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퓌비 드 샤반느(Puvis de Chavannes)의 벽화작품에 나타나는 근대적 민족 정신

Title
퓌비 드 샤반느(Puvis de Chavannes)의 벽화작품에 나타나는 근대적 민족 정신
Authors
한계원
Issue Date
2000
Department/Major
대학원 미술사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bstract
본 논문은 피에르 세실 퓌비 드 샤반느(Pierre-Cecile Puris de Chavennes, 1824-1898)의 벽화 작품에서 보이는 근대적 민족정신에 대한 연구이다. 퓌비 드 샤반느는 19세기 후반기 동안 독자적인 양식을 구축하면서 벽화가로서 성공한 인물이었다. 그의 명성과 성공은 세기말에 오면 아방가르드와 보수주의자 양진영 모두에게서 인정받게 되었다. 그 이유를 두 가지로 제한할 수 있다. 먼저, 그의 중립적인 양식 즉, 고전주의적 전통과 장식으로 이르는 혁신적인 형식 실험의 결합은 양진영의 미학과 방향을 같이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그의 작품에 나타나는 근대적 민족정신의 구현이 당시 정치․사회․문화적으로 혼란기를 겪고 있었던 프랑스의 시대적 요구와 일치하였기 때문이다. 본 논문은 그린버그의 이분적인 모더니즘 미술사속에서 배제되었던 퓌비의 위치를 19세기 후반의 사회적․미학적 상황 속에서 점검하면서, 그가 국민화가로서 평가받을 수 있었던 이유를 그의 벽화작품을 통해 밝히고자 한다. 근대 유럽사회는 기독교에 의해 단결된 종교적 공동체가 아닌 민족이라는 새로운 공동체에 의해 유지되었다. 민족이란 이성과 합리주의에 의해 무너진 종교적 공동체 개념을 대신할 새로운 정치적 정체성 요구에서 발생한 것이었다. 특히, 근대화 혁명을 이끈 프랑스에서 민족이란 자국의 통합과 결속을 위한 구원책일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민족에게 자유를 제시할 조국의 구성원이었던 것이다. 민족주의가 팽배했던 프랑스 19세기 후반기에 벽화는 이러한 민족주의를 전달하는 시각적 도구로서 채택되었다. 그리하여 19세기 전반기에 주춤하였던 벽화작업은 정부의 벽화장식 프로젝트에 의해 후반기에 오면 활성화되었다. 퓌비는 정부의 벽화장식 프로젝트에 가장 활발히 참여했던 벽화가로서 그의 벽화는 19세기 벽화미학을 수용해 발전시킨 것이었다. 그의 벽화 미학은 벽화는 건축에 종속되어야 한다는 것을 기본으로 하는 것으로써, 이는 자연스럽게 그의 벽화를 추상적 성격으로 규정지을 수 있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는 19세기 모더니즘 형성에 중심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퓌비는 근대 민족 국가의 번영과 유지를 위한 국가적․도덕적 가치들을 벽화에 담고자 하였다. 그는 새로운 가부장제의 개념을 벽화의 안정되고 장식적인 공간속에 구현하면서 그것을 자유 민주주의적 근대 사회 유지에 가장 기본적인 제도로서 제시하고 있다. 그는 이성과 합리주의라는 근대사회의 이념 또한 공적 소통이 이루어지는 벽화에서 구현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주제는 벽화의 장식미학이 주는 심리적 거리감에 의해 더욱 성공적으로 전달되게 되었다. 이러한 시도들은 근대화과정이면에 타락하고 부패하고 있던 조국 프랑스 정체성을 재정립하려는 국가의 정책과 맞닿아 있는 것이었다. 또한 그는 1870년의 프랑코-프러시안 전쟁의 패배로 부각되었던 민족주의․애국주의를 민족에게 주입시키고, 조국 프랑스가 나아가야 할 이상적 모습을 벽화를 통해 제시하고자 하였다. 1870년의 전쟁은 퓌비로 하여금 새로운 현대적 알레고리를 창조하게 하는 원인을 제공하였다. 그는 이젤화와 벽화에서 전쟁을 암시하는 알레고리나, 민족의 역사와 전설을 알레고리화 하여 관자에게 민족적 감성을 주입시키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의 알레고리는 관습적인 기호가 아닌 상징주의와의 접점에 위치한 것으로, 그는 이 근대적인 형식을 통해 시대적 요구를 은유적으로 나타내었던 것이다. 전쟁 후 그는 아르카디아적인 이미지를 벽화에 더욱더 많이 담아내었다. 그는 이젤화와 캐리커춰 등에서 보여주는 멜랑콜리한 분위기나 잔인한 풍자화는 확연이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이었다. 사적인 매체를 통해 그가 데카당한 세기말의 상황을 표현하였다면, 공적 매체인 벽화에서 그는 근대적 민족국가인 프랑스의 이상적인 모습을 제시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그의 아르카디아 즉, 이상적 조국의 이미지는 과거와 단절하고 현재를 전복하려는 의지를 구현한 것도 아니며 세기말에 유행했던 현실도피적인 낙원의 모습도 아니었다. 그가 그리고자 한 아르카디아는 조국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가 연결되는 민족의 이상향이자, 세파에 지친 민족에게 휴식을 제공하는 장소였던 것이다. 본 연구는 이상의 이미지들을 통해서 퓌비가 근대적 민족정신을 벽화에 구현하고자 하였다고 주장하고자 한다. 이러한 연구가 불완전한 모더니즘 미술사속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퓌비의 위치를 형식적인 측면 뿐 아니라 19세기에 팽배했던 민족주의와의 관계 속에서 재정립하는 기회가 되었으리라 기대해 본다.;This thesis explores the modern national spirit shown in the mural of Pierre-Cecile Puvis Chavannes(1824-1898). Puvis de Chavannes was a successful muralist who achieved an unique style during the second half of nineteenth century. In fin-de-siècle, both the avangarde and the conservatives acclaimed his reputation and success. There were two main reasons of that fact. First of all, his neutral style which combined the classical tradition with the innovative formal experiments represented the aesthetics and tendencies of the both camp. Secondly, that Puvis realized the modern national spirit in his murals was in accord with the requirement of the times which was in political and