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 : 178 Download: 0

1970-80년대 뉴욕 낙서화의 표현 방식에 관한 연구

Title
1970-80년대 뉴욕 낙서화의 표현 방식에 관한 연구
Other Titles
A study on the mode of expression of New York graffiti in the 1970 and 1980s
Authors
최민정
Issue Date
2009
Department/Major
대학원 미술사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dvisors
오진경
Abstract
이 논문은 1970년대에서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뉴욕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낙서화 운동의 표현 방식에 관한 연구이다. 거리의 낙서가 미술 운동으로서 전개되었던 미국 뉴욕의 1970년대와 1980년대를 본격적이고도 넓은 시야로 고찰하기 위해 미술사적, 시대 사회적 배경을 이해하고 낙서화가 지닌 표현의 방식을 크게 두 개의 영역, 행위와 조형 요소로 나누어 그 특성을 파악해 보았다. 이를 통해 뉴욕의 낙서화가 단순히 언더그라운드 문화의 부산물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시대의 산물로서 사회 비주류의 목소리를 대변하였다는 점을 밝히고자 한다. 낙서는 인간의 표현 본능이 외부로 발현된 가장 단순하고도 자유로운 형식이다. 인류의 역사 이래로, 인간이 거주하는 어느 곳에든 낙서가 남겨졌다. 뉴욕이 오늘날 낙서화 운동의 발생지로 간주되는 것은 이전과는 달리, 뉴욕의 낙서화가들이 낙서(write)의 개념에서 탈피, 스스로를 예술가(graffiti artist)로 여겼기 때문이다. 도시 외곽 지역의 빈민층 출신이 대부분이었던 뉴욕의 낙서화가에게 낙서란 이들이 품은 예술적 열망의 유일한 표현 수단이었다. 이 가운데 키스 해링(Keith Haring)이나 쟝-미셸 바스키아(Jean-Michel Basquiat) 등은 스타급 미술가들로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덕분에, 1990년대 후반부터 뉴욕의 낙서화 운동은 현대 미술사의 중요한 경향으로 국내외 학계에서 주목을 받았다. 대부분의 미술사 연구는 이 두 작가에게 수렴하는 양상을 보인다. 본 논문은 작가론의 일부로 논의되어 온 뉴욕의 낙서화를 다시, 보다 포괄적이고도 종합적인 시각에서 바라보고 이해하고자 햇다. 그리하여 본 연구에서는 뉴욕의 낙서화 운동을 불러 일으키는데 선구적인 역할을 하였던 타키183(Taki 183)의 낙서와 그에 대한 1971년 뉴욕 타임즈의 보도를 기점으로 삼아, 낙서화 전성기였던 향후 20여 년을 살펴보고 있다. 거리의 낙서화와 제도권의 낙서화를 구분하지 않고 통합적인 범위 안에서 살피면서, 1970-80년대 뉴욕의 낙서화가 지녔던 중심적인 특성으로, 그것이 사회적인 컨텍스트 속에서 표현의 수단으로써 어떠한 역할을 하고 있는가를 논의해 본다. 즉, 낙서화가들이 사회적 소통과 상호 작용을 꾀한 수단으로 낙서화를 활용했다고 보고, 첫째, 낙서 행위라는 과정과 둘째, 문자와 이미지라는 낙서 행위의 결과, 다시 말해 조형적 요소로 구분하여 각각을 면밀히 살핌으로써 낙서화가들의 표현 방식과 그 방식을 통해 낙서화가들이 어떠한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는지를 파악해 본 것이다. Ⅱ장에서는 낙서화가 취한 표현 방식에 대하여 구체적인 연구에 들어가기에 앞서 1970-80년대 미술로서의 낙서화가 등장했던 미술사적, 사회적 배경이 제시된다. 1절은 미술사 속에서 낙서가 어떠한 형태로 존재해 왔는지 밝히는 과정으로 낙서화가 조형적으로든, 의미적인 측면에서든 자유로운 표현이 기본적인 속성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2절에서는 당대 미국의 정치, 사회적인 상황을 제시함으로써 낙서화가들에게 표현의 자유를 자극했던 미국 사회 전반의 진보주의적 정황들이 제시된다. 이러한 문화적 배경은 미술계에 있어서도 다원적인 경향의 이스트빌리지 미술(East Village art)을 탄생시켰으며, 대중적인 낙서화가 꽃필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Ⅲ장과 Ⅳ장은 앞장에서의 고찰을 바탕으로 뉴욕의 낙서화가 어떠한 방식으로 관객과 예술가 그리고 그들의 사회와 관련을 맺으며 소통하였는지를 파악하는 본격적인 논의의 장이다. 연구자는 낙서화의 의미 전달이 일어나는 중요한 시발점으로 낙서화에 두드러지는 ‘행위’의 특성에 주목하였다. 낙서화의 행위는 상반된 두 개의 성격, 공격적인 행위와 무의식에서 나오는 자율적인 그리기 행위를 동시에 지니고 있었다. 공격적인 낙서 행위는 반제도적, 반체제적인 낙서화가들의 의사를 계급을 뛰어 넘어 표현할 수 있는 제스쳐였다. 사회적인 기능을 지닌 공격적 낙서 행위에 비해, 후자의 행위는 아주 개인적이고 심리적인 자기고백적 표현이다. 그 다음으로 본 연구는, 행위의 결과로 화면 상에 표출된 조형적 요소들을 살펴 보았다. 그 중에서도 문자를 먼저 논의하였는데, 낙서화가들은 이름, 서명 등의 형태로 문자를 활용하였고, 이렇게 고유 명사로 사용된 단어들은 본래의 의미는 상실하고, 낙서화가의 아이덴티티를 강화하는 표현적 심벌로 기능한다. 아울러 이는 낙서화가라는 동질 집단의 유대감을 고취시키며 집단 내에서 교류와 소통을 가능케 한 매개였음을 밝히기도 했다. 낙서화가들은 대중들이 이해하기 쉬운 도상들을 사회 현실을 반영하는 매개로 활용함으로써 폭넓고도 즉각적인 표현의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 대중문화의 아이콘이나 영웅 캐릭터 등은, 소외 계층이었던 낙서화가들이 마주한 사회적 현실과 그들이 세상에 대해 지녔던 비판적 태도가 반영된 결과이다. 종합적으로 낙서화의 이미지를 살펴 보았을 때, 이는 주류 사회에 대항하는 낙서화가들의 반항의 표현이자, 주류 사회가 가하는 사회적 압력 등 그들이 처한 현실을 반영하는 상징적 언어였음을 알 수 있다. 