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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기독교적 세계관의 유교적 변용에 관한 연구

Title
중세 기독교적 세계관의 유교적 변용에 관한 연구
Other Titles
A study on the Confucianistic transformation of medieval Christianity
Authors
김선희
Issue Date
2008
Department/Major
대학원 철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Doctor
Abstract
1. 마테오 리치를 비롯한 예수회원들의 다양한 저술과 활동은 중국과 조선의 지식인들에게 매우 강도 높은 사상적 사건이었다. 중국과 조선의 지식인들이 예수회 측 저작에 민감하게 반응했던 것은 새로운 외래의 종교와 만났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회원들이 중세 기독교적 세계관을 전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유학과 신유학을 『신학대전』의 중세 스콜라 철학과 신학의 대응자로 삼았기 때문이다. 유교를 보완하고 불교를 극복한다는 구호에서 드러나듯 마테오 리치는 유학에서 불완전한 무신론과 스토아적 도덕 철학의 면모를 발견하고 이를 기독교를 전달할 토대로 보았으며, 당대의 지배적 체계였던 신유학은 무신론이라는 명목으로 배제하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신학대전』으로 대표되는 중세 기독교적 세계관과 유학, 신유학은 서로 내적 긴장 관계를 형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이 논문은 예수회원들이 전한 중세 기독교의 이론적 핵심이 중국의 유학, 신유학과 대응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내적 긴장을 중세 기독교적 세계관의 유교적 변용과 그에 대한 동아시아의 대응이라는 관점에서 고찰하고자 한다. 예수회원들이 전한 중세 기독교의 이론적 핵심은 중국어와 중국 사상이라는 스펙트럼을 통과하는 동안 일종의 변용을 거치지 않을 수 없었다. 예수회원들은 유학과 신유학에 대해 승인과 배제라는 이중적 전략을 사용했지만 궁극적으로는 중국의 정통적이고 전통적인 체계 사이에 자신들의 위상을 세우고자 했기 때문에 유학-신유학과의 대면에 따른 변용은 필연적이었다. 이 논문은 이 과정을 유교적 변용으로 보고 이 전제를 통해 두 체계 사이의 사상적 긴장을 포괄적으로 검토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유교적 변용이란 적응주의나 보유역불(補儒易佛) 등 예수회의 동양 전교에 대한 일반적 평가와는 다른 문제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2. 본론은 예수회원들이 전한 중세 기독교적 세계관의 핵심적 주제들의 이론적 특징과 그에 대한 중국과 조선 지식인들의 반응을 살펴보되, 단순한 역사적 추적이 아니라 비교 철학적 관점에서 평가하여 보다 근본적인 사상사적 의미를 도출해내는 방식으로 진행될 것이다. 자연이성의 인정이라는 말로 압축될 수 있는 마테오 리치의 중국 이해는 이성에 의한 신의 이해와 계시를 통한 신앙을 구분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예수회원들은 자신들의 지적 토양과 세계관을 중국에 심고자 하는 과정에서 고대 유학을 통해 중국인의 자연이성을 발견하고 고대 유학을 기독교 신앙의 전초기지로 삼은 뒤 그 위에 토마스 아퀴나스적 신론과 영혼론을 세우고자 하였다. 형이상학이자 신학으로서의 신의 문제는 중국 내에서 신의 이름 짓기, 증명하기, 초월적 신에 의한 창조 등 세부적 주제로 나뉘어 나타났다. 마테오 리치는 유대-기독교적 신을 천주(天主)로 명명하고 이를 다시 중국 고대의 상제(上帝)라고 선언한 뒤, 중국 경전을 재해석하는 독창적 방법론을 구축했다. 이 과정에서 마테오 리치는 『신학대전』에 만입되어 있던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개념과 이론을 적극 활용하는 한편, 기독교적 세계관과 충돌하는 신유학은 사변적으로 배제하고자 했다. 이 시도의 심층은 ‘존재의 대연쇄’로 압축되는 스콜라 철학의 위계적이고 목적론적인 세계상의 강조로 나타났다. 신에 의해 창조되고 질서 지워진 인과적이고 목적론적 세계는 태극에 의한 자발적 생성과 만물의 근원적 동일성을 강조하는 신유학에서는 낯설고도 유해한 것이었다. 세계의 구조에 따라 도덕적 실천의 양상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예수회원들은 세계의 구조와 인간의 삶의 방향성을 설명하는 동아시아의 정통적 체계였던 신유학에 대한 대결 의식을 숨기지 않았다. 특히 토미즘에서 바라본 기독교적 신의 위상과 비슷했기 때문에 태극과 리는 가장 큰 공격의 대상이었다. 예수회원들은 태극을 유물론적 관점에서 스콜라적 제일 질료로 제한하고자 했다. 그러나 중국인과 조선인 유학자들은 이런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태극은 기독교적 신과 달리 비인격적이고 비초월적이지만 기독교적 신과 마찬가지로 창조와 가치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예수회원들이 신과 태극의 차이를 스콜라 전통의 사변적 이론을 통해 강조하고자 했다는 점이다. 이들 각각의 이론은 어느 쪽이 우월하다는 평가를 내릴 수 없는 통약 불가능한 체계였기 때문에 사변적이고 논리적인 경쟁으로는 갈등이 쉽게 극복되기 어려웠으며 신앙을 이끌어내는 데에도 한계가 있었다. 예수회원들에게 기독교적 신을 이해시킨 다음 단계는 신을 신앙하는 인간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었다. 예수회원들은 신앙을 위한 특별한 인격을 창조해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중국에는 스콜라적 아니마에 해당하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수회원들은 시행착오 끝에 혼령, 영혼, 아니마, 영성 등의 용어를 통해 다층적인 스콜라적 영혼론을 전하고자 했다. 문제는 예수회 선교사들이 번역어로서 사용한 한자어 ‘영혼’이 중립적 긴장을 요구하는 새로운 개념이 아니라 익숙한 전통 용어로 인식되었다는 점이다. 중국의 영혼 개념은 기와 분리할 수 없는 본질적 연관을 맺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회원들의 아니마(anima) 소개는 신유학적 기(氣) 이론과의 대결 양상으로 나타나지 않을 수 없었다. 예수회원들의 영혼 개념은 긴장과 충돌을 야기하기도 했지만 동아시아인들에게 우주에서의 인간의 위치, 이성과 자유 의지 등 새로운 인간 이해의 시야를 제공하기도 했다. 그러나 동아시아인들의 영혼 이해의 과정을 예수회원들의 이론적 소개에 따른 일방적 수용이라고 보기 어렵다. 중국 전통적 사유에도 스콜라적 영혼의 기능과 역할을 하는 ‘마음’이라는 개념 틀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신유학의 마음은 인식과 도덕적 실천의 주체라는 측면에서도 스콜라 철학의 영혼과 닮았지만, 더 나아가 그 안에 세계의 근원에 대한 종교적 신념 또는 신앙의 측면이 담겨 있다는 점에서 닮아있다. 