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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프랑스 리옹의 민중 일상의 문화

Title
16세기 프랑스 리옹의 민중 일상의 문화
Other Titles
The popular daily culture of the 16th century in Lyon, France
Authors
황인정
Issue Date
2009
Department/Major
대학원 사회생활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dvisors
이종경
Abstract
I don't agree absolutely that all is able to be explained reasonably in history. So I don't claim 16th century popular culture was a cause of French revolution. But I wonder what were continuity and discontinuation specifically between 16C popular culture with French revolution. And I wonder whether was able to explained reasonably between 16C popular culture with French revolution or were able to explained affection relations or etc. Though there were long time as 300 years between 16C with 18C, they were similar as a side "Using scientific thinking". Myung cheol Chu pointed out enlightenment feature and also changing outlook by printing and sailing. Chartier pointed out cultural origin of French revolution. Close relation 'Between 16C popular culture with cultural origin of French revolution' is expected to explain abundantly relation action what historical performer didn't know and meaning. Ho yun Kim said about Jacquerie rising at 1358 "In long point of view it went from Jacquerie rising through 15-17C after 431 years until Bastille." But Hye lyung Lee is more careful about that. Value of 'people' causes are matter of value while we can think like that. 'people' are thought that 'Having no resources' and 'Failed people' and 'Working people' or they are needed people in society. And according to evolutionary theory winner wins loser continually even as time goes by. This story is close to me. And 'Popular culture' is fun. It is expected more plentiful by studying with focus about "16C popular culture - 16C a village France popular daily culture - condition of thinking - " thanks to my limit. And this 16C popular culture studying is worth of widening of cultural origin of "French revolution". This 16C popular culture studying is worth of it as relating cultural condition of "French revolution" to concerning "Revolutionary culture or cultural condition of revolutionary". And it is worth of studying 16C popular culture. Criticism about Marx of Chong young Lee and anthropology of Marx and note of Perry Anderson are similar. It begins from purposes and needs of Chong young Lee, anthropology of Marx, note of Perry Anderson, Frankfurter scule and Haburmas philosophy. This assay form is from Chong young Lee. This assay form is first same thing of popular day custom, second possible thinking according to working class. Third things about 16C stories. it is trying to see 16C popular thinking or condition of thinking composition or that contents. 『Ages of exploration』of Forni said well that mediterranean sea trade become atlantic ocean trade. At 1564 'the black slave buying and selling' begun. Lyon after 1444 experienced Renaissance by nation merits and open door policy. But in late 16C it remains Renaissance by France centralization. In same thing of popular day custom explaining about working and rest or quality of life we saw Da vinci who representative of early France Renaissance artist life. In Montaigne 『Journey diary』taught us mule was mass transit. Miyasita Siro said that those were using till canal. 