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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행의 시세계 연구

Title
이행의 시세계 연구
Authors
김기림
Issue Date
1996
Department/Major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Doctor
Abstract
본 논문은 이행의 문학세계의 특성을 살피고 그 문학사적 위상을 밝히고자 하는 목적에서 시도 하였다. 이행은 15세기 후반에서 16세기 前半期인 연산, 중종년간에 활동한 문인이다. 이 시기는 조선 전기에서 조선 중기로 이행하여 가는 과정에 놓여 있다. 조선 전기와 조선 중기는 여러 가지 면에서 서로 다른 시대적 성격을 지니고 있는데 이는 조선 전기 가운데 비교적 후반기에 속하는 연산, 중종년간에 있었던 변화의 모습이 중기에 전면적으로 부각, 형성된 데서 연유한다. 연산, 중종년간은 조선초기와 많은 면에서 다른 점을 보여주고 있다. 우선 사상, 철학적인 면에서 볼 때, 조선 초기에는 현실적인 治國을 중시하였으나 연산, 중종년간에는 심성을 중시하는 성리학이 우세를 보이고 있다. 같은 유학이라는 큰 범위 속에서도 성리학은 상대적으로 사람의 심성(성정)을 중요시하여 治心의 성격이 강하여서 현실의 상황에 대해서도 현실적이고 실리적인 대책을 강구하려는 것보다는 모든 문제 해결의 근본을 인간 심성 수양에 둔다. 이와 같이 연산, 중종년간은 성리학이 보편화, 일반화되어 가고 있었고 이에 따라 문화 전반에 걸쳐 성리학적 가치 기준에 의해 재평가되고 재편성되어 가는 상황에 있었다. 여기에는 재야에서 성리학을 연구하고 성종년간부터 중앙 정치체제 속에 진출한 이른바 성종년간 신진사류들의 역할이 크게 작용하였다. 이들은 당대 훈구관료문인들과 달리 성리학을 사상, 철학의 토대로 삼아 조선의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소학의 윤리, 주자가례 등을 실천함으로써 성리학적 윤리체제를 구축하고자 하였고 이에 더 나아가 심성수양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이들의 노력은 연산, 중종년간에 들어와 그 문하인들, 제자, 후손들에 의해 계속되었고 이로 인하여 성리학적인 사상을 기반으로 하는 사회로 이끌어갔다. 이는 대체로 각 개인이 갖고 있는 도덕적 역량을 자각하고 강조하는 것으로 관심의 방향이 인간의 내면의식세계로 향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었고 16세기 후반에 들어서서는 더욱 확대되었다. 이런 변화는 문학의 입장에서 볼 때 문학외적인 상황의 변화로서 문학의 내재적인 변화 내지 전환은 반드시 문학외적 상황을 수반한다. 연산, 중종년간이 조선전기라는 긴 시간 범위 속에서도 조선초기와는 달라져 가는 양상을 보여준다고 할 때 문학내적인 연구도 이를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이는 김만중이 성종에서 중종년간에 문학적 성향이 변화하여 갔다고 언급한 데서도 알 수 있다. 그런데 기존의 연구성과를 살펴보면 이 시기를 조선전기라는 시기 속에 넣어 이해함으로써 변화의 모습이 구체적으로 고찰되어 있지 않을 뿐더러 거의 간과되었고 또 조선초기 훈구관료문인들의 豪放하고 富華스런 문학세계를 그대로 수용하여 연장하거나 더 나아가 쇠퇴적인 성향을 보인다는 평가를 하고 있어서 조선 중기와 연결하여 볼 때 조선전기를 마감하는 의미를 상대적으로 강조되어 있다. 그러므로 본 논문은 문학외적 상황이 문학의 내재적 변화, 전환 요인으로써 작용한다는 것을 기본 전제로 하여 연산, 중종년간 문학외적인 변화양상이 전, 후대와의 사이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이에 따라 문학내적 변화의 면모도 그만큼 중요성을 띠고 있으리라는 것을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그리하여 이 시기 문학외적 변화를 수반하는 문학내적 변화양상에 대한 구체적인 면모를 살펴 조선전기에서 중기로 넘어가는 변화의 양상과 그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 것이다. 이와 같은 문제를 염두에 두고 그 구체적인 방법으로써 이행의 문학세계를 살펴보는 것이 의미가 있다. 