그러나 이 신앙은 예수회원들이 말하는 외적 초월자에 대한 신앙과 다르다. 신성이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 안에 본질로 내면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국과 조선인들 가운데는 신유학적 마음을 통해 영혼을 이해하려는 시도가 나타나기도 했다. 이는 유학의 전통 내에서도 신 없는 신앙, 일종의 철학적 신앙이 가능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3. 한편 중국인들과 조선인들도 예수회원들이 전한 새로운 사상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이들은 기독교의 가르침들을 자기 전통을 부정한 뒤 도입해야 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고, 현실의 도덕적 혼란을 치유할 유교의 수혈자로 받아들였다. 따라서 유학자-관료였던 중국의 1세대 입교자들 특히 중국 전교의 세 기둥이라 불리는 서광계, 양정균, 이지조 등은 현재의 의미에서의 개종자로 보기 어렵다. 이들의 경향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중국과 조선의 유학자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예수회원들의 유교적 변용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과정에서 유교적 유신론으로 불릴만한 독특한 사상적 경향을 드러냈음을 알 수 있다. 유교적 유신론은 중세 기독교적 세계관을 승인한 이들의 태도와 의식을 보편적 학문으로서의 유학의 위상 안에 새로운 유신론적 경향을 도입한 시도로 평가하는 관점이다. 그들은 내적 성찰과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자 하는 유교적 세계관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 천주와 기독교적 이론 체계를 받아들였다. 유교적 유신론의 경향은 조선의 정약용에게도 나타난다. 정약용은 『천주실의』의 영향을 받아 물질과 정신의 이원론적 관점, 인격적 상제의 존재와 그에 대한 유학자로서의 신앙을 독자적인 체계로 재구성했다. 이는 전통적인 천주교 신앙과 다른 것이었으며, 따라서 이를 절충된 형태의 유교적 유신론이라고 볼 수 있다. 유교적 유신론이라는 관점은 천주교 신자인가 아닌가라는 정약용에 대한 진부한 논쟁을 극복하고 통일적이고 종합적인 차원에서 정약용의 독창적 시도를 평가할 수 있게 해 준다. 절충적이고 보완적인 유교적 유신론의 관점은 동양과 서양, 기독교와 유학이라는 두 전통의 연대와 대화의 가능성을 포착할 수 있게 해준다는 장점이 있다. 더 나아가 근대 기독교의 동아시아 정착과, 현재까지 이어지는 우리 사회의 종교적 현상을 심층에서 파악할 가능성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선말로부터 한국 근대로 이어지는 우리 사회의 기독교 운동과 영향력 안에는 오로지 외래 종교의 도래로만 설명할 수 없는 고유한 특성이 존재하고, 그 중심에 유학적 세계관의 영향이 포함되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것이 이 논문이 밖으로 열어두고 있는 새로운 관점과 태도의 창이다.;It was an epochal event that the works and activities of Matteo Ricci, and of the Jesuits were introduced to China and Chosun literati. The reason why they reacted so assertively to the works of the Jesuits was because the Jesuits strategically placed Confucianism and Neo-Confucianism as the oriental counterparts to the medieval Scholastic philosophy and the theological system of Summa Theologiae. As the slogan "to complement Confucianism and to abolish Buddhism(補儒易佛)" implies, Matteo Ricci found in Confucianism incomplete atheism and a reminder of Stoic moral philosophy, and regarded it as the basis for propagating Catholicism, while seeking to rule out the prevalent Neo-Confucianism as flat atheism. Thus, tension was created between Christianity, represented with Thomas Aquinas' Summa Theologiae, Confucianism, and Neo-Confucianism. This dissertation examines the nature of the internal tension created when the Chinese Confucianism and Neo-Confucianism faced with the theoretical core of the Catholicism, the Confucianistic transformation of medieval Christianity in the process, and the characteristic response of the East-Asia. Even though the Jesuits employed a dual strategy of acknowledgement and exclusion toward Confucianism and Neo-Confucianism, respectively, it was ultimately unavoidable that the theoretical core of Catholicism allowed itself a transformation when faced with Confucianism, Neo-Confucianism, inasmuch as the Jesuits wanted Christianity to have its own place in the Chinese orthodox and traditional system. This dissertation names this process a 'Confucianistic transformation of medieval Christianity', and aims a comprehensive examination of the internal tension created between the two systems. 