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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60년 월남 개신교인의 현실인식과 통일론

Title
1945~60년 월남 개신교인의 현실인식과 통일론
Other Titles
The perception of reality and opinions on Unification found in 1945-1960 among North Korean Protestant defectors
Authors
김현정
Issue Date
2010
Department/Major
대학원 사회생활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dvisors
차미희
Abstract
본 연구는 1945~60년 월남 개신교인의 현실인식과 통일론을 소재로 하여 월남 개신교인 내부에 다양한 층위가 존재할 가능성을 밝히고자 하였다. 이같은 균열은 분단과 한국전쟁의 인적 소산인 월남 개신교인이 사회적 타자(他者)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대한민국 국민으로 편입하는 과정에서 노정되었다. 한국전쟁을 기점으로 다수의 북한 개신교인들은 전쟁 이전에는 주로 정치적 동기로, 전쟁기간에는 전쟁 상황에 따라 월남하였다. 월남 개신교인은 이승만정부의 구호정책 부재와 사회적 배제에 대응하여 피난민교회를 중심으로 결집하였다. 피난민교회는 미국의 경제적 원조를 지원받아 구호활동을 주도함으로써 국가기구의 역할을 대행하였고, 실향민 공동체로서 친족공동체의 기능도 수행하였다. 또한 피난민교회는 반공전사로서의 월남 개신교인의 정체성을 구축하여 남한 사회에 유포함으로써 월남 개신교인을 대한민국 국민으로 변용시켰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남한 사회에 편입한 월남 개신교인들은 당면한 현실문제를 인식하였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논의를 전개하였다. 이 시기 월남 개신교인의 현실인식과 논의는 보수·진보 성향에 따라 차이를 보였는데, 특히 1950년대 개신교 신문과 잡지에서 뚜렷하게 표출되었다. 이같은 월남 개신교인의 현실인식과 담론의 균열은 원천적으로 기독교 국가건설론에 대한 입장 차이에서 비롯되었다. 월남 개신교인은 해방 이후 국가건설 요구가 제기되었을 때부터 국가건설론의 내용을 기독교 국가의 형태로 수렴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따라서 기독교 국가건설론은 월남개신교인의 공통된 목표였으나, 그 구체적인 내용과 방법에 있어서 차이를 보였다. 한경직과 영락교회를 구심점으로 결집한 보수적 성향의 월남 개신교인들은 미국 선교회의 영향력 하에 미국을 긍정적으로 인식하였다. 이들은 개신교 신문과 잡지를 통해 미국을 세계 최고의 기독교 국가이자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표상하였다. 나아가 한국이 내화해야 할 모델로 미국을 제시하였고, 미국을 모델로 하여 기독교 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지향하였다. 이같은 기독교 국가는 공산주의의 멸절을 전제로 하여 성립되는 것이었다. 따라서 보수적 성향의 월남 개신교인들은 반공이데올로기를 강력하게 주창하였고, 흡수통일론의 연장선상에서 이승만정부의 북진통일론을 지지하였다. 이러한 논리는 한국전쟁을 전후한 시기에 미국의 경제적 원조를 매개로 하여 더욱 강고해졌다. 이에 반해 강원용, 함석헌 등 중도 혹은 진보 성향의 월남 개신교인들은 미국의 영향권을 벗어난 캐나다 선교회나 무교회주의자였기에 기독교 국가의 모델을 미국 이외의 곳에서 찾고자 하였다. 진보 성향의 월남 개신교인들은 미국의 제국주의적 성격을 인지하고 있었고, 개인발행 잡지 등을 통해 미국 선교사나 자본주의를 비판적으로 표상하였다. 이들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기독교 국가는 미국의 영향권을 벗어나 세계주의의 흐름 속에 위치함으로써 건설될 수 있으며, 자유와 평등의 가치가 동등하게 보장되는 복지국가였다. 따라서 진보 성향의 월남 개신교인들은 민중의 기본권을 강제하는 이승만정부의 독재를 비판하였으며, 무력통일을 지양하여 평화통일론 혹은 중도노선의 통일론을 제기하였다. 1945~60년 월남 개신교인의 현실인식은 탈식민지 시기 민족국가 건설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표상되었다. 일본 제국주의의 해체와 세계 냉전체제의 전개는 한반도의 분단과 전쟁으로 귀결되었고, 그 결과 발생한 월남 개신교인은 민족정체성과 민족국가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이같은 노력은 북한을 타자화하고 미국 주도의 서구 진영에 한국을 편입시키는 담론으로 표출되거나 혹은 세계주의의 흐름 속에 단일국가 건설을 요망하는 담론으로 귀결되었다.;The aim of this thesis is to find out the various thoughts among North Korean Protestant defectors, based on their perception of reality and opinions on Unification. As North Korean Protestant defectors overcame the limitation for the social others and were assimilated into South Korea, the differences of their thoughts were revealed. From the outbreak of the Korean War, many North Korean Protestants came to South Korea for various reasons. They gathered under the Refugee Church to stand against the social exclusion and the absence of policies for them. The Refugee Church not only substituted for governmental organizations with the economic support form the US, but also functioned as the community for displaced people. Also, it made "North" Korean Protestant defectors convert into "South" Korean people by establishing their identity as anti-communists. In this process, the North Korean Protestant defectors succeeded to be included in South Korea. Then, they came to realize the immediate social problems, and started to debate to solve them. Their thoughts and discussions were split between their inclinations of the conservatives and the liberals. This division was began with a difference of opinion about the theory for the Building of Christian State. The North Korean Protestant defectors had aimed at the Building of Christian State in common, since independence in 1945. At the same time, they had detailed and concrete accounts of methods separately. The conservatives in and around Han, Kyo˘ng-jik and Yoˇng-nak Presbyterian Church positively recognized the US. In the Christian newspapers and magazines, they regarded the US as the best Christian and democratic country in the world. In addition, they also presented America as a role model that Korean should follow. Such a Christian country would require the extinction of communism. Therefore, the conservatives strongly advocated anti-communism, and supported the Marching North Campaign by Rhee administration. Their arguments became consolidated with the economic aid from the US during the Korean War. On the contrary, the liberals and the moderates were not influenced by the US church. For example, Kang, Won-yong was influenced by the Canadian presbyterian missionaries ; Ham, soˇk-hoˇn was supporter of non-churchism. Therefore, the liberals and the moderates tried to find out the role model of Christian country other than the US. They penetrated the imperialistic nature of the US, and criticized the missionaries and capitalism by the US. Moreover, they pursued establishing the Christian country that the US do not interfere, and aimed for building the welfare state that equally protects equality as well as freedom. Thus, they criticized the dictatorship by Rhee administration. Also, they opposed the unification by the military force and supported the theory for peaceful unification and for the middle course. From 1945 until 1960, North Korean Protestant defectors' perception of reality was represented in the course of finding out the ways to construct a nation state in the Post-colonial period. The collapse of Japanese imperialism and the development of the Cold War resulted in division of country and the outbreak of the Korean War. North Korean Protestant defectors are the result of the age, thus they had to make efforts to build up their identity and to establish a nation state. Such efforts drew a discussion that Korea should be put into the Western order led by the US, or one nation state should be constructed, excluding North Korea as the o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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