이행은 연산, 중종년간 문신으로 활약했다. 그동안 이행에 대한 연구성과는 많지 않다. 대체로 조선전기의 시대 범위 속에 들어가 조선초기 훈구관료문인들과 같은 성격을 지닌 훈구문인으로 이해되었기 때문에 그의 문학세계도 초기 훈구관료문인들의 것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었다. 여기에는 이행 개인의 계층적 성향을 조선초기 훈구관료들과 동일시하는 견해가 깔려 있어 이행 개인의 사상, 철학적 배경이나 경험의 내용 등이 전대 관료들과 다르다는 점이 간과되어 있고 따라서 그의 문학세계가 지니고 있는 전대와의 변별점이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못한 한계가 있다. 이행은 문인이면서 관료라는 입장에 있었으므로 조선초기 관료문인들의 문학세계를 접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의 아버지 이의무는 김종직 문하인으로서 성리학적 소양을 충분히 쌓을 수 있었을 것이고 이행 자신의 교유관계를 살펴보아도 거의 성종년간 신진사류들로 구성되어 있는바 가풍상으로나 교유상으로도 성리학에 쉽게 접근할 수 있었고 자신의 의식 형성의 토대로 삼을 수 있었다. 이와 더불어 이행 개인의 시대적 경험은 조선초기 훈구관료문인들과 다르다는 것이 문학세계의 성격을 서로 다르게 하는 요인이 되기도 하였을 것이다. 이처럼 이행은 조선초기에서 변화하여 가는 기미를 보여주는 연산, 중종년간의 상황 속에 놓여있음으로써 이 시기 문학세계의 특성을 구축하는 토대를 충분히 수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기존 연구에서 보여주는 논의의 차원에서 벗어나 당대의 변화양상을 바탕으로 하는 데에서부터 이행의 문학세계를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며 이는 연산, 중종년간 문학의 변화양상을 살펴볼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해 주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행의 문학세계를 살펴보는 데 있어서 성리학적 토대와 이행 개인의 어려운 경험 등이 이행 문학세계의 특성을 이루는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여겨 이런 점을 중시하였다. 이행의 문학관부터 살펴보았는 바 이행은 당대의 富華, 浮虛한 문풍 개선과 변환을 위해 문학과 덕성의 관계를 강조하였고 전통적인 문학관인 한 문풍 개선과 변환을 위해 문학과 덕성의 관계를 강조하였고 전통적인 문학관인 ?詩言志?를 부각시키고 평담하고 자연스런 문학풍조를 지향하고 있었다. 즉 이행은 문학이 점차 富華하거나 浮虛 해지는 것의 요인을 개인의 덕성함양 여부에서 찾았고 내면 수양을 통해 문풍도 개선해 보고자 했던 것이다. 한편 구체적으로 작품세계를 살펴보는 데 있어서는 이행의 자아성찰과 각성의 면모를 기본으로 하여 그것을 바탕으로 하여 현실에 대한 관심을 어떻게 표출하고 있는가, 탈속의 경향을 어떤식으로 표출하고 있는가하는 면을 주로 살펴보았다. 그래서 현실적 입장을 드러내는 양상으로써 세태비판의 시, 소학의 내용을 소재로 하는 시, 영사시 등을 중심으로 하여 보았고 탈속의 양상을 드러내는 데 있어서는 경물인식을 보여주는 시, 산수, 자연시 등을 중심으로 하여 살펴보았다. 그리고 이런 내용의 작품들을 통해서 이행이 궁극적으로 추구하고 있는 문학풍격의 측면을 살펴보았다. 이러한 고찰을 통하여서 이행의 문학세계가 당대의 시대적 상황과 아주 밀착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즉 이행은 문학작품에서 심성수양을 통한 자아의 도덕 주체역량을 강화함으로써 세속적인 것에 물들지 않고 객관현실에 대해 우월적 위치에 있는 탈속적인 경향을 나타내면서 한편으로는 현실의 문제에 접근하여 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래서 심성수양을 통한 탈속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는 산수, 자연시를 중심으로 하고 있었고 특히 현실 문제에 있어서는 당대 형성되었던 성리학적 가치체계 속에서 해결하려는 면모를 보여준다. 