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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後期 王室 宴享用 白磁 花樽 硏究

Title
朝鮮後期 王室 宴享用 白磁 花樽 硏究
Other Titles
A Study of Porcelain HWA JUN in Late Joseon
Authors
신승인
Issue Date
2012
Department/Major
대학원 미술사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dvisors
장남원
Abstract
본 논문은 조선왕실 연향용으로 사용된 花樽의 성격을 규명하고, 이를 통해 화준으로 사용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백자청화운룡문호(이하 龍樽)를 정리하였다. 그리고 그동안 ‘18-19세기에 왕실 의례용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어오던 용준의 유형을 정리하고 편년을 시도하여 용도에 따라 각기 화준과 酒樽으로 나눌 수 있음을 밝히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조선 왕실 연향에서 사용된 화준에 관한 내용은 실록이나 승정원일기, 연향의궤, 왕실연향기록화를 통해 파악하였고, 기록이 집중되어 있는 조선 후기의 상황을 정리하였다. 왕실 연향에서는 어좌의 좌우를 장엄하고 연향을 화려하게 빛내기 위한 목적으로 樽花를 사용한다. 준화는 용준에 쌀을 채워 넣고 假花를 꽂아 장식한 것으로, 여기서 사용된 용준이 바로 화준이다. 화준은 고려시대에도 왕실 연향에 사용되었다. 조선시대 기록화들을 보면 왕실뿐 만 아니라 민가에서도 연향에 화준을 사용하였다. 화준은 용문이 그려진 청화백자로 제작되어 畵龍樽이라고 불렸으며 왕실 연향에서 필수 의장물이었다. 화준의 기형은 견부에서 최대경을 갖고 저부로 갈수록 좁아져 기측면이 ‘S’자형을 이루는 형태이다. 도상은 주 문양으로 여의주를 쫒는 용이 시문되었으며 雲文이 둘러싸고 있다. 보조문양으로는 구연에 雲形 唐草文, 견부에 如意頭文, 저부에 圭形 瓣文이 시문되었다. 이러한 기형과 도상은 의궤 기록상으로 볼 때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전반까지 화준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이며,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에는 淸 皇室의 하사품으로 추정되는 唐畵樽이 사용되었다. 화준은 어좌가 자리하는 正殿 앞 좌우에 쌍으로 배설된다. 그러나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전반까지 기록화에는 화준의 배설위치가 연향공간의 후면으로 밀려난다. 이것은 청화백자 사용이 저변화되어 문제가 되자 왕실에서 청화백자사용 금제를 내리는데, 화준은 연향에 필히 배설되어야 하므로 그 배설위치에 변화를 주어 청화백자에 대한 왕실의 의지를 표명하였다. 용준은 화준으로만 사용된 것이 아니라 獻爵禮에 쓰이는 술을 담아두는 주준으로도 사용된다. 19세기 후반에 화준은 당화준으로 바뀌지만 주준은 변함없이 용준을 계속 사용한다. 19세기 후반 의궤도식에서 주준을 보면 이전 시기 도식과 달리 견부의 여의두문이 상향하는 것에서 하향하는 것으로 전환한다. 이 변화를 기준으로 용준의 유형을 분류하면 아래와 같다. 먼저 I 유형은 소형의 여의두문이 그려진 것으로 세밀한 여의두문 뿐 아니라 전체적으로 문양간의 포치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영조 30년(1754) 기록에 ‘옛날에는 화룡준을 만들 때 回靑畵員을 내려보냈다’라는 기록으로 보아 18세기 전반까지 화원이 용준의 문양을 직접 시문했을 것으로 보인다. 화원이 그린 용 도상을 알 수 있는 17세기 후반의 『山陵都監儀軌』 ‘청룡’도상을 보면 I 유형 도상과 일치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I 유형은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전반에 제작된 것으로 판단된다. II 유형은 선형의 여의두문이 그려진 것이다. 용의 도상이 커졌으며, 저부의 문양이 I 유형에 비해 간략해졌다. 의궤 도식의 변화에 따라 상향의 여의두문이 II-1 유형, 하향의 여의두문이 II-2 유형이다. II-1 유형은 다시 ‘가’ 유형과 ‘나’ 유형으로 나누며 전자는 저부에 규형 판문이 있고, 후자는 구연과 저부의 문양이 간략 또는 생략되어 있다. II-2 유형은 II-1의 ‘나’ 유형과 비슷하나 견부의 여의두문이 하향이고 저부의 문양도 더 다양하다. II-2 유형은 의궤도식에서 1848년 이후 나타나므로 이를 19세기 중, 후반으로 볼 수 있으며, II-1 유형은 18세기 중, 후반에서 19세기 전반까지로 여겨진다. III 유형은 II 유형의 여의두문에 농담을 넣어 채색하여 그려진 것이다. 도상이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으나, 그 중 정세하게 그려진 것이 있고, 그것을 倣한 것으로 보이는 것도 있다. III 유형은 가장 근래에 제작된 것으로 여겨지는데, 19세기 말 이후 왕실과 민간에서 이를 두루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용준을 화준과 주준으로 나눌 때, 기록화 상에서 화준이 주준보다 크게 그려지므로 이를 통해 각 유형을 살펴보았다. 