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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체제의 실패원인 분석

Title
워싱턴 체제의 실패원인 분석
Other Titles
(A) Study On the Failure of the Washington System
Authors
李禧珍
Issue Date
1994
Department/Major
대학원 정치외교학과
Keywords
워싱턴 체제실패원인Washington System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examine Far Eastern international relations of the 1920s' with special emphasis on the Washington System and the cause of the 1930s' crisis in the Far East, began by Manchurian Crisis. Washington System was the new order of the Far East in the post- was period, based on the international agreement at Washington Conference 1921-1922. The Washington System aimed to settle the conflict between Japan and the United Satate, to solve the issue of abolition of the Anglo-Japanese alliance, and to build stsble order through the 'Open Door' Policy and 'Equal Opportunity' in the trade. Washington System was the creature of compromise among nations concerned. But as an International System, Washington System has no essential element that coherethe nations concerned. Thereforethe Washington System was doomed to Failure because the system lacks the requisite for collective agreement system. Each nations sought to Maximize her interest with minimum concession. The defects of the system was revealed when the nations could not make agreement on the Chinese issue : the restoration of tariff autonomy, the abolition of extraterritoriality and a financial aid for stable government in China. The failure of each nations to take proper action on the Chinese problem resulted in the expansion of the Soviet influence in China and then the radicalization of Chinese Nationalist movement. Adhering to their own national interests they brought about discord with each other. Japan, especially, had different opinions with other nations. The exclusion of the Soviet Russia in the Washington System also produced serious problems in the maintenance of the system. Ignoring the diversity of each nation's interest, the Washington System could not settle the regional problem with amity and cooperation and build a stable order in the Far East. Therefore the Washington System was a defective Framewark for international cooperation, and bound to fail.;이 논문은 워싱턴 체제를 중심으로 1920년대의 동북 아시아의 국제관계를 분석하고 나아가 1931년 만주사변으로 시작된 위기상황을 초래하게 된 원인을 고찰해 보려는 것이다. 워싱턴 체제란 1921년 워싱턴 회의에서 관련국들이 동 아시아 지역의 문제에 대해서 합의한 내용에 따르는 1차대전후의 동 아시아 지역에서의 새로운 국제관계의 틀(질서)를 의미한다. 베르사이유 체제가 전후 주로 영국과 프랑스를 위주로 한 서 유럽에서의 국제질서를 의미한다면, 워싱턴 체제는 동 아시아 지역의 문제들을 중심으로 한 질서로 그 목적은 전쟁중에 서구 열강들의 세력이 이 지역에서 일시적으로 후퇴한 틈을 타서 일본이 급격한 세력의 신장을 보인 것에 대한 제재와 복귀를 통해서 전쟁중에 일본이 만들어낸 분쟁의 씨앗이나 기정사실들을 결산하고 , 문호개방원칙의 수립을 통해서 세력 균형을 재확립하며, 앞으로의 국제관계에서 새로운 질서를 수립하기 위한 것이었다 워싱턴 체제는 1920년대의 동 아시아의 국제관계가 상대적인 안정을 회복했다는 점에서 우선 성공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워싱턴 체제의 문제점은 그 체제가 바탕으로 하고 있던 기본 가정과 체제의 성격에 있다. 우선 워싱턴 체제는 비인체제와 같은 뚜렷한 이데올로기적 일치라든가 비스마르크 체제와 같은 강력한 구심점이라든가 프랑스 체제(Anglo-France System)에서 처럼 안보면에서 공동으로 경계해야 할 가상적국이 존재한다든가 하는 등,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즉 체약국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본질적인 요소를 결여한 것이었다. 이것은 워싱턴 체제의 성립배경과 동 아시아 지역에서 관련국들이 갖는 이해관계의 특징때문이다. 1차 대전 中 중국에서 일본의 지나친 팽창이라든가 미.일 간의 관계의 악화와 해군군비경쟁 등의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서 주요 관련국인 영국, 미국, 일본은 모두 무력을 동원하지 않은 상황에서 외교적인 타협을 필요로 했으며, 워싱턴 체제는 그러한 필요의 산물로 각 국가들에게 타협의 기회와 명분을 제공한 외교적 결과였던 것이다. 워싱턴 체제는 그러나 현안의 해결과 안정된 질서를 유지한다는 대략적인 합의에 도달한 것으로써 그를 실행하기 위한 각 국의 행위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이나 방법상의 합의, 또는 그러한 규칙을 위배했을 때의 '제재방안과 같은 것을 결여하고 있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이었다. 따라서 '국제협조'라는 워싱턴 체제의 기본틀은 각 국의 선의에 따르는 자발적인 협조를 통해서만이 달성될 수 있는 것이었다. 이것은 체제의 운용이라는 면에서 문제점으로 지적될 수 있다. 즉 '다국간의 합의'에 의한 협조체제라는 것은 다분히 현상유지적이며, 상황의 변화에 대해서 탄력적으로 대응하기가 어려운 점이 있다. 이것은 각 국의 개별적인 이해 관계가 여러가지로 얽혀 있는 상황에서 보다 높은 차원에서의 합의에 도달하기 위해서 자국의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쉽게 포기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가간의 우호와 협조관계를 바탕으로 한 워싱턴 체제는 불평등 조약의 폐지에 대한 중국의 요구와 기대를 충족시켜 주지 못했으며, 중국에서 통일되고 안정된 정부의 수립을 위해서도 효과적인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다. 즉 중국의 민족주의가 더욱 급진적으로 전환하기 전에 중국에 대해서 선의를 표시하고 중국의 요구를 들어줌으로써 중국의 안정을 도모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림으로써 열강들간의 협조관계는 무의미한 것이 되어버렸을 뿐만이 아니라 중국에서의 상황을 더욱 혼란하게 하는 결과를 낳았으며, 이러한 중국에서의 불안정한 상황은 각 국이 중국에서의 자국의 이해관계를 보호하려는 데에 집착하게 함으로써 오히려 각 국가들 사이에서 중국문제에 대한 불일치를 초래했던 것이다. 특히 만주와 내몽고 등 중국에 대해서 자국의 중대한 이해(vital interest)가 걸려 있다는 일본에게 있어서 중국 내부의 혼란한 상황은 그러한 이해관계에 대한 중대한 위협으로 간주되었다. 따라서 그러한 상황은 영일 동맹의 페기와 해군 감축조약에 의해서 이 지역에서 즉각적인 군사력을 동원할 수 있는 실질적인 세력으로 남게 된 일본이 더 이상 협조의 틀을 거부하고 독자적인 행동으로 나아가게 함으로써 워싱턴 체제는 실패하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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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대학원 > 정치외교학과 > Theses_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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