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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이후 통신사 복식 연구

Title
18세기 이후 통신사 복식 연구
Other Titles
A Study on the Attire of Joseon’s Diplomatic Envoys to Japan, Tongshinsa, in the 18th and the Early 19th Centuries
Authors
박선희
Issue Date
2011
Department/Major
대학원 의류직물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Doctor
Advisors
홍나영
Abstract
이 연구는 조선에서 일본으로 파견한 외교 사절인 통신사(通信使) 중 18세기 이후의 5차례 사행을 대상으로 하였다. 지금까지 통신사 복식에 대한 연구는 통신사 행렬도, 인물도 등의 회화 자료와 사행록(使行錄)을 바탕으로 특정 시기나 일부 직분(職分)에 국한하여 진행된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사행록과 회화 자료를 통합한 분석이나 착용 복식의 변화 양상 연구가 부족하였으며, 회화 자료의 표현상 오류가 지적되지 않았다. 이에 다음과 같은 순서로 연구를 진행하였다. 먼저 사행록과 『통문관지(通文館志)』등 외교관련 문헌에 나타난 내용을 중심으로 통신사의 일정과 인적 구성을 알아보고, 각각의 경우에 착용한 복식을 조사하였다. 그리고 이 복식이 국내에서 착용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하여 『경국대전(經國大典)』등의 법전과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각종 문집과 소설, 회화 자료를 조사하였다. 그리고 국내에서의 착용규정이 통신사 복식에 어떻게 적용되었는지 살펴보았다. 마지막으로 앞의 조사 결과를 회화에 묘사된 통신사의 모습과 비교하여 사실적 표현과 표현상의 오류를 구분할 수 있도록 하였다. 사행일정별 복식을 조사한 결과, 관복(官服)을 착용한 경우는 다음의 6가지 경우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사행 출발 전 및 돌아와서 국왕을 알현하는 경우, 둘째 해신제ㆍ망궐례 등 의례를 행하는 경우, 셋째 중요 거점이 되는 지역에 들어가는 경우, 넷째 연회에 참석하는 경우, 다섯째 쓰시마 도주, 에도의 사자, 관리 등과 상견례(相見禮) 또는 접견(接見)하는 경우, 여섯째 국서 교환과 관계된 경우이다. 조복은 사신(使臣)만 착용하며, 단령은 군관을 제외한 상관(上官) 이상의 사행원이 착용하였다. 사신이 조복을 착용하는 대표적 일정은 전명(傳命)과 정조ㆍ동지ㆍ탄일의 망하례(望賀禮)이며 이때 원역은 흑단령을 착용하였다. 사신과 원역이 모두 흑단령을 착용하였을 것으로 생각되는 일정은 삭망의 망궐례, 동래 및 부산에 입성할 때, 부산에서의 사연(賜宴)과 에도에서의 하마연(下馬宴)이다. 모두 시복을 착용하였을 것으로 생각되는 일정은 교토 입성이다. 흑단령 착용에서 시복 착용으로 변화된 것으로 보이는 일정은 쓰시마 도주가 베푼 연향에 참가할 때, 오사카 숙공, 쓰시마 도주 상견례, 회답서를 받을 때, 에도 사자의 문안을 받을 때, 에도 입성 등이다. 군복은 상관인 군관부터 하관인 격군(格軍)까지 다양한 직분에서 착용하였다. 협수(夾袖)와 괘자(掛子), 전립(氈笠)의 기본 구성은 동일하며, 직분에 따라 장식과 재질, 휴대품 등에 차이를 두었다. 사행 중 군관에게 있어서 군복은 문사(文士)들의 편복에, 융복은 관복(官服)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차관 이하 사행원의 경우 대부분 군복을 의례용으로도 착용하여 평상시와 의례 때 복식에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사행 중 편복은 군관을 제외한 상관 이상 사행원이 착용하였다. 1763년(영조 39) 이전에는 사신과 문사들의 편복에 구분이 없었던 것으로 보이나, 이 때 편복 착용 규정이 제정되면서 차등 적용되었다. 18세기 국내에서 착용한 조복(朝服), 공복(公服)ㆍ상복(常服)ㆍ시복(時服), 융복(戎服)ㆍ군복(軍服), 편복(便服)은 다음과 같은 특성을 나타내었다. 조복은 조선 전기와 비교하여 의(衣)의 세부 형태가 바뀌었으며, 중단(中單) 대신 창의를 착용하기도 하였으며, 화(靴)를 신었다. 대대(大帶)와 품대(品帶) 위에 조대(絛帶)를 더 매는 모습도 나타났다. 한편 임란 이후 종친 및 백관이 조복을 갖추어야 할 때 4품 이상은 조복, 5품 이하는 흑단령을 착용하였다. 이 제도는 『국조속오례의(國朝續五禮儀)』에 기록되며 이후에도 지속된 것으로 나타났다. 공복ㆍ상복ㆍ시복으로 표현되는 단령은 임란 이후 흑색 일색이었으나 17세기 초 일상 집무복으로서 상복 홍단령이 복구되면서 흑색과 홍색의 양색(兩色) 체제를 회복하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홍단령-시복-일상 집무복, 흑단령-상복-의례복’으로 재규정되었다. 시복은 18세기 중반에 이르러 ‘당상 홍색, 당하 녹색’의 2단계로 품계에 따라 분화되었다. 공복은 양란 이후 특정 상황에 착용하는 것으로 명맥이 이어졌으며, 역시 18세기 중반 ‘당상 담홍(淡紅), 당하 청록(靑綠)’으로 품계에 따라 분화된 것으로 보인다. 융복은 당상 3품 이상은 자립(紫笠)ㆍ패영(貝纓)ㆍ남색(藍色) 철릭[帖裏]을, 당하 3품 이하는 흑립(黑笠)ㆍ정영(晶纓)ㆍ청현색(靑玄色) 철릭을 착용하였다. 교외(郊外)에 동가(動駕)할 때 당하관이 홍색 철릭을 착용하는 것 외에는 모두 푸른 색 계통의 철릭을 착용하도록 규정되었다. 관모의 경우 자립이 흑자색을 띠었다고 하므로 흑립에 가까웠을 것으로 보인다. 18세기 군복은 전립(氈笠), 협수전복(夾袖戰服), 괘자(掛子)로 구성되었으며, 무관부터 하급 군사까지 군복의 기본 구성은 같았다. 