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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麗 ~ 朝鮮時代 瓷器 高足杯 硏究

Title
高麗 ~ 朝鮮時代 瓷器 高足杯 硏究
Other Titles
A Study on Ceramic Gojeokbae of the Goryeo-Joseon Period : 14th-17th centuries
Authors
김선영
Issue Date
2010
Department/Major
대학원 미술사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dvisors
장남원
Abstract
본 논문은 고려 후기에 처음 등장하여 조선 전시대에 걸쳐 꾸준히 제작된 자기 고족배를 대상으로 용어와 용례 및 국내로의 수용과정을 살펴보고, 국내에서의 생산 및 소비현황을 정리하여 기형과 장식의 양식분석을 통해 고족배의 양식변천과 성격 및 의의를 규명하고자 하였다. 고족배는 杯에 높은 다리가 붙은 기형으로, 현재까지 국내의 문헌기록에서는 고족배의 용어나 용례가 확인된 바 없지만, 중국의 문헌기록을 통해 唐~宋代의 이른 시기부터 외형적 특징을 인식하고 '高足'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고족배를 지칭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高脚杯'ㆍ'高足碗'ㆍ'高足盞'ㆍ'把杯'ㆍ'甌' 등 다양한 용어로 지칭되고 있었으며, 그 용례는 茶杯 및 酒杯로 사용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기존에 元代에 새로 제작된 기종으로 라마교의 의례기로 알려진 것과 달리, 유적출토품을 통하여 南朝와 北齊시대부터 무덤의 매납품 등으로 사용되었으며, 唐~淸代까지 매납품이자 飮用器로 사용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고려 후기에 처음 등장한 고족배는 元代 고족배의 유입으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元 간섭기 이후 元 황실과 고려 왕실의 직접적인 교류와 종교적 측면, 在元高麗人의 활동 등을 통해 고려로 유입된 것으로 생각된다. 국내에서 생산된 고족배는 고려 후기 상감청자에서부터 조선 전기의 청자 및 분청자와 백자로 관요가 민영화되는 시점까지 제작되어 꾸준한 수요가 있었으며, 이는 주거지 및 건물지ㆍ사찰ㆍ분묘 등 다양한 성격의 소비유적에서의 출토 양상을 통해 알 수 있었다. 특히 생산유적에서 출토된 고족배는 동반되는 전접시와 양이잔 등의 고급의 특수기종과 품질ㆍ수량ㆍ번조방법 등 동일한 양상으로 제작되어 이들의 관계를 통해 고족배의 성격과 조형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 가운데 전접시는 양이잔의 잔받침으로 쓰였는데, 고족배와 동반출토 상황을 살펴본 결과 양이잔이나 화형잔 뿐 아니라 고족배의 잔받침으로도 쓰였을 가능성을 추측해 볼 수 있었다. 소비유적에서는 단일성격의 유적으로는 사찰유적이 가장 많이 확인되어 사찰에서 사용된 飮用器의 하나로 그 용도를 추정해 볼 수 있다. 이어서 생산 및 소비유적에서 출토된 고족배 367점을 대상으로 기형과 장식의 양상을 분석하였다. 고족배는 杯와 다리를 따로 만들어 접합하여 제작하였기 때문에 杯와 다리 각각의 형태변화와 장식의 양상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최종 소비자는 完形의 상태를 사용하기 때문에 장식의 양상을 통해 杯와 다리의 각각이 어떠한 조합 규칙을 가지는지 살펴보았다. 杯는 구연부와 동체부로 나누어지고 구연부는 외반하는 구연부(Ⅰ형식)와 내만하는 구연부(Ⅱ형식)로 나눌 수 있다. 외반하는 구연부를 가진 고족배는 다시 동체하부가 양감을 가지고 둔중하게 올라가는 형태(Ⅰ-(1)형식)와 동체하부가 사선으로 올라가는 형태(Ⅰ-(2)형식)로 나누어진다. 그러나 내만하는 구연부를 가진 고족배는 1점밖에 보이지 않아 杯는 거의 대부분 구연이 외반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杯는 瓷器群에 따라 형태의 변화가 나타난다. 먼저 청자 및 분청자 杯는 일부 생산유적에서는 두 형태가 함께 제작되기도 하지만 대부분 Ⅰ-(1)형식에서 Ⅰ-(2)형식으로 변화가 나타나며, 백자 杯는 청자 및 분청자 杯와는 반대로 Ⅰ-(2)형식에서 Ⅰ-(1)형식으로 형태적 변화가 생겼다. 즉 杯는 Ⅰ-(1)→Ⅰ-(2)→Ⅰ-(1)형식의 순서로 瓷器群의 변화와 함께 시간적 추이를 보이며, Ⅰ-(1)형식은 각 瓷器群에서 가장 많은 수량이 확인되어 중심 형식임을 알 수 있다. 杯와 조합을 이루는 다리의 형태는 나팔형(A형식)과 원통형(B형식)의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데, 나팔형은 다시 저부까지 꺾임 없이 벌어지는 형태(A-(a)형식)와 저부에서 한 번 꺾이는 형태(A-(b))로 나눌 수 있다. 다리의 경우 杯와 같이 시간적 순서를 보인다기보다는 모든 瓷器群에서 A-(a)형식이 가장 많이 제작되고 있어 중심 형식임을 알 수 있다. 이 가운데 원통형의 백자 다리는 적지 않은 수량이 확인되는데, 이는 관요에서도 왕실용 백자를 제작한 곳을 중심으로 제작된 것으로, 백자 杯 Ⅰ-(1)형식과 조합을 이루면서 관요에서 제작된 중심 형식으로 생각된다. 다음으로 고족배에 시문된 기법과 문양은 대부분 청자 및 분청자에서 확인되며, 지역적인 차이가 나타났다. 기법은 음각, 상감, 인화-상감, 귀얄-철화, 조화, 덤벙기법 등 청자 및 분청자의 모든 기법이 확인되었으며, 각 기법에 따라 시문되는 문양의 종류가 다르게 나타났다. 이 가운데 고족배에 가장 많이 나타나는 기법인 상감기법, 인화-상감기법, 귀얄-철화기법의 杯와 다리의 양상은 다음과 같다. 먼저 상감기법은 고려 후기에 제작된 상감청자고족배에서 중심기법으로 시문되면서 운학문, 운봉문, 국화문, 보상당초문 등이 시문되었다. 인화-상감기법은 조선 전기에 제작된 청자 및 분청자고족배에 시문되었는데, 먼저 인화기법은 중심기법으로 집단인화문과 단독인화문이 조합을 이루면서 杯와 다리에 시문되었으며, 상감기법은 초문, 문양구획선 등 보조기법으로 표현되었다. 귀얄-철화기법은 충남 공주 학봉리 요지에서만 제작되어 지역적 특색이 강하게 나타나며, 초문, 당초문 등의 식물문이 杯에만 시문되어 주목된다. 