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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길준의 대외관 연구

Title
유길준의 대외관 연구
Other Titles
(A) Study on Yu Kil Jun's international perspective on the contrasting relationship between the chinese and the european world order, 1876-1894
Authors
김예정
Issue Date
2001
Department/Major
대학원 정치외교학과
Keywords
유길준대외관국제정세정치외교학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amine the following by analyzing Yu Kil Jun(1856-1914)'s own writings during the period of 1876 to 1894: first, to examine the perception and responsive attitude that Yu showed against the background of the contrasting relation between tradition(Chinese World Order) and modernization (European World Order), and, second, to examine how Yu suggested the ways for Chosun to survive the confusing situation created by two interwoven international systems. The international trend around that time was to move from Chinese world order toward European world order. Yet, in reality, those two systems and concepts co-existed inextricably in Chosun both internally and externally. During 1876 to 1882, Chosun entered into treaties with foreign powers, moving toward European world order in appearance. The treaty with Japan was supposed to be an equal treaty based on European world order setting forth the independence of Chosun, but in reality, it was used as a way to facilitate the entry of foreign powers into Chosun. The process of entering into the treaty with the U.S. revealed Chosun's weakness of being the servant country to Ching, not being able to escape the shadow of Chinese world order. During 1882 t o 1894, Ching appeared to emphasize the logic of Chinese world order based on the traditional servant relationship, but in reality Ching tried to dominate Chosun by using European world order based upon the logic of power. Likewise, the foreign powers never had any real intention of treating Chosun as their equal, even though they appeared to advocate European world order. All they actually did was to concentrate on obtaining political and economic advantages. Yu analyzed such situations surrounding Chosun from the following three perspectives. First, even though Chinese world order represents the hierarchical relation between countries, in reality it served the role as a cushion preventing the collision between countries. Even though European world order is supposed to guarantee the equality and independence of all nations, in reality it worked as an imperialistic exploiting tool for the foreign powers. Second, when looked at from the European world order, the master-servant relation between Chosun and Ching is just a way to protect the weaker nation within European world order, so Ching cannot use it as a way of asserting mastership over Chosun. Third, Chosun was an independent country without any doubt against the international background of European world order, so Chosun should be entitled to exercise its own rights and obligations. Let's go into details. Yu informed the public about the international situation around the end of 19C, and emphasized to increase the competitiveness for the purpose of strengthening the country, as shown in his books 『世界大勢論』(1883) and 『競爭論』(1885). Also, in 『言事疏』(1883), Yu correctly pointed out the negative aspect of European world order, and said that Chosun should utilize European world order beforehand in dealing with foreign relations, so as not to give any pretext to Russia's possibility of invading. Next, Yu wrote 『國權』(1885), 『中立論』(1885), and 『答淸使照會』(1889). There he saw that the traditional relation between Chosun and Ching is in total contradiction to the other relations existing between independent countries.(『國權』(1885)) The '□約三端' treaty that Ching demanded on Chosun was equivalent to applying the special traditional relation to relations with other countries without modification, thereby violating the principles of European world order. (『答淸使照會』(1889)) Also, he knew that Chosun needed Ching's cooperation in order to maintain Chosun's neutrality, and thus did not hesitate to emphasize the favor and indulgence that Ching showed in the past based on the traditional Chosun-Ching relation. (『中立論』(1885)) Lastly, Yu wrote 『漁採論』(1892) to warn about the Japan's opportunistic intention of invading Korea economically. He said that permitting Japan to use the unauthorized drying place is to violate