50㎝를 기준으로 하였을 때, I 유형은 50㎝ 초과인 기형에서 저부 문양대에 花文이 시문된 것이 있어, 이를 화준의 표식으로 파악하였다. 용준의 도상을 분명하게 화준과 주준으로 나눌 수 있는 가장 큰 기준은 II-2 유형이다. 의궤 도식 상에서 II-2 유형은 주준으로만 사용되고 화준은 당화준이라는 전혀 다른 기형이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I 유형의 크기 구분에 따라 II-2 유형의 크기를 살펴본 결과 모두 50㎝ 이하인 것으로 나타나, 주준은 대체로 50㎝ 이하인 것을 알 수 있다. 화준과 주준이 모두 용준으로 공존하는 II-1 유형에 이를 대입해보았다. II-2 유형과 시문 방식이 비슷한 II-1의 ‘나’ 유형이 50㎝ 이하, II-1의 ‘가’ 유형이 50㎝ 초과로 ‘가’ 유형이 화준, ‘나’ 유형이 주준으로 추정된다. III 유형은 문양도 다양하고 이 시기에 민간에도 용준을 유통한 기록이 있어 앞의 체계를 도입하기 어렵다. 이와 같이 그동안 대략적으로 18세기에서 19세기에 제작되어 왕실 연향용으로 사용되어졌다고 여겨지던 용준을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전반인 肅宗代, 18세기 중, 후반에서 19세기 전반인 英祖~純祖代, 19세기 후반 이후인 憲宗~高宗代로 나누어 유형별로 정리하였고, 화준과 주준의 용도로 구분 가능성을 모색하였다. 17세기 전반 청화 안료 수입이 중단되었다가, 17세기 후반에 재개되면서 청화백자 생산이 가능해지자, 필수 의장품인 화준도 화원을 파견하여 정성스레 제작되었다. 그러나 청화백자 사용이 저변화되는 18세기 중반에 들어서면서 왕실에서는 청화백자 사용을 제재하였고, 화원 파견 없이 용준 모본만 분원에 내려 화청장이 용준의 문양을 시문하게 하였다. 18세기 후반에는 화준의 배설위치도 연향 공간의 후면으로 옮겨졌으나, 19세기 수입자기에 대한 관심 증대로 당화준을 사용하게 되면서 화준의 배설위치가 다시 정전 앞으로 되돌려졌다. 여전히 용준을 사용하는 주준은 보조문양들이 더욱 다양하고 자유분방해졌으며 19세기 후반에는 민간에도 용준이 유통된 것으로 보인다. 본 논문에서는 조선왕실이 남긴 다양한 기록을 통하여 왕실에서 사용한 여러 도자 중 꽃을 꽂아 장식하는 화준을 조명해보았다. 화준은 왕실 연향에서 어좌의 좌우를 장엄하는 왕실을 대표하는 도자로서 조선후기 도자사 중 청화백자의 흐름과 같이하고 있었다. 본 논문에서는 막연하게 추정되어 오던 용준의 제작 시기를 17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까지로 넓히고 각 시기별 특징을 정리하였으며, 용준의 용도를 화준과 주준으로 구체화하고 그 구분 기준을 제시하였다는 점에 의의를 두고자 한다.;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figure out what HWA JUN (花樽-flower jar) which was used for banquets and ceremonies of Joseon Dynasty is. Materials about royal banquest conducted by the royal families in the late of Joseon Dynasty when Hwa Jun was used remain in Uigwe (儀軌-rotal protocols) or documentary paintings. Hwa Jun is a component of Jun Hwa (樽花-fitting of flower and jar), and Jun Hwa is a kind of ceremonial fittings which decorated the left and right of the king's chair by putting artificial flowers. Hwa Jun is manufactured as a blue and white porcelain jar with dragon design (Yong Jun (龍樽-dragon jar) for the rest). But, since 1848, Chinese porcelains were used. Yong Jun is used as Ju Jun (酒樽-liquid jar) which contains alcoholic drink. Therefore, it is necessary to divide Yong Jun into Hwa Jun and Ju Jun. As Hwa Jun was changed into Chinese one in 1848, Yong Jun was used only as Ju Jun since then. With this changing, the style of Yong Jun drawn on diagrams of the Uigwe also changed, which was that the pattern of ruyitou(如意頭) on the shoulder of Yong Jun was put up side down. When examining currently remained Yong Jun relics based on this change, they can be surely divided into those whose ruyitou pattern faces upward-1 type and downward-2 type. 1 types of relics can be divided into those which are all equipped with additional patterns and those having a brief pattern. 