이와 함께 이들 기법이 시문된 杯와 다리의 조합양상을 살펴본 결과, 고려 후기 상감청자고족배는 杯와 다리 모두 상감기법으로 시문되었고, 귀얄-철화기법은 杯에 철화기법이 시문될 때 다리는 항상 귀얄기법으로 나타나고 있어, 기법에 따라 杯와 다리의 조합이 규칙성을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조선 전기의 인화-상감기법의 경우, 杯에는 인화-상감기법이 시문되었지만 다리에는 인화-상감기법과 상감기법이 모두 확인되어 규칙성 보다는 여러 양상이 함께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이상을 종합하여 고려~조선시대에 제작된 고족배는 총 세 시기로 구분되어 그 제작양상을 파악할 수 있었다. Ⅰ期는 14세기 전반에서 후반이다. 元代 용천요의 元代 中期에서 末期 층위에서 제작된 청자고족배와 유사한 형태로 제작되었다. 장식기법에서는 간지명 상감청자가 제작되기 시작하면서부터 나타나는 양상아 조선시대에 제작되는 청자 및 분청자고족배로 이어진다. Ⅱ期는 14세기 말에서 15세기 중반이다. 고려 후기 상감청자에서 조선 초의 청자 및 분청자로 제작 양상이 넘어가는 단계로, 지역적 특색을 보이면서 제작되었으며, 공납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경기도 광주 지역에서는 관요가 설치되기 전인 15세기 전반에 우산리 17호와 건업리 2호에서 백자고족배를 제작하기 시작하였다. Ⅲ期는 15세기 중ㆍ후반에서 17세기 중반으로, Ⅱ期와는 관요의 설치를 기점으로 구분된다. 관요가 설치되면서 백자는 15세기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그 제작이 증가하게 되며, 지방에서는 청자 및 분청자에서 백자로 제작 양상이 이행해 가는 가마터에서 청자 및 분청자고족배와 백자고족배를 제작하였다. 마지막으로 고족배의 성격과 의의는 첫째, 고족배가 집중적으로 제작되던 15세기 전반~16세기 전반은 공납제가 시행되면서 자기가 각 지방의 현물세로 편재된 시기이다. 따라서 고족배 역시 각 지역의 청자 및 분청자 가마터에서 제작되어 공납되는 物目에 포함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둘째, 생산 및 소비유적의 출토양상을 통해 고족배의 지속적인 수요와 용례를 추정할 수 있다. 이는 왕실과 사찰에서 의례에 사용되는 飮用器의 하나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의례기의 하나인 고족배는 형태변화가 거의 없다는 점에서 의례기가 가지는 특수성과 보수성을 모두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이로써 지금까지 고려~조선시대(14~17세기)에 제작된 고족배의 용어, 용례, 수용, 양식적 특징을 통해 고족배의 양식변천과 성격 및 의의를 파악하고자 하였다.;This sutdy will attempt to investigate a Korean pottery which first appeared in the latter Goryeo dynasty and consistently produced throughout the Joseon dynasty known as the Gojeokbae(高足杯, Stem cup), by examining the terminology and use as well as its general domestic acceptance. I will also attempt to identify the transitions in form, character, and significance of the Gojeokbae by organizing the patterns of production and consumption, and analyzing the abnormalities and decorations used. The Gojeokbae consists of an abnormal form where a long stem is attached to a porcelain bowl and although there is no confirmed mention of the Gojeokbae in either terminology or use domestically, through Chinese historical records there is evidence of the awareness of its physical characteristics since the Tang(唐)~Song(宋) dynasties. The Gojeokbae was referred to as the “Go-jeok” (the Chinese characters for high and foot), Gokakbae (高脚杯), Gojeokwan(高足碗), Gojeoljan(高足盞), Pabae(把杯), Gu(甌) among other various terms. Also, its use in tombs as burial items has been verified through excavation of gravesites since the Nam-jo(南朝) and Buk-jae(北齊) dynasties, and records indicate their use as teacups and wine glasses. The Gojeokbae which first appeared in the latter Goryeo period is presumed to have been produced using an imported model from the Yuan(元) dynasty through direct exchange between the Yuan imperial family and the Goryeo royal family after a historical period of Yuan intervention in Goryeo affairs. Domestically produced Gojeokbae were consistently manufactured as celadons, Buncheong ware Kilns and Porcelains, and its excavation from ruins of various characteristics to include