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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동원체제 일본의 국민체력동원과 메이지신궁대회

Title
총동원체제 일본의 국민체력동원과 메이지신궁대회
Other Titles
A study on the national health mobilization and Meiji jingu athletic competition under the total mobilization system of Japan
Authors
함예재
Issue Date
2011
Department/Major
대학원 사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dvisors
함동주
Abstract
근대 국민 국가는 국민 개개인의 신체에 큰 관심을 가졌다. 규율과 통제를 통해 국민들을 국가가 원하는 근대적 신체로 만들어내고자 했다. 근대 일본에서는 이러한 국가의 국민 신체에 대한 관심이 전쟁과 맞물리면서 더욱 강화되었다. 가장 극대화되었던 시기가 바로 1930년대 후반의 총동원체제 시기였다. 1931년의 만주사변과 1937년의 중일전쟁 등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일본 사회는 1930년대 후반에 총동원체제로 재편성되었다. 특히 1938년에 국가총동원법이 제정되면서 국가가 국민을 대상으로 인적 자원 및 물적 자원을 통제하기 시작한다. 사회의 모든 측면이 효율적인 전쟁 수행이라는 목적에 맞추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국민의 신체 역시 인적자원으로 여겨졌고, 이는 곧 전선에 나설 병력과 후방에서 전쟁을 지원하기 위한 노동력으로 연결되었다. 따라서 원활한 전쟁 수행을 위해 국민의 기초적 체력이 국가 차원에서 요구되었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총동원체제 하에서 나타난 국가의 국민 체력 동원의 측면을 전전 유일한 최대의 체육제전이었던 메이지신궁대회를 통해서 확인하고자 한다. 메이지신궁대회는 1924년에 메이지 신궁 완공을 기념하기 위해 내무성의 발안으로 시작된 체육대회이다. 이후 민간단체인 메이지신궁체육회의 주최로 이관되었다가 총동원체제로 돌입한 1939년에 다시 정부기관인 후생성으로 이관되었다. 주된 참가 계층은 청년단, 재향군인회, 학생 및 여성이었고 경기 종목으로는 일본의 전통적 체육 경기인 검도와 유도 등과 대중적 경기인 축구와 야구 등이 주를 이루었다. 메이지신궁대회에 관해서는 지금까지 주로 체육사 측면에서 연구가 이루어져 왔다. 국가가 주도한 최초의 종합적 체육대회라는 점에 있어 체육사적 의의가 있으며, 체육의 사회적 보급에도 큰 역할을 담당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시대적 변화에 따른 대회의 성격 추이에 대해서도 천황제 이데올로기나 내셔널리즘 측면에서 일련의 연구가 진행되었다. 그러나 기존의 연구에서는 신궁대회의 성격 변화에 대해 단순히 ‘전쟁’이라는 표면적인 이유에 주목하고 있을 뿐, 그 이면에 있는 국가의 의도에 대해서는 깊이 있는 연구가 진행되지 않았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근대 국가에서 나타나는 국민의 신체 및 체력에 대한 국가의 관점을 중점으로 하여 신궁대회를 파악하고자 한다. 먼저 초기에 메이지신궁대회가 창설된 배경과 과정을 통해서 기본적인 메이지신궁대회에 대한 사항을 확인할 수 있다. 이후, 일본이 총동원체제 시기로 돌입하는 시대적 배경과 그 산물로 탄생한 후생성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총동원체제 하에서 변화하는 메이지신궁대회의 양상을 파악할 수 있다. 주최의 변화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메이지신궁대회는 성격의 변화를 겪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기초적 이해가 필요하다. 초기 대회에서는 1920년대 관동대지진으로 인한 피해 및 사상 선도 문제의 대두로 인해 주로 천황제 이데올로기 강화 및 국민 통합에 중점을 두었다. 당시 ‘체육’이라는 문화 자체가 대중 조작의 수단으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총동원체제 하에서 메이지신궁대회는 대동아신질서 건설이라는 궁극적인 목표 달성을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변질되게 된다. 대회의 주요 구성원이 전쟁을 직간접적으로 겪게 되는 청년, 군인, 학생, 여성 등으로 구성되었고, 지역적으로는 조선과 만주 및 만주국까지 포함하게 된다. 조선과 만주는 1회대회부터 참가하고 있었지만 총동원체제 하에서 만주국이 새롭게 참가하게 된 것이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이제 대동아공영권에 포함되는 만주국을 포함시켜 체력 동원의 지역적 범위가 더욱 확장된 것이다. 경기 종목의 결정 및 운영에 있어서도 총동원체제로 돌입하게 되는 10회 대회부터 새로운 종목이 실시되기 시작했다. 국방경기, 총검도, 활공훈련 등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기초체력의 향상 및 전투 기술 습득을 전제로 한 종목들이 시행되었다. 뿐만 아니라 충효를 기본으로 한 일본 정신을 함양하기 위해 검도나 유도와 같은 일본 전통의 무도가 중시되었다.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한 체조 또한 장려되었는데, 특히 지방대회를 실시하여 모든 국민이 일제히 체조를 실시하도록 하여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모든 국민의 체력 향상을 의도했다. 이러한 분석을 통해 메이지신궁대회가 국가의 국민체력 향상 및 동원을 목표로 했음을 알 수 있다. 