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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時代 繪畵의 書案이미지 硏究

Title
朝鮮時代 繪畵의 書案이미지 硏究
Other Titles
A study of Seoan images on the Joseon dynasty period painting
Authors
이나연
Issue Date
2012
Department/Major
대학원 미술사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dvisors
홍선표
Abstract
조선의 문화를 이끌었던 문사의 곁엔 늘 서안이 함께했다. 자연스레 서안은 문사의 삶과 문화의 상징물이 되었다. 서안의 상징성이 여러 문학과 회화에 고스란히 담겨있음에도, 그간 서안에 대한 학계의 연구는 공예사적으로만 편중되는 경향이 있었다. 이에 본 연구의 목적은 회화작품 속에 나타난 서안 이미지를 주목하여 조선시대 문사들의 학문적 이상과 여유가 반영된 도상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서안 이미지 제작의 배경이 되는 조선시대 문사들의 서안에 대한 인식을 문헌을 통해 고찰해보고, 서안 이미지가 회화의 각 장르 속에서 어떠한 형태와 의미로 조형화 되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하였다. 서안에 대한 조선시대 문사들의 인식은 크게 ‘明窓淨几’라는 이상적 개념으로 함축될 수 있다. ‘명창정궤’는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밝은 창과 정갈한 책상’을 의미한다. 하지만 여러 문헌에서의 쓰임을 볼 때 밝은 창가에 놓인 책상에 앉아 시를 읊고, 향을 사르고, 경서를 연구하는 공간, 즉 서재를 의미하는 일반화된 표현으로 볼 수 있다. ‘명창정궤’는 하나의 고유명사처럼 통용되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되며 이를 배경으로 이상적 서재의 모습은 창과 서안으로 이미지화 되었다. 이는 그만큼 서안이 서재에서, 또 문사들의 인식 속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다른 문방가구에 비해 월등히 높다는 것을 반증한다. 조선시대 문사들에게 서안은 가구 이상의 의미였으며, 문사들은 서안을 가까이하며 ‘명창정궤’의 이상을 자신의 처소에서 구현하고자 했다. 조선시대 여러 문헌 속에서 서안은 인격과 학문의 수양을 돕는 수행도구이자, 한 선비의 학문적 성취를 대변하기도 하며, 때론 사회풍조를 반영하기도 하는 등 다양한 역할과 이미지로 표현되고 있었다. 조선시대 회화에는 서안 이미지가 거의 모든 장르에 등장하는데 회화의 장르에 따라 서안 이미지가 보여 지는 양상도 변화하였다. 이는 회화 장르가 가진 특질과, 서안 이미지에 담고자 하는 의미가 각기 다르기 때문이었다.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기 위해 우선적으로 회화의 장르를 구분하고, 그 안에서 서안의 ‘형태’와 ‘용도’에 따라 세부 유형을 나누어 보았다. 우선 산수인물화의 서안 이미지는 은자의 이상적 처소를 형상화 하는 도상으로 사용되었다. 창과 서안의 기본구조를 유지하며 독서하는 인물을 배치하는 ‘독서형’, 인물이 떠난 빈 서안을 통해 보다 탈속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서안단독형’, 조선후기 사회에 대두된 고동서화 취미를 반영한 ‘기물집적형’의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볼 수 있었다. 산수인물화의 서안 이미지가 ‘명창정궤’의 이상적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면, 초상화 속의 서안 이미지는 보다 적극적으로 인물과 결합함으로써 ‘명창정궤’의 이상을 실제 삶의 공간에서 구현하는 지물로서 기능하고 있었다. 조선시대 초상화 속 서안 이미지는 형태에 따라 천판이 들려 올라가고 호족형의 다리를 기본으로 하는 ‘경상형’과, 평평한 천판과 간결한 형태의 ‘서안형’으로 구분된다. ‘서안형’은 다시 ‘서탁형’과 ‘좌탁형’으로 유형을 나누어 볼 수 있다. 풍속화 속 서안 이미지는 생활상을 반영하고 있는 장르의 특질상 보다 일상적인 실용가구의 면모가 엿보인다. 책상으로서의 쓰임과 스승의 권위가 돋보이는 ‘교탁형’과 다양한 수집품을 진열하는 장식대로 변모된 ‘장식형’의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장식형’의 서안 이미지는 궁궐과 민간에서 유행했던 책거리 그림으로 이어지게 되며, 이미지의 답습이 거듭되며 서안의 본래적 의미는 점차 퇴색되어 간다. 궁중기록화 속 서안 이미지는 왕과 왕비가 사용했던 주칠의 화려한 ‘경상형’과 왕세자와 일반 관리가 사용했던 ‘서안형’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궁중에서는 지위에 따라 서안의 색과 형태, 크기에 차등을 두고 있었으며, 가구 하나도 의미 없이 만들어지고 사용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조선시대 서안 이미지에 대한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이해는, 조선시대 문사 문화, 궁중 문화, 서민 문화의 풍부하고 다양한 면모를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물론 실물이 많이 남아있지 않아 회화 속의 이미지만 가지고 진행해야했던 부분과, 참조할 수 있는 자료가 부족했던 것은 어려움이었고 한계였다. 하지만 그동안 회화사의 관심 밖에서 연구되지 않았던 이미지를 새로운 도상으로 제시함으로써 또 다른 연구의 가능성을 마련할 수 있었던 점은 의의가 있다고 생각된다.;The Joseon literati who led culture trends of the Joseon dynasty period shared their life with their writing tables, Seoan. Many literary works and paintings depict Seoan as the symbol of the Joseon literati culture and their life. However, most previous studies of Seoan have been conducted from a craft history perspective only. Whereas, this study approaches Seoan in writings and paintings with a mind that Seoan embodies Joseon literati's academic and philosophical idealism. Joseon literati's perception on Seoan can be best summarized by an idealized concept, “Myung-chang-jung-gwe”, which, in literal, means a clean window and a neat desk. The term “Myung-chang-jung-gwe” had been commonly used from the Goryeo dynasty to the Joseon dynasty period, and a room with windows and Seoan in it was dipicted as an ideal study-room. This demonstrates that Seoan assumed a bigger role than any other stationary funitures. Seoan was more than just a piece of furniture for the Joseon literati. The literary men kept Seoan around and persued to achieve the ideal "Myung-chang-jung-gwe" in their own places. The desk was an indispensable tool for learning and self discipline, an indication for scholars’ character and academic achievements, and a reflection of the trend in Joseon literary circles. Seoan images were described in nearly every genre of paintings and took on different forms according to genre. Firstly, on landscape paintings, Seoan was used to portray an ideal place of a retreat for a hermit. Secondly, on portraits, Seoan was blended with a person in the painting to materialize the ideal of "Myung-chang-jung-gwe" in a real life. On genre paintings, as those paintings depict the real life of people, Seoan took its roles as utility furniture rather than roles as idealized image. Lastly, on court paintings, Seoan took a different shape, color and size to classify the rank of users. This shows furnitures like Seoan had meaning attached to it. Understanding Seoan images of Joseon dinasity is important because it helps us to explore the diversity and richness of the Joseon culture. This study investigated Seoan in paitings of various genres, which was not done before. Further researchs on Seoan in paintings would improve our understanding of Joseon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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