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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國 靈芝草花文 靑畵白磁의 流行과 傳播

Title
中國 靈芝草花文 靑畵白磁의 流行과 傳播
Other Titles
The prevalence of China's Blue and white Porcelain with Lingzhi-Caohua Design: with a focus on Joseon and Japan in the 18th to early 20th Century
Authors
장효진
Issue Date
2011
Department/Major
대학원 미술사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dvisors
장남원
Abstract
중국 명대 이후 江西省 景德鎭과 福建省 일대에서 제작된 靈芝草花文 靑畵白磁는 근대기까지도 민요를 중심으로 생산되어 현전하는 수량이 적지 않다. 그러나 민간용 백자라는 성격 때문에 중국도자사 연구에서 연구대상으로써 주목받지 못하였다. 그러나 영지초화문 청화백자는 18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중국 내 뿐만 아니라, 한국과 일본에도 전파되어 크게 유행하면서 당시 동아시아 도자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본 연구에서는 영지초화문 청화백자를 중심으로 연원 및 중국내 생산과 유통, 그리고 한국과 일본에서 수용되고 방제되기까지의 과정을 살펴 중국 내 관요와 민요의 문제, 경덕진과 기타 지방 요장과의 관계, 동아시아 도자교류사의 일면을 밝히고자 하였다. 영지초화문 청화백자는 명대 宣德 官窯양식에 연원을 두고 있다. 景德鎭 珠山 御器廠遺跡 宣德年間(1425-1435) 층위에서 출토된 <靑畵折枝草花文蝶耳杯>의 문양이 기원이다. 하지만 현재까지 공개된 전세품 가운데 이 기물과 동일한 명대 제작품은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淸 乾隆49년(1784)에 황실 古董의 實在 소장여부를 검수 하면서 작성한 『金銀銅磁玉瑪瑙木石古琓件數實在淸冊』목록 중 ‘宣窯靑花白地雙耳盃’가 확인되어 청궁에서 기원이 되는 <靑畵折枝草花文蝶耳杯>와 같은 명대 제품을 소장하였음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청대초기에 御用 혹은 官用으로 명대 관요양식이 다시 재현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민요에서도 이와 같은 관요양식을 제작할 수 있었던 배경은 官搭民燒와 次色器를 賞用 혹은 販賣 등으로 처리하는 과정 중 민간에 자연스럽게 유포되어 민요에서도 관요양식에 연원을 두는 문양을 생산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영지초화문 청화백자는 청대 초기 이래 景德鎭 민요에서 가장 활발히 제작되었는데, 十八橋(現 商城)와 勝利路일대(現 新華瓷廠)를 비롯한 현재 경덕진시내에 위치한 요장에서 생산되었다. 경덕진 이외 福建省 泉州의 德化窯 및 인근 漳州의 華安窯, 南靖窯, 光澤窯 그리고 廣東省 饒平九窯, 湖南省 龍井窯에서도 청대 중기 이후 생산하였다. 지방 민요에서도 영지초화문 청화백자를 생산하고 소비할 수 있었던 것은 우선 경덕진 자기가 지역 별로 ‘幫’이라 일컫는 상인들에 의해 전국으로 유통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安徽省 徽州출신의 徽幫과 그 외 寧波, 紹興, 關東, 廣州, 湖北의 幫에 의해 전국적으로 유통되었다. 또 복건성 지방지에는 외래의 장인들이 유입되었다는 기록들도 있어 상품의 유통 혹은 장인의 이주 등의 원인으로 지방 민요에서도 경덕진 양식의 자기가 출현했던 것으로 보인다. 생산지별로 살펴보면, 구연이 살짝 외반 된 접시, 완, 발, 잔 등의 기형에 나타나는 점은 동일하다. 하지만 내저중심, 공간을 구획하는 윤곽선, 초화문양, 외벽의 원권, 관식에서는 일부 차이가 나타난다. 경덕진과 복건 일대 및 기타지역에서 제작된 영지초화문 청화백자는 중국 내수 목적으로 생산하였을 뿐 아니라 해외 수출용으로도 제작하였음이 출토사례를 통해 확인된 것이다. 조선에 유입된 중국 민요산 영지초화문 청화백자는 연경 사행시 역관ㆍ사상들이 開市와 後市를 통해 유입하였거나, 사행노정 중 사신들이 청상에게서 개인적으로 구매하여 유입되는 경우, 밀무역이나 표류 등으로 인해 조선 내에 유입되는 경우 등으로 상정된다. 한국에서 발견되는 중국산은 경덕진 민요산이 수량 면에서 가장 우세하고, 일부 복건성 일대 남방요장에서 생산된 것으로 보이는 출토품도 있다. 접시, 발, 완 등이 발견되며, 서울 지역 출토량이 가장 많고, 그 외 경기도, 강원도의 관청, 관아지 및 궁궐유적 인근에서 발견되었다. 이는 중국에서의 소비계층과는 다르게 조선에서는 중앙과 관련된 기관, 계층이나 부호사이에서 소비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또 당시 조선에 거주하던 청상의 소용일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다. 한편 조선에서도 19세기 말경에 이르러 관요인 분원에서 영지초화문 청화백자를 생산하는데, 분원 이외의 요장에서 제작된 예는 지금까지 확인되지 않았다. 기종은 주로 구연이 살짝 외반 된 접시, 발, 잔 등에 시문하는 점이 중국 민요산과 일치하나, 문양의 양식상에서는 차이가 나타난다. 특히 분원산의 가장 큰 특징은 내저중심에 이중 원권을 두르고 ‘壽’, ‘福’자를 시문하는 것이다. 