전립은 모정이 뾰족하고, 패영을 달았다. 협수는 소맷부리에 붉은 배색을 한 것과 하지 않은 것이 있었으며, 배색을 해도 너비가 좁았다. 편복 관모는 16세기경 중국에서 다녀온 문인(文人)들이 구입하여 들어와 착용하면서 충정관(冲正冠), 염계관(濂溪冠), 정자관(程子冠), 동파관(東坡冠) 등이 성행하였다. 이밖에 고후관(高厚冠)과 연엽관(蓮葉冠) 등의 관모 역시 유관(儒冠)의 하나로 착용된 것으로 보인다. 학창의는 18세기에도 일반에 널리 알려진 것이 아니었다. 당시 학창의는 직령 혹은 방령이며 앞자락이 겹치지 않는 맞깃 형태였다. 색상이 다양하며 선의 색도 검은색과 푸른색이 나타났다. 17세기경 학창의에는 대를 띠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18세기 창의와 도포의 색상은 흰색과 청색이 주를 이루었는데, 국가에서는 흰색 착용을 피하도록 하고 청색을 권장하였다. 우장(雨裝)으로 종이, 무명, 명주 등에 기름을 먹여 만든 치마 형태의 유의(油衣)ㆍ유삼(油衫)을 착용하였다. 주영(珠纓)은 신분에 따라 차등을 두었으며, 장복의 위의(威儀)와 아름다움을 살리며, 편복을 장복으로 격상시키는 요소로도 이용되었다. 회화에 표현된 사행의 모습에서 오류는 조복의 표현에서 가장 많았다. 단령으로 표현한 조복의 깃, 흉배를 부착한 형태, 전체를 금색으로 표현한 금관 등이 대표적인 오류 사례로 지적될 수 있다. 단령의 경우 18세기 초 행렬도에 황색 등 규정 외 색상이 나타난 경우와 깃을 직령으로 표현한 사례가 있으나, 대체로 사모ㆍ단령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군복과 편복의 경우에는 포의 세부 묘사가 부족한 부분은 있으나 큰 오류로 지적될 사항은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관복, 특히 조복의 표현에 오류가 많은 것은 착용자 수와 착용 횟수가 적었던 것도 원인이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연구 결과 통신사가 착용한 조복, 흑단령, 시복, 융복, 군복 등의 관복에는 18세기 전후 이루어진 제도 정비가 반영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통신사의 복식은 위엄 있으면서 화려하게 보이고자 한 외교 사절로서의 특수성도 나타내었다. 따라서 통신사 관련 자료는 당시의 조선 사회 현상을 해석하고 이해하는 자료로도 유용하게 쓰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편복 관모에서 문헌과 회화를 연결하여 볼 수 있는 예가 비교적 많이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This study investigates the attire of Tongshinsa(通信使), Joseon's diplomatic envoys to Japan, in the 18th and the early 19th century. During this period, Joseon dispatched Tongshinsa to Japan five times. Until now, most of researches on Tongshinsa's costume were confined to a particular member or a dispatch period. Furthermore, analyses that integrate both Tongshinsa members' personal records and pictures were minimal, and misrepresentations on these pictures were not mentioned. The study proceeded as follows. First of all, in order to analyze Tongshinsa's attire, personal records of Tongshinsa were investigated and records of clothing worn by Tongshinsa for every event were collected. Secondly, in order to find out how the dress code of Joseon was applied to the costumes of Tongshinsa, literature, paintings, Joseon’s constitutional law(經國大典, 續大典, etc.) and the annals of Joseon(朝鮮王朝實錄) were researched. Then, the research was contrasted with pictorial documents, for example paintings of the Tongshinsa parade and Tongshinsa’s portraits, and errors in the depiction of the Tongshinsa were pointed out. Upon investigation, situations in which all officials wore formal attire are classified into 6 cases: when they had an audience with their king, when they held a ritual ceremony, when they arrived in major cities, when they participated in banquets, when they met with high-ranking officials of Japan, and when they exchanged king's messages. Only Samsa(三使), three ambassadors, could wear Jobok(朝服), a ceremonial robe, and all the high officials, excluding military