'Confucianistic transformation' will provide a new perspective that is different from the prevalent accommodationism or, the complementary view(補儒論) on this historical process. The main chapters of this dissertation examine the theoretical characteristics of the core beliefs of Catholicism, and how the Chinese and Chosun literati responded toward the new belief system. It will take comparative philosophical approach to draw the ideas of significance in the history of thought. Matteo Ricci's understanding of the Chinese thought can be summarized in his acknowledgement of natural reason. With this understanding, he was led to divide between rational understanding of God and faith through revelation. The Jesuits discovered natural reason in the ancient Confucianism, which they took as the outpost of the Christian propagation, and sought to establish upon it Thomistic philosophy of God and Soul. The problem of God emerged, in metaphysics and theology, in diverse forms of naming the name of God, providing proof of the existence of God, and explaining the creation of the transcendental Being. Matteo Ricci naming Judeo-Christian God, as T'ien-chu(天主), the Lord of Heaven, and once again asserting Him to be Shang-ti, the ancient Chinese 'Lord on High', established an original methodology to reinterpret the Chinese scriptures. On one hand, he made full use of the concepts and propositions of the Aristotelian philosophy that were embedded in Summa Theologiae, and on the other hand, ruled out Neo-Confucianism as incompatible with Christianity. At the root of this attempt was the emphasis of the Scholastic world-view, and its hierarchical and teleological order, represented with 'the Great Chain of Being'. The idea of the causal and teleological world created by God was a foreign, and even dangerous one to Neo-Confucianism which emphasizes Taeguk(太極)'s autonomous formation, and the ultimate oneness of all things. After all, the modality of moral practice must vary depending on the structure of the world. The Jesuits unapologetically maintained their confrontational attitude toward the traditional East-Asian paradigm of Neo-Confucianism, its view on world order, and its orientation to life. Especially, Taeguk(the great Ultimate, 太極), and Li(理) were the main targets of their confrontation, as these two concepts were regarded as the counterparts to the Thomistic conception of God. The Jesuits reduced Taeguk(太極) as something analogous to the Scholastic prime matter from the materialistic perspective. But the Chinese and Chosun Confucian literati could not accede to the claim. Taeguk, unlike the Christian understanding of God, was impersonal and untranscendental in nature; yet it was still the ultimate source of creation and value. The notable thing about the Jesuits' attempt was that they emphasized the difference between God and Taeguk through their speculative theorization within the context of the traditional Scholastic philosophy. Yet speculation and logical reflection alone were not enough to overcome the conflict in thought, and to draw forth the spirit of faith. After all, they were two very different paradigms, incommensurable inasmuch as they lacked an objective basis for independent evaluation. After introducing Christian God, the next step for the Jesuits was to explain the inner necessity of the humans to worship the transcendental Being of God. The Jesuits needed a special notion of personhood to worship, as there was no exact counterpart to the Scholastic anima in the Chinese thought. After trials and errors, they found a way to explain the complex meaning of the Scholastic Soul with the introduction of 'honyreong' (ghost, 魂靈), 'younghon' (soul, 靈魂), 'anima' (亞尼瑪), and 'youngseong' (spirituality, 靈性). Only that the Chinese notion of soul that the Jesuit missionaries adopted as the Chinese translation sounded too familiar and traditional, without a new connotation. The