영지문양 역시 사실성을 잃고 극히 추상적으로 표현되어 장식성을 더하게 된다. 영지문양의 이와 같은 점은 한국의 근대기 유적에서 발견되는 일본산 영지초화문 청화백자에 나타나는 양상과 일치하여 분원과 근대 九州일대 요장간의 교류 가능성을 시사한다. 일본의 경우 당시 중국에게 개방하였던 유일한 항구인 長崎港을 통해서 중국산 영지초화문 청화백자가 유입되었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 長崎遺跡에서 발견되는 중국산 영지초화문 청화백자는 경덕진 민요산과 복건성 일대 민요산으로, 특히 중국인 거류지역과 중국화물 보관구역의 출토품은 長崎에 거주하던 중국인의 소용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長崎내 일본인 거주지역과 江戶遺跡, 大阪遺跡의 출토품은 일본인에 의해 소비되었을 것인데, 특히 江戶遺跡 출토품 가운데 완과 잔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아 당시 유행한 煎茶문화와 깊은 관련성을 보인다. 18세기 중후반에 이르면 肥前에서 영지초화문 청화백자를 생산하기 시작하고, 19세기를 전ㆍ후로 瀨戶ㆍ美濃系에서도 활발히 생산된다. 肥前系 생산품은 비교적 충실히 중국 민요산을 모방했던데 비해 瀨戶ㆍ美濃系 생산품은 이보다 더욱 간략화 된 양상을 보인다. 九州일대 요장에서 널리 생산된 영지초화문 청화백자는 일본 내 각 지역 그리고 근대기 조선에서 소비되었다. 조선에 유입된 일본산 영지초화문 청화백자는 전사기법 등으로 문양을 장식하여 근대적인 특징을 보인다. 그런데 보통 기벽이 매우 얇은 소형접시에 시문된 사례가 발견되어 당시 일본의 對조선용 수출자기와 극히 다른 차이를 보여, 조선 내에 거주하였던 일본인에게 소비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영지초화문 청화백자는 18세기에서 20세기 초까지 동아시아에서 크게 유행하여 한국, 중국, 일본에서 모두 제작되었으나 제작주체, 소비계층, 세부문양 및 제작기법에서 각기 다른 양상으로 확산 전파되면서 일정한 특색을 지니게 된 것으로 파악된다.;The Blue and white Porcelain with Lingzhi-Caohua Design (靈芝草花文 靑畵白磁), which has been produced around Jiangxi Province Jingdezhen (江西省 景德鎭) and Fujian Province (福建省) from China's Ming (明) Dynasty until the modern era in civilian kilns is abundant in number. Nevertheless, it has not been a popular target to be studied in Chinese porcelain history studies as it was a civilian white porcelain. However, the Blue and white Porcelain with Lingzhi-Caohua Design is an important clue to understand the flow of the East Asian porcelain since it was a widely spread trend in China as well as in Korea and Japan. Hence, this paper will examine its origin, production and distribution within China, and the process of being accepted and imitated in Korea and Japan. Furthermore, the problem of official klin and civilian klin in China, the relation of klin sites in Jingdezhen (景德鎭) and other provinces, and a facet of the history of East Asian porcelain exchange will be addressed. The Blue and white Porcelain with Lingzhi-Caohua Design has its origin on Ming Dynasty Xuande (宣德) official klin (官窯) style. The original form is the pattern of Qinghuadie'erbei (靑畵蝶耳杯) which was excavated from the soil layer of Xuande (宣德) period (1425-1435) Jingdezhen (景德鎭) Zhushan (珠山) official kiln (御器廠遺跡). There is no identical porcelain from Ming Dynasty among the released direct relics at present. However, it is known that Qing Dynasty palace has housed Ming Dynasty products such as Qinghuadie'erbei. This was confirmed through Xuanyaoqinghuabaidishuangerbei (宣窯靑花白地雙耳盃)'s registration on the list of 『金銀銅磁玉瑪瑙木石古琓件數實在淸冊』, which was written in Qianlong (乾隆) 49th year (1784) to check the products the palace owned. It seems that in early