2 type of relics all have a brief additional pattern, and the type of additional patterns is more various. Considering the Uigwe diagram, there is a high possibility that all of 2-type relics are Ju Jun. 1-type of relics include both Ju Jun and Hwa Jun, and those having simplified additional patterns are estimated as Ju Jun and the others are judged as Hwa Jun. As a result of grouping them based on the pattern, those which are estimated as Hwa Jun are more than 50cm in size and those which are estimated as Ju Jun are less then 50cm in size. 2-type of relics are all less than 50cm. Examining the documentary paintings, there is a tendency to draw Hwa Jun bigger than Ju Jun, and it was known that Hwa Jun was actually bigger than Ju Jun. And it seems that 1-type of relics were made from the middle of 18th century to the beginning of 19th century and 2-type of relics were made from the middle of 19th century to the end of 19th century. There are Yong Juns which are considered as antedated ones, and I'd mention those examined above as II type and those which will be examined from now as I type. I type's ruyitou pattern is small and detailed and in general, the interval between patterns is quite appropriate. A picture which is almost the same as the dragon's face drawn in I-type Yong Jun can be found in Uigwe. The record in 1754 says that "in the past, when making Yong Jun, send court painters," so it is known that the court painters draw a diagram of Uigwe and also draw a dragon picture on Yong Jun. According to the period of Uigwe diagram, this type of Yong Jun is assumed to be made from the end of 17th century to the beginning of 18th century. I type of Yong Jun is also divided based on the size (as of 50cm). As there is a shape of 50cm or more in size with flower pattern at the bottom, it means that Hwa Jun is bigger than 50cm. While court painters drew dragon pictures in I type, it seems that painters in official kilns drew dragon picture in II type. It's because arrangement of patterns in II type is in disorder compared with that of I type, making the dragon too big. The reason why there are ruyitou patterns upward is that as the court painters sent a sample drawing to the official kiln, they drew the pattern focusing on the dragon, so ruyitou patterns which are generally downward become upward. This paper has 2 implications. First, it focused on Hwa Jun for banquets of the royal families which has not received attention until now. Second, it classified Yong Jun with the period and usage which was vaguely estimated to be used in banquets and ceremonies of the royal families during 18th ~ 19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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