소학의 윤리세계를 문학소재, 주제로 삼아 성리학적 윤리의식 강화를 통해 현실을 개선하고자 하는 목적을 보여주는 것이나, 역사와 세태비평을 보여주는 작품에서도 현실적인 업적보다 동기나 내면의식 내용을 중심으로 하는 점 등은 객관현실을 부정적으로 파악하면서도 그것을 윤리적 차원에서 풀어나가고자 하는 당대의 의식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런 작품세계를 내용으로 형성하면서 이행은 沈厚하면서도 和雅이라는 대표적인 풍격을 보여준다. 이는 외부 현실의 자극에 의해 내면에 형성된 감정을 통어하고 절제된 표출을 지향하는 이행의 미의식에서 나온 것인바 주자가 강조하는 온유돈후한 문학세계와도 밀착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이행의 문학세계는 개인의 덕성을 자각하고 이로 인하여 탈속적인 자세를 보이면서 동시에 현실주의적인 성향을 보이고 있는바 이는 이행 자신의 개인 경험과 성리학적 사고를 토대로 하여 형성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한편 이행은 이러한 문학세계를 구축하면서 황산곡의 시 세계에 접근하고 있다. 황산곡은 형식주의자, 반현실적 문학세계를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고 이로 인하여 황산곡과 강서시파 시인들의 시 세계를 다룰 때에는 항상 형식적인 특성들이 고려되었는바 주로 용사, 점화, 요체 구사, 寄語의 사용 등이 중점적인 내용으로 다루어졌다. 이행도 황산곡 문학을 받아들여 해동강서파라는 명칭을 얻고 있는데 바로 이것으로 인하여 이행 문학세계를 고찰하는 데에 있어서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은 형식적 측면들을 중심으로 다루어져 이행의 문학세계를 마치 중국의 강서시파와 같은 성향의 것으로 평가하려는 방향에서 논의되어져 왔다. 그러나 이행은 황산곡의 문학세계를 다른 측면에서 이해하고 있다. 북송 당대 흥기하고 있던 이학(성리학)의 사상적 영향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점을 중시하고 황산곡의 문학론을 내용의 충실을 위한 효과적인 표현방안으로서 이해한다. 또 심성을 중시하는 성리학적 영향과 더불어 황산곡 개인이 겪은 정치적 경험으로 인해 자아성찰을 통해 내면세계를 강화하여 현실 상황에 대해 우월한 위치에서 현실세계를 파악하고자 하는 면모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 물론 황산곡의 경우에는 성리학 뿐 아니라 선종의 영향도 보인다. 그런데 이 둘은 모두 개인의 정신적인 내면세계를 강화하여 현실에 대한 정신적 우월감을 얻어 현실적, 속세적인 것으로부터 자유로와지려는 점에서는 공통성을 보이고 있어 황산곡은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현실의 현상 자체를 부질없는 것으로 보고 현실이라는 공간에서 떠나려는 불교적인 면모를 보이고 있기도 한다는 점에서는 성리학적 태도를 지녔던 이행과 차이를 보여준다. 이런 과정에서 정신세계의 강인함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수사적 장치로서 요체를 구사, 점화나 용사하여 속세적 운용에서 벗어나 낯설게 하여 새로움을 주는 방법 등을 사용하고 있고 이를 통해 奇 하고 瘦勁한 풍격을 형성하고 있는데 이러한 점은 원숙함과 화평함을 지향하여 신기로움을 배제하려고 하는 이행과는 다른 성향을 보여준다. 앞서 살핀 바와 같이 이행은 성리학적 사상이 일반화되면서 문학에 대한 이식 전환이 이루어지고 또 개인의 경험도 전대와 달라지면서 작품세계도 다르게 나타나는 상황 속에서 황산곡 문학세계 가운데서 개인 내면세계의 강화나 현실비판 등의 특성만을 중심으로 하여 수용하고 있음도 알 수 있었다. 이행은 개인의 덕성 자각을 바탕으로 하는 시세계를 구축하고 표출하기 위해 황산곡 문학세계를 하나의 모델로 삼고 있는 것이다. 