Qing Dynasty, the Ming Dynasty official kiln style was realized again for imperial (御用) or official (官用) use. The reason for civilian klin to produce in official klin style can be assumed that it was spread to the civilians through commercialization (賞用, 販賣) of 官搭民燒 and 2nd graded articles (次色器). Thus, civilian klin was also able to produce pattern that has its origin on official klin style. The Blue and white Porcelain with Lingzhi-Caohua Design was produced prevalently in civilian klins of Jingdezhen including Shibaqiao (十八橋) (currently Shangcheng (商城)) and Shengli Road (勝利路) (currently Xinhua Porcelain Plant (新華瓷廠)) since the early Qing Dynasty. From the mid-Qing Dynasty, it was also produced in klins other than Jingdezhen, such as those of Fujian province, Dehua kiln (德化窯) of Quanzhou (泉州), Hua'an kiln (華安窯) of Zhangzho (漳州), Nanjing kiln (南靖窯), Guangze kiln (光澤窯), Raopingjiu kiln (饒平九窯) of Guangdong Province (廣東省) and Longjing kiln (龍井窯) of Hunan Province (湖南省). The Blue and white Porcelain with Lingzhi-Caohua Design could be produced and consumed in provincial civilian klins because Jingdezhen pottery was distributed nationwide through merchants that were called 幫. Particularly, Hui Bang (徽幫) from Huizhou (徽州) of Anhui Province (安徽省), and 幫 from Ningbo (寧波), Shaoxing (紹興), Guandong (關東), Guangzhou (廣州), and Hubei (湖北) distributed it around the country. In Fujian Province, there are records that craftmen moved there and this may have given rise to the presence of Jingdezhen style pottery in provincial civilian klins due to the distribution of products and the inflow of craftmen. There are similarities on malformations on bowls, cups such as evaginated plate. However, there are differences in the low center, outline that divides space, flower patterns, dotted patterns on the outer wall, and custom. It is confirmed through excavation cases that the Blue and white Porcelain with Lingzhi-Caohua Design was produced mainly in Jingdezhen and Fujian province both for domestic and foreign demands. Similarities are witnessed among dishes, bowls and cups produced in various klins. However, there are differences in inner and outer pattern and stamp. It is confirmed through excavation cases that the Blue and white Porcelain with Lingzhi-Caohua Design from Jingdezhen, Fujian Province, and in other areas were produced for consumption in China as well as foreign export purpose. The most prevalent Chinese products found in Korea is from Jingdezhen civilian klin and some excavated articles seem to be produced in southern klins of Fujian Province. Dishes, bowls, and cups are found mostly in Seoul area followed by the sites of governmental offices and palaces in Kyunggi and Gangwon Province. This indicates that it is possible that unlike in China, the porcelain was consumed by central organizations, the