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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세기 통일신라의 북방진출 연구

Title
8세기 통일신라의 북방진출 연구
Authors
조이옥
Issue Date
1996
Department/Major
대학원 사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Doctor
Abstract
본 논문은 전제 왕권의 한 양상으로 통일 신라 북방 진출의 면모에 대해 살펴보았다. 8세기는 전제왕권하에서 정치적인 안정과 더불어 활발한 대외관계가 전개된 시기에 해당한다. 따라서 통일 신라 중에서 전제 왕권의 대외적인 면모를 가장 잘 반영하고 있는 8세기를 대상으로 하였다. 통일 신라 북방 진출은 고구려 유민에 대한 배려 차원과 한반도내 말갈에 대한 방어 차원에서 시작되었다. 통일 신라는 8세기이래 점차 국력이 신장됨에 따라 영토의 개척과 발해와의 관계 개선을 통하여 자국의 역량을 과시하였다. 이와 같이 북방 진출은 영토 개척과 대외관계라는 두 방향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먼저 동북변의 경우 靺鞨과 渤海와의 관계에 대해 살펴보았다. 말갈은 고구려의 부용 세력으로 삼국시대이래 한반도 내에 존재하였다. 말갈은 고구려의 무력원으로 한반도 동북면 일대를 근거지로 하면서, 유목민족으로서의 기동력과 민첩성으로 신라의 변방을 자주 침입하였다. 말갈의 존재는 신라인들에게 敵國으로 인식되었다. 고구려 멸망 이후에도 이들은 한반도 내에 존재하고 있었다. 따라서 8세기 전반 신라는 동북면 일대에 축성 사업을 통하여 말갈의 침입을 방어하였다. 말갈에 대한 인식은 발해 건국기 신라의 대발해 인식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즉 신라인들은 말갈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발해를 발해와 동일시하였던 것이다. 요컨대 8세기 전반 신라와 발해의 관계에 있어 말갈이 중요한 관건이 됨을 알 수 있다. 말갈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8세기 중엽이래 동북아의 국제 정세 속에서 신라의 대발해 교섭의 면모를 살펴보았다. 8세기 중엽 경덕왕대는 전제 왕권의 극성기를 구가한 시대였다. 한편 국제 정세를 살펴보면 唐의 體制弛緩과 함께 북방에서 발해가 강국으로 부상하고 있었다. 발해는 문왕대에 이르러 점차 한반도 내로 남하정책을 추진하였다. 따라서 한반도내 말갈 세력은 발해의 세력권하에 병합이 되었다. 문왕은 함경도 일대에 남경을 설치하고 중앙집권 체제하에 두었다. 이로써 신라와 발해는 국경을 이웃하게 되었다. 국경을 접하게 된 양국은 어떤 형태로든 관계를 모색하게 되었다. 더불어 당의 체제 이완과 일본의 대신라정토계획 등의 정세 변화에 힘입어, 신라는 발해와의 관계를 모색하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이 경덕왕대는 국제 정세의 변화와 국내의 안정을 바탕으로 발해와의 관계를 모색하였다. 경덕왕대 발해와의 교섭은 몇 가지 차원에서 그 의의를 찾아볼 수 있겠다. 첫째, 신라의 대발해교섭은 사학사적으로 남북국 시대론의 단서를 마련하였다. 둘째, 동북면에 존재하던 말갈의 잠재적인 위협에서 모면할 수가 있게 되었다. 셋째, 신라는 발해와의 교섭을 통하여 숙원관계에 있던 일본을 견제할 수 있었다. 넷째, 신라는 국력의 신장과 함께 동북아에서 발해 및 일본과 더불어 상호협력·견제를 통하여 미증유의 평화를 구가할 수 있었다. 서북면에 있어서는 영토 개척에 대한 면모를 살펴보았다. 676년 당군을 축출한 이래 신라는 浿江一帶에 이르는 舊高句麗領을 새로이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러나 平壤一帶는 당의 영유권 주장으로 사실상 영토권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8세기 중엽 국제 정세와 관련하여 당이 패강이남의 소유를 승인해 주었다. 따라서 신라는 당의 영향력을 배제하고 적극적으로 북진책을 추진하게 되었다. 북진책의 추진은 수취원의 확보라는 차원과 함께 ‘三韓一家’의 현실화를 위해서도 요구되었다. 이렇게 볼 때, 浿江鎭의 성격도 군사적인 차원보다는 영토 개척과 관련하여 재해석하였다. 패강진에 대해서는 다음의 두 가지 점에 대하여 재검토하였다. 첫째는 패강진의 위치 문제이고, 둘째는 패강진의 성격에 대해서이다. 종래 패강진은 平山에 위치하며, 禮成江일대에서 浿江以南을 관할하는 군관구로서 이해하였다. 그러나 성덕왕 34년이래 패강일대에 대한 개척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었다는 점과 평양이 힘의 공백지 상태에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패강진의 위치는 평산이 아니라 평양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둘째, 패강진의 성격에 대한 것이다. 종래 패강진은 발해의 급부상에 근거하여 군사지역화한 것으로 이해하였다. 그러나 서북면의 경우 발해의 세력권과는 무관하였다. 그러므로 패강진은 군사적인 목적에서보다는 영토 개척을 위한 전진 기지로서 설치되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패강진 일대가 변경의 후진지역이었으므로 군사적인 성격을 지닌 행정조직인 鎭이 설치되었던 것이다. 요컨대 패강진의 존재는 신라의 영토가 평양 일대까지 확대되었음을 보여주는 실례라고 하겠다. 평양 일대의 수복을 통해 그 지역의 고구려 유민을 흡수 통합함으로써 진정한 의미에서 ‘三韓一家’를 달성할 수 있었다. 그리고 패강진의 개척은 고려 초기 서경 경영의 전신이라 할 수 있으므로, 고려초가 북방 진출에 일정한 가교 역할을 했다는 데에서 민족사적 의의를 찾아볼 수 있다. 이상에서 8세기를 중심으로 통일 신라의 북방에 대한 여러 정책을 살펴보았다. 먼저 서북면 일대에서 꾸준히 추진한 개척 사업을 통하여, 高句麗의 古都인 평양 일대를 회복하였다. 이 일대 고구려 유민을 흡수함으로써 신라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三韓一家’위업을 달성할 수 있었다. 동북면에서는 말갈의 잠재적인 침입을 방비하는 한편, 8세기 중엽 국제 정세 속에서 동북아의 평화 구현에 일익을 담당하였음을 살펴볼 수 있었다. 본 연구는 전제 왕권의 한 양상으로서 8세기 통일 신라 북방 진출의 면모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사료의 부족으로 인하여 논리를 전개하는 데 무리한 추측과 논리적 비약이 없지 않았다. 다만 통일기 신라 사회의 일 단면을 이해하는 데 보탬이 되었으면 한다. ; This study is to examine the Tongi lshilla(統一新羅) s Northward Policy(北方政策) as an aspect of the ancient despotism(專制王權). It was during eighth century when Tongi lshilla enjoyed political stability and developed an dynamic diplomacy. Therefore, the research on this period will demonstrate despotic Tongi lshilla s international activities. Her Northward Policy was devised to satisfy the both careful concern for ex - Kokuryo(高句麗) emigrants and defence against Malgal(靺鞨). Since eighth century, together with increasing the national power, Tongi lshilla eagerly tried to expand the territory and improve the relation with Palhae(渤海). Thereupon, the research on her expansion of land and diplomatic relation with Palhae will give good criteria to examine Tongi lshilla s Northward Policy. In the northeast, Malgal and Palhae were the significant counterparts