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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파견 여선교사와 (기독)여성의 여성주의 의식형성

Title
조선파견 여선교사와 (기독)여성의 여성주의 의식형성
Authors
강선미
Issue Date
2003
Department/Major
대학원 여성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Doctor
Abstract
본고는 구한말부터 일제 시대에 걸쳐 여선교사들의 교육활동과 이를 통해 배출된 조선 (기독) 여성들의 여성주의 의식 형성을 추적한 연구로서 일상사적 접근, 사회사적 접근을 취했다. 이는 지금까지 조선 여성의 ‘기독인’ 혹은 ‘민족’ 정체성에 초점을 맞춰 온 기독교 복음주의나 민족주의적 관점의 연구에서 주변화되어 온 여성 정체성과 관련된 여성의 경험을 사회과학적 탐구 영역의 주요 부분으로 위치시키고자 하는 여성학적 노력의 일환이다. 따라서 본고는 여성주의 의식을 중심으로 그 발전 과정에서 제국주의와 민족주의와 어떻게 만나는지를 살펴보는 방법을 취하여 여성의 개인적, 사회적 의식성장의 중요성을 긍정하고 그 과정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지식형성의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했다. 한국 여성들의 여성주의 의식의 태동은 18세기 초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지만, 이러한 의식이 성장하여 여성들의 자율성과 자기결정권을 보장할 수 있는 대안적 사회조직에 대한 비전으로 까지 발전하기 위해서는 개별차원의 여성주의 의식을 묶어 줄 수 있는 다양한 사회적 여건들이 필요했다. 조선 여성들에게 이러한 여건들이 집약될 수 있는 여성의 공간을 처음 열어준 것은 구한 말 시기 개신교 선교활동을 위한 파송되었던 북미 출신의 여선교사들이었다. 이러한 가설을 검증한 연구의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조선에 파견되었던 여선교사들은 1880년대 미국에서 극적 상승세로 돌아섰던 해외선교사업에 대한 관심과 미국정부의 문화적 제국주의 정책이 맞물리던 시기에, 신학적으로 볼 때는 당시 미국 도시 이미자들의 복음주의 신앙에 기초하여 사회복지에 대한 책임의식을 중시하는 사회적 복음이 확산되던 시기에, 미국의 시민이자 기독인의 정체성을 갖는 여성으로서 조선에 왔던 여성들이다. 이들은 빅토리아적 공사개념과 여성성에서 벗어나 있었다. 공적 영역 내에 여성의 일을 확보하고 정당화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된 남북전쟁에서의 여성 봉사활동과 여성고등교육의 경험이 이들의 새로운 여성시민의식을 생성해 내었던 것이다. 둘째, 조선사회 내에서 여선교사들이 지녔던 역사적 성격은 크게 세가지로 구분되었다. 우선은 1885년 이들의 내한 당시 조선정부와 개화파 지식인들이 기대했던 바 서구의 과학과 기술을 전하는 문화전도사이자 기독교의 복음을 전하는 종교전도자로서의 성격이었다. 그리고 19세기의 빅토리아적 가정성과 여성 이미지에서 전용되어 미국의 공적 영역에 참여하는 시민여성의 대표적 상징이 된 ‘공화국의 어머니’에서 발전된 ‘제국의 어머니’로서의 성격이다. 마지막으로 조선 여성들의 삶의 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적극적인 사회활동을 지지하고 동조하는 여성주의자로서의 성격이다. 여선교사의 이러한 세가지 면모는 미국, 일본, 중국, 조선 등 국가 간의 권력관계 변화뿐만 아니라 체류기간과 관계에 대한 책임의식에 따라 그 배합의 양상을 달리했던 것이다. 한마디로 여선교사들은 제국주의 역사에 대한 공모자, 저항자의 모습을 동시에 보여주었다. 셋째, 주부선교사와 전문직 여선교사들은 선교사 공동체가 지녔던 가부장적 성별구조 속에 위치하면서 이에 대한 공모와 저항의 교섭과정을 동시에 보여주었다. 즉 이들은 조직 내의 위상이나 역할분담에서 불평등과 억압을 경험하면서도 이에 대한 갈등을 표면화하기를 극도로 자제하며 ‘제국의 어머니’로서의 명예를 지키고자 하였지만, ‘하느님이 맡긴 소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조선 여성들의 삶의 고양의지에 동조하고 연대하여 조선사회와 선교사 공동체의 무관심과 통제에 저항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넷째, 여선교사들의 조선 여성에 대한 여성주의적 연대의식은 조선에서의 체류기간이 길어지고 경험이 쌓이게 되면서 심화되는 경향을 보였다. 이는 자신들에게 처음으로 주어진 본격적인 전문영역의 기회를 성공적으로 이끌겠다고 하는 야망과 하느님의 사업에 대한 헌신의지, 조선 여성들의 삶의 정황과 필요에 대한 직접적 경험과 책임의식 등이 결합되어 나타난 것이었다. 다섯째, 이러한 여선교사들이 조선 여성들의 여성주의 의식 형성과정에서 보여준 역할모델로서의 면모는 크게 두 가지라고 할 수 있다. 하나는 여성시민으로서의 사회적 책임의식과 여성의 가정성에서 비롯되는 사회적 역할에 대한 자부심과 헌신이었다. 즉 이들은 ‘보다 나은 조선 여성’을 구성할 수 있는 의식과 역할의 본보기, 즉 근대 초기 ‘여성시민’의 모델이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자신의 개인적 야망을 사회적으로 성취하는 여성의 모델이었다. 여섯째, 구한말부터 미션계 여학교를 중심으로 조선 여성들이 키워온 초기 여성주의 의식은 미국의 ‘모성적 여성주의’와 유사한 특성을 보이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들이 ‘조선의 민족여성’을 구성하는 방식에는 분명 행위주체성이 존재했다. 그들은 서구문화의 우월성을 주장하고 그렇게 믿고 싶어했던 선교사 공동체의 보호와 훈육 하에서 자신들의 독립된 사회문화적 위치를 교섭해 갔다. 그러나 이러한 경험은 반드시 조선 여성들의 ‘서구화’ ‘타자화’ ‘종속’을 불러오는 것은 아니었다. 여선교사들의 훈육과 역할모델에 의해 깨어난 조선 여성들의 의식은 조선의 정치적, 문화적 상황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자신들이 배운 종교와 문화에 대한 사고능력이 발달, 성숙하면서 새로운 여성주의를 구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본고는 탈식민적 여성주의의 입장에서 제국주의와 민족주의의 갈등 속에서 지금까지 비가시적 영역으로 남아 있었던 초기 여성주의 의식의 존재를 드러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로써 본고는 1920년대의 자유주의 혹은 사회주의적 여성주의를 주장했던 신여성들 이전부터, 나아가 그들 주변에 넓게 퍼져 있었던 또 하나의 여성주의의 실체를 개념화하고 그 특성을 밝혀 보았다. 