With the opening of the ports, imported fabrics overwhelmed the Korean market depressing domestic fabric production. The government practiced a “Rehabilitation Policy of the Colonial Industry” and other systematic reformation measures in vain. Fortunately, however, through the government’s effort and promotional campaigns, the textile industry was established by native entrepreneurs and their domestic capital. Unfortunately, the Japanese government restrained its development by issuing a Social Decree. As a result, Japanese-made fabrics overwhelmed the Korean market. During the colonial period, a new fiber called rayon was introduced and widely used along with existing fibers life cotton, linen, wool and silk. For some time after Liberation, despite the machinery installation left by the Japanese, Korea had to suffer a shortage of clothing due to manufacturing inexperience and a lack of raw materials. The textile industry was just about ready to stand on its own when the Korean War broke out destroying factories and installations and again creating a shortage of clothing. Therefore, people had to wear recycled military uniforms or relief clothes and smuggled goods such as Macaoian clothes and velvet. After the war, the Government banned imports of cottons and received foreign aid to develop its own domestic textile industry. In addition imports of synthetic fiber like nylon created a revolution in the clothing business. Changes in women’s values also affected their concepts toward clothing. Since the opening of the country, Korean women who received a modern education learned to participate in social and economic affairs and consequently changed their outlook on life. The number of educated women gradually increased in spite of oppression from the Japanese and these women formed a new(modern)class who became a catalyst, propelling changes in Korean women’s clothing. At the same time, the women’s collective movement, generated from a save-the-nation movement founded at the close of the Yi dynasty, created changes in consciousness and encouraged participation in outer society. This encouraged an increasing number of women to participate in economic activities. The social environment in the 20s and the 30s became a factor in the emergence of modern women who insisted on equality of the sexes and who led a reformation in clothing. Although their new points of view often conflicted with that of traditional society, they greatly influence all women and the society of that time. After Liberation, the number of educated women increased and their social activities moved into even more varied fields of endeavor. However, the Korean War strained the traditional family system and changed the values of the people. There arose a new image of woman called the ‘Free Wife’. These women enjoyed imitating western styles, extravagances and free living. Thus they became the objects of criticism. Despite the criticism they received from society, modern women, including the “free wives”, became the forerunners changing existing life values and concepts. Their clothing was also imitated by most Korean women. The following describes the process, of change in women’s clothing during each period: Korean women’s clothing started to change when educated women came from abroad wearing new western style clothes as the country was opened to western civilization. From 1880 until 1905(Eulsa 5 Treaty), men’s official outfits were changed by the government. On the other hand, women’s clothing changed more slowly in style as some educated women gradually returned to the country with their western style clothes. Generally in this period, they wore an S-silhouette long dress with a broad-brimmed hat. Stimulated by these women- foreign missionaries or educated women form abroad, -Korean women started discussing the reform of their inconvenient traditional dress. The country actually lost power after the Eulsa 5 Treaty and was colonized by Japan. This encouraged Korean women to protest by wearing Korean traditional dresses instead of western style clothing as an expression of their patriotism. Various women’s organizations, missionaries and female students played a leading role in this movement. Finally they did away with the ‘Jang-ot(sort of veil)’ and lengthened their ‘Jeogori(Korean jacket)’. Also the traditional long skirt was seamed and shortened. Parasols replaced old-fashioned veils(Sseugyechima or Jang-ot)and women began to wear ‘Durumagee(traditionally, man’s overcoat)’ as they now had more chances to go out. As a result, women’s fashion became a mixture of both traditional and western styles: for instance, as women took off their veils, a new western style hairdo ? the pompadour- came in fashion, and they wore socks, sometimes ‘beoson’, with western shoes when they wore traditional dress. Western fashion at that time consisted of two piece suits-blouses, long skirts and jackets- with hats or parasols. It was also then that students at Sookmyung Girls’ School and nurses began to wear western style dress as uniforms. In the early colonial period(1910-1919), people consciously wore traditional dresses, especially the modern versions, as their national spirit rose against the Japanese military government. A shoulder-strap shirt, worn for the first time by Ewha students in 1914, spread nationwide. The changes in women’s clothing continued: the length of ‘Jeogori’ got longer while that of skirt got shorter, and as the seamed skirt became popular, traditional underwear slowly disappeared. Hair styles varied as well: pompadours, chignons or ‘Dullae Meori’ were in vogue. Traditional and western style clothing continued to be worn together and sometimes a coat was worn over the traditional dress instead of the ‘Durhumagee’, two piece or one piece suits were still preferred and at the close of the 1910s, the length of the skirt shortened. In the 1920s, the trend in women’s clothing moved closer to the western model. The so-called group of ‘modern women’, despite the criticism they received from society, stimulated and motivated the concepts of women’s dress. Following the western style, they wore boyish short skirts or one piece suits as well as bobbed hair, which drew great attention from the public. Cloche hats on bobbed hair, one piece suits, jackets, sweaters and skirts were introduced and coats or capes were in fashion. It was also then that sportswear and bathing suits were first introduced. Western style fashions brought changes in the traditional dress, shortening the length of a skirt up to the point of the knee. Replacing traditional hairdos, bobbed hair spread among students who were wearing seamed traditional skirts, socks, shoes, handbags, shawls and parasols, often worn along with traditional clothing. In the 1920s, there were also changes in women’s footwear ; rubber shoes(Gomushin)replaced traditional shoes such as ‘Cho-hae’, or ‘Dang-hae’. In the 1930s, the latter half of the colonial period, women’s western clothing was especially diverse. Permanent waves were introduced and various kinds of hats were also in fashion. The feminine silhouette was in fashion along with flared one piece dressed with raglan sleeves or skirts. Varied colors were very popular during that period. Mixtures of traditional dress and western clothing continued during the 30s. Parasols and shawls were often used along with the traditional dresses and more women carried handbags with them. There was variety in shoes as well: sports, shoes, leather shoes and sandals were commonly worn. In the late 30s, as Japan was preparing for war, extravagant clothing was prohibited by the Japanese government and most women, even the students, had to wear ‘Mombbeh(loose pants with tightened ends around ankles)’. After Liberation, Korean women began to wear traditional dresses again to show their delight. However, due to the shortage of materials right after the war, many people wore recycled military uniforms of ‘Mom-bbeh’. On the other hand, the number of people wearing western style clothing gradually increased as there were black market fabrics and relief clothes available. Of course women’s increased participation in social activities outside the home was another factor in this change. The military style came into vogue then as it had during the colonial period. As the society achieved stability with the establishment of the R.O.K. government in 1948, women’s clothing westernized more rapidly. Unfortunately, however, the Korean War broke out in 1950 depressing the clothing business as a whole. Regenerated military uniforms or relief clothes provided most of the clothing during the war. Nevertheless, velvet skirts, coats and suits were in vogue even under these dark circumstances. Some women wore the “New Look Style” which was newly imported, but the military look remained more common. There were a few who still loved wearing the reformed traditional dresses, but women wearing western style clothing outnumbered them on the whole. Post-was clothing(1953-1960)was much the same as that worn during the war but there was one major change: that was the introduction of nylon. As women began to spend more time outside the home and the mass media responded to the new social atmosphere, women’s clothing improved as well. Western fashion was more rapidly introduced thanks to the media and accordingly hairdos, accessories, and shoes become more varied. The “New Look”, H line, A line, Empire line, sack dress and mambo trousers were in fashion then. Korean women’s clothing changed as society began to modernize. Therefore, the social and culture influences in each period are very important factors directing the change in women’s clothing. I expect there will be further full-scale studies in this field in the fur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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