noble class, and the rich in Joseon. It may be attributable to the Qing merchants who resided in Joseon then. It can be assumed that the Blue and white Porcelain with Lingzhi-Caohua Design that flowed into Joseon from China was through official market (開市) and black market (後市) by translators and merchants that accompanied envoys from China or through personal purchases of envoys to Qing from Qing merchants, or smuggling and driftage. Meanwhile, in the late 19th century Joseon produced the Blue and white Porcelain with Lingzhi-Caohua Design in Bunwon which was the official klin. The examples that were produced other than in Bunwon are not found until now. The fact that there are patterns on dishes, bowls, cups and small cups is similar to the productions from Chinese civilian klin but the patterns' style is distinctive. In particular, the porcelain from Bunwon has double circles in inner side and the Chinese characters Su (壽) and Bok (福). Also, the ganoderma lucidum pattern is more decorative as it lacks reality and is immensely abstract. This is identical to the pattern on the Blue and white Porcelain with Lingzhi-Caohua Design that was produced in Japan. Hence, it can be concluded that there might have been exchanges between Bunwon and the klins in modern Kyushu (九州) area. In the case of Japan, there is a high possibility that the Blue and white Porcelain with Lingzhi-Caohua Design would have been flowed in through Nagasaki (長崎) which was the only port that was open to China. The Blue and white Porcelain with Lingzhi-Caohua Design from China that is found in Nagasaki Ruins (長崎遺跡) is a production from civilization klins of Jingdezhen and Fujian Province. In particular, the excavated articles from the Chinese residential area and Chinese goods storage area are most likely the posessions of Chinese residents in Nagasaki. On the contrary, the articles from Japanese residential area in Nagasaki, Edo Ruins (江戶遺跡), and Osaka Ruins (大阪遺跡) would have been consumed by the Japanese. Notably, the excavated articles from Edo Ruins are mainly bowls and cups and this is related to the 煎茶 culture which was in vogue at that time. By the mid-late 18th century, Hizen (肥前) 系 began to produce the Blue and white Porcelain with Lingzhi-Caohua Design and from the beginning and through the 19th century Seto (瀨戶) and Mino (美濃) 系 also commenced production. The products of Hizen have closely imitated the ones from the Chinese civilian klins. On the other hand, the products of Seto and Mino are in simplified forms. The Blue and white Porcelain with Lingzhi-Caohua Design that was widely produced in Kyushu area was consumed in Japan and modern Joseon. The Blue and white Porcelain with Lingzhi-Caohua Design that flowed into Joseon from Japan has modern characteristics for the patterns were decorated