personnel, wore a robe named Dallyeong(團領). When Samsa wore Jobok during a ceremony of delivering the king's messages, the high officials wore a black Dallyeong. This shows the elite positions of the Samsa, and the implementation of officials' dress code of Jobok and black Dallyeong. There were instances when all the high officials, including the Samsa, wore Dallyeong. According to specific instances, the type of Dallyeong worn would change. In some events, everyone wore black Dallyeong, and in others all wore Sibok(時服), a Dallyeong worn for daily business duty. Sibok was red in the early 18th century, but after the mid-18th century the Sibok was available in green depending on the rank of the official. This shows the application of officials' dress code about Sibok. There were two types of military uniforms: Yungbok(戎服) and Gunbok(軍服). Gunbok was worn by officers and soldiers. The basic components of the uniform were similar, but there were distinctions in decorations, materials, and belongings depending on their position. For officers, Gunbok might have been everyday clothes, and Yungbok might have been formal attire. But most soldiers wore Gunbok in both ordinary and ceremonial occasions. For travelling, officials had worn scholar's everyday clothes in most of the time. Before 1763, it seems that there was no distinction of everyday clothes for Samsa or other officials, however after they implemented the new dress code, the officials could not wear certain clothes. Clothes worn in Joseon during the 18th century showed the following characteristics. The form of the Jobok in the 18th century was different from that of in early Joseon. It had a straight collar separated from trimming, Dongjeong, a thin white cloth-covered paper collar, and a coat string. Instead of a inner robe(中單), they often wore Chang-ui(氅衣), typical everyday clothes, and long boots. With a ceremonial waist band and a rank belt for officials, they also wore colored thread braided waist band(絛帶). After the Japanese Invasion of Joseon (1592~1598), dress code related to Jobok changed. While high-ranking officials maintained wearing Jobok, low-ranking officials started to wear black Dallyeong. Dallyeong included Gongbok(公服), Sangbok(常服), and Sibok. After the Japanese Invasion, all the official robes became black, but in the early 17th century, Sangbok, a red Dallyeong, was worn again as the ordinary robe of officials. Soon, the classifications of Dallyeong were reversed. Red Dallyeong, which was worn for everyday occasion, was now called Sibok. Instead, the black Dallyeong, worn for special events, was now called Sangbok. In the mid-18th century, both systems of Gongbok and Sibok had been revised. For a while, all ministers wore either the red Gongbok or Sibok, but after the revisions, the color of the costumes changed according to the officials' rank: while the high-ranking officials' Gongbok and Sibok were red, low-ranking officials' costumes were bluish green. Yungbok consisted of a hat and