cultural chaos in France. This thesis intends to examine the post of Puvis which has been excluded within the dichotomy of Greenbergarian Modernism in social and aesthetical conditions. Besides that this thesis intends to prove the reason why Puvis was esteemed as a national painter reading his murals. The modern European societies were maintained not by the Christian community but by the new community, that is"nation". The Nation replaced the religious community collapsed by reason and the rationalism as the new political identity. Especially, in France where the Revolution occurred, the nation was not only the patrie to give other nations the liberty. In the second half of the 19c France when the nationalism was diffused, the mural was the visual tool to convey this nationalism. Therefore, mural works reduced in early 19c was activated by the mural projects in the second half of 19c. Puvis participated in the mural decoration project of the government vigorously and his mural painting was the one that received and developed the 19c mural aesthetic. His mural aesthetic had the basic rule that a mural painting had to depended on an architecture. This made his mural painting be characterized by the abstract and played an important role of formation of modernism in 19c. In this situation, Puvis wanted to represent national and moral values to support and flourish a modern nation-state. He embodied new concept of the patriarchy in a stable and decorative space and suggested that the concept should be the most fundamental institution to support a liberal and democratic modern society. He also wanted to represent the idea of modern society, that is, reason and the rationalism in mural public communication took place. The psychological distance which his mural aesthetic gave helped these subjects to be communicated successfully. His works coincided with the national policy to rebuild the identity of France which had been corrupted and decadent in modernization. Moreover, he tried to instill nationalism and patriotism stressed by the defeat in the Franco-Prussian war into the nation and to show the idealistic model that France should take in the future. The Franco-Prussian war in 1870's caused him to create a new modern allegory. He allegorized the war or the history and legend of the nation in order to instill the national sentiment into a viewer. His allegory was not a conventional sign, but shared common boundary with Symbolism. For this modern form represented he the need of the times metaphorically. After the war, he painted the Arcadian image more than ever. This image differed from the melancholy in his easel paintings and the cruel satire in his caricatures. Namely, he tried express the decadence in fin-de- siècle by the private medium and to suggest idealistic image of France, the modern nation-state. His Arcadia, the idealistic image of the patrie was neither an escapist paradise spreaded in fin-de-siècle nor a representation of the overthrow of current government. The Arcadia which he wanted to paint was the national Golden Age which was connected with the national past, present, future and the place which offered the rest to the nation who suffered from a rough life. This thesis proposes that Puvis embodied the modern national spirits by his mural paintings. I expect that this research would help Puvis's post to be re-located in incomplete Modernism and the nationalism in 19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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