낙서화는 낙서 행위와 조형 요소를 통해 다양한 표현 방식으로, 여러 종류의 메시지를 발산하며 소통과 교류, 이해를 시도한 예술이었다. 낙서화가들은 낙서화를 통해 개인과 개인 사이의 거리를 좁히고 나아가 계층과 성, 인종 간의 간극을 극복하고자 했다. 낙서화가들은 사회나 제도가 가하는 여러 압력에도 불구하고 각종 사회적 장벽에 비판적인 목소리와 저항적인 제스쳐를 보냈다. 사회의 여러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교류하며 궁극적으로 소통을 이루고자 했다는 데서 뉴욕 낙서화 운동이 지닌 의의를 다시 한 번 확인해 볼 수 있다.;This thesis will probe into the forms of graffiti expression art that progressed from New York in 1970s to 1980s. The street scribbling and doodling, developed into an art movement, ought to be interpreted from an extensive range of angles, for which one must consider twofold: the historical and contemporary social background; and investigate separately the act of graffiti per se and formative elements. It will be argued that this form of art does not remain in the realm of underground as a spin-off epiphenomenon, but in fact is born because of generational properties of society, and augmented the unheard voices. Graffiti is the simplest form of expression that we reveal through instinctive behaviors. There have always been traces of graffiti wherever humans inhabited. New York graffitists are nowadays regarded as artists, having eventually got them out of the old notion of considering graffiti as a form of writing, and this shift in paradigm explains why New York is thought to be a birthplace of the graffiti movement. Looking at the aspects of slum village that provided residential bases for the needy slum warreners, graffiti was the almost exclusive way of expressing their artistic aspiration. Amongst those who took serious interests in the art, Keith Haring and Jean-Michel Basquiat emerged as widely popular. All the pertinent trends attracted the attention from art historians and critics who started considering graffiti to be more important. The majority of the inquiries, however, tended to be focused on these two graffiti artists. What this essay has to offer to the stock is the guidance to approach the matter of New York graffiti from different temporal, social perspectives in order to expand the understanding to aspects more synthetic and generally comprehensive, unlike in the past when only a handful of artists laid out few discourses. The starting point of my discussion will feature a 1973 New York Times article that dealt with a prominent graffiti artist from the city named Taki183, a vanguard of graffiti movement in New York and its prosperity for the next 20 years. The discussion takes place within the non-separated integrated scope of street graffiti and institutional graffiti of certain regimes, asking questions such as what sort of function were the peculiar quality of New York graffitists subject to amid the social context of 1970s-80s. In other words, assuming that the artists considered graffiti a key tool for communication with the rest of society and mutual working realm, there are two different identities of graffiti: one is ‘graffiti as course of action’; and the other is the resulting ‘phrases and images as formative elements’. These aspects shall be accountable for my objective which is to understand how the artists used certain mode of expression to convey particular