이는 바로 미션계 여학교를 중심으로 형성된 민족적 여성주의로서 본고에서는 이를 ‘초기 여성주의’라고 명명하였다.;This study examines the influence of American women missionaries on the formation of collective feminist consciousness and movement among Korean (Christian) women from the very beginning of the American Protestant missionary work in 1885 until the end of the Japanese colonization period with sociohistorical analysis and daily life approach. This study is a part of the feminist efforts to locate women’s gendered experiences in the mainstream of scientific studies in Korea. By focusing on the development of feminist consciousness in relation to the imperialism and nationalism during the given period, this study finds the way to affirm the importance of feminist consciousness development in both individual and collective levels and the knowledge production which could empower the contemporary women in Korea. Some have located the rise of feminist consciousness in the works of 18th century women writer such as Mrs. Lim with a by-name ‘Yun-ji-dang.’ But for the development of the collective feminist consciousness various preconditions were needed such as social space, role model, and ideology. In Korea, women missionaries from North America were the leading force that opened “women’s spaces” by establishing mission schools for girls and women all over the nation during the given period. The results of the verification of this assumption were as following; First, in the 1880’s when the first American Protestant missionaries entered into Korea, there occurred a dramatic revival of the foreign mission movement in America. Those women missionaries, including both wives of male missionaries and single professionals, came to Korea with strong responsibility for the welfare of ‘heathen’ women in Korea which reflected the social evangelism developed among the urban immigrants in America. Those Christian women who participated in this movement had strong identity as ‘republican mothers.’ This new formation of women’s consciousness as equal but different civilian in terms of gender was the result of women’s participation in the social service activities during the Civil War and women’s higher education in America. Second, the women missionaries embodied the following three historical roles in varying combinations. First of all they were cultural missionaries who gave the western education on science and technology plus Christianity. Their gospel of women’s uplift was based on models evolved in America. Next, they were maternal imperialist who wanted to socialize immature daughters to their adult rights and responsibilities. The ‘motherhood of Empire’ was the reconstruction of the ‘republican motherhood,’ the image of maternal feminists, during the American expansionism at the turn of the 20th century. Lastly, sometimes they acted as feminist allies who advocated women’s autonomy and self-determination and equal rights in education. Third, during the given period of time women constituted almost two third of missionaries and proved to be particularly persuasive voices in the crusade for American influence in Korea. Both wife