16C Lyon leader were noble and mayors. At that time University Spreaded in europe. 16C King and queen represented by chart. Duelmen gave 'subject dimension', that most stimulation was from church and stressed past didn't like present. Davis said in France each part villages group of young and not married men roles were changed at non govern theatre and charivary while country were changing to city. Nature and clothes, food, house are affective things to thinkings. Temperature of Lyon represented and Braudel has many points about clothes, food, house not talkatively. Money of at that time, meal is rhythm of day and Lyons wore most black clothes. Emile Zola said clothes ․ food ․ house of people by 『L'Assommoir』 ․ 『Germinal』. Vigarello said thinking of water after 'Black death'. This essay summarized 16C women inner wear, men and women outer wear lines and way of clothes, gloves, many hats, footwear, coats. Wine made not people drunk and good for health. And probably 16C food is "Chicken of Bresse" and "Serbula". 16C poor people could live at hospital of city. Lukacs in 『History and class consciousness』said "class consciousness". Except people who out of system of society or economy perhaps were belongs not to have born knight ․ feudal lords ․ king and wearing a sword nobility. And reason artisan and small trader followed Calvinism was related it. America sociologist Tilly gave increasing 16C France Working class. What did they think do? Who were people? Chartier said 15C already spreaded Printing office quickly from Germany, France and Spain orderly. And europe printing numbers were more twice than europe people numbers. Faulstich guessed literacy was about 10% in each Germany, England, France etc. Even though Febvre said that time is "Age of listening". And Febvre also said there were not Newton, philosophy and there was occult. 'Renaissance' said strongly there is important thing beyond genre. 16C France has more plentiful objects, ways of genre and knowledges than before time. 16C France since Gothic mode kings and nobilities have built Renaissance buildings. Soldiers saw, smelled, touched, listened and tasted living Classicism Italy. Did Italian without Gothic mode talk overstatement? 16C Lyon France people had arts, literature, occult and religions.;필자는 역사에서 모든 것을 원인과 결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견해에 완벽하게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16세기 민중문화가 “프랑스 혁명”의 원인이라는 주장을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16세기 민중문화와 “프랑스 혁명”과 연속 혹은 단절되는 부분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가 궁금하다. 그리고 16세기 민중문화와 “프랑스 혁명”의 원인과 결과로 설명될 수 있는 부분이 있는지 혹은 영향관계로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지 여부가 궁금하다. 16세기에서 18세기 말까지 비록 약 300년의 긴 시간적 간격을 갖고 있지만 “과학적 사고의 이용”이라는 측면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주명철은 계몽주의의 특징을 지적하고 있으며 인쇄술과 항해술이 미친 세계관의 변화를 지적하고 있다. 샤르띠에는 “프랑스 혁명”의 문화적 기원을 지적하고 있다. ‘16세기의 민중문화와 “프랑스 혁명”의 문화적 기원’ 의 긴밀한 관계는 역사적 행위자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행위와 의미의 연관성에서 풍부하게 설명될 것이 기대된다. 김호연은 1358년의 자크리 봉기에 대하여 “긴 안목에서 본다면 자크리로부터의 봉기 노선은 15-17세기를 거쳐 431년 후 바스티유까지 이어져 내려간 것이다”라고 말한다. 