a military robe, Cheollik(帖裏). The hat was dark purple(黑紫) or black depending on the official's ranking, therefore all of them would have seemed black. Color of the Cheollik was navy(藍) or dark blue(靑玄) depending on the official's ranking, so they shared the similar color as well. Gunbok consisted of a felt hat(氈笠), an overcoat with narrow sleeves(夾袖), and a sleeveless coat(掛子). Officers and soldiers shared these same components of a Gunbok. The top of the felt hat was pointed. Sleeves of the overcoat had two types: one was solid color and the other had narrow red cuffs at the ends of sleeves. In the 16th century, scholar who visited China introduced various everyday headgears. Chungjeong-gwan(冲正冠), Jeongja-gwan(程子冠), Dongpa-gwan(東坡冠) and others were popular. Also, Gohu-gwan(高厚 冠) and Yeonyeop-gwan(蓮葉冠) seemed to be worn as one of scholars' everyday headgear. The Chinese Hakchang was introduced to Joseon by scholars who had relations with the Chinese in the 17th century and was gradually spread by the scholars’ followers. But Hakchang-ui(鶴氅衣), a scholar's robe with dark trim, was strange to the Joseon people until the end of the 18th century. In many cases, the Hakchang-ui worn in Joseon in the 17th and 18th century had side slits, but no back slit. Both sides of the center front were parallel and did not overlap. The main color of Chang-ui and Dopo(道袍), everyday overcoats, were white and blue in the 18th century, and the government encouraged the people to wear blue. Yusam(油衫), a raincoat, was made with oiled paper, cotton or silk, and had a skirt-like shape. Some people reluctant to wear a hat with string of beads, but the string was still worn by showing wearer's social status. That might have been used to show wearer's dignity and beauty, and also used to upgrade from ordinary clothes to formal clothes. In pictures of the Tongshinsa, misrepresentations were found most frequently on Jobok. Embroidered patches on the chest and back, wholly gold-painted headgear, and a round neck line are examples of incorrect depictions of Jobok. For the Dallyeong, a typical error was a straight collar. On describing military or everyday clothes, there was a lack of details, which is not a serious fault. The reason why there are more errors on the representation of formal wears, especially Jobok, might be closely related to the small number of wearers and instances of wearing. The analysis of the research findings led to following conclusions: the revised dress code for officials in the 18th century was reflected in the official attire of Tongshinsa. Tongshinsa's attire also expressed specialty for their mission. They wanted to show dignity and splendor through clothing. Accordingly, Tongshinsa related data are useful both for understanding Joseon missions and interpreting Joseon society. And it is notable that there were relatively many examples of everyday headg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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