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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제례악의 악보 및 음악 변천에 관한 연구

Title
종묘제례악의 악보 및 음악 변천에 관한 연구
Other Titles
A Study on Jongmyojeryak: Focused on music scores and recorded materials
Authors
양경숙
Issue Date
2009
Department/Major
대학원 음악학부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Doctor
Advisors
조운조
Abstract
본 논문에서는 종묘제례악을 중심으로 먼저 종묘제례악의 역사적 변천과 의식절차를 알아보고 종묘제례악이 수록된 최초의 악보『세종실록악보』부터 현행까지의 기보법의 변화를 시대별로 분류하여 살펴보았다. 아울러 1928년도에 녹음된 <아악정수>를 기점으로 현재까지 기록된 음원을 찾아서 채보하여 음악적인 변화에 관한 비교를 하였으며 각 음원과 동 시대에 출간된 악보와의 관계를 규명 하였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첫째, 종묘제례악은 세종31년에 회례악무로 창제 되었고 약간의 개정을 거쳐 세조10년(1464)년 이후로 종묘제례악으로 사용되었다. 이처럼 세조대에 개작되어 제향음악으로 채택된 보태평과 정대업은 이후 500년이 넘는 역사를 거치며 오늘에 이르고 있는 음악인데 병자호란 등의 전란이 있은 후 수 년여 동안 연주를 못하기도 하고 일무나 악장의 가사, 또는 악기편성 등의 변화가 있었다. 그러나 영조 41(1765)년에 신제악장을 보태평이나 정대업에 추가 하지 않도록 결정함에 따라 인조(1623년-1649) 이후 현재 까지 더 변천하지 않고 전승 될 수 있었고 특히 의식절차는 세조때 이후로 현행까지 변함없이 전승되었다. 둘째, 종묘제례악 악보는 『세종실록악보』이후 현행까지 20여종이 넘으며 여러 가지 목적과 필요에 의하여 발간되었는데 악보의 종류는 크게 정간보, 율자보, 오선보의 세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정간보는 32정간의『세종실록』악보부터 『세조실록』악보의 16정간 형태를 거치고 1978년 국립국악고등학교 전공교재에서부터 현행의 20정간 1각의 형태로 정착되었으며 15종에 이른다. 율자보는『악장요람』과 『제4회 아악생교과철』, 『국악사 양성소 기악보』,『피리구음 정악보』, 『피리 정악보』의 5종인데 악보의 형태는 서로 다르게 나타난다. 오선보로 기보된 악보는 『아악부오선보』와 『한국음악11집』『한국음악35집』의 3종류인데 『아악부 오선보』와는 다르게 『한국음악11집』『한국음악35집』의 오선보로서의 발간 목적은 국악을 전공하지 않는 일반인이나 서양 및 기타 분야의 음악을 전공하는 사람들에게도 이해가 쉽도록 하자는 취지로 발간되었으며 모두 총보의 형태로 나타난다. 속도 표시는 『세조실록 악보』에 최초로 용강법에 의해 소삭완급(疏數緩急)을 나타낸다는 기록이 있다. 그 이후 조선시대 말기까지 속도의 표기는 나타나지 않았는데 1920년대 악보인 『아악부 오선보』에 구체적으로 1분 50의 속도 표시가 표기되었고 2000년대에 국립국악원에서 발간한 『국악전집 제18집』과『한국음악35집』에는 속도표시가 곡마다 다르게 표기되어 있어서 현행 연주 속도와 같이 정확하고 세밀하게 엮어진 악보로 볼 수 있다. 그 이외에는 모든 악보에 속도표시가 1분 50으로 동일하게 표기 되어 있다. 악곡명은 세조조에 개작 축소된 이후에 인조 때 중광장이 첨가되고 용광과 정명을 합하여 보태평 11곡과 정대업 11곡이 변함없이 조선 말기까지 전래 되었는데 일제강점기에 보태평의 악곡 중 ‘용광정명’의 악곡명이 ‘열광정명’으로 잠시 고쳐졌고 그 이름으로 1970년 말까지 50여년을 사용 하였다. ‘용광정명’으로 다시 기록된 악보는 1980년 국립국악원에서 발간한 정간보 총보『국악전집 八』이다 그러나 같은 시대에 발간된 전공교재들은 그대로 ‘열광정명’으로 악곡명을 사용하다가 2000년대에 이르러서야 ‘용광정명’ 으로 제 이름을 되찾았다. 또 한가지 정대업의 寵緌는 『세조실록 악보』부터 『아악부 오선보』까지는 한자로 기록되어 있고 『국악사 양성소 기악보』에서 부터는 한글명 ‘총유’로 되어 있다가 2000년대에 국립국악원에서 발간된『국악전집 18집』과 『한국음악 제 35집』에는 ‘총수’로 나타난다. 악작(樂作)과 악지(樂止)에 관한 기록은 국립국악원에서 총보의 형태로 발간한 악보에만 표기되어있고 각 악기별 전공교재의 성격을 지닌 악보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전공악기 교재로서의 성격을 가지고 발간되어진 악보 중 피리보는 국립국악고등학교의 『피리정악(정간보)』와『피리구음 정악보(율자보)』,『피리 정악보(율자보)』가 발간되었는데 요즘의 피리 연주자들은 정간보는 사용하지 않고 주로 율자보를 사용하고 있으며 대금보와 해금보는 1979년에 발행된『대금정악』과『해금정악』이후로 현행까지 모두 20정간1각의 정간보를 사용하고 있는데 해금보만 1979년의 『해금정악』이후로도 같은 형태의 악보를 수정 보완하여 2000년대까지 2편이 더 발간되었다. 이와 같이 종묘제례악은 악기별로 다른 형태의 악보를 사용하고 있고 동시대에도 그러한 양상이 혼재되어 있어서 실제 연주되는 음악과는 다르게 해석할 여지가 있다. 셋째, 종묘제례악의 음악적 변화는 전폐희문에서 가장 많이 나타는데 연주 속도는1920년대에 비하여 1990년대 이후에는 많이 느려져서 연주 시간은 3배 정도 늘어나고 요성과 같은 표현이 생겼으며 짧은 장식음으로 나타나던 음이 본 선율로 편입되어 역할이 바뀌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음악적 흐름은 1970년대 이전에는 악장이 주도적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음원이 보이고 있고 1970년대 이후로는 피리가 음악을 주도하는 것으로 각 종 음원에서 보여진다. 