dwellings, buildings, temples, and tombs all support this fact. Particularly, Gojeokbae excavated from production sites showed evident changes in its characteristics and form when compared with accompanying Jeon-Plate(전楪匙) and Yang-ijan(兩耳盞, 양이잔) and the identically exquisite form, quality, quantity, and kiln techniques used in the manufacturing process. Of the aforementioned porcelain items the Jeon-Plate was used as a plate on which the Yang-ijan(兩耳盞, 양이잔) was set upon, but there is a possibility of its use as a plate for the Hwa-hyoungjan (花形盞 ,화형잔) as well as the Gojeokbae. I have analyzed the form and decorations used in the Gojeokbae, using 367 vessels as subjects. Since the Gojeokbae is actually produced separately as the cup portion and the stem portion which are then connected together, I have examined them separately. However, since the consumer only used the final connected form, I have strived to comprehend the combined relationship through the decorations aspect. The cup portion shows distinct physical change depending on the porcelain group it belongs to. First, the celadon and Buncheong ware Kiln cups are sometimes shown to have been produced simultaneously but a shift in the production of form I-(1) to I-(2) is more common in partial remain sites, and the porcelain form shows a alteration in form in the opposite sequence to the celadon and Buncheong ware Kiln form. That is, the cup portion shows a pattern of change in the sequence of I-(1) a I-(2) a I-(1), displaying chronological development with changes that occur in the porcelain group, with the I-(1) form quantitatively superior and thus evidently the central form in each porcelain group. The stem portion connected to the cup can be generally categorized into the Trumpet (A form) or the Cylindrical (B form), but the A-(a) form was mainly produced. Despite this fact, there has been a large quality of cylindrical stems discovered in central locations within the Joseon loyal Kiln used to produce porcelain for the royal household and is believed to have been the main form in production in the Joseon loyal Kiln, fused with the I-(1) form of the porcelain cup. Subsequently, the decoration techniques and patterns on the Gojoekbae can be most commonly distinguished on the celadon and Buncheong ware Kiln forms and exhibit differences based on geographical location. The Umkak(음각, Intaglio), Sanggam(象嵌, Inlay), Inwha-snaggam(印花-象嵌, Stamped-Inlay), Chulhwa(鐵花, Iron-Brown) techniques have all been confirmed and depending on the technique used the variety of decorative patterns display variation. First, the Inlaid technique is mostly seen in the Inlaid celadon Gojoekbae produced in the latter Goryeo period and shows engravings of Cloud and crane designs, Cloud and phoenix designs, Mums designs, Grass and Gloral designs. The Inwha-snaggam technique was inscribed on the celadon and Buncheong ware Kiln Gojeokbae produced in the early days of the Joseon dynasty, but primarily the Inwha technique was used as the central technique where the collective stamped design and indivisual stamped design combined to form an engraving used on the cup and stem. The Iron-Brown technique was only produced in the