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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연화문 연구

Title
한국연화문 연구
Authors
김화영
Issue Date
1977
Department/Major
대학원 사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Doctor
Abstract
蓮華란 늪이나 못에서 자라 7,8월에 꽃을 피우는 宿根草로서 인도, Egypt, 한국 등 각지에서 재배되고 있다. 東洋에서의 蓮華는 佛敎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어 佛敎를 상징하는 꽃으로만 생각되었다. 그러나 蓮華는 佛敎 성립 이전부터 인도나 Egypt에서 신성시되어 미술품에 널리 장식되었으니 Egypt에서는 太陽崇拜 사상과 관련되어서 蓮華의 생장력과 연관하여 숭배하였고 佛敎 성립 이전의 인도에서는 우주만물 창조의 상징으로 비유되어 光明의 꽃, 生命의 꽃으로 신성시되어 왔다. 그러나 佛敎에서는 연꽃이 진흙구덩이에서 자라지만 물이나 진흙에 더렵혀지지 않고 자라는 것에 비유되어 무엇에 집착하지 않고 어떤 것에 물들지도 않는 수행의 理想이 蓮華의 淸淨함에 비유되었고 맑은 경전에서 蓮華에 대한 비유가 나오고 있다. 이렇게 蓮華는 佛敎를 상징하는 꽃으로 佛敎의 교리상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기 때문에 佛敎에 관련된 모든 유적, 유물에 사실적인 표현으로 혹은 도안화하여 장식되어 佛敎의 장식의장으로는 가장 존중되어온 식물무늬이다. 그러나 蓮華가 미술품에 장식되기 시작한 것은 佛敎 발생 이전 Egypt등 遠東지방에서 비롯하여 西洋諸國에서도 널리 이용되었으므로 蓮華紋을 연구한다는 것은 그 범위가 매우 넓어서 蓮華紋 하나만 가지고도 세계미술사를 섭렵할 수 있다. 그러므로 논점을 어디다 두느냐에 따란 蓮華가 상징하는 의미와 성격이 달라지고 취급되는 미술품의 영역도 달라지게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佛敎는 외래종교이긴 하나 三國時代에 전래된 이래 시대가 지나고 王朝가 바뀌어도 끊임없이 국민사상을 지배해 왔고 그것은 統一新羅時代를 거쳐 高麗時代에 이르기까지 호국불교로서 국가적인 종교였다. 朝鮮時代에는 抑佛崇儒政策을 시행했으나 오랜동안 뿌리깊이 박힌 佛敎를 단절시킬 수 없어 山谷에 암행하듯 수백년간의 명맥을 이어 근세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렇게 오랜동안 국가적인 종교로서 全時代를 통해 가장 큰 영향을 준 종교였으므로 佛寺건축을 비롯한 塔像, 佛器類 등 많은 佛敎美術을 생산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므로 우리나라 미술사의 밑바탕을 이루는 요소는 佛敎이며 우리나라 미술사는 불교미술사라 하여도 지나친 표현은 아닐 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따라서 蓮華紋은 佛敎美術品에 장식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장식된 범위도 넓어 모든 분야에 이용되어 佛敎와 관계없는 도자기같은 일상용품이나 건축물에도 장식되고 있으므로 蓮華紋의 형태가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를 고찰하는 것은 한국미술사의 기초작업이다. 우리나라의 蓮華紋이 佛敎와 관련된 것이므로 중국을 거쳐 전하여진 경로를 생각할 때 상호간의 관계를 고찰하여야 할 것이며 아울러 우리의 영향을 받은 日本과도 비교 고찰하는 것이 中國, 韓國, 日本간의 문화사적인 교류 및 그 흐름을 살피는데도 필요하겠지만 本稿에서는 우리나라 蓮華紋에 중점을 두고 고찰하였다. 그 구체적인 작업으로 三國의 蓮華紋 受 경위와 발전 내지는 상호간의 영향을 살피고 統一新羅時代에는 각자 어떻게 융화하여 독자적인 형태를 이루게 되었는가 하는 문제와 아울러 隨·唐에서의 형식 또는 日本과의 연관을 비교하였으며 高麗時代나 朝鮮時代에는 각기 어떠한 형태로 蓮華紋이 전승하였는지, 時代를 달리하면서 내포하는 상징적인 의미가 어떻게 변하는지를 三國時代 이래 朝鮮時代까지 총관하여 일관된 고찰을 시도하였다. 먼저 양식변천에서는 蓮瓣을 單瓣, 複瓣, 重瓣의 3가지 기본형식으로 분류하고 이를 다시 無紋單瓣, 有紋單瓣, 無紋複瓣, 有紋復瓣, 無紋單葉重瓣, 有紋單葉重瓣, 無紋復葉重瓣, 有紋復葉重瓣, 單復葉混用重瓣으로 나누어 時代에 따른 변천을 살펴 봄으로써 다음과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1. 400~500년에는 高句麗에서 無紋單瓣形式이 瓦當에서 처음 보이기 시작하였다. 中葉 이후 有紋單葉重瓣이 벽화에서 나타났다. 2. 500~600년 高句麗에서는 復瓣形式이 瓦當에서, 無紋單瓣形式이 佛像에서 나타났다. 百濟에서는 無紋單瓣形式이 瓦, 塼, 佛像, 畵蹟에 나타나며 無紋單葉重瓣形式이 말기의 佛像에서, 有紋單葉重瓣形式은 金屬工藝에서 볼 수 있다. 新羅에서는 無紋單瓣形式이 瓦當과 佛像에, 有紋單瓣形式이 金屬工藝에, 復瓣形式이 佛像에 각기 나타났다. 3. 600~660년 高句麗에서는 無紋單葉重瓣形式이 瓦當에서 나타나고 百濟에서는 有紋單瓣形式이 瓦, 塼, 佛像, 石造物에서, 復瓣形式은 瓦當에서, 無紋單葉重瓣形式과 單復葉混用重瓣形式은 佛像에서 볼 수 있다. 4. 660~700년 즉 統一新羅 초기에는 三國의 특색이 혼합 혹은 융화되면서 復瓣形式이 石造物과 金屬工藝에 그리고 無紋單葉重瓣이 金屬工藝品에 비로소 나타난다. 5. 700~800에는 有紋單瓣形式과 復瓣形式, 無紋單葉重瓣形式, 有紋單葉重瓣形式, 復葉重瓣形式, 單·復葉重瓣形式이 瓦當이나 石造物, 佛像, 金屬工藝 등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나타나고 있으며 이 시기야 말로 蓮華紋이 완성되어 난숙기를 맞이한 시기라 할 수 있다. 아울러 三國時代까지 蓮瓣 內 장식무늬는 忍冬, 珠文, 꽃술에 불과하였으나 이 시기에는 葉紋, 華紋, 實相華紋, 蓮瓣의 윤곽선 등 다채로워지며 이러한 양상은 統一新羅 말기까지 계속된다. 다만 시대의 下降에 따라 형태상의 차이나 표현수법의 질적인 차이는 나타나지만 근본양식은 三國時代에 나타났던 기본양식을 그대로 답습하여 발전시켰으며 새로운 양식은 復葉重瓣形式에 불과하다. 6. 高麗時代가 되면 統一新羅時代의 양식을 그대로 계승하여 발전하고 있으며 새로운 형태로는 蓮瓣 內 장식무늬로 文字와 統一新羅末 처음 나타난 귀꽃이 매우 유행하게 된다. 그리고 花形의 子房과 重瓣形式에서 활짝 핀 연꽃의 측면형이 새롭게 유행할 뿐 다른 변화는 볼 수 없다. 7. 朝鮮時代는 崇儒排佛政策으로 蓮華紋의 새로운 발전을 더욱 기대할 수 없었다. 