총동원체제 하에서 인적자원으로 여겨진 국민에게 국가가 부여한 의무가 기초 체력의 향상을 통한 전쟁의 원활한 수행이었음을 생각할 때, 메이지신궁대회는 그러한 국가의 의도를 철저하게 반영한 이벤트였다고 할 수 있다.;This paper has analyzed the only pre-war comprehensive athletic competition, Meiji jingu Athletic Competition which was held from 1924 to 1943. The competition which was started to commemorate the completion of Meiji jingu by the proposal of the Ministry of the Home Affairs reflected the national situation of the era and went through the changes in its characteristics. In this paper, especially the competition in the period of mobilization of the State era in the late 1930’s was examined. The existing studies on Meiji jingu Athletic Competition were done mainly in the area of the history of sports. It was reviewed as the only comprehensive athletic competition and significant in that it played a crucial role in the social popularization of the sports. It also was further examined in relation to the ideology of the Emperor System or nationalism. However, the existing studies have geared towards the history of sports for the most part and focused on the surface, indicating that it was limited in figuring out the national intent apparent in the changing characteristics of Meiji jingu Athletic Competition in depth. Thus, in this paper, the changes in the characteristics of competition under the Mobilization of the State were understood as the nation’s intent to manage the national health and fitness and mobilize them. Upon entering the mobilization of the State, the nation considered the citizens as the manpower and recognized them as the military or labor power for the war. Thus, the fitness of the citizens was regarded as the fundamental elements for waging war and at the time, the lowering of the national fitness was raised as a crucial issue. When the national fitness enhancement became important, the Ministry of Health, Labor and Welfare of Japan was newly established and various policies related to the national fitness were implemented. Under such intention, the host of Meiji jingu Athletic Competition was changed to the Ministry of Health, Labor and Welfare. The main participants of the competition included young men, soldiers, students and women who would experience war directly and indirectly and regionally, it included the Joseon, Taiwan and Manchukuo. The Joseon and Taiwan have been participating since the first competition but the mobilization of the State was characterized by the joining of Manchukuo which became a new participant. By including Manchuria which belonged to Greater East Asia Co-Prosperity Sphere, the regional scope for the mobilization of the fitness was further expanded. In terms of the decisions on the sports categories and operations, beginning with the 10th competition when Japan entered the mobilization state, new categories of sports were held. The categories on the premise of the enhancement of basic fitness and learning of combat skills required for the wars such as the defense competitions, guns and swords and soar training were held. Furthermore, in order to cultivate the spirit of Japan based on loyalty and filial piety, Japan’s traditional martial art, such as Kendo and Judo were considered crucial. The physical exercises for the entire citizens were also encouraged and in particular, the regional athletic competitions were held for all citizens for physical exercises, encouraging the enhancement of fitness on a national level for people of all ages and gender. Based on this analysis, Meiji jingu Athletic Competition aims to enhance the national health and mobilization. Considering that the duty given to the citizens was the progression of war through the enhanced basic fitness of the citizens who were considered as the manpower under the mobilization of the State, Meiji jingu Athletic Competition is the event-like policy which has thoroughly reflected such national i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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