Chungnam Gongju Hakbong-ri kiln area and displays distinct regional characteristics and of particular interest is the plant design inscribed on the cup. The inlay technique and the Iron-Brown technique both show regularity and consistency in the combination of the cup and stem. However, in the Inwha-snaggam technique used in the early Joseon period, the cup displays the Inwha-snaggam technique but the stem exhibits both the Inwha-snaggam and the inlay techniques, evidence of the simultaneous production of various forms as opposed to consistently producing one. In summary, the Gojeokbae produced in the Goryeo-Joseon period can be divided into three periods. The first period occurs in the early to late 14thcentury. It was produced in similar form to the celadon Gojeokbae produced in the longquan kiln(龍泉窯) of the Yuan dynasty, particularly during the mid-late Yuan period. In terms of decorative techniques, the appearance following the production of the Celadons Inlaid sexagenary cycle(간지명 상감청자) extends into the Joseon period. The second period occurs from the late 14th century to the mid 15th century. This stage marked a shift in the production aspect from the late-Goryeo Inlaid celadon to the early-Joseon celadon and Buncheong ware Kiln and exhibits regional distinction and the possibility of taxation system. In the Gwangju area of Gyeonggi Province, the porcelain Gojeokbae was produced beginning in the early 15th century at Usan-ri No. 17 and Gunup-ri No. 2 prior to the establishment of the Joseon loyal Kiln in the region. The third period takes place from the mid to late 15th century to the mid 17th century and is distinguished from the second period by the founding of the Joseon loyal Kiln as the starting point. With the establishment of the Joseon loyal Kiln the full-scale production of the porcelain begins to take place and in the countryside the production aspect shifts from the celadon and Buncheong ware Kiln to the porcelain and the same kilns were used to produce the celadon and Buncheong ware Kiln Gojeokbaes as well as the porcelain Gojeokbae. Lastly, there are two points which play a major factor on the the characteristics and significance of the Gojeokbae. First, the first half of the 15th century to the first half of the 16th century, aconcentrated period of Gojeokbae production, also saw the implementation of the taxation system where pottery was subject to regional taxes. Second, we can infer the consistent demand and use of the Gojeokbae by observing production patterns and and excavation aspects from remain sites. One can reason its use as a ceremonial beverage holding vessel in the royal household as well as Buddhist temples. As a ritual item, and noting in particular its minimal change in shape and form, it can be said the Gojeokbae carries both the uniqueness and conservatism of a ritual item. With this, I have attempted to comprehend the change in production aspects, characteristics, and significance of the Gojeokbae, produced in the Goryeo-Joseon period (14th-17th centuries), through its terminology, purpose, importation, and produ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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