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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운동사 연구 : 미군정기 여성운동을 중심으로

Title
한국여성운동사 연구 : 미군정기 여성운동을 중심으로
Authors
이승희
Issue Date
1991
Department/Major
대학원 정치외교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Doctor
Abstract
본 논문은 한국여성운동사연구의 역사적 공백기인 미군정기(1945-1948) 여성운동에 관한 연구이다. 본 논문은 기존의 한국여성운동사연구가 시기적으로는 해방 전으로 한정되어 있으며, 내용적으로는 여성운동내지 여성운동사에 대한 관점이 결여된 채 대부분 여성단체활동에 대한 기록에 머물렀던 점을 문제로 제기하면서, 여성운동은 여성해방이념에 기반한 여성들의 조직적 활동으로 첫째, 여성에 대한 억압, 차별등 남성과 다른 여성의 존재조건에서 비롯되며 둘째, 사회변혁기에 계급투쟁과의 상관성이 특히 강하게 표출되고 셋째, 이전시기 여성운동의 성과와 한계라는 축적 위에서 진행된다는 관점에서 연구하였다. 이에 따라 이 시기 여성운동의 배경으로 일제식민지 시기 여성운동과 미군정, 사회운동, 여성운동의 관계, 그리고 여성의 사회경제적 상태에 대해 연구한 후 미군정기 여성운동의 관계, 그리고 여성의 사회경제적 상태에 대해 연구한 후 미군정기 여성운동의 이념과 조직의 성격, 시기별, 지역별 전개에 따른 구체적 실천의 내용을 연구하였다. 연구결과 현대사의 핵심적 변혁기였던 이 시기 여성운동의 성격에 대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1) 미군정기 여성운동은 한국 반제봉건 여성운동의 맥을 이었다. 미군정기 여성운동은 1920년 때 말 “조선여성운동의 과제는 민족해방, 무산 계급해방, 여성해방이라는 세가지 과제의 동시해결”이라고 설정한 [근우회] 운동과 그 이후 국내에서의 적색노조와 적색농조등 비밀 계급조직의 부녀부, [건국 동맹] 부녀부의 운동, 해외에서 민족해방을 위한 무장투쟁까지 불사한 반제반봉건 여성운동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1945년 해방이 민족외적인 힘에 의해 달성됨으로써 여성해방도 여성운동의 성과물로 획득될 수 없었고, 해방이 자주독립국가의 수립으로 이어지지 못함으로써 식민지 반봉건 사회의 모순으로 고통당하는 여성대중의 문제해결을 위하여 여성운동은 다시 반제반봉건 변혁운동의 대열에 서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미군정기 여성운동은 사회변혁운동과 함께 패배하였는데 이는 미국에 의한 전후 자본주의적 세계질서에 남한이 편재됨으로써 강제된 것이었다. 미군정은 미국의 이해를 관철시키기 위해 사회변혁운동세력의 배제와 탄압이라는 정책을 일관성있게 수행해나갔고 여성운동에 대해서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결과 미군정기 여성운동은 반제반봉건 여성운동의 역사적 과제를 다하지 못하고 무수한 여성들의 희생을 남긴 좌절의 역사를 기록하였다. (2) 미군정기 여성율동은 여성대중의 이해와 요구에 근거하였다. 미군정기 여성운동의 과제는 당연히 식민지반봉건사회에서 억압, 착취당하고 있던 여성 대중들의 문제해결이었다. 즉 여성의 80%이상이 봉건적 토지소유관계가 온존되어 있는 농촌에서 빈곤과 무지, 조혼등 봉건적 인습으로 고통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토지소유관계의 모순을 해결하는 것과 저임금, 강제적 노동, 유년 노동, 장시간 노동으로 고통당하는 노동여성에 대한 성차별적 착취의 근절, 공창 및 사창에서의 매춘의 근절이 여성운동의 과제였으며 이것은 일제지배로 인한 사회경제적 모순의 해결로 달성될 수 있는 것이었다. 미군정기 여성운동은 바로 이것을 목표로 제시하여 여성들을 조직화했고 그 결과 80만명의 여성을 조직화 할 수 있었다. (3) 미군정기 여성운동은 사회운동과 상호의존적이었다. 미군정기 사회운동의 중심은 [조공]이었으며 여성운동은 [부총]으로 결집되었는데 [조공]과 [부총]의 관계는 당과 외곽대중조직의 관계로 당의 일방적인 명령에 응하는 관계가 아니라 당의 지도와 지시가 내려가고 여성조직의 요구와 의견이 당 정책에 반영되는 상호의존적 관계였다. 사회운동의 합법적 활동이 이루어질 수 있었던 46년 전반기 까지 [부총]은 당에 대해 상대적 자율성을 갖고 대중조직으로의 임무를 수행하였으나 46년 하반기부터 시작하여 47년, 48년에 이르러 당의 활동이 불법화되면서 [부총]도 대중조직으로의 활동이 불가능하게 되어 비합법 당 조직(즉 남노당 부녀부)으로 재편되어 활동할 수 밖에 없었다. ; The purpose of this dissertation is to analyze women’s movement during the U.S. army military goverment in Korea(USAMGIK)(1945-1948) which is a historical vacuum. Past research on the history of Korean women’s organizations, lacking historical or social movement perspectives. I propose that women’s movement is an organizational activity based on women’s liberation ideology. First, I argue that women’s movement origins from the oppression and sexual discrimination. Second, in the period of radical social change, the characteristic of women’s movement is highly correlated with the nature of class struggle. Third, women’s movement develops within the limit and on the basis of past achievements. I explored, as a background, women’s movement in the Japanese colonial regime,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USAMGIK on the one hand and social movement and women’s movement on the other., and souci-economic status of women I then analyzed the ideology of women’s movement, the nature of organizations, and their specific practices. The conclusion of the study is as follows. (1) Women’s movement under USAMGIK was in the tradition of Korean women’s movement against imperialism and feudalism. Women’s movement regime was in the tradition of “Kunwoohoe” which aimed for national liberation. Proletarian liberation, and women’s liberation. It was also linked to women’s divisions of clandestine class organizations such as red industrial unions and red agricultural unions, with women’s division of “Kunkookdongmang”, and armed struggles abroad. The national liberation of 1945 by foreign powers, negated the possibility of independent national government. The remaining contradictions of colonial semi-feudal society forced women to join social movements against imperialism and feudalism. (2) Women’s movement under USAMGIK was a mass based movement addressing to their interests and demands. The goal of women’s movement in this period was to eliminate oppression and exploitation of women in the colonial semi-feudal society. More than 80% of women lived in the rural village and were suffering from poverty, ignorance, and early marriage. Hence, The task was to resolve conflicts arising from the feudal land tenure system and feudal social conventions. For working women who were forced to low wage and long hour labor, The task was to eliminate sexual discrimination. To eliminate public and private prostitution was another task of women’s movement. 80000 women were organized in this period. (3) Women’s movement under USAMGIK was interdependent with social movement. The key social movement organization under USAMGIK was the Korean Communist Party(KCP)” and the central women’s organization was the All Nation Women’s League(ANWL). KCP and ANWL were related as the party and the outer mass organization and were interdependent. The party commanded but the opinion of women’s organization were reflected in the party policy. ANWL was a mass organization with relative autonomy from the party until early 1946 when it was lawful to engage in social movement. However, ANWL ceased to be a mass organization and went underground as a division of an illegal party(women’s division of South Korea Worker’s Party) starting from the end of 1946, through 1947 and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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