보태평 희문부터 역성까지의 11곡은 선율선의 변화는 거의 없으나 집녕과 용광정명, 중광, 역성은 동음진행시에 연주하는 간음의 시가가 짧아지며 80년대 이후부터 박자가 줄어든 부분이 나타난다. 정대업 소무부터 영관까지의 11곡도 선율선의 변화는 거의 없으나 탁정과 신정, 정세도 역시 간음의 변화에 의해 박자가 줄어든 부분이 나타난다. 연주 속도는 시대별로 차이가 있다. 그리고 각 곡목별로 특징적인 속도의 변화도 나타나서 『한국음악제35집』을 제외한 대부분의 악보에 제시되어 있는 1분 50박의 속도로 연주 되어진 것은 나타나지 않는다. 음원을 살펴 본 바에 의하면 1920년대의 <아악정수>의 연주가 1분 50의 속도에 가장 근접하며 1950년대 이후 현행까지의 연주는 1920년대에 비해 대체로 느려졌다. 악작과 악지는 1928년대 <아정수>부터 1974년까지의 음원에서는 경우에 따라 특종과 특경을 사용 하는 등 서로 다른 악기 편성과 불규칙한 연주 형태가 나타나고 있다. 음악을 끝낼 때에도 ‘어’를 연주하지 않았다. 1975년의 연주부터는 현행과 같은 악작과 악지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넷째, 종묘제례악의 악보와 실제음악은 시대별로 각각 다르게 나타나는데 1920년대에 사용했던 악보인 『아악부 오선보』와 동 시대의 음원인 <아악정수>을 채보하여 비교한 결과 <아악정수>에 수록 되어있는 보태평 희문은 현행의 희문이 아닌 전폐희문에 가깝다. <아악정수>의 정대업 독경과 탁정은 같은 부분의 연주도 악기별로 차이가 나타나는데 편경, 편종과 선율악기의 흐름이 구분 된 현행의 연주 형태와는 다르게 선율악기도 서로 다르게 연주 하여서 다소 혼란스러워 연주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이는 보태평, 정대업의 창제당시인 세종 때에 유행하던 무역궁 상조 음악의 영향과 황종궁 악조이론의 혼조 양상이 현행까지 전해 내려온 것으로 보여진다. 1950년대의 『국악사 양성소 기악보』는 간략한 총보의 역할을 하며 편종, 편경의 악보에 타악기의 타점이 표기 되어있고, 관악기 악보로도 사용하였으며 부호로서 관악기의 연주법을 제시하였다. 동시대 음원의 채보악보와 비교하면 동음 진행시의 간음의 출현에 관한 표기를 부호로서 기보하였으며 관악기와 종, 경의 연주법이 다르게 나타나는 정대업의 악보도 역시 부호로 구분하였다. 1970년대의 『한국음악11집』악보는 오선보 총보로 1박 2분법을 기준으로 기보되어있고 실제 연주는 삼분법으로 연주 되었으며 1950년대의 『국악사 양성소 기악보』에서 부호로 나타내던 간음을 실음으로 기보하였다. 그뿐이 아니라 관악기의 악보에 많은 장식음이 기보되어 있어서 실제 연주와는 다르게 나타난다. 2000년대의 『한국음악 35집』은 <한국음악선집 29집>을 채보하여 악보로 간행 한 것으로 오선보 총보이며 1박을 3분법으로 기보하였고 속도표시도 각 곡마다 표기하여 가장 현행의 음악과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연주자들은 오선보 총보인 『한국음악 35집』은 사용 하지 않으며 동시대 발간 악보인 『피리 정악보』와『해금 정악보』는 각각 율자보와 3분식 정간보로 기보 되어있다. 이와 같이 1920년대의 연주와 악보는 서로 일치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악보도 서로 다르게 표기되고 있다. 그러나 1950년대 이후 현행까지의 연주는 변화 없이 대동소이(大同小異) 하다. 이에 비하여 동 시대의 악보들은 악보의 형태가 악기별로도 다르고 속도표시나 선율도 다르게 기보한 부분이 있어서 실제음악과 꼭 일치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종묘제례악의 실제연주나 음원을 접하지 않고 악보들을 악보 자체만으로 해석 할 경우 전혀 다른 방향의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있으므로 악보에 관한 연구는 실제음악과 연관하여 여러 각도의 관점에서 신중하게 접근 하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라고 본다.;In this thesis, focused on Jongmyo Jeryeak(宗廟祭禮樂), Royal Ancestral Ritual Music, I have studied about music books or music scores with various notations. At the same time, with recorded materials, I have compared the music with the books or scores. The results are as follow: First, Jongmyo Jeryeak(宗廟祭禮樂), Royal Ancestral Ritual Music, was initially created in Joseon Dynasty's 4th King, Sejong's reign, for being used in royal palace banquet, and then it was modified as suitable for the ceremony under Sejo's reign, which has been handed down to the present fover 500years. In 16th century, the music had been halted by wars or civil-wars for decades but after the national crisis, fortunately the government decided not to change the procedure of ceremony or the