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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백자의 조형적 연구

Title
조선백자의 조형적 연구
Authors
최윤정
Issue Date
2000
Department/Major
대학원 도예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bstract
Earthenware pottery is the first step of the Korea ceramic history. During the Koryo Dynasty, lots of celadon and porcelain were made. Until that time, the main part of pottery was celadon. With a beginning of the Chosun Dynasty, porcelain become a main production in potteries including Boonchung, a land of high fired earthenware. But after the war of Impnwearan (Japanese invasion 1592),at the end of 16th century, Boonchung was no longer produced. Then porcelain was made continually. The Chosun Dynasty was founded on the Confucianism ideals of a political system, emphasizing integrity, frugality and a simple life style. This philosophy affected on the design and shape of porcelain ware. Throughout the Chosun Dynasty porcelain was the most widely used ware, and its design is reflecting a simple life style. It was not only the culture but also special climate of the Chosun Dynasty, that affected on a simple and comfortable pottery design. The rounding shape, natural and simple beauty, was loved The big round- shaped pot, called the "Moon Pot," showes this beauty. To understand what is the beauty of Chosun Dynasty porcelain, design and shape are classified in several ways. First, porcelain ware was classified into nine groups such as : pot, bottle, bowl, plate, cup, brass bowl with a lid, etc. Secondly, the shape of each group is analyzed as to its: pattern, uses, and sizes chronologically : the Incipient, the Middle and the Late stages. Shape of Chosun Dynasty porcelain had been standardized into three sizes, large, medium and small. Fspecially the : pot, plate and bowl are clearly classified into three reasonable-sizes according to use. This development allowed for mass production and a mass consumption by all levels of society, not just for the rich upper levels, such as royalty. It can be inferred that, for the late stage of Chosun Dynasty, porcelain production became systemically modernized with private commercial investments. This phenomenon made for some modification in the design of shape and pattern. There were various kinds of pottery designs that focused on practical uses. It is reflecting the needs and wants of the consumers. But, most of all, even though the shapes, patterns, uses and sizes had been changed variously, the shape got consistent proportions in each of three periods. For example, in the Late Stage, the bottom of a pot was wider than mouth part, of the pot, as compared with the Incipient or Middle Stage. Moreover, the thickness gives the stability. In the Late Stage the mass is more voluminous. Its shoulder part is more expanded than before, and its expanded shoulder-line sornwhat gives a sense of being abundant and natural. In the conclusion, the aesthetical development of porcelain in the Chosun Dynasty was a reflection of a preference for natural and simple forms, based on stable proportions, voluminous mass and classical beauty, and, as time gose on, potteries had been various and consistent size in three ways.;白磁는 高麗時代 靑磁와 共存하며 제작되다가 朝鮮時代가 되면서 儒敎를 바탕으로 각종 政策의 體制와 社會的·思想的 배경이 바뀌면서 粉靑沙器와 함께 生産 되면서 1592년부터 1598년간 壬辰倭亂을 거쳐 완전한 白磁 시대로 이행되었다. 