for Tongi lshilla s diplomatic policy. First of all, the relation between Malgal and Tongi lshilla was the key factor to determine the relation between Palhae and Tongi lshilla. Malgal providing Kokuryo with military force had been a dependent people on Kokuryo since Samkook period(三國時代). They had kept staying in northern Korea and being too ready to invade Shilla. Therefore, Shilla had considered Malgal her enemy and constructed a defence wall against them. Such a hostile attitude toward Malgal had a significant influence on Tongi lshilla s understanding over Palhae. That is, Tongi lshilla regarded Palhae as Malgal in the same light, for Palhae consisted of mostly Malgal people. As a result, Malgal was a essential factor to affecting Tongi lshilla s diplomatic policy in the early eighth century. During the mid-eighth century, the Tongi lshilla s national power under King Kyungduk(景德王) reached the highest point. At that time, Tang(唐) s political unstability accelerated the emergence of great Palhae. King Moon(文王) in Palhae pushed to advance south. As a result, Malgal in Korean Peninsula was annexed into Palhae. King Moon established Namkyung(南京) around Hamkyung province(咸鏡道) and dominated them under the centralized control. Palhae s rule over Malgal meant that Palhae came to adjoint Tongi lshilla. Together with both political changes in Tang and Japan s effort to attack to Tongi lshilla, Tongi lshilla tried to improve the diplomatic relation with Palhae. In short, Tongi lshilla under King Kyungduk which enjoyed domestic stability and actively responded the international chanes around her attempted to revise the Palhae-Tongi lshilla relationship. The King Kyungduk s diplomatic policy toward Palhae resulted in four achievements. First of all, the interrelationship between two nations gave a new basis for North and South Nations in Korea(南北國時代論). Secondly, Tongi lshilla came to escape from Malgal s potential threat in the northeast. Thirdly, Tongi lshilla kept checking Japan through the negotiation with Palhae. Finally, Tongi lshilla secured a unprecedented peace through not only mutual cooperation among Palhae, Japan and herself but also watchful check on other two countries. In the northwest, Tongi lshilla drived out Tang s armies from Korea and newly conquered the old Kokuryo territory, P aegang-chin(패강진) in 676. At first, Tang didn t refuse to claim that area, but by the mid-eight century, she approve the southern area below P aegang as Tongi lshilla s land. After then, Tongi lshilla pushed her Northward Policy without any Tang s interference. Her Northward Policy was required to secure tax resources, and to unite completly three countries(三國) including Kokuryo. Accordingly, the nature of P aegang-chin can be explained rather by expansion of the territory than by the military purpose. Two main points that were examined here are both where P aegang-chin was located and what distinctions it had. The past researchers considered it a military district in P yongsan(평산) governing the southern area below P aegang. However, reviewing expansion of land around it and political vacuum of power in P yongyang(平壤), P aegang-chin was located in not P yongsan but P yongyang. P aegang-chin had been regarded as military district for defense against Palhae for many years. However, the northwestern area was not adjacent to Palhae. Consequently, it was built to expand and exploit the land. The reason why P aegang-chin as a military camp was established there was rooted from that around the P aegang was a remote region as a frontier. The existence of P aegang-chin showed the extent of Tongi lshilla s expansion of land in that time. The recovery of the land around the P yongyang unified ex-Kokuryo emigrants. Also it was the predecessor of governing Seokyung(西京) in Koryo(高麗) as a bridge connected to the Northward Policy in early Koryo. Conclusively Tongi lshilla achieved the great task to unite all three countries, Kokuryo, Paekje(百濟) and Shilla by expanding the northwestern area of Korea, acquiring the excapital of Kokuryo, P aengyang, and integrating the ex-Kokuryo emigrants within her. Also in the northeast, she destroyed the potential threat from Malgal to secure a peace in the northeast 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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