contents of the music so that without large alteration the music and the ceremony could be handed down entirely. Second, from 『Sejosillokakbo(世祖實錄樂譜)』to the present, there are lots of musics books or music score for the music over 500years. and the music was written in various notations like jeongganbo(井間譜), yuljabo(律字譜) and the staff notation. Jeongganbo(井間譜) was created by the King Sejong the Great. Yuljabo was in Koryo(高麗) Dynasty in 12th century and the staff notation was introduced in the early 20th century. Music books written in jeongganbo(井間譜)-notation handed down from 『Sejongsillok(世宗實錄)』 to 『Gukakjeonjip vol.18(國樂全集 第18集)』 by the National Center for the Korean Traditional Performing Arts(NCKTPA) for the people who want to study the traditional music. In Jeongganbo-notation in a row there are 32jeonggans(units) in the reign of King Sejong the Great. And then in the reign of King Sejo there are 16jeonggans(units). Now in a row there are 20jeonggans(units). Yulajabo has no units for beats and only has Chinese character for pitches. Now Yulajbo is handed down in 『akjangyouram(樂章要覽)』, 『Piri Gueum jeongakbo(피리口音正樂譜)』 and 『pirijeongakbo(피리正樂譜)』. The staff notation is shown on 『akakbuoseonbo(雅樂部五線譜)』in 1920s, 『Hangukeumak vol. 11(韓國音樂 11集)』 in 1974 and 『Hangukeumak vol. 35(韓國音樂 35集)』 in 2006. In those music books, there are no signal for tempo. At the music books by the staff notation, there is a signal for tempo in 『akakbu oseonbo(雅樂部五線譜)』, 『Hanguk eumak vol. 11(韓國音樂 11集)』. But in 『Hangukeumak vol. 35(韓國音樂 35集)』 there are many signals for each piece of the music. On the names of each piece, after war against Japanese, in 17th century a song was added to praise King Seonjo(宣祖) named Junggwang(重光) and then yonggwang(龍光) and Jeongmyung(貞明) is united to one song and this piece called Yonggwangjeongmyung(龍光貞明). And on the reign of King Youngjo, the gevernment decided to prohibit any change of the songs and procedure of ceremony. After that under Japanese colonial period, Japanese government compelled to change the name of Yonggwangjeongmyung(龍光貞明) to Yeolgwangjeongmyung(烈光貞明). In 2000s, after independence of Korea, the name was taking back. It shows cultural invade is not easy to be corrected in a short time. At the 8th piece of Jeongdaeup(定大業), the name is ‘寵緌’. Its name is confused by NCKTPA because of 『Gangheejajeon(康熙字典)』 by Chinese in 18th century. In this Chinese- Korean Dictionary it is pronounced 'Chonsoo' but old dictionaries 『Yoohap(類合)』 or 『Sinjeungyoohap(新增類合)』 by Korean scholar in 16th century it is pronounced 'Chongyoo'. The pronunciation is a matter of choice. But I think the tradition of pronunciation is more important than the dictionary by Chinese At the start and ending of the music, the documentation about start and ending is not revealed before 『Hangukeumak vol. 11(韓國音樂 11集)』 and 『Gukakjeonjip vol. 8(國樂全集 八)』. As notioned above, there are mixed notation by needs in the books. So mixed contents could