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豹菴 姜世晃의 《松都紀行帖

Title
豹菴 姜世晃의 《松都紀行帖
Authors
김건리
Issue Date
2002
Department/Major
대학원 미술사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bstract
본 논문의 주제인 <<松都紀行帖>>은 姜世晃(1713-1791)이 松都를 유람하고 그 곳의 명승지를 그린 기행사경도이다. <<송도기행첩>>은 주로 국내 미술사학계의 '眞景山水畵'에 대한 활발한 연구물들 속에서<靈通洞口>나 <白石潭> 같은 그림들을 중심으로, 그 화풍 상의 특이점만이 언급되어 왔고 이 화첩의 전체상을 파악하려는 시도는 현재까지 없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송도기행첩>>을 다각도로 조명해 보고자 하였고 이를 통해 <<송도기행첩>>의 전모가 어느 정도 밝혀 질 수 있었다. 먼저 <<송도기행첩>>의 제작 경위를 명확히 하고자 하였다. 제작 경위에 대한 파악을 통해 제작 년도, 제작 과정은 물론이고 근본적으로 화첩의 성격을 이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러한 화첩의 성격은 화풍 파악에 기본이 된다. 현재까지 <<송도기행첩>>의 제작 경위는 뚜렷이 밝혀지지 못하고 있었다. 일찍이 변영섭 교수는 『豹菴 姜世晃 繪畵 硏究』를 통해서, <<송도기행첩>>의 제작 년대를 허필의 <妙吉祥圖> 跋文에 나오는 '無署帖'이 <<송도기행첩>>일 가능성과 강세황의 초·중기 화풍과의 비교를 통해 1757년으로 추정했었다. 그러나 화첩에 詩를 남긴 '士受', '체천', 跋文에 나오는 '南村人'과 '吳弟'라는 인물들이 미상으로 남겨짐으로서 <<송도기행첩>>의 제작 경위는 더 이상 밝혀지지 못했었다. 본 논문에서는 미상의 인물이었던 '士受'와 '吳弟'를 밝혀냄으로서 <<송도기행첩>>의 제작 년대 및 제작 경위를 보다 명확히 할 수 있었다. 필자의 연구에 따르면 <<송도기행첩>>에 詩를 남긴 인물은 字는 士受(士修), 號는 체천인 '吳遂采'(1692-1759)이다. 그리고 발문에 나오는 '吳弟'는 오수채의 손자인 '吳彦思'(1734-1776)이다. 오수채는 개성유수를 제수받아 개성으로 갔으며, 유수로 지내는 동안 강세황을 초청해 동유하고 <<송도기행첩>>을 제작했던 것이다. 강세황의 발문과 허필의 <묘길상도> 발문을 통해 1759년, 오수채 사망 이후 오언사가 <<송도기행첩>>을 소장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데 '오언사' 라는 인물이 회화애호가이자 수장가이었음이 강세황의 발문에 나와 있어 특히 주목된다. 이에 오언사 집안을 조사해 본 결과, 선대 吳道一이 조선후기 기행문화를 향유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강세황과 이 집안과의 교유 관계는 강세황의 부친 '姜현'과 오수채의 부친 '吳道一'의 교유 사실을 확인함으로서 더욱 명확히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오수채가 <<송도기행첩>>이 제작된 해인 1757년에 『松都續志』를 편찬했던 사실이 있어 <<송도기행첩>>의 제작경위 고찰에 있어 주목이 요구된다. 오수채의 『송도속지』는 1740년 영조가 송도에 幸行한 것을 비롯해 그간에 새로 이루어진 일들을 1648년 金堉(1580-1658)의 『松都志』에 좀더 적극적으로 보완하려는 작업이었다. 현재 『송도속지』가 전하지 않고 남아 있는 오수채의 「송도속지발」에는 <<송도기행첩>>과 관련된 언급이 전혀 없기 때문에 <<송도기행첩>> 제작과 『송도속지』 편찬과의 연관성은 미약해 보이고, 자료가 부재한 상황에서 이 관계를 명확히 밝혀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송도기행첩>>에 그려진 <泰安倉>, <산성남초>, <大興寺>, <大乘堂>은 모두 '公的'인 성격을 지닌 대상처이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그리고 <花潭>의 逝斯亭, 泰安倉, <산성남초>의 大興山城, 大興寺, 大乘堂, <朴淵瀑布>의 범사정은 모두 1648년 金堉의 『松都志』 이후에 중건되거나 조성된 경우로 오수채의 『松都續志』에서 새롭게 부가된 대상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오수채의 『송도속지』를 참고한 1782년 鄭昌順의 『松都誌』와 1802년 金文淳의 『松都續誌』에는 <<송도기행첩>>에 있는 오수채의 범사정 시가 포함되어 있고 대승당에 대한 그의 시도 남아 있다. 이러한 정황을 통해 볼 때 <<송도기행첩>>의 주문자였을 오수채의 지리서 편찬작업과 <<송도기행첩>>이 전혀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음으로『新增東國輿地勝覽』과 私撰邑誌들 그리고 조선시대 송도지역을 대상으로 한 遊記 작품들을 살펴봄으로서, 조선시대 송도유람의 일반적인 양상을 먼저 파악하였다. 파악된 송도 유람의 전형과 <<송도기행첩>>과의 비교를 통해 강세황의 송도여행의 전모를 엿볼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송도기행첩>> 內 승경지들의 지리적인 위치를 고찰할 수 있었고 그 결과 현재 화첩의 순서에 의문점을 제시하게 되었다. 따라서 승경지들의 지리적인 위치와 조선시대 송도유람의 일반적인 여정을 고려해 화첩의 원래 순서를 가정해 보았다. 가정된 원래 순서에 따라 화첩을 살펴 본 결과, 지리적으로 인접한 승경지들이 화풍상으로도 유사점을 보여주고 있었으며, 화첩이 화면 위에 제목만 표기하고 있는 경우와 몇 줄의 제문을 남긴 경우로 뚜렷이 양분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송도기행첩>>의 화풍 분석은 각 폭의 화풍을 먼저 살펴본 후 이어서 전반적인 특징을 구도와 필법, 채색법 그리고 서양화법 등으로 논하였다. 특히 본 연구를 통해 <<송도기행첩>>의 제작년대가 1757년으로 확실시됨으로서 국내 서양화법의 유입과 운용에 대한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송도기행첩>>의 양식적 연원으로 청대에 간행된 산수판화집과의 유사성을 새롭게 지적해 보았다. <<송도기행첩>>은 18세기 초반을 중심으로 하는 '鄭敾風'의 기행사경도와 18세기 후반을 중심으로 하는 '金弘道風'의 기행사경도와는 구별되는 18세기 중기 기행사경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近大遠小式 구도, 서양화법의 운용, 필선 위주의 경물 표현 그리고 맑은 담채의 사용 등은 18세기 중반 경의 기행사경도에서 일부 드러나는 공통적인 요소이기도 하다. 필자는 이 같은 양식적 특징이 특히 청대 간행되었던 산수판화집 등과 같은 중국의 판본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았다. 18세기 후반 무렵, 일본에서도 위와 같은 특징을 보이는 기행사경도류의 그림들을 찾아 볼 수 있는데 이는 당시 중국의 판본을 韓日이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의 이러한 그림들은 대게 지리학자들에 의해 그려지고 있어 중국의 지리서들 內 판본이 韓日 兩國의 기행사경도에 미친 영향에 대해 앞으로 주목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This thesis is on the album <> which is one of the representative masterpieces of Kang Sae Hwang(姜世晃, 1713-1791) who was an outstanding figure in the various parts of art history of Chosun Dynasty: as a painter, as a critic, and also as a patron. This album, which was painted after his travel to Songdo, however, has been evaluated ONLY by its unique style, which one of the leaves in the album shows very eloquently. Therefore, this study would differentiate