through transfer printing method. However, a case of printing on a small plate of ultra-thin thickness has been discovered. This is an extremely distinctive case compared to Japanese porcelain for export purpose to Joseon, which indicates it has most likely been consumed by the Japanese who resided in Joseon. The Blue and white Porcelain with Lingzhi-Caohua Design was prevalent in the 18th to 20th century in East Asia and was produced in Korea, China and Japan. However, the producers, consumers, detailed patterns and producing techniques all vary.;靈芝草花紋靑花瓷生産于從明代到近代時期的江西景德鎭與福建省一帶。所以至今存世數量不小。由于本身所具有的民間普遍性,在中國陶瓷史的硏究當中幷未受到過多的關注。但是靈芝草花紋靑花瓷是從18世紀到20世紀初,除了中國內以外,傳入到韓國和日本以後非常流行了。因此通過靈芝草花紋靑花瓷可以了解到當時東亞地區的陶瓷交流史。本文以靈芝草花紋爲中心硏究,首先對靈芝草花紋的淵源進行考察,然後敍述其在中國境內的生産地與流通情況,以及在韓國和日本收容而被模仿的過程。通過這樣的硏究,我們可以透過靈芝草花紋靑花瓷,從而了解到中國官窯與民窯的問題、景德鎭與其他地區民窯的關系以及東亞陶瓷交流史的一面。 靈芝草花紋靑花瓷源始於明代宣德官窯樣式。曾經在景德鎭珠山御器廠遺迹的宣德年間堆積裏出土的靑花蝶耳杯的紋飾即是靈芝草花紋靑花瓷的源流。但是在至今公開的傳世品當中,未有跟他同樣系列的明代産品。但是在淸乾隆49年(1784的淸宮內務府造辦處的檔案《金銀銅磁玉瑪瑙木石古琓件數實在淸冊》裏〈除用實存古玩百什件細數開列於候〉當中有記載“宣窯靑花白地雙耳盃”。因此淸宮曾收藏了靈芝草花紋靑花瓷源流産品的可能性較大。幷且在淸代初期再出現了明代官窯樣式的御用或官用目的的瓷器。這可能通過官搭民燒、次色器的賞用或銷售處理過程當中,流傳到民間。然後在民窯,窯工模仿生産了官窯樣式的瓷器。 靈芝草花紋靑花瓷是淸代初期以來在景德鎭最活躍的生産産品,包括景德鎭十八橋(現在,商城)與勝利路一帶(現在新華瓷廠)以及現景德鎭市內一帶的窯場。除景德鎭外,至淸代中期後,福建省泉州的德化窯、廣東省饒平九窯、湖南省龍井窯以及漳州的華安窯、南靖窯、光澤窯,也開始生産靈芝草花紋靑花瓷産品。 這種産品在景德鎭以外地域被生産、消費的原因,則是行幫的的活動把景德鎭瓷器在全國範圍內流通。特別是被徽幫以及寧波、紹興、關東、廣州、湖北商人的活躍把景德鎭瓷器流通到全國了。還有在福建省的地方誌裏有記載着從外地來的匠人有了流入到福建。因此商品的流通或匠人的移居的情況下, 在景德鎭地區以外的民窯也有出現景德鎭民窯樣式的瓷器。 生産靈芝草花靑花瓷的中國各個地方的民窯都生産了口微斂的盤、碗、鉢、盞等等。雖然生産地不同但是在同樣的器形上出現。但是內面的紋飾、分開空間的輪廓線、草花紋飾、外面的圓圈、款式等紋飾存在部分差別。以及通過出土情況可以了解在景德鎭以及福建一帶等地區生産的靈芝草花紋靑花瓷不僅在中國內地消費的目的而生産,還是外銷目的而生産了。 傳入到朝鮮的靈芝草花紋靑花瓷的途徑如下:通過燕京使行時候的朝鮮譯官傳入、私商在開市或後市的購買當中傳入、使行路徑當中從淸商個人購買、貿易或漂流當中傳入等等。在韓國發現的中國瓷器當中景德鎭民窯産的數量最大。而且一部分也有出土了包括福建省一帶的南方窯場的産品,如盤、鉢、碗等等,在首爾地區裏出土的數量最多。其外在京畿道、江原道也有發現中國民窯生産的靈芝草花紋靑花瓷。主要是在官府遺迹、衙府遺迹、宮廷遺迹附近發現。這表示在朝鮮消費靈芝草花紋靑花瓷的階級是相當高級的。這是與中國不同的現象。朝鮮的話,與中央階級有關的機關還有富豪階層消費了中國靈芝草花紋靑花瓷。幷且當時在朝鮮居住的淸商來消費的可能性也有。 同時,19世紀末在朝鮮的官窯—分院也生産了靈芝草花紋靑花瓷。從至今的出土資料來看,除分院以外,幷未發現生産靈芝草花紋靑花瓷的窯址。在器形上,分院與中國民窯同樣生産了口微斂的的盤、鉢、盞等,但在紋飾表現上存在差別。分院所産的靈芝草花紋靑花的最大特點是在內底心所飾的雙圈'福'、'壽'紋上。而且分院所産的靈芝紋飾已由寫實性轉變成了抽象化,幷逐漸强調了裝飾性。這種靈芝紋飾的特點與在韓國近代遺迹發現的日本産靈芝草花紋靑花瓷相一致。所以朝鮮分院與近代九州一帶窯場之間存在交流的可能性。 日本的話,從當時唯一對外開放的長崎港傳入中國靈芝草花紋靑花瓷的可能性最大。在長崎遺迹出土的中國靈芝草花紋靑花瓷的産地主要是景德鎭與福建一帶的民窯。特別是在長崎的華人居留地區與華物創庫遺迹出土的中國靈芝草花紋靑花,被當時在長崎居留的淸商用來消費的可能性比較大。但是在長崎的日本人居留地區與江戶遺迹、大阪遺迹出土品是被日本人消費的。尤其是江戶遺迹出土品當中碗與盞出土的比例比較大,這與當時在江戶流行的煎茶文化有着緊密的關系。 到了18世紀中後半期,日本肥前一帶的窯場也開始生産靈芝草花紋靑花瓷。另外,到19世紀左右,靈芝草花紋靑花瓷在瀨戶、美濃系窯場的生産活動也相當活躍。肥前系所産的靈芝草花紋靑花瓷比較眞實、完全地模仿了中國民窯的産品。但是在瀨戶、美濃系生産的靈芝草花紋靑花瓷的紋飾則被比較簡略地表現出來。後來在九州一帶窯場頻繁地生産的靈芝草花紋靑花瓷在日本地區以及朝鮮消費了。在朝鮮流入的日本産靈芝草花紋靑花瓷,以近代化的描寫技法來裝飾紋飾,而且主要在較薄的小型盤上施紋。所以這樣的靈芝草花紋靑花與日本的對朝鮮貿易瓷器的性質不同。由此判斷,其被在朝鮮居住的日本人來消費的可能性較大。 靈芝草花紋靑花瓷是18世紀到20世紀初在韓國、中國、日本的窯場都有活躍地生産而非常流行的一個紋飾。但是不同的生産主體、消費階層、紋飾的細部樣式、制作技法來擴散而傳播了。在每個地方生産的靈芝草花紋靑花瓷帶着不同的獨特的特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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