高麗時代의 양식을 그대로 계승하는데 그쳤으며 荷蓮紋이 새로운 형태로 등장하며 특히 有紋單瓣形式중 귀꽃의 장식이 눈에 띄게 많아진다. 그리고 蓮華紋의 종류에 있어서는 高麗時代보다 오히려 줄어들며 蓮瓣의 볼륨도 작아져서 線刻에 가깝게 변한다. 결국 朝鮮時代는 高麗時代의 양식을 계승하여 겨우 명맥을 유지하였을 뿐 이다. 다음 蓮華紋이 가지는 시대적인 특성은 우리나라 佛敎傳來 초기인 三國時代와 統一新羅時代에는 佛敎의 교리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佛敎美術品에만 장식되었으나 高麗時代부터는 佛敎와 관계없는 도자기 등 生活用品에도 장식되고 있다. 朝鮮時代에는 더욱 많은 生活用品의 장식무늬로 이용되고 있어 佛敎의 교리적인 면에서 벗어나 완전히 장식무늬로서 의의만 지니고 있다. 복합무늬로서의 蓮華紋은 忍冬, 唐草, 實相華紋과 결합하여 蓮華忍冬紋, 蓮唐草紋, 蓮華實相華紋을 이루는데 蓮華忍冬紋은 三國時代, 蓮唐草紋이나 蓮華實相蓮紋은 統一新羅時代에 나타난다. 蓮華忍冬紋이나 蓮華實相蓮紋은 독립된 장식의장으로 쓰이고 있으나 蓮華唐草紋은 연속무늬로만 이용되었다. 국제적인 교류는 먼저 三國時代에는 高句麗에서 中國 北朝의 영향을 직접 받아 인접국인 百濟와 新羅에 영향을 미치었고 百濟는 초기에는 高句麗를 통해 北朝의 영향을 받았으나 中國 南朝와의 직접 교통으로 南朝 특히 梁의 영향을 받고 말기에는 唐의 영향을 받았다. 한편 新羅와 日本에도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新羅의 경우 百濟나 高句麗의 영향을 받았고 統一新羅時代에는 唐의 영향을 받고 있지만 日本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외래적인 요소의 전래와 전파는 곧 국제적인 교류를 의미하여 당대의 국제적인 교류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 The lotus flower was considered a holy flower in ancient India and Egypt even before it was established as a symbolic flower in Buddhism. The lotus flower symbolized fertility in Egypt where the sun-worship was the major religious ritual and in ancient India it was take as a flower of light and life presiding over all existence. Buddhism took hold of the detached aspect of flower blossoming as it does out of primal waters but unspoiled by the physical environment. Thus the lotus flower pattern has been the most cherished symbolic design in the Buddhistic art tradition. The lotus flower pattern varies according to the different countries and different historical periods and in order any study in the lotus flower pattern to be meaningful it has to limit itself to a certain aspect of the pattern. This study tries to present the historical survey of the changes in the lotus flower pattern shown on the art products in Korea. Buddhism came to Korea during the period of three kingdoms and became the national religion and flourished over several centuries till the fall of Koryo Dynasty. Buddhism was deeply embedded in Korea civilization and the tradition, and the influence went on even after the religion was over took Confucianism during Yi Dynasty. Since the Buddhism had been the dominant religion for a number of centuries in Korea, the lotus flower pattern had been used not only in the Buddhistic art products but also in many secular art products. The historical survey of the lotus flower pattern in art is essential for the study of the history of art in Korea. At the same time one can trace the international relationship among China, Korea, and Japan since the lotus flower patterns were freely adopted and exchanged among these countries. For this study the characteristics of the lotus flower patterns in the Unified Silla are extensively studied and changes in the patterns in Koryo and Yi Dynasty are decorative petals. 1. 400-500 A.D. The pattern of plain single petal appears on tiles for the first time around 450 A.D. in Koguryo and the pattern of plain single and folded petals are seen on wall engraving. 2. 500-600 A.D. The double petal is used in the titles and the plain single petal appears on the stsues of Buddha in Koguryo. In Baekche the plain single petal is used both on the titles and on the ststues of Buddha. The plain folded single petal appears on the statues of Buddha in the later period of Baekche and decorated folded single petal is used on the metal product. The plain single petal is used on the tiles and on the statues of Buddha and the decorated single petal and the decorated double petal are used on the metal product and the statues of Buddha in Silla. 