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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일본 점령기(1945~1952) 쇼와천황의 정치적 역할에 관한 연구

Title
미국의 일본 점령기(1945~1952) 쇼와천황의 정치적 역할에 관한 연구
Other Titles
Research on Political Roles of the Japanese Emperor 'SHOWA' during the U.S Occupation of Japan(1945~1952)
Authors
윤진
Issue Date
2011
Department/Major
대학원 정치외교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dvisors
최은봉
Abstract
現在 明仁天皇の即位20周年を迎え、天皇に対する研究が活発に進んで行くことにより、象徴天皇に関する既存の研究に関して曲り角を迎える。戦後、初の象徴天皇として非政治的性向の天皇と知られているが、昭和天皇は積極的で能動的な政治的役割を遂行した天皇であった。 本研究で天皇の政治的役割は次のように3と規定する。第1は強力な力と行政部の統率権を持つ政治権力の中心者とする国家元首の役割である。第2は軍を指揮し戒厳を宣布するなどの軍権を持つ軍統帥者の役割である。最後は強力な西欧型国家に発展するため、外国との交渉及び条約締結などの責任を担う外交政策責任者として規定した。 2次世界大戦で敗戦した日本は、1945年から1952年まで6年8ヶ月間米国と連合国に占領され、全ての統治権と外交権を失い、新しい制度の成立と共に象徴天皇制となった。しかし,本研究では会見録を分析すると共に、象徴天皇の政治的行為である巡幸と儀礼行儀を分析して、天皇に対する政治的意味を新しい観点から提示する。 会見録の分析と天皇の象徴的行為である行幸と儀礼行為の分析を通して昭和天皇の政治的役割遂行が可能となる結論は次の4つの論で説明できる。 第一は、天皇制を維持するためである。占領により統治権を奪われた天皇は、当時,天皇制維持に危機を迎えた。しかし積極的な行動で占領国統治政策に好意的な態度と協調を表した結果、天皇制を維持されるようになり、日本を体表する象徴的天皇として残るようになった。これは憲法の規定に違反されることだとしても、政治的に接近した昭和天皇の積極性の結果として説明できるところである。 第二は、日本の安全保障問題である。戦前は日本を統治する国家元首としての役割を遂行しながら、軍国主義的な軍統帥権者として絶対的権力者であった。しかし新しく規定された新憲法では恒久平和主義を維持するために、軍隊編成は絶対的に不可能であった。不安定な国内外状況の中で昭和天皇はマッカーサーと単独に会談し、沖縄を米軍駐屯基地として提供することと共に、恒久平和主義に相応しい平和協力条約を締結した。これはまさに会見録4次と9次、それと10次から分かる軍統帥権者としての政治的な役割を遂行した天皇の様子を表す。  第三は、天皇と保守勢力の相互補完的な利用である。明治時代の明治革命勢力と同じ観点で、保守勢力は天皇制を利用して外圧に対抗できる強力な日本を作ろうとした。例え、占領と同じ状況であるが、保守勢力の位相を高くするためにも天皇が絶対的に必要であった。保守勢力は全国巡幸と儀礼行為で天皇の在り方を取り戻すために努力を尽くした。天皇はこのような助力で政治的役割を遂行することが出来た。 最後に、占領国支配層の政策実行のための天皇の利用である。占領国は日本占領を始める前から日本に精通した人物を雇い、占領政策に関する研究を始めた。日本の天皇制を維持すると、最少の費用で最大の効果を予想することが出き、容易な占領政策を伴うことが出来た。新憲法規定には違反であったが、11回の会談と天皇の全国巡幸と儀礼行為を黙認した。昭和天皇の積極的な政治的性向が表れるすべての行動に対して、占領国支配層では制裁または反対もしなかった。むしろ、親日的性向のマッカーサーによって米国の日本占領は成功を収めた。 昭和天皇は非政治的性向を代表する象徴天皇として命名された天皇制として自分のすべての政治的性向を積極的であり能動的に表した明々白々な君主的性格の天皇であった。会見録の分析と共に、天皇の巡幸と儀礼行為、色々な条約締結と意見提示などの行動から表れるように、昭和天皇は政治的性向が強い天皇であった。既存の象徴天皇とは異なる論旨を提起した本論文は天皇の政治的役割を再解析して新しい観点を提示したと考える。まだ、明らかになっていない多い資料の発掘と共に、さらなる史料の公開により天皇の政治的な役割に対する研究で、天皇に関する多彩な研究がさらに行われるべきだと思う。;현 아키히토 천황의 재임 20주년을 맞이하여 천황연구가 활발히 진행되면서 상징천황에 관한 기존 연구에 대하여 전환점을 맞이하였다. 전후 첫 번째 상징천황이며, 비정치적 성향을 가진 천황으로 알고 있었지만, 쇼와 천황은 적극적이며 능동적인 정치적 역할을 수행한 천황이었다. 본 연구에 규정한 천황의 정치적 역할은 다음과 같이 3가지이다. 첫째, 강력한 힘과 행정부 통솔권을 가진 정치권력의 중심자인 국가원수의 역할이다. 두 번째, 군을 지휘하고 계엄을 선포하는 등의 군권을 가진 군 통 수권자의 역할이다. 마지막 세 번째는 강력한 서구 형 국가로 발전하기 위해 외국과의 교섭 및 조약체결 등을 책임지는 외교정책 책임자로 규정하였다. 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일본은 1945년부터 1952년까지 6년8개월 동안 미국과 연합국에 의해 점령을 당하면서 모든 통치권과 외교권을 잃었고, 새로운 제도의 성립과 함께, 상징천황제로 변하게 되었다. 그러나 본 연구에서는 회견 록 을 분석하고, 천황의 상징 속 정치적 행위인 순행과 의례행위를 분석하여 천황에 대한 정치적 의미를 새로운 시각에서 제시하고자 한다. 회견 록 분석과 천황의 상징적 행위인 行幸과 의례행위를 통해 알아본 쇼와 천황의 정치적 역할 수행이 가능한 것은 다음 4가지로 결론지어 볼 수 있다. 첫 째, 천 황제 유지를 위해서이다. 점령으로 인해 통치권을 빼앗긴 천황은 당시 천 황제 유지에 위기를 맞이하였다. 그러나 점령국 통치 정책에 호의적이며, 적극적으로 태도와 협조의 결과, 천 황제를 유지할 수 있었으며, 상징으로서 일본을 대표하는 천황으로 남게 되었다. 이는 헌법적 규정에서 어긋나더라도 정치적으로 접근한 쇼와 천화의 적극성의 결과로 설명할 수 있는 대목이다. 두 번째, 일본의 안전보장 문제 때문이다. 전전에는 일본을 통치하는 국가원수 역할을 수행하면서, 군국주의적인 군 통수권자이자, 절대 권력자였다. 그러나 새로 규정된 신 헌법으로 항구평화주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군대편성은 절대적으로 불가능했다. 불안전한 국내외상황에서 쇼와 천황은 맥아더와의 단독 회담을 통해, 오키나와를 미군 주둔 기지로 제공하면서, 항구 평화주의에 걸 맞는 평화협력 조약을 체결하였다. 