itself from previous studies by illuminating many sides as well as its style, including the concrete background, the period, interactions between each leaves, and the original order which are not known until now. In the first place, the study focuses on the concrete background of the album. In the album, there is a colophon which is composed of a poem by Sa Su(士受) and a poem and an inscription by Kang Se Whang. By the study, it is found out that the Sa Su who was unknown before this study is Oh Su Che(吳遂采 1692-1759) who was a literate in the later Chosun Dynasty. The study also finds out that the exact year when he was the administrator(留守) of Kaesung(開城), which was the administrative name of Songdo, was 1757. By the fact, it becomes clear that the album was made in the year 1757. Moreover, by consulting Oh(吳) family's pedigree, it is proved that the 'brother Oh' in the inscription is Oh Uu Sa(吳彦思), who is a grandson of Oh Su Che and collected this album after the death of his grandfather. These new discoveries are important results of this thesis. Finally, the study pays attention to the geographical book 『Songdo Sokji(松都續志)』 edited by Oh Su Che. Even if there's no clear evidence of a connection between the album < > and the book 『Songdo Sokji』, the existence of connection between them is highly possible, because some public facilities such as an official residence, an official storehouse for rations, and the temple equipped for armory are drawn in <>. In sum, Kang Se Whang who was invited by Oh Su Che, the administrator of Kaesung and an editor of the geographical book <>, painted <> for him in 1757 The next one which this thesis sets focus on is the order of album leaves. From studying literati's travel records and geographical books in Chosun Dynasty, the geographical locations of the objects in each album leaf are found out. Some of them are confirmed in old maps. Furthermore, combining the geographical locations of the objects in the album and the general order of literati's travel course, the study supposes that the order of album leaves at present is not the original one. The original order is suggested. In the suggested new order, many stylistic similarities among the close leaves are observed. The last subject is the stylistic characteristics of the album. The uniqueness of the album comes from the harmonic use of two completely opposite new painting styles: western style copying the appearance of an object and An Hui(安徽) style conveying the mental core of an object. The thesis emphasizes that <> is a very important painting in order to understand the true-view landscape painting in the middle 18th century. Because, in terms of style, the Kang Se Hwang's masterpiece is different from the former Jung Son(鄭敾)'s and the later Kim Hong Do(金弘道)'s. Painters such as Kim Yun Kyeum(金允謙), Yi In Sang(李麟祥) and Jung Su Yeoung(鄭遂榮) painted true-view landscape painting in similar style, so this group of painters including Kang Se Hwang can be tied up as one painting school which has stylistic characteristics called 'Newly rising style(新興樣式)': close-up composition, clear coloring, western manner and brushwork from An Hui school(安徽派). At that period, new painting styles from china spread out to painters in Chosun Dynasty especially by prints which could be easy to be come in contact with. Therefore, it suggests much that there are stylistic similarities between of <> and of <> made from the imperial workshops in Ching. Also, in Japan, there are several true-view landscape paintings similar to Chosun's 'Newly rising style', whose painters were geographers or persons related to the edit of geographical books. This stylistic similarity means that the Chinese international style of painting spread out into Korea and Japan in 18th century especially through landscape prints in Chinese geographical books. The study suggests that we need to look into the fact more. Differentiating itself from former studies which mainly forcused on Jung Sun as a painter and Kaundong(關東) province as a region, this thesis would go closer to the truth of true-view landscape paintings in Chosun Dynasty by studying Kang Se Hwang'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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