3. 600-660 A.D. The plain folded single petal appears on the title in Koguryo while the decorated single petal is shown on the tiles and the statues and articles of stone in Baekche. The double petals are used on the statues of Buddha. 4. 660-700 A.D. During the early period of the Unified Silla all the characteristics of the Three Kingdoms were mixed or harmonized. The double petal appears on the stone and metal articles and plain folded single petal begins to appear on the metal products. 5. 700-800 A.D. The lotus flower pattern reached its prime in this period. The decorated single petal and the double petal, plain folded single petal, decorated folded single petal, folded double petal, folded single petal appear generally on the tiles and on the statues of Buddha and stone and metal products. Up to the Three Kingdoms period the center of the lotus flower was decorated with pearls or seed-pods but the floral designs are elaborately used in this period. There were the variations in the techniques and forms of the lotus flower pattern but the basic patterns were adopted by the later generation. The only technique that the later generation added was the pattern of the folded double petal. 6. Koryo dynasty more or less followed the general patterns used in the unified silla, but the center of the petal was more elaborately decorated. The letters were used for the center decoration and the floral design, and the seed-pods were popular for the center decoration. 7. Yi Dynasty suppressed Buddhism in favor of Confucianism and the development of the Buddhistic symbols was not expected. Yi Dynasty kept the general patterns of Koryo Dynasty in a limited was and with less vitality. The Buddhistic tradition barely survived in the period. The historical survey of the patterns of the lotus flower shows the interesting trait in the development of Korean culture and art. The changes in the patterns of the lotus flower petal exhibit different characteristics depending on the different emphasis in the Buddhistic tradition. The periods of the Three Kingdoms and the Unified Silla used the pattern exclusively on the Buddhistic art products but in Koryo Dynasty the pattern was shown on both Buddhistic and secular art products. During Yi Dynsty the pattern was used mainly for decorative purpose on secular art products. During the Three Kingdoms period Koguryo was at first the cultural mediator between China, Silla, and Baekche. Later Baekche communicated directly with the southern part of china and became the mediator of the Chinese culture for Silla and Japan. As for Silla the transmission of Chinese culture was possible through Koguyo and Baekche at first but during the unified Silla period T’ang Dynasty became the direct source of its cultural influence and the Unified Silla was in close contact with Japan. All in all the development of the lotus flower pattern and Buddhistic art shows the culture exchange and the international relationship of each historical period of Korea among the neighboring count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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