이것은 바로 회 견 록 4차와 9차, 그리고 10차에서 보여주는 군 통수권자로서 정치적 역할을 수행한 천황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세 번째, 천황과 보수 세력의 상호 보완적 이용이다. 메이지 시대의 메이지 혁명세력과 같은 관점에서 보수 세력은 천 황제를 이용하여 외세의 압력에 대항할 수 있는 강력한 일본을 만들고자 했다. 비록 점령과 같은 상황에 처해 있지만, 보수 세력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서도 천황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보수 세력들은 전국순행과 의례행위로 천황 본연의 모습을 되찾기 위해 노력하였고, 천황은 이런 도움으로 정치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점령국 지배층의 정책 실행을 위한 천황의 이용이다. 점령국은 일본점령을 시작하기 전부터 일본에 정통한 인물을 고용하여, 점령정책에 관한 연구를 시작했다. 일본의 천 황제를 유지함으로써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예상할 수 있었고 수월한 점령정책을 수반할 수 있었다. 신 헌법 규정에서도 어긋났지만, 11차례의 회담과, 천황의 전국 순행과 의례행위를 묵인해 주었다. 쇼와 천황의 적극적인 정치적 성향이 보이는 모든 행동에 대해, 점령국 지배층은 제재를 하거나 반대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친일적 성향의 맥아더로 인해 미국의 일본점령은 성공을 거뒀다. 쇼와 천황은 비정치적 성향으로 대표되는 상징천황으로 명명 지어진 천 황제 하에서, 자신의 모든 정치적 성향을 적극적이며 능동적으로 보여준 명명백백한 군주적 성격의 천황이다. 회 견 록 분석과 함께, 천화의 순행과 의례행위, 여러 조약체결과 의견 제시 등의 행동에서 보여주듯, 쇼와 천황은 정치적 성향이 짙은 천황이었다. 기존의 상징천황과는 다른 논지를 제기한 본 논문은, 천황의 정치적 역할을 재해석함으로써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였다고 생각한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많은 자료들의 발굴과 함께, 더 많은 使料의 공개로 인한 천황의 정치적 역할에 대한 다양한 연구가 좀 더 보안되어야 할 것이다.;On the occasion of the 20th anniversary of current Emperor Akihito’s accession, researches on the emperors making steady progressed and the existing researches on the symbolic emperor have faced a major turning point. Emperor Showa was known as the first postwar symbolic emperor who had non-political propensity but actually he was the emperor who carried out very trustworthy and active political role. The political roles of emperors defined in this research are divided into three. First is the role of the head of state, the central figure of political power having strong power and administrative commandership. Second is the role of the commander-in-chief who has the military power to command whole army and proclaim marshal law and others. Finally, third is the role of diplomatic policies in charge of negotiations with foreign countries and conclusion of treaties to develop into powerful western-type state. Japan, which was defeated in World War II, was occupied by the United States and the allied powers for 6 years and 8 months from 1945 to 1952, and lost all sovereignty and diplomatic power, and with the establishment of new institutions, Japanese emperor turned into the symbolic emperor system. However, in this research, I attempt to present the political meaning of emperors from new perspective by analyzing conference records, and going out of palace and formality which are political actions amid the symbol of emperor. Emperor Showa was able to perform the political role which was examined through the emperor’s going out of palace and formality which are the emperor’s symbolic actions, and this can be concluded in the following four ways. First, it is to maintain the emperor system. The emperor, who lost the sovereignty, faced the crisis in maintaining the emperor system at that time. However, as a result of showing favorable and cooperative attitude toward the occupying nations’ ruling policies, the emperor system could be maintained and the emperor could remain a symbol representing Japan. This can be explained as