Chinese notion of younghon(soul, 靈魂) was so inseparably connected to Chi, that the way anima was introduced by the Jesuits unavoidably clashed with the Neo-Confucianistic thought of Chi. Even though the Jesuit's concept of soul created tension and resistance in the Chinese thought, it nonetheless provided a new perspective for the East-Asians about the place of man in the universe, his reason and free will. The East-Asians were never passive in adopting the new ideas; they had the concept frame of Shim(心), or mind, the function and the role of which analogous to the Scholastic soul. The Neo-Confucianistic Shim(心), or mind was similar with the Scholastic soul, not only in that it was understood as the subject of cognition and moral behavior, but also in that it had significant import on the religious belief or, faith in the ultimate source of Being. Yet their faith was different to the extent that it was not transcendental. Deity was not to be found in the outside, but to be discovered in the essence of one's inner being. Among the Chinese and Chosun literati were those who attempted to understand the Scholastic soul with the help of the Neo-Confucianistic mind. This opened a possibility for faith without God, or philosophical faith of God. The Chinese and the Chosun literati proactively responded to the introduction of a new thought. They did not see that they should abandon their own traditional ideas to be able to adopt Catholicism. Rather, they expected that Catholicism would provide new blood to heal the moral confusion in society. Hsu Kuang-ch'i(徐光啓), Li Chih-tsao(李之藻), Yang T'ing-yun(楊廷筠), all scholar-bureaucrats, among the first generation of the Chinese Christians, known as the three pillars of the Christian propagation in China could not be properly understood as 'convertite' in the present common sense. Among the early Confucian literati were those who emerged with new ideas that might well be called 'Confucian Theism', in their proactive response to the Confucianistic transformation of medieval Christianity. They adopted T'ien-chu(天主), the Lord of Heaven and the Catholic system of thought together, to reinforce Confucianism to fulfill its role for inner reflection and social responsibility. The tendency of Confucian Theism can also be found in the works of Jung Yak Yong. Influenced by The True Meaning of the Lord on High, he reconstructed the dualism of the material and the spiritual, developed his faith in Shang-ti or the Lord on High as personal entity, and constructed an original system of thought. This might well be called Confucian Theism in an eclectic form, inasmuch as it was significantly different from the traditional Christian faith. The dissertation argues that this interpretation opens a way for reevaluation of the original works of Jung Yak-Yong in the synthetic context, and make possible to overcome the old argument of whether he was a believer or not. The perspective of Confucian Theism, eclectic and complementary, can provide opportunities for the ongoing dialogue between, and solidarity of the East and West, Christianity and Confucianism. Furthermore, it provides means to analyze the foundation of the modern Christianity in East-Asia, and the religious phenomena characteristic in the Korean society at the root. There are peculiar characteristics in the movement and the power of Christianity in Korea from the late Chosun dynasty, which cannot be explained only in terms of foreign religion. It is undeniable that there are Confucianistic influences in the midst of the phenomena. The detailed investigation remains to be pursued for the following rese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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