中央集中式 王權强化政策의 朝鮮은 陶磁 생산체계의 中央官窯로서 국가에서 경영하면서 政治思想으로 性理學의 儒敎體制를 받아들여 儉素하고 素朴한 淸廉意 識은 陶磁文化에도 큰 영향을 끼쳐 世宗부터 金, 銀器의 王室御器 사용을 撤廢시 키고 白磁로 전환하도록 했으며 儒敎의 검소하고 소박한 삶에 대한 강조는 공예에 있어 節用主義 思想으로 작용하여 이후 생산되는 白磁의 造形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 白磁가 朝鮮時代를 거치면서 생활 속에 확고히 자리잡음으로써 결정되어 지던 造形美는 近代와 現代를 거치면서 史學的인 측면에 자연스러움, 素朴美, 諧謔美라 는 美學的인 측면의 定義가 내려졌다. 둥글고 시원시런 線은 素朴하고 單純한 庶 民的인 아름다움을 나타내며 이것은 朝鮮이라는 시대속에서 社會的, 思想的, 文化 的 영향으로 인해 우리나라 풍토와 함께 자연스럽게 정착되었다. 따라서 본 논문은 좀더 구체적으로 朝鮮白磁가 가지고 있는 자연스러움, 素朴 하고 淡白한 美를 客觀的으로 밝힘으로써 포괄적인 造形性의 흐름을 정의하고자 하는 데 목적이 있다. 15세기 부터 19세기 까지에 이르는 朝鮮時代를 연구범위로 하며 이를 前期, 中 期, 後期로 구분하여 각 시기별로 많이 제작된 器種을 파악하여 항아리, 甁, 鉢, 접 시, 盞, 盒, 文房具, 祭器, 其他 日常容器의 9가지로 구분하여 각 器種별로 나타나는 대표적 器形과 文樣을 정리하는 것을 연구 내용으로 한다.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발굴 조사된 보고서를 바탕으로 朝鮮時代 제작된 白磁의 주된 器種 및 器形과 크기변화의 수치를 정리하는 것을 연구방법으로 한다. 이 같은 방법으로 각 시기별 대표적 器種과 器形이 가지 는 평균적 形態比例를 연구한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첫째, 朝鮮時代 全般的으로 청렴과 검소, 충직한 정신을 강조하는 朝鮮의 建國 政治理念인 儒敎의 節制的 思考로 인해 節用主義가 白磁를 비롯한 공예제작 전반에 작용한다. 따라서 백자의 전체적 형태비례가 가지는 선의 흐름에서 간결하고 단순한 造形美로 귀결된다. 이는 시대가 흐를수록 구연과 굽이 점차 직립형으로 정립되고 있는 점으로 설명되어진다. 胴體의 線의 흐름도 단순화된 간결한 흐름을 띄게 되는 것으로 口緣部와 胴體, 底部의 구조가 간결하게 연결되고 있다. 둘째, 器種의 변화나 크기의 변화는 白磁의 수요층의 확대로 다양해진 사회의 변화와 생활모습, 문화의 영향과 함께 종류가 점차 다양화되는 현상을 보인다. 후기에 유행하던 實學과 중국의 陽明學과 함께 들어온 새로운 문화는 생활 저변에 실용적이고 실질적인 단면을 반영하고자 하는데 영향을 준다. 따라서 백자가 일상 용구로 다양하게 제작되었으며, 나아가 크기의 定形化가 이루어진다. 이는 白磁의 사용이 확대되면서 需要의 增加가 商業的인 資本의 增加로 대량생산을 위한 近代的 傳統工藝의 産業化 과정과도 연관된다. 또한 實學을 통한 후기 朝鮮의 정체성을 찾고자 했던 사조의 용향은 제례의식의 정착과 함께 白磁祭器가 널리 사용된다. 세째, 시대가 흐름에 따라 전체적으로 안정되고 단순하며 두께가 두꺼운 형태의 實用的인 형태로 바뀌어 가고있다. 단적인 예로 항아리의 胴體 上部나 甁의 경우 몸체가 풍만하여 풍부한 量感을 주며, 鉢이나 접시의 경우 底徑이 넓어지면서 전체적인 比例感이 安定感을 찾는 것을 볼 수 있다. 네째, 초기에는 上層 위주로 제작된 백자가 많은 만큼 畵員이 주로 그리던 主 文樣 위주의 회화적 문양이 많으나 후기에는 從屬文樣과 함께 圖式的으로 표현된 문양이 일반적이다. 소재에 있어서도 초기에는 儒敎的 文人들의 취향을 나타내는 山水文이나 四君子文樣이 주로 사용되었으나 후기로 가면서 일반 서민을 비롯한 다양한 수요층의 욕구가 반영되어 사회 전반에 걸쳐 유행하던 道敎思想의 영향으로 壽福康寧의 현세적 希求를 반영하는 十長生文 및 牧丹文, 박쥐文樣이 주로 시문된다. 初期에 中國의 영향으로 樣式的이던 文樣은 점차 안정적이고 균형잡힌 비례와 간결한 필치의 여백을 주로 살린 獨創性을 지니는 자연스럽고 淡白한 造形 美로 정착됐으며 寫實的 표현의 그림의 경우 畵員에 의해 그려진 것들로서 當代 繪畵의 유행과 함께하면서 古典美를 더하였다. 그러나 시대가 지남에 따라 白磁의 사용이 基層으로 확산되면서 생활주변을 표현하던 造形的 要求는 諧謔性과함께 점차 圖式化되고 있다. 이는 靑華의 사용이 늘어나면서 民間의 商業資本이 流入되고 分院의 民營化가 진행되면서 수요와 함께 생산이 늘어나면서 생기는 자연스런 현상이다. 따라서 초기나 중기 器面에 시문되던 양식은 主文樣 위주의 餘白의 美를 살린 회화적이던 특성을 보이던 것이 후기에는 從屬文樣과 主文樣이 함께 등장하며, 筆致도 樣式化되어 全面가득히 반복적으로 시문되고 있는 것이다. 소재에 있어 植物이나 山水文 위주의 문양은 후기로 갈수록 소재의 범위가 넓어지며 마침내 民間의 壽福康寧의 念願을 담은 十長生文樣이나, 壽福文字文, 牧丹文, 박쥐文 樣 등이 새롭게 등장하면서 多樣性을 더해줌으로써 白磁의 造形美를 完結짓고 있다. 나아가 조선백자의 文樣과 器種의 변화를 통한 시기별 형태비례와 크기가 가지는 造形性은 현대의 陶磁藝術 및 食器와 傳承陶藝의 올바른 백자 이해에 대한 具體的인 視覺的 방향을 제시의 효과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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