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 : 66 Download: 0

조선후기 진휼정책 연구 : 18세기를 중심으로

Title
조선후기 진휼정책 연구 : 18세기를 중심으로
Authors
정형지
Issue Date
1993
Department/Major
대학원 사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Doctor
Abstract
The natural disaster and consequent famine were enough to stir the foundation of the government in pre-industrialized agricultural society. Relief Polich(Jinhyul Policy) was an emergency measure resulted from the efforts to stabilize the governing systems. Therefore Relief Policy was one of the most important strategies of governing in the pre-industrialized oriental society which emphasized agriculture as a center of national economy. The main purpose of this thesis is to analyze the substance of Relief Policy in Late Yi Dynasty. But during the latter period of the Yi dynasty some changes took place in every social area as a result of the development of productive power. In the middle, the farmer-class was disrupted and many of them fell to the lower classes. And the landowners tax evasion caused national revenues to be reduced. So the Yi dynasty made every effort to secure the national finance, which in turn had a great influence on the enforcement of Relief Policy. In this state administration attempted to reduce taxes(租稅견감), distribute relief grain as a part of Relief Policy. At first some limitation was imposed on the land tax and national security tax after the latter period of Sookjong(肅宗) and then taxation itself was almost stopped in the middle period of Young-jo(英祖). With this, the reduction began to cover even Hwangok, and then reduction of Hwangok(還穀) itself began to be limited. So tax collection was postponed in accordance with the situation, and sometimes people could pay another kind of grain. Meanwhile, administration presented two ways of distributing relief grain to the famished people: first, Hwangok which is a distribution of grain presupposing the repayment and second, distribution without any presupposition of repayment. First, Hwangok was to distribute seeds as well as grain to famished farmers in hard Spring time and so to secure the opportunity of reproduction. But after the middle period of the 18th century, the financial unbalance was deepened so the interests Hwangok was required to compensate the national financial difficulties. Consequently the concrete measures of Hwangok changed. And the function of Hwangok was changed from relief of farmers to compensation of the finance except for the famished year. Second, Relief grain was to distributed to the famished farmers who have no land alone, without any promise of repayment. Of course the Yi dynasty lay some limitation on this measure for fear of reduction of national finance by distributing freely. But the change of the latter period of the Yi dynasty necessitated the expansion of that measure. So to minimize the loss of finance of the dynasty, they had to compensate the unbalance with the help of Popular relief grain. When we see the shift of Relief Policy of the latter term of the Yi dynasty, it shows a remarkable