반면 이혜령은 더욱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하고 있다. ‘민중’ 을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볼 수도 있다. ‘민중’ 은 ‘자원이 없는 사람들’ 과 ‘실패한 사람들’ 이다. 그리고 ‘민중’ 은 ‘노동을 하는 사람들’ 로 생각할 수 있다. 또한 ‘민중’ 은 사회에서 필요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진화론에 따르면 이기는 자는 지는 자를 시간이 흐르더라도 계속해서 이길 수 있다. 이러한 이야기는 나와 거리가 멀지 않은 이야기이다. 그리고 ‘민중문화’ 는 재미있다. 이러한 근거는 필자의 한계로 인해 16세기 민중문화 ―16세기 프랑스 한 마을 민중 문화―에 대한 집중적인 연구로 설명이 더욱 풍부해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리고 이 16세기 민중문화의 연구는 “프랑스 혁명”의 문화적 기원을 확대할 수 있다는데 가치가 있다. 이 16세기 민중문화의 연구는 “프랑스 혁명”의 문화적 조건과 관련지어 현재에도 “혁명의 문화 혹은 혁명의 문화적 조건”에 대한 고민에 가치가 있다. 그리고 16세기 민중문화에 대한 연구에 가치가 있다. 이종영의 맑스에 대한 비판적 해석과 맑스에 대한 인류학적 해석과 페리 앤더슨의 지적은 부분적으로 동일하다. 이 16세기 민중문화의 연구는 이러한 이종영과 맑스에 대한 인류학적 해석과 페리 앤더슨 그리고 맑스의 철학적 흐름을 잊고 있는 프랑크푸르트 학파와 다시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전통 속에 배치되는 하버마스 철학의 맥락에 따른 목적과 필요성에서 출발하였다. 이 16세기 민중문화는 이종영의 견해를 받아들여 논문의 형식을 구성하였다. 이 논문의 형식은 첫째 민중의 풍속과 일치하는 생각들, 둘째 민중 계급에 따른 가능한 인식들, 셋째 16세기 민중에게 퍼진 이야기들이 그 형식이다. 이러한 작업은 16세기 민중의 생각 혹은 인식의 구성의 조건이자 그 내용을 엿보고자 하는 노력이다. 다니엘라 포르니의 『탐험의 시대』에서는 15세기 전반의 번영하던 지중해 무역이 대서양 무역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잘 보여준다. 1564년 흑인 노예매매가 시작되었다. 리옹은 1444년 이후 특권과 개방정책으로 르네상스를 경험하지만 16세기 말에 프랑스의 중앙집권화로 인해 “르네상스”로서 계속 남아있다. 풍속에 일치하는 생각으로, 노동과 여가 혹은 삶의 질에 대한 설명에서는 프랑스 르네상스 초기 예술가를 대표하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일생을 보았다. 몽테뉴의 『여행 일기』에서는 개인의 이동가능성을 노새 몰이꾼과 파발꾼으로 보여주고 있다. 16세기 리옹의 지도자는 귀족과 시참사의원이었다. 이 시기 대학은 유럽 각지에 흩어져있었다. 16세기 프랑스 왕과 왕비는 도표를 통해 알아보았다. 반 뒬멘은 ‘주관적 층위’ 와 전반적인 자극이 교회로부터 나오며 현대와 다른 과거를 이해할 것을 강조한다. 데이비스는 프랑스 각 지역에서 보이는 비공식적 연극과 샤리바리를 마을에서의 젊고 미혼인 남성들 조직에 대한 군중 축제 역할의 원초적인 할당에서 16세기에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변화를 맞는 도시에서의 변화를 보여준다. 인식에 영향을 미치는 사물들로는 자연과 의․식․주가 있다. 리옹의 기온은 표로서 제시하였고 브로델은 많은 말을 하지 않으면서도 의․식․주에 대해서도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당시의 화폐단위라든가 식사는 하루의 리듬을 결정해준다든가 리옹 사람들은 대부분이 주로 검은 색 옷을 입었다는 것이다. 에밀 졸라 원작 『목로주점』과 『제르미날』에서는 민중의 의․식․주를 잘 보여주고 있다. 비가렐로는 흑사병 이후의 물에 대한 인식을 잘 보여준다. 이 논문에서는 16세기 여자의 내의, 남녀 외의의 형태와 입는 방법, 장갑, 모자, 신발, 코트를 프랑스 포도주는 마셔도 취하지 않고 건강에 좋다는 특징이 있다. 그리고 16세기에도 먹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리옹의 “브레스의 닭”과 “세르불라”가 있다. 16세기에는 집이 없는 부랑자를 위해 시립병원에서 자선이 이루어졌다. 루카치는『역사와 계급의식』에서 “계급의식”을 다루고 있다. 제도에서 혹은 경제에서 소외된 사람들에는 아마도 기사, 제후 그리고 영주와 대검귀족으로 태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속했을 것이다. 그리고 장인과 소상인이 칼뱅을 따랐던 이유도 이와 관계가 있을 것이다. 미국의 사회학자 찰스 틸리는 16세기 프랑스의 프롤레타리아의 증가를 보여 준다. 이들의 가능한 인식은 무엇인가? 이들은 구체적으로 누구인가? 샤르띠에에 의하면 15세기에 이미 독일에서부터 프랑스와 스페인의 순으로 인쇄소의 파급효과가 빠른 속도로 진행된 상황이라고 했다. 그리고 유럽의 인쇄물수는 유럽 인구의 2배 이상을 넘어섰다고 한다. 베르너 파울슈티히는 독일 · 영국 · 프랑스 등 유럽 국가 주민들의 문자 해독률은 10% 안팎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페브르의 말과 같이 그 시대는 “청각의 시대”이기도 했다. 그리고 페브르의 말과 같이 뉴턴이 없었고 철학이 없었고 비학이 있었던 시대였다. ‘르네상스’ 는 장르를 넘어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16세기 프랑스는 이전 시기보다도 훨씬 풍부한 장르의 대상과 방법 그리고 지식을 갖고 있었다. 16세기 프랑스는 고딕양식에 이어 왕과 귀족에 의해 르네상스 건축이 이루어졌다. 군인들은 고전주의가 살아있는 이탈리아를 목격하고 냄새 맡고 만지고 구전을 통해 들었으며 맛보았다. 고딕양식이 없던 이탈리아인들이 르네상스를 과장한 측면이 있는가? 16세기 프랑스 리옹 민중은 미술과 문학과 비학 그리고 종교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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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대학원 > 사회과교육학과 > Theses_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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