즉 조선초기 영향력을 발휘하였던 소동파 문학은 호방하고 밖으로 발산하는 점에서 훈구관료문인들의 취향과 부합할 수 있었다면, 내면성찰이 중요시되고 문학이 덕성함양 또는 성정수양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추세 속에서는 오히려 황산곡 문학이 더 적합했을 것이며 이에 이행은 소동파문학세계에서 황산곡 문학세계로 접근하여 가고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김만중이 소동파에서 황산곡, 진사도 시를 배우는 풍조로 바뀌었다고 말한 것의 의미가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사실은 이행을 중국강서시파의 영향관계 속에서만 파악하려는 입장과 또는 해동강서시파를 형식, 기교적 측면에서만 파악하려는 입장에는 한계점이 있다는 것과 그 실체를 규명하고자 한다면 논의의 각도를 달리 해야 할 것임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러한 고찰을 통해 드러나는 이행의 문학세계가 갖는 문학사적 의의는 다음과 같다. 우선 이행은 조선초기 훈구관료문인들이 형성하였던 호방하고 부화한 문풍과 연산, 중종년간의 실질없는 문학풍을 지양하면서 동시에 문학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조선초기 훈국관료문인들은 華國을 문학기능으로 삼고 이를 위한 문학형식적 측면에 중점을 두었다. 그리고 이런 성향은 연산군의 화려한 문장을 좋아하는 연산군의 성향과 맞물리면서 더욱 강화되었다. 그런 반면 중종년간에는 조광조 등에 의해 도학이 중시되고 문학이 폄하되면서 상대적으로 침체된 문학을 일으키려는 의도속에서 이행은 오히려 治心(도덕수양, 성정함양)으로 기능을 바꿈으로써 문학에 대한 인식전환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문학에 대한 인식전환은 전대에 약한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었던 성종년간 신진사류들의 문학을 전면에 내세우고 부각시켰다는 의의를 가지고 있다. 그리하여 관료문인이면서도 전대 관료문학전통에서 벗어나 오히려 신진사류들의 문학정신과 성향을 적극적으로 수용함으로써 한편으로는 관료문학의 변환을 시도하고 있고 이를 통하여 폭넓게 퍼져 있지 못하고 있던 신진사류들의 문학성향을 중심으로 이끌어 들이고 발전시키고 있는 것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연산, 중종년간의 문신들은 모두 성종년간 신진사류들의 후예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개인의 성향에 따라 문학에 대한 태도는 각기 달랐다. 정광필, 남곤 등은 전대 훈구관료문인들의 문학 성향을 그대로 받아들였고 조광조 등은 반대로 문학 자체를 폄하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이에 비해 성종년간 신진사류들은 문학의 존재를 인정하면서도 그것의 기능을 현실비판적 측면에 두고 있었는데 이행은 이러한 문학정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도 과도한 감정의 표출을 지양하고 더 나아가 심성수양의 가치 의미도 부여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어 남곤이나 조광조 등의 입장과는 차이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런 것은 후대 사림문학자들의 문학성향의 전 단계적 면모를 지닌다. 즉 신진사류들의 문학세계를 더욱 발전시켜 덕성함양, 심성수양을 강조한 것은 사림성리학자들이 문학을 正心의 기능으로 파악하는 단서를 열어주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와 함께 사림성리학자들이 산수문학을 형성하는데 있어서 그 시초를 보여주고 있다. 즉 이행은 자신의 산수문학을 구축하는데 있어서 주자의 산수문학을 모범으로 삼았는데 이런 태도는 성리학자들이 산수문학의 전범을 찾는데 그 방향을 제시해 준 셈이 된 것이다. 그리하여 성리학자들은 산수에서의 심성수양을 더욱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점차 문학이 지니고 있는 현실과의 관계를 소홀히 하는 경향으로 흘러갔다. 한편 이행문학에서 보이고 있는 현실주의적 성향은 오히려 성리학적 소양을 바탕으로 하던 문인계층의 문학세계로 이어지고 있다. 