reduction of the policy according to the change of social structure. And the consideration of its influence brought on people increased. The cause of reduction of Relief Policy was the unbalance of national finance. But the deep-rooted cause of this phenomenon was the feudal contradiction of taxation system in the Yi dynasty. The Yi dynasty could not overcome this contradiction of social system and therefore the positive response to society s need of enforcement of effective Relief Policy was not fully realized. ; 전근대 농업사회에서 자연재해와 그로 인해 야기되는 기근은 국가의 통치기반을 동용시키는 것이었다. 진휼정책은 이러한 위기상황에서 지배체제를 안정시키기 위해 실시하는 긴급 구제대책이었다. 그러므로 진휼정책은 국가경제의 중심이 농업에 있던 전근대 동양사회에서 중요한 지배정책의 일환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본고는 이와 같은 중요한 정치적 비중을 가진 진휼정책이 중세사회의 해체기라고 일컬어지는 조선후기에는 어떻게 시행되고 있었는가를 밝히는 연구이다. 조선후기 사회는 생산력의 발전에 따라 지주제가 확대되고 농민층분해가 심화되어 농민의 몰락이 증대하고 있었다. 게다가 이러한 변화에 대응한 국가의 부세 수취 방향이 토지로 집중됨에 따라 지배적인 신분과 특권을 유지하던 지주들의 불법 탈세가 증가했다. 그 결과 조세 수입이 감축되어 정부의 재정부족이 심화되어 갔다. 이에 조선 정부에서는 재정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게 되었고 이것은 진휼정책에 상당한 영향을 주게 되었다. 한편 농민층분해가 심화되고 조세가 토지로 집중되는 방향으로 나아가면서 자연재해가 농민 몰락과 조세수입에 미치는 영향 또한 증대하고 있었다. 조선 후기 변동구조하에서 체제를 존속시키기 위해서는 정부의 적극적인 진휼정책 시행이 요구되고 있었지만, 당시 국가 재정은 오히려 악화되고 있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조선정부가 시행한 대표적인 진휼정책은 조세의 減免과 救濟穀의 지급 등이 있었다. 먼저 조세의 견감정책을 보면 田結稅와 軍役稅의 감면은 肅宗 후반 이후 제한되기 시작하여 英祖 중엽에 이르면 거의 중단되었고 심한 흉년에는 代納이 주로 시행되었다. 田結稅와 軍役稅의 견감이 제한되면서 재해시 국가의 조세 견감 대상은 조세 수입과 직결되지 않는 還穀으로 이동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견감 정책의 방향전환은 환곡 비축곡의 고갈을 초래하였기 때문에, 환곡 견감 또한 오랫동안 걷히지 않는 舊還의 징수를 연기해 주거나 代納이 주종을 이루는 것으로 바뀌어 갔다. 한편 정부에서 굶주림에 시달리는 기민에게 구제곡을 지급하는 방법으로는 황급한 상태에 빠진 기민 중 토지를 갖지 못한 無田農民에게 구제곡을 무상지급하는 것과 자기 땅을 가지고 있는 有田農民에게 有償支給하는 것이 있었다. 구제곡의 유상지급이라고 할 수 있는 환곡은 춘궁기의 농민에게 식량과 종자를 지급하여 재생산기반을 확보해 주는 것이었다. 그런데 18세기 중엽 이후 국가 재정부족으로 인해 환곡의 耗穀을 국가재정에 보충하는 경우가 늘어갔다. 이에 따라 재정보충을 목적으로 한 환곡의 설치가 늘어나면서 환곡 총액은 증대하였고 환곡 운영 방법도 바뀌어 갔다. 이러한 사실을 환곡의 운영목적이 진휼적인 것보다 재정 보충적인 것에 더 비중을 두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흉년이 들거나 환곡의 규모가 民戶數에 비해 적은 고을에서는 환곡의 진휼기능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었다. 환곡의 기능변화가 나타나면서 조선후기 진휼정책의 핵심으로 부각된 것이 구제곡의 무상지급이었다. 원래 조선정부에서는 무상지급으로 인한 곡물 감축을 우려하여 이것의 실시는 극히 자제해 왔다. 그러나 조선후기 사회변화에 따라 그 시행은 확대되었다. 그렇지만 무상지급 확대에 따른 곡물조달은 민간구제곡에 의지하는 비중을 높임으로써 국가 재정 손실을 최소화하고자 했다. 이와 같은 조선후기 진휼정책의 推移를 보면, 이것은 사회구조 변동과 함께 점차 그 내용이 축소되고 또 실효면에 있어서도 기능이 떨어지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진휼정책이 이렇게 위축된 직접적인 원인은 국가의 재정부족에 있었다. 그러나 보다 근원적인 원인은 지주제가 확대되던 당시 조세의 토지집중화라는 부세수취개편 방향과 세력의 강약에 따라 조세수취의 불균이 유지되는 봉건적 부세운영체제와의 모순구조에 있었다. 당시 조선정부는 이러한 모순구조를 극복할 능력을 결여하고 있었기 때문에 만성적인 적자재정에 시달렸고 실효성있는 진휼정책의 추진을 요구하던 현실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Fulltext
Show the fulltext
Appears in Collections:
일반대학원 > 사학과 > Theses_Ph.D
Files in This Item:
There are no files associated with this item.
Export
RIS (EndNote)
XLS (Excel)
XML


qrcode

Items in DSpace are protected by copyright, with all rights reserved, unless otherwise indicated.

BROW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