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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한인건축가의 주택개량론에 관한 연구

Title
일제강점기 한인건축가의 주택개량론에 관한 연구
Other Titles
A Study on the ‘Improvement of Housing’ under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 Focusing on the Park, Kil-Ryong
Authors
황서린
Issue Date
2011
Department/Major
대학원 동아시아학연구협동과정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dvisors
남궁곤
Abstract
본 논문은 근대 한인건축가의 주택개량론이 등장하게 되는 시대적 배경을 살펴보고, 박길룡의 건축계 네트워크 형성과정과 주택개량론에 대하여 분석하고 있다. 최초의 한인건축가로서 박길룡의 건축활동과 주택개량론은 한국 근대건축의 중요한 장을 차지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박길룡이라는 인물 탐구를 통하여 한국 근대건축사의 모습을 살펴보고, 그 의미와 한계를 탐색하고자 한 것이 본 논문의 목적이다. 1920년대 실력양성론의 흐름 하에서 진행된 생활개선운동은 일종의 ‘문화운동’으로서 비위생적이고 비합리적인 전통 생활양식과 의식을 바꾸고자 하는 운동이었다. 생활개선운동은 1920년대 언론·집회·출판의 자유가 일부 허용되면서 폭발적으로 증가한 신문 및 잡지를 통해 전개되었다. 생활개선운동 하에서 전개된 주택개량론은 가족제도의 변화에 영향을 받아 가정생활의 근대화를 꾀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1920년대에는 주택개량론과 함께 새로운 주거형태로서 ‘문화주택’과 ‘개량한옥’이 등장하게 된다. 당시 문화주택은 문화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이상적 주거로서 대중에게 각인되었으며, 실제로는 건축설계를 전문으로 하는 건축가에 의해 건설된 고급 주택이었다. 대부분의 문화주택은 전통 생활양식과 맞지 않는 경우가 많고, 비용이 많이 들었기 때문에 대중화되지 못했다. 개량한옥은 일제강점기 도시 중산층의 전형적인 주거형태로서 일제의 식민수탈 등으로 도시인구가 급증하는 과정에서 등장한다. 개량한옥이 일제강점기 도시 중류계층의 대표적 주거양식으로 자리를 잡게된 것은 문화주택에 대한 반발심리와 함께 기존의 전통 생활양식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는 점, 적은 비용으로도 지을 수 있다는 점 등이 작용했다. 그러나 건축가들이 제시한 주택개량론이 개량한옥에 적극적으로 반영되지 못했다는 점은 당시 대다수 도시 서민들의 현실과 새로운 주거환경에 대한 논의가 상당한 거리를 지닌 채 진행되었음을 보여준다. 경성공전은 근대적 건축교육이 시작된 곳으로 기술중심의 교육을 통해 건축실무자를 길러내고자 하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박길룡은 경성공전 졸업 이후 총독부 관방회계과에서 건축경력을 시작한다. 박길룡은 관 건축조직에서의 업무경험을 통해 건축가로서의 역량과 전문성을 갖게 됨과 동시에 하급관료로서 일할 수밖에 없는 한계에 부딪힌다. 일제강점기 건축활동이란 효율적 식민지배라는 안에서 이루어졌고, 이 안에서 박길룡이 갖게 되는 정체성은 피지배인이자 통치기구의 관료로서 모순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또한 박길룡의 사회활동이나 주택개량론은 일제 말기로 갈수록 지배정책에 동조하는 모습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마지막으로 박길룡의 대중매체를 통해 제시한 주택개량론과 그의 설계 작품을 분석하였다. 그는 전통주택에 대하여 진지한 관심을 바탕으로 근대적 주거문화와 주택양식을 도출해 내기위해 적극적으로 주택개량론을 제안한다. 박길룡이 제시하는 주택개량론의 특징은 집중식 속복도형 일식주택을 근대적 주거로서 제안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설계를 한 주택도 대부분 문화주택으로서 집중식 평면을 가지고 있었다. 속복도형 평면은 일식주택을 모방한 것으로서 이를 통해 당시 생활개선운동이 주장하던 “생활의 과학화·합리화”를 구현하고자 하였다. 1930년대 중반까지 활발하게 논의되던 박길룡의 주택개량론은 일제가 전시체제로 변하면서 그 성격이 달라진다. 즉, 전통주택의 개선을 바탕으로 한 근대 주택 연구에서 대량공급에 적합한 주택 연구로 그 방향이 바뀌어 버리면서 주택개량론은 서서히 소멸하고 만다.;This study analyzed Park, Kil-Ryong(1898.12.20.-1943.4.27.)’s housing improvement theory and it’s background. He is the first modern architect in Korea under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Improvement of Housing was based on The discussion of living condition improvement. It started to be discussed after 1920s, when newspapers and magazines had a role of providing information. 'Mun-Hwa' residence and Reformed Korean style house(改良韓屋) emerged in 1920s when the movement for improving living conditions. 'Mun-Hwa' residence is expensive and uncomfortable, therefore Reformed Korean style house is excepted for public. ‘Kyong-Sung technical high school(경성고공)’ took charge of technical education in the colonial period. They abolished education about traditional buildings. The students could not take a chance to education about traditional architecture. After the graduation at ‘Kyong-Sung technical high school’, Park, Kil Yong work for ‘The government-general in Chosun(朝鮮總督府)’ for 12 years. At this time, Park learned about modern architecture and experienced construction work. After 1920’s, He suggested about house reformation and put ideological factors for the planning of 'Mun-Hwa' residences. He wanted to create a new style of residence to improve traditional residences. After all, He conclude that the Japanese central corridor type is an ideal dwelling type. But his housing improvement theory was changed on the war basis. after 1937, he studied about small sized community housing for work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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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대학원 > 동아시아학연구협동과정 > Theses_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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