이들은 대개 황산곡 문학을 수용한 것으로 평가되는 문인들이기도하는바 황산곡 문학세계에 있던 현실주의적 요소를 이행이 받아들이면서 후대 문인들도 황산곡의 문학세계를 형식적인 측면에서만 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즉 이들은 대개 후대 관료문인으로서 활약하던 사람들로서 이행이 관료문학의 성격을 칭송이나 찬양에서 벗어나 비판이나 경계의 내용 등으로 확대한 것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 바꾸어 말한다면 이행은 관료문학의 주제를 이미 당대에 확대시킴으로써 후대 관료문인들의 문학세계를 넓혀주는 역할을 한 셈이고 이 과정에서 황산곡 문학의 인식 양상도 부분적으로 바꾸어 놓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 這篇硏究論文的目的是窮究兩個問題. 第一個是朝鮮前期末葉代表詩人 名字叫李荇的文學特長是즘마樣. 第二個是在韓國文學史上他的文學占有什마地位. 從燕山君到中宗時代李荇活動了. 那時候社會各種方面都變化了. 那時的社會氣분근朝鮮建國初期的不一樣. 當然那時的文學品格也근前代變化了. 李荇是李宜茂的兒子 因爲李宜茂是成宗時代大表的新進儒學者 名字叫金宗直的門生所以他的兒子李荇也 早就把性理學學好了. 而且李荇交友的人都是新進儒學者 結果 他的哲學思想的基礎是根本地근朝鮮初期官僚文人差得遠了. 前代官僚文人傾注到創作?豪富?風格的文學 那種的文學흔容易流于浮虛的文學傾向. 爲了刷新那種的文學 李荇開始構成自己的文學世界. 優先, 李荇把傳來的’詩言志’文學槪念拏來試圖新解釋了. 他認爲眞正的文學不但單純地表出人間個性 幷且一定涵養人間的德性. 涵養人間德性是通過省察內面精神以后可能做的. 李荇對文學創作和德性涵養兩種的問題窮究了. 所以他在創作文學上力求自我省察 然后努力覺醒自己的道德槪念. 那時候他提高自己的認識主體. 因爲他的認識主體在客觀現實占優勢 所以他一邊批判客觀現實的不調和근不條理. 一邊흔願意避免俗世的汚染來追求脫俗的境界. 現實批判和脫俗志向是形成李荇文學的兩種的軸心. 那兩個的關係不是相衝的是相補的. 換句話說, 詩人通過省察自我內面 可以覺醒內面的道德力量. 如果詩人的道德力量越來越變强 他可能達到脫俗的精神境界 而且他可能維持客觀距離來批判不條理的現實 絶對被現實情況沒有挫折折. 那樣的李荇文學形成了兩種風格 那就是’沈厚’和’和平’. ‘沈厚’風格是由于詩人把激昻的 感情抑制來寫詩的態度上形成的. ‘和平’風格是由于詩人竝不是被世俗的汚染弄장的. 所以詩人可以寫出和平干淨的自由精神境界. 李荇構成那樣的文學世界時 他十分活用黃山谷文學的特長. 黃山谷詩中國宋代的代表詩人 他근蘇東坡竝肩 蘇東坡的文學指志向是從現實狀況脫出來走向別天地 反面 黃山谷反復地照看自己的生活態度 而且省察內面精神來讓自己主體對客觀現實占有優先. 他們倆的對客觀現實的對應態度讓他們的文學世界不一樣. 在朝鮮初期一般的官僚文人愛好蘇東坡文學的豪放品格 可是李荇對於黃山谷文學 有關心來轉變朝鮮文學的傾向. 那麻, 在韓國文學思想李荇的文學占有什마地位? 李荇適文學是근朝鮮初期官僚文人的不一樣, 以前時代官僚文人認爲文章的價値在實用面. 文人利用文章來經世治國. 小以他們認爲文章的最重要的技能是’文章華國’. ‘華國’的意思是思是在外交上子과 自國文學的高水平. 那時候, 他們寫的文學是好像’雅頌’似的. 所以在文學作品內詩人常常高興地稱頌王業. 那種詩文的內容中有點兒’遊閑的, 遊樂的’情趣. 結果, 那個時代, 他們形成了又豪放又富華的文學境界. 可是李荇認爲自己當代不是太平盛大. 他把現實的不好的情況 浮彫來擴充了文學內容的範周. 那就是把以前成宗時代新進儒學者俱有的文學精神繼承來擴而充之. 他認爲文學的主技能不是’華國’, 是涵養個人的德性. 那樣的李荇文學品格的特質讓他的文學占有朝鮮中期性理學中心文學的正前段階的地位. 在朝鮮中期, 朝鮮學界崇奉性理學了. 所以硏究性理學的學者越來越多了. 而且對於性理學흔有關心的文人也出現了. 當然根據性理學思想, 他們寫了詩文作品. 李荇强調了文學的涵養德性技能. 那就是把’內聖’側面明顯了. 李荇後代的性理學文人們把那樣的文學精神接受以后, 表揚了 ‘正心’的文學觀. 可以說李荇是提供性理學中心文學隆盛的造端的文人. 再說, 李荇文學表出的’沈厚’風格也是被有些后代的文人繼承了. 那些文人維持一定距離 着對面客觀現實. 那樣的對於客觀現實有關心的詩作態度是差點兒不能發現在性理學文人的作品衰. 作結論地說, 李荇的文學是把朝鮮初期官僚文人的限界點克服以后, 근新進儒學者的境界結合來出現的. 所以他開闢館閣文學的新領域領來試圖擴大了 士林派的文學傾向. 李荇是把以前時代的兩種對立的文學路線結合融和來造成館閣文學的質變的重要文人. 他對后代 文學傾向的影響是比較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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