missionaries and professional missionaries were located in the patriarchal structure of mission community in Korea, and their lives in Korea can be interpreted both as complicity with and as resistance against it. They tried to keep the good reputation of the missionary community in Korea as Christian mother-teachers of the empire silencing their own suffering from the inferior position in the patriarchal structure of the community. But in the process of their implementation of their own mission sometimes they became feminist allies advocating and supporting the improvement of Korean women’s living conditions even in the face of harsh challenges from the male leaders the missionary community and churches in Korea. Fourth, the feminist consciousness of the women missionaries could be observed among those women who stayed in close connection of the Korean women and long enough to overcome barriers of differing experiences, language and cultural attitudes. The major factors of their change were the strong commitment and devotion to the mission work for women in Korea, desire for success and achievement of the mission goals, their position which made them to know the women’s conditions and needs better than anyone else in the missionary community and sense of responsibility for them as missionaries who started Korean women off taking on the upward climb. Fifth, women missionaries were the role models for the development of Korean women’s feminist consciousness. First they embodied social responsibility as women civilians based on their pride and confidence of women’s moral superiority as mothers of the republic. In other words, they showed Korean women the ‘proper’ roles and attitudes of ‘civilized’ women citizen so that they could become “better Korean women.” Second, they were women who have achieved what they want in the public sector, the dream of modern feminists both in America and Korea. Sixth, the feminist consciousness developed among those (Christian) women in Korea who attended mission schools established by the foreign missionaries were somewhat similar to the “maternal feminism” in 19th century in America. But they were not mere recipient of the western feminism but also active agents in the formation of the ‘nationalist feminism’ in Korea. It is true that they had to negotiate their autonomy and self-determination under the protection and instruction of the missionaries who believed in the superiority of the western civilization. But their awareness was based on Korean women’s self-perceptions, their ability to conceptualize their own situation and their ability to conceive of societal solutions to improve it in the Korean context. The development of women’s English language skills and knowledge on western culture also helped to build up their own characters. In sum, this study made visible the collective feminist consciousness in Korea which has been laid invisible in dominant historical discourses on imperialism and nationalism. This feminist consciousness had pre-existed the liberal or socialist feminisms emerged in 1920’s among ‘new women’ in Korea, and also paralleled them nationwide. The name of this nationalist feminism could be called “first wave feminism” in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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