make difficulties for people who is analyzing the music. Third, at the change about music, extreme change is shown at Jeonpyeheuimoon(奠幣熙文). In the changes of times, tempo of Jeonpyeheuimoon is quite slowed by three times over. In 1920s it took only 1 minute 30seconds but in 2006 it took 9minutes long. And ornaments in this piece are enlarged and weave into main melody so the roles of ornaments are changed. Before 1970s, sacred songs are taking main parts for the music but now piri has taken leading role. In 11pieces of Botaepyung(保太平) there are some changes about inserted tone(間音) between the same tones. The inserted tone is shortened in duration on Jipnyunng(輯寧), Yonggwangjeongmyung(龍光貞明), Junggwang(重光) and Yeoksung(繹成). And the same phenomena are shown in 3pieces of Jungdaeup(定大業): Tagjeong(濯征), Singjung(神定) and Jeongse(靖世). Even though these phenomena are shown in some pieces, the main melody line or music skeleton is not changed largely. In general, tempo of the music is slowed as shown in the recorded materials. Fourth, on the comparison the recorded materials with the music books, there are lots of differences. For example, in heuimoon on with 『aakbu oseonbo(雅樂部五線譜)』, Heuimoon in is similar to Jeonpyeheuimoon in the presents because of tempo and by enlarged ornaments. And in Doggyoung(篤慶) and Tagjeong(濯征), there are difference between characters of pitches and real pitches. This differences between character of pitches and real pitch have to be studied furthermore. In 1950s, music book named 『Giakbo(器樂譜)』 has a role for music score of Jongmyojeryeak with percussions like pyunjong(編鐘), pyunggyoung(編磬), drums(鼓), and wind instruments. There are revealed some inserted tones between the same tones connected in a phrase. And in Jeongdaeup, same characters with different pitch are indicated by symbol. In 1970s, on 『Hangukeumak vol 11(韓國音樂 11集)』 by the staff notation, those pieces printed in duple meter but played in triple meter and there are many ornaments for wind instruments but not played at all now. In 2000s, on 『Hangukeumak vol.35(韓國音樂 35集)』 those pieces are written in triple meter and tempos are shown at each piece so this volume is quite similar to music now. But many musicians don't use this volume because they prefer yuljabo or jeongganbo to the staff notation. Instead of the staff notation, the musicians use their own music books for their instruments. And their music books are written in the traditional notation on triple meter. They use music books by the traditional notation like their ancestors. As we can see, Jongmyo Jeryeak - Important Intangible Cultural Properties No. 1 - was selected as 'Masterpieces of the Oral and Intangible Heritage of Humanity', with Jongmyo Jerye, Important Intangible Cultural Properties No. 56. We must preserve this music well and must deliver to our descendants without da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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