sorts of message. The second chapter will give, prior to entering specific noting of means by which graffiti abode different social background stories from the 70s and 80s that turned graffiti into art. In explaining the existence of graffiti within art history, the first of the chapter will affirm that graffiti, no matter how it is presented, has as an intrinsic attribute the ‘freedom of expression, whether formatively or semantically. The second section will analyze the attitude of American general public that triggered the sublimation of their aspirations into enacting by looking at the socio-political circumstances. This setting of social background enabled the birth of the pluralistic East Village art and prosperity among the populace. Based heavily on the contemplations of the previous two, the third and fourth will kick off the most lively and important part discussing how the artists have built mutual understanding with the followers in New York. I took a special note of ‘action’ which was the starting point of deliverance of meanings. This meant that graffiti contained both a character that originates from violent philosophies and that of freedom of art that grow from unconscious awareness. But here the former manifested as the gesture against the established institutionalism and regimes, surpassing the issue of social class. The latter however a self-confession that is personal and very psychological. Next, this thesis dealt with formative measures put into place as a result of the ‘action’. Among them were phrases which lent a hand in enabling the artists to bolster their identities by adopting altered meanings as symbol of expression to certain proper noun. The graffiti artists could maintain close collective ties with each other having had adopted the same broad, instantaneous modus operandi. They used easy subjects for the audience to understand, so that they were able to get their messages across. The paradoxical sphere of their arguments on their work also contains the resource for opposition to the mainstream culture and influences, rendering their work symbolic language. Graffiti is an art that spared no participants in communicating, interchanging and understanding via multifarious types of messages in forms of varied modes of expression. This then left the participants less distanced from each other, and in some part, from different class, gender and race. Despite the conscious and unconscious pressure from institutionalized environment or society, they carried out their honest gestures onto the barrier. The significance of this paper lies in highlighting the intention of artists who genuinely believed in an ultimate communicative role between different people in one society, while bucking the trend to go upstream against the mainstream.
Fulltext
Show the fulltext
Appears in Collections:
일반대학원 > 미술사학과 > Theses_Master
Files in This Item:
There are no files associated with this item.
Export
RIS (EndNote)
XLS (Excel)
XML


qrcode

Items in DSpace are protected by copyright, with all rights reserved, unless otherwise indicated.

BROW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