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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羅醫學史硏究

Title
新羅醫學史硏究
Authors
이현숙
Issue Date
2002
Department/Major
대학원 사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Doctor
Abstract
의학이 발달하는 계기는 내재적 요인과 외재적 요인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내재적 요인으로서는 첫째, 이상기후와 전염병의 만연, 급격한 인구 감소 등과 같은 사회적인 요인을 지적할 수 있다. 이는 사회 불안과 재원의 감소라는 측면에서 정권 담당자의 각성을 유인하게 된다. 둘째, 의학 혜택에 대한 사회적 요구를 수용할 수 있는 담당 계층이 성숙되어 있어야 한다. 즉 의학 발전은 사회 발전과 궤를 같이 한다. 외재적인 요인으로는 선진적인 외래 의학과의 접촉을 들 수 있다. 이러한 계기가 가장 증폭되는 시기는 바로 전쟁이다. 신라 의학의 발전에서도 이를 확인해 볼 수 있는데, 특히 왕권의 성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이 그 특징이다. 민간 부분이 발달하지 못한 신라사회에 있어, 의학을 발전시킬 역량과 의식을 가지고 있던 집단은 국왕을 중심으로 하는 정권 담당자였다. 신라사에 있어서 의학이 획기적으로 발전하였던 시기는 5세기초와 7세기 중엽을 지목할 수 있다. 먼저 5세기초 신라의사 金武와 鎭明方을 통해 신라 고유의 傳統 醫方이 발달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古事記}와 {일본서기}에 일본 允恭帝(412∼453)의 고질적인 다리병을 치료한 신라의사로 기록된 波珍餐 金武는 {三國遺事}에 나오는 金武謁과 동일 인물로서, 그 역사적 실체가 확인된다. 또한 9세기초에 편찬된 일본 의학서 {大同類聚方}에 남아있는 新羅國 鎭明方은 중국 漢代와 魏晉시대까지 약물 지식까지 포괄하였다. 이는 신라가 고구려 의학을 통해 중국의 간접적인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중국과 직접 교통할 수 없었던 5세기초 신라의 상황과 약물의 배합으로 미루어 보건대, 진명방은 신라 고유의 처방이라고 하겠다. 8세기 무렵에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신라의 전통 의방­威靈仙方과 新羅法師方 등은 5세기초부터 발달한 신라 전통 의방을 반영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5세기초는 신라 의학사를 논함에 있어 중요한 발전 시기임을 확인할 수 있다. 두 번째 시기는 무열왕의 등장과 함께 시작되었다. 무열왕 자신이 직접 중국에서 선진 唐 醫學을 체험함으로써, 신라 의학의 지향점이 설정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중대 전제왕권기의 의학 발전 배경으로서 무열계가 주도한 통일전쟁은 매우 중요하다. 이 전쟁은 신라·고구려·백제를 위시하여, 唐 그리고 당군에 소속되었던 돌궐·회흘·말갈의 기병 및 일본이 참여한 동아시아 세계대전이었다. 전투는 주로 한반도 내에서 행해졌는데, 몇십 만에 달하는 외국군대의 출현은 신라 사회내부에서 새로운 전염병이 유행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는 의료수요를 증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신라는 나당연합군으로 전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당나라 선진의학을 직접 경험하게 되었다. 한반도에 진주한 당나라 군대의 요구에 의해 각종 의약품을 제공하는 과정에서, 당시 동아시아 최고 수준을 자랑하던 당나라 의학 체계와 의료체계에 관해서도 알게 되었다. 더불어 전쟁기간 중에 한반도에서 횡행하던 새로운 전염병은 신라가 일찍이 경험하지 못하던 것으로, 신라 집권층이 공공 의료의 중요성을 자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것은 바로 통일 이후 신라가 당 의료체계를 대폭 수용하는 현상으로 이어졌으며, 이를 이끌어 나갈 의료관료가 갖는 중요성에 대한 인식도 더불어 커졌다. 중대 의학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하였던 것은 전쟁기 신라가 경험한 軍陣醫學이었다. 終戰 후 692년 신라 의학교육기관인 의학 이 설립되었다. 이것이 가지는 한국 의학사적 의미는 바로 의료 지식인들을 국가가 양성 통제하고, 교과 과목 선정을 통해 의학에 대한 인식을 일원화시키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었다는 것에 있다. 종래 신라에서 행해진 다양한 의학적 인식을 중국의 {內經}과 {難經}을 중심으로 일원화함으로써, 의학에 대해 신라인이 가졌던 기존 이해를 완전히 변화시키는 것이다. 이는 巫醫와 僧醫가 주역으로 활약하였던 中古期 의학이 갖는 패러다임과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즉 중대에 이르러 인체, 우주에 대한 제반 인식의 전환이 국가의 주도하에 시행되었음을 보여준다. 특수지식 소유집단에 해당하는 신라 의사는 국가가 양성한 관료 의사가 그 주축을 이루었다. 신라 중대 전제왕권은 의료관료를 양성하고 이들이 5품이상의 문무관료의 건강을 돌보게 함으로써, 의료를 매개로 신민을 지배하고자 하였다. 이는 중세 의료체제가 가지는 전형적인 특징이다. 중세 의료체제의 특징은 가부장적 왕도 이데올로기를 실현하기 위한 형태로 조직되었다. 이를 위해 첫째, 국가 권력이 의학에 대한 특수 지식을 지닌 집단 양성을 독점하고, 이들 의사 집단을 국가 관리로 등용함으로써 국가 권력의 통제하에 두었다. 둘째, 국왕은 의료 혜택을 매개로 귀족과 백성을 지배하였다. 즉 의학 지식과 의료 지식인의 양성을 독점함으로써, 국왕의 시혜에 의해서 최고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셋째, 지배층 위주의 의료 정책을 실시하였다. 이와 같은 중세 의학의 원형이 이루어진 시기는 7세기 후반과 8세기 무렵 중대 무열계 왕권에 의해서였다. 이는 궁정에 거주하는 소수 특권계층에 국한되었던 中古期 신라의 의료체계가 일반 민까지 그 대상으로 하는 중세적 의료체제로 전환된 것을 의미한다. 주된 시혜계층은 5품 이상 문무관료와 병사들로서, 이는 중대 무열계 왕권의 지지 기반이기도 하다. 신라 중대는 바로 중세 의학의 원형이 형성된 시기로서, 이를 발전시키고자 한 주체는 바로 국왕을 중심으로 하는 전제왕권이었다. ; @@The development of medicin in Shilla Dynasty has significant relationship with the prosperity of its society, especially with growth of royal authority. The lack of development in non-government made people who were politically in charge to manage the Shilla s medical science. During the 5th and middle of 7th century there was enormous growth in medical science in Shilla Dynasty, and it was marked as an epoch in not only Shilla but also in entire Korean history. First, it is ensured that Shilla s own traditional medical system was certified by Kimmou(金武) and the prescription of Shilla s Jinmyung(新羅國鎭明方). Pajinchan(波珍 ) Kimmou who was a physician as well as an aristocrat in Shilla, is recorded in {Kojiki(古事記)} and {Nipponjiki(日本書紀)}. They described that he had found way to heal Japanese Emperor Inkyo(允恭帝, reign of 412-453) s chronic leg diseases. Kimmou is identical character to Kim Mou-Al(金武謁) in {Samkukyusa(三國遺事)} and his fact again helps us to confirm the significant process on history of medicine