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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당 파벌재편에 관한 연구

Title
신민당 파벌재편에 관한 연구
Other Titles
(A) Study of faction realignment in The New Democratic Party : 1967~1979
Authors
양성은
Issue Date
1998
Department/Major
대학원 정치외교학과
Keywords
신민당파벌재편정치외교파벌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bstract
본 논문은 한국 정치엘리트들이 지역연고를 중심으로 파벌(party faction)을 형성하게 된 기원을 밝히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한다. 한국의 경우 지역갈등이 정치적 경쟁(political competition)에 있어서 주된 균열의 축으로 등장하게 된 것은 71년 선거 이후 대통령직접선거제도가 처음으로 부활된 87년 이후의 일이다. 이후 지역균열(regional cleavage)은 정당간 경쟁의 결과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균열축으로 작동하고 있다. 따라서 87년 이후, 정치엘리트들이 중심이 되는 정치집단(political groups)의 하나인 파벌의 구성이 이러한 균열의 축을 따라서 이루어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파벌구성의 변화를 살펴보면 지역균열이 일차적인 균열(major cleavage)로 작동하기 이전인 80년대 전후반에 야당의 유력한 리더였던 김영삼, 김대중계가 이미 지역연고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파벌이 한국정당정치에서 처음으로 형성되었던 기원은 언제였으며, 그 과정은 어떠했는가? 이러한 현상은 단지 정치엘리트간의 개인적인 친분에서 기인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파벌재편에 영향을 미친 요인은 무엇인가? 그리고 이러한 파벌의 형성이 정치적 경쟁에 미친 영향은 무엇이었는가? 본 논문에서는 이러한 문제의식에 기초하여, 오늘날 한국 정당정치에서 정치적 경쟁의 양상과 결과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지역'이라는 변수가 정치엘리트간 경쟁과정에서 형성되는 집단의 한 형태인 파벌과 접합하게 된 기원을 밝히고자 한다. 구체적으로는 신민당 (1967-1979) 파벌을 대상으로 하고자 한다. 본문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신민당에서는 70년 제7대 대통령선거 지명대회를 기점으로 리더십의 세대교체와 더불어 파벌의 전면적인 재편성이 시작되었는데, 당시 '40대 기수론'을 중심으로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하기 시작했던 영, 호남 출신 정치인-김대중, 김영삼 이철승-의 파벌구성에서 출신지역을 중심으로 세력이 구축되기 시작했다. 이는 그 이전 정당리더십을 구성했던 명망가파벌에서는 나타나지 않던 새로운 현상이었다. 이러한 현상은 40대 중견 정치인들을 중심으로 대통령후보를 선출하기 위한 내부경선이 실시되는 등 당내 요직을 장악하기 위한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표출된 것이었다. 이들은 지구당위원장(원내/원외 포함)을 중심으로 한 세력확장에 주력했는데, 70년 지명전과 71년 양대선거를 계기로 지역연고가 당내 정치인들을 규합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정치자원의 하나로 부상했다. 이중 7대 대선에서는 여당이 주도한 지역주의 동원전략으로 지역주의적 투표행태가 나타나게 되었는데, 세력구축에 나선 정치인들은 양대 선거에서 주로 출신지역을 중심으로 지원활동을 벌임으로서 지역적 대표성과 더불어 연고지역 정치인들을 파벌구성원으로 규합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유신체제의 성립으로 정권교체의 가능성이 사라지고 당수일인에게 권한이 집중되면서, 당권을 둘러싼 파벌간의 경합은 폭력사태를 야기할만큼 격화되었다. 당권경쟁에서는 '선명성'을 중심으로 체제에 대한 노선이 쟁점이 되었으나, 이와 맞물려 중선거구제의 실시로 출마기회가 줄어들었기 때문에 파벌구성에서는 오히려 공천, 정치자금, 당직안배와 같은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한 후원-고객관계가 두드러지게 되었다. 이에 따라 당권경쟁시 지지에 대한 보상으로 파벌 구성원의 정치적 성장을 후원해야 했던 당내 파벌간의 공천갈등은 격화되었고, 이러한 갈등의 절충을 위해 지역적인 안배가 중요한 수단의 하나가 되었다. 정치인들로서는 가장 세력이 강한 파벌이나 출마하고자 하는 지역출신 보스의 파벌을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그 결과 민주 대 반민주 균열이 일차적인 유신정권 하에서, 신민당 파벌구성은 오히려 지역성이 강화되는 결과를 낳았다. 이러한 논의는 민주 대 반민주 균열이 압도적이었던 권위주의 시기 민주진영에 속해 있던 신민당 파벌 변화과정에서, 리더십의 세대교체와 더불어 성장한 영, 호남 출신 정치인의 파벌형성이 이전과 달리 주로 출신지역연고를 기반으로 이루어졌음을 의미한다.;The purpose of the study is to examine the origine of faction formation centered on regional tie in Korean opposition party. A regional conflict has been a major cleavage after 1987. Henceforth, the regional cleavage has had a potent effect on the outcome of political competition. Accordingly, it was natural that the faction, one of political groups formed along with this cleavage. Yet, on the basis of change in party faction formation, the regional tie already appeared upon YS faction and DJ faction in the first half of eighties. Then, when did the faction based on the regional tie be formed? How have it proceeded? Did this formation come from the personal friendship of political elites? If not, what influenced the faction realignment? And, how did faction formation have effect on political competition? The summary of the study is followed. At the 4th extraordinary party convention of nomination of the 7th president candidate, a sweeping faction realignment started with a shift in generation of party leadership. The each faction centered on regional tie began to be formed. Especially, each of Kim Yung-Sam, Kim Dae-Jung, Lee Chul-Seung who were new leaders of the party and came from Young-nam and Ho-nam did. It was a new phenomenon which did not reveal in factions of notables making up the party leadership before that time. It was shown from the real competition of party leaders in their forties one another. (for instance, the competition for nomination as official candidate for president election) They tried to get together the chairmans of constituency chapters for enlargement of their power. The regional tie was one of the influential political resources During the party convention for election of the 7th president candidate in 1970 and twice national elections in 1971. While the faction conflict for the position of the party head was intensified to cause some violent situations, the chance of a turnover of political power disappeared by the revitalization reform regime. The power in party was concentrated around just the party head. The most important issue of opposition party was to choose what is right for regime. Their debates were about the path to the democracy. Hard line or moderate line? However, a patron-client relationship between faction leader and follower was more salient because of the decrease in a chance to run for office. It was a rational choice that a politician followed a leader of the most powerful faction or relating to a regional tie with the constituency to run for. After all, in the regime of the revitalization reform which the democratization was the most important problem, the regionalism was strengthened in the faction formation of the New Democratic Par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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