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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기 고려청자의 미술품 인식 형성과 확산

Title
한국 근대기 고려청자의 미술품 인식 형성과 확산
Other Titles
The Growth of Recognition of Goryeo Celadon As Artwork in Modern Korea
Authors
박혜상
Issue Date
2010
Department/Major
대학원 미술사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dvisors
장남원
Abstract
From the beginning of nineteenth century, Japan had been lavishing money on Goryeo celadons found in Goryeo tombs, and with the opening of the Korean port, Westerners also started collecting them, which heated the competition for collecting Goryeo celadons. In twentieth century, archeological study of old Chinese art pieces became popular in Europe and U.S. and celadons of Song Dynasty drew particular attention. Due to the relevance to celadons of Song Dynasty, Goryeo celadons also attracted attention of Europeans and Americans. At that time antique shops prospered in Seoul, and eventually generated an auction market for antiques. Most of the Goryeo celadons were taken to out of Korea along with their owners who were mostly foreigners. The boom of collecting Goryeo Celadons got even more intensified since the first Korean modern museums, 李王家博物館 and 朝鮮總督府博物館 began to openly buy antiques. As Korean ceramics were added on the list of collections of museums, they established their position as “art work”, and their prices skyrocketed due to the competition among zealous collectors. In addition, inlaid celadons were found to be more popular than other celadons in many countries. As Goryeo celadons became more valued as art works and became a popular collection, even ordinary people wanted to own them more and more. However, original Goryeo celadon was already hard to obtain because of its rarity and high price. For this reason, 李王職美術品製作所 and 朝鮮總督府中央試驗所, both of which are national organizations, started to recreate Goryeo celadons, and some Japanese opened workshops of Goryeo celadon. A dissertation on Korean ceramics was published first in Europe and U.S. In modern age, Japanese academia accomplished the most in studying Goryeo celadons. Korean academia of art history began studying Goryeo celadons in earnest from 1930s. Early studies of art history were focused more on Buddhism-related art works, among which Goryeo celadons were the center of attention. This trend has been continued until now thanks to accumulated studies and achievements in excavation.;본 연구는 기존에 개별적으로 다루었던 근대기의 고려청자 수집과 재현을 둘러싼 정황을 보다 유기적으로 살펴보고자 시작되었다. 특히 고려청자 수집 동기를 근대기 고미술품을 인식하는 패러다임의 변화가 그 이유라고 보고, 그중에서 특히 청자가 주목받았던 이유를 밝혀 볼 것이다. 고려청자는 생산 당시에도 중국과 일본에 높은 평가를 받고 있었으며, 고려청자가 언급된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 ․ 『수중금(袖中錦)』등의 문헌이 조선후기까지 생명력을 잃지 않고 문인들 사이에서 널리 읽히고 있었다. 20세기 구미지역에서는 중국 고미술품의 고고학적 발굴과 연구가 붐을 이루었고, 그중 송대 청자는 높은 관심을 받고 있었다. 이러한 송대 청자와의 연관성으로 인해 고려청자는 구미인들의 주목을 받게 된다. 19세기 초반 일본은 이미 고려고분에서 발견된 고려청자 구입에 돈을 아끼지 않고 있었으며, 개항 이후 서구인들의 수집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고려청자 수집에 경쟁적으로 열을 올리게 된다. 조선총독부 초대통감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는 경성에서 소문난 고려청자 수집광이었으며, 이왕가박물관을 주도적으로 설립한 고미야 사보마쯔(小宮三保松) 역시 집안 가득 수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경성에서는 골동품 상점이 성황을 이루었고, 고미술품 경매시장이 형성되기에 이른다. 또한 고미술품 수집가의 집에는 직접 상품을 들고 찾아온 골동품상들이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하지만 고미술품을 수집하는 한국인 컬렉터는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다. 그들은 대체로 국수적인 입장에서 문화재를 수집했으며, 근대기 최초의 사립박물관인 보화각의 설립자 전형필은 이름난 외국인 컬렉터가 한국 유물을 매물로 내놓는 것을 기다렸다가 되사오기까지 했다. 이렇게 수집된 고려청자는 주로 외국인이었던 수장가들이 고국으로 대부분 가지고 돌아가게 된다. 고려청자 수집 열기는 한국 최초의 근대식 박물관인 이왕가박물관과 조선총독부박물관이 공개적으로 유물을 매입하기 시작하면서 더욱 불붙게 된다. 한국 도자기는 박물관의 수집품이 됨으로써 ‘미술품’의 지위를 획득하게 되었으며, 열띤 수집경쟁으로 인해 시장가격은 더욱 상승하게 된다. 박물관에서는 고고유물과 고려시대유물에 치중된 전시를 선보였으며, 관련 도록과 보고서를 발간하게 된다. 이러한 공식적인 학술활동을 통해 조선시대 이전의 문화가 부각되었으며, 이러한 양상은 일본과 서양국가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일본의 식민지배기를 거치는 동안 외부와 다시 단절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서양의 한국미술품 수집가들은 현지에서 활동 중이던 일본인 골동품상 내지는 일본 여행을 통해서 수집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정황으로 인해 유럽 ․ 미국 등지에서 수집된 청자라고 하더라도 일본인의 취향이 기저에 깔려있는 경우가 많다. 특히 상당수의 국가에서 상감청자의 소장 비율이 타 기법보다 월등히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고려청자가 미술품으로서의 가치가 상승하고, 소장품으로서의 인기가 높아지자, 일반인들의 구매 욕구도 높아져갔다. 하지만 진품 고려청자는 이미 높은 가격과 희소성으로 인해 쉽게 손에 넣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국립기관인 ‘이왕직미술품제작소’와 ‘조선총독부중앙시험소’가 고려청자 재현 연구 ․ 제작을 시작 하였고, 일본인이 운영하는 청자공방도 생겨났다. 이렇게 제작된 고려청자 재현품은 각종 박람회에 등장하였고, 일반에게 소비되었다. 한국 도자기에 관한 논저는 구미지역에서 처음 출판되었고, 고려청자는 한국 도자기의 얼굴로써 전면에 등장하였다. 근대기 일본 학계는 고려청자 연구에 있어서 가장 열성이었으며, 당시 가장 높은 비율의 연구 성과를 올리고 있었다. 한국 미술사학계는 193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하였다. 초기 미술사 연구는 도자기와 금속공예 등 불교 관련 주제로 편향되었고, 그중에서 고려청자는 관심의 중심에 있었다. 이러한 연구 경향은 축적된 연구와 발굴 성과에 힘입어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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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대학원 > 미술사학과 > Theses_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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