the result of the activeness of Emperor Showa, who approached politically even though it is against the constitutional regulations. Second is Japan’s national security case. Before World War Ⅱ, the emperor was the militaristic commander-in-chief of the army and the absolutist while playing the role of head of state ruling Japan. Nevertheless, in order to maintain the permanent pacifism stipulated in the newly established constitution, it was absolutely impossible to organize the army. Instable circumstances at home and abroad, Emperor Showa offered Okinawa as the base for the U.S. armed forces through one-on-one talks with MacArthur and concluded peace cooperation treaty fitting the permanent pacifism. This shows the appearance of the emperor who carries out the political role as the commander-in-chief shown in the 4th and 9th and 10th conference records. Third is the complementary use of the emperor and the conservatives force. The conservatives force attempted to make a powerful Japan that could stand up to the pressure of foreign power by using the emperor system from the same viewpoint as that of the Meiji revolutionary force of the Meiji era. The emperor was absolutely needed in order to even heighten the status of the conservative force even under such circumstances as the occupation. The conservative force made efforts to restore the emperor’s proper appearance through the events of his going out of palace and formality and owing to the helps, the emperor was able to carry out the political role. Finally, it is to the used of the emperor to implement the policies of the occupying nation’s rulers. The occupying nation began to study the occupation policy by employing the persons who were well-versed in Japan even before occupying Japan. By maintaining Japan’s emperor system, it could expect the greatest effects with the least cost and carry out the occupation policies with ease. The talks on 11 occasions and the emperor’s nationwide going out of palace and formality were acquiesced even though these were against the regulations of the new constitution. The occupying nation’s rulers did not oppose nor impose any restrictions on Emperor Showa’s all actions showing his active political propensity. Rather, owing to pro-Japanese MacArthur, the United States’ occupation of Japan gained a great success. Under the emperor system in which the emperor was named symbolic emperor typified by nonpolitical propensity, Emperor Showa was clearly the monarchal emperor who positively and actively showed his all political propensity. As shown in the analysis on the conference records and the emperor’s actions such as the emperor’s going out of palace and formality and conclusion of various treaties, Emperor Showa was the emperor with strong political propensity. Unlike the existing symbolic emperor study, it is considered that this paper excluded other points but reinterpreted the emperor’s political role and presented new perspective. The researches on the political role of the emperor should be supplemented by various researches on the emperor through the discovery of more unrevealed data and opening up of more historical materia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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