in Shilla Dynasty. Moreover, the prescription of Shilla s Jinmyung from {Taidongyuchuifang(大同類聚方)}, Japanese medical book, which was written in the beginning of 9th century shows the process of development in medication from Han(漢) to Wei(魏) and Ch in(晉) china. This implies that Shilla was indirectly influenced by China through the Kory (高麗) s medical science. However, Jinmyungfang(鎭明方) is Shilla s own method of prescription by looking at the mixture and combination of medication, and as well as the period of Shilla, the era which was impossible to interchange directly with China during beginning of the 5th century. The traditional medical manner that dramatically appears around the 8th century, is reflected the traditional medical system in Shilla, which meaningfully occurred around the 5th century. Therefore, it again tells us that 5th century is one of the most important periods for medical development for Shilla Dynasty. The second period starts with King Muyol(武烈王). It seems that the direction of Shilla s medical science was set up after King Muyol, experienced developed medicine of T ang china. The unification war, which was led by King Muyol and his descendant(武烈系) is very important as background of the development of medicine in an absolute monarchy (專制王權) during 7 century. This war was joined by Shilla(新羅), Kogury (高句麗) and Packje(百濟) in Korean Penisular, and T ang(唐) china with the soldiers of Turk(突厥), Uigur(回紇), Malgal(靺鞨) that were under the control of T ang, and Japan. It was one of the biggest wars in Eastern Asia history, and is considered as an Eastern Asian version of the World war. The battles usually were performed on the Korean peninsula. Enormous foreign soldiers arrived in Korean peninsula, and upon this opportunity, new epidemic appeared in Shilla s society. This caused the incensement of medical suppliment. Shilla got to experience the urbanized medical science of T ang china while they perform the military service as Allied Forces of Shilla and T ang. At the same time, they get to know about the systems of medical science and medical procedures as well while they served the demands of T ang military. Shilla never experienced these epidemics before. These widespread diseases encouraged Shilla to recognize the significance of medical care. This leads the massive incensement of medical systems after Shilla made conquest of Korean peninsula. One of the most substantial and rapid growths of medical science of Shilla occurred while it was under the war; it was deriving force behind development in Shilla s medical science. After the war, Shilla s medical institute for student, Ui-Hak(醫學) , had been established. This important establishment helps us to see the significance of Korean medical science, which are, training intellectuals under the government s control, centralizing a term of medical science by selecting the appropriate courses, and most importantly, supplying the certified public institutions to intellectuals. It completely changed the old fashioned recognition that civilians of Shilla used to have towards medical science by unifying, focusing on {Naijing(內經)} and {Nanjing(難經)} from China. This is distinctively different from mid-ancient medical where shaman medicine(巫醫) and monk medicine(僧醫) were the main physicians. In other words, by the mid-era(中代), various recognitions towards the universe and human being were arranged under the government s control. The Shilla s medicine doctors who considered as special intellectual organization were mostly official doctors that government trained. The government try to control the civilians by mediating the medical service and this typical character of mid-era medical systems. The characteristic of mid century medical system is that, it was formed in order to actualize patriarchal and virtural kingship(家父長的 王道) ideology. To accomplish this purpose, first, government monopolizes intellectuals under their power. Second, King controls civilians and nobility by mediating the medical service. Finally, the governing class-centered medical systems. These policies were settle by King Muyul and his precedents around the end of 7th century and 8th century. The mid-era of Shilla(新羅中代) is one of the most important periods because the foundations of medical systems were settled, and they were organized by king centered absolute monarc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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