Chosun's rights, so Chosun should stop Japan's illegal drying activity. As shown above, around the end of 19C, in the midst of the negative aspects of Chinese world order and European world order, Yu correctly pointed out the appearance and reality of Chinese world order and European world order, and suggested the directions for Chosun to survive as an independent country. This is the most salient point that can be said about Yu's international perspective and responsive attitude.;이 글은 朝日修好條約 이후부터 청일전쟁까지 조선에서의 중화질서와 공법질서의 충돌-混在 양상을 바라보는 유길준의 대외관을 고찰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에 대한 기존연구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고 볼 수 있다. 첫 번째 시각은 당시 조선사회의 가장 급박한 해결과제가 전통적 중화질서에서 벗어나 근대적 공법질서로 나아가는 것이었다고 설명하면서 당시 '일국의 주권' 혹은 '대외적 평등'관념을 역설하는 유길준을 비현실적인 이상주의자로 평가해 왔다. 두 번째 시각은 19세기말 조선에서의 공법질서의 전개를 전통적 중화질서와의 '충돌'과정으로 설명하면서 유길준의 인식은 이러한 당시의 중화질서와 공법질서의 공존 및 그 混在 양상을 정확히 파악한 현실주의적 인식이었다고 평가한다. 이 연구는 기본적으로 후자의 논의에 동조하는 입장을 취할 것이다. 그런데 기존연구에서는 조선의 대내외적 현실 속에서 두 국제질서가 뒤얽혀 전개되는 구체적인 모습을 조명하지 못한 점과 유길준의 인식에 대한 규명도 심도있게 이루어지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이 점에 주목하여 중화질서와 공법질서라는 두 상이한 가치관의 구체적 충돌양상과 그에 따른 유길준의 대외 인식을 연계시켜 고찰하는 유기적 분석을 시도하였다. 즉 첫째, 1876년부터 1894년까지의 기간동안 유길준의 국제정치적 인식을 드러내는 여러 저작들을 분석함으로써 전통과 근대의 입체적 대립구도속에서 그가 보여준 대외관과 대응태도를 규명하고, 둘째, 얽혀있는 두 국제 질서 속에서 조선이 살아남을 방도에 대해 유길준이 어떻게 제시하였는가를 보다 다각적인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그 결과 이 시기 조선을 둘러싼 국제정세는 중화질서와 공법질서가 공존하며 대체적으로 전자에서 후자로 넘어가는 양상을 보이고 있었으나, 실질적으로 이 두 질서체계는 조선의 국내외적 현실 속에서 실타래처럼 얽혀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개항부터 임오군란까지(1876-1882)는 조선이 일본, 미국과 조약을 체결함으로써 형식상 공법질서에 편입되는 시기였다. 그런데 조일수호조약은 표면적으로는 조선의 자주독립을 규정하는 공법적 평등조약이었으나 실질적으로는 조선에서 중화질서를 배척하고 공법질서를 적용시켜 열강들의 진출을 용이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은 최초의 근대적 조약인 조일수호조약을 '300년간의 구교의 회복'이라는 중화질서의 연장선상에서 인식하였다. 또한 조미수호조약체결에 대해 조선은 이로써 공법절서에 편입된다는 인식을 하고 있었으나 그 체결과정에서 여전히 청의 '속국'으로서 중화적 틀 속에 갇혀있는 한계점을 드러내었다. 그 후 임오군란 이후부터 청일전쟁까지(1882-1894)의 시기에 청은 조선에 대해 전통적 종주국이라는 중화질서상의 명분을 강요하였으나, 실질적으로 그것은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의 성격에서 보듯이 공법적 패권논리에 입각하여 조선을 지배하려 한 것이었다. 또한 주변의 열강들 역시 조선에서의 정치-경제적 이권 획득에 주력하였을 뿐, 조선을 자국과 평등한 주권국가로 대우해줄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이와 같은 조선에서의 중화질서와 공법질서의 '부정적 혼재' 양상은 1894년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면서 공법질서에로의 편입으로 귀결되었다. 유길준은 당시 조선을 둘러싼 국제정치적 현실을 다음의 세 가지 시각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첫째, 중화질서가 국가들 사이의 위계적인 관계를 상정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그것이 국가간의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완충제 기능을 수행한다는 점과 공법질서가 원칙적으로는 모든 국가들의 동등성과 자주독립을 보장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그것이 강대국의 패권논리로 작용한다는 점. 둘째, 공법질서에 입각하여 바라본 조선과 청의 증공-수공관계는 약소국의 '自保하는 道'의 일환일 뿐이므로 청이 조선에 대해 중화질서에 입각한 종주권의 명분을 내세울 수 없다는 점. 셋째, 공법의 원리가 지배하는 국제정치 속에서 조선은 엄연한 자주독립국이므로 여러 열강들에 대해 그에 맞는 권리와 의무를 행사해야 한다는 점이 그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그의 주요 저술과 관련시켜 보면 다음과 같다. 유길준은 『세계대세론』(1883)과 『경쟁론』(1885)을 통하여 19세기말의 전반작인 세계정세를 알리고 그 속에서 조선이 경쟁력을 제고할 것을 강조하였다. 또한 그는 「言事疏」(1883)를 통해 당시 한반도를 향한 남하를 엿보던 러시아 세력을 경계하였다. 여기서 그는 공법의 허구성을 폭로하면서 열강이 패권논리를 적용하지 못하도록 조선이 먼저 공법에 입각하여 외교문제를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다음으로 유길준은 1880년대 이후 조선에 대해 중화질서에 기반한 종주권 논리를 내세워 제국주의적 지배를 시도했던 청을 견제하기 위해 『國權』(1885)/『邦國의 權利』(1889), 「答淸使照會」(1889), 「中立論」(1885) 등을 저술하였다. 그는 여기서 전통적 종주관계의 명분 속에서 이루어지는 조선과 청 두 국가간의 관계는 다른 국가들이 온전한 자주독립국의 입장에서 관계를 맺고 있는 현실과 전혀 앞뒤가 연결되지 않는 兩截상황에 놓여있다고 보았다.(『國權』(1885)/『邦國의 權利』(1889))따라서 청이 조선에게 요구한 령약삼단은 양국간의 특수한 관계인 증공-수공관계를 이용하여 조선에 대한 청의 우월성을 그대로 적용시키려는 것이므로 공법논리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答淸使照會」(1889)) 또한 그는 조선이 중립을 이루기 위해서는 청의 협조가 필요하다는 점을 감안, 과거 중화질서 속에서 청이 조선에게 보여주었던 호의와 관용을 강조하는 완곡한 외교적인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中立論」(1885)) 마지막으로 유길준은 「漁採論」(1892)을 통해 조선에서의 경제적 세력침투를 엿보던 일본을 경계하였다. 여기서 그는 朝日通漁章程에 명기되지 않은 건조지를 일본에 허용하는 것은 조선의 공법상 권리를 침해하는 일이므로 조선은 반드시 일본의 불법 건조행위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와 같이 주변의 열강들에 의해 자국의 운명이 결정되는 약소국 조선의 지식인으로써 유길준이 택할 수 있었던 가장 현실적인 처사는 공법상의 '당위적인 권리' 내지는 '이상적-원론적인 내용'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즉 국제정세에 대한 유길준의 인식이 정확한 것이었던 만큼 그는 조선과 열강들이 준수해야할 공법상의 권리와 의무에 관한 당위적, 원칙적 논리들을 강조함으로써 조선의 자주와 독립을 지키려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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