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眉巖 柳希春의 日記文學 연구

Title
眉巖 柳希春의 日記文學 연구
Other Titles
A Study on Jounal Literature of Mi-Am Yu Hi-Chun
Authors
이연순
Issue Date
2009
Department/Major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Doctor
Advisors
정하영
Abstract
본고는 16세기 문인인 眉巖 柳希春(1513 중종8~1577 선조5년)의 日記文學에 대해 고찰하고 그 문학사적 의의를 밝히기 위해 시도되었다. 日記는 ‘記’의 한 양식으로서, 한국문학사에서 일기문학은 조선 후기에 더욱 다양하게 나타났다. 그러나 조선 전기에도 주목할 만한 작품이 저술되어 16세기에는 ‘일기문학의 번성기’라 칭해질 정도로 많은 작품이 나와, 그 시기 작품에 일정한 의의를 부여하게 된다. 16세기를 살았던 미암 유희춘은 죽기 전 10동안의 일기를 기록해 『미암일기』를 남겼고, 이에 당대 일기문학이 성행한 경향과 관련하여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 본고의 관점이다. 미암은 1513년 海南에서 출생하여 『漂海錄』의 저자인 외조부 崔溥에게서 家學을 전수받고 金仁厚, 奇大升과 교유한 호남사림이다. 또한 을사사화로 인해 종성에 유배되어 19년간을 보내고, 선조 즉위와 함께 해배되어 조정에 불리어 가 경연에서 활동한 을사사림의 한 사람이다. 그리고 을사사화로 인한 유배에서 풀려나 죽기 전까지 10년간 『미암일기』를 기록하여 남겼다. 이에 미암의 일기문학을 본격적으로 살피기에 앞서 Ⅱ장에서 『미암일기』의 저술 배경을 먼저 살펴보았다. 당대 미암의 일기가 나온 당시 문학적 상황으로 16세기 일기문학이 성행한 배경을 살피는데, 먼저 일기의 전통과 전개를 살피고, 조선 전기에 士禍와 戰爭 등을 배경으로 일기 기록을 남긴 경향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았다. Ⅲ장에서는 미암의 기록정신과 일기문학을 살펴보았다. 미암의 삶에 대해 수학기와 유배기를 거쳐 해배 후 조정에 등용되기까지 과정을 살펴보고, 그 과정에서 미암이 기록 정신을 보인 면을 밝혔다. 미암의 일기에 대한 인식은 일기에는 밝히지 않았으나 미암이 남긴 저술 가운데 〈漂海錄拔〉과 〈續蒙求題〉등의 여타 文에서 언급하였다. 수양의 방편으로써 기록하려 한 의지는 유배지에서부터 이어온 것으로 삶을 통해 남긴 詩文과 행적을 통해 살펴보았다. 다음 『미암일기』의 내용은 기록 영역을 구분하여 각기 개인적 관심사의 토로, 가족 공동체와 일상의 향유, 그리고 공공적 관심의 기록으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먼저 개인적 관심사의 토로에서는 미암이 관심을 둔 기록의 중요도에 따라 도서 목록과 독서, 내면적 성찰, 건강관리와 병세를 살폈다. 이 가운데 미암의 도서 목록에 대해서는 미암이 소장한 도서를 각각 받은 책, 빌린 책, 베낀 책, 서책장수에게 부탁한 책, 중국으로 가는 사신에게 부탁한 책, 조정에서 頒賜받은 책, 그리고 미암이 보낸 책 목록을 작성하고, 책에 대한 정보를 부기하였다. 이를 통해 독서광이었던 미암이 읽고 간직한 책을 한 눈에 보고 파악할 수 있게 하였다. 내면 고백과 성찰에서는 미암이 혼자 있을 때 스스로를 돌아보고 남긴 언급들과 수양을 중시하며 성찰한 내용을 살펴보았다. 미암은 또한 건강에도 관심이 많아 건강관리를 위해 애썼고, 병의 증세에도 세심하게 기록을 남겨놓았다. 다음 가족 공동체와 일상을 향유한 기록에서는 가족 간에 부인을 비롯해 누이와 여러 친척들과 親和하여 돕고 보살피며, 조상에 지극한 정성을 다하여 제사를 받들고 성묘하거나 가토하는 모습 등에 대해 살폈다. 그리고 주변의 知人들과의 관계에서는 信義를 중시하여 관계한 사례와 의식주를 해결해간 방법과 과정을 살펴보았다. 마지막으로 공공적 관심의 기록에서는 民生과 氣候를 함께 다루었다. 기후가 단지 개인적인 관심의 기록이라기보다는 관인이 국가를 위해 기록했으며, 민생은 미암이 경연에서뿐만 아니라 교류의 사이에도 관심을 드러냈고, 이는 기후와 밀접한 연관 하에서 해석하여 함께 살폈다. 미암의 도서 저술 과정에 관한 기록도 개인적인 기록이라기보다 공공을 위한 기록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미암의 주요한 저술인 『朱子大典語類註解』와 『四書五經』의 吐釋書 등의 저술 과정을 꼼꼼히 기록한 내용에 대해 살펴보았다. Ⅳ장에서는 미암의 일기문학의 문학적 특성과 의의에 대해 서술 방식 상의 특성과 일기문학적 의의를 고찰하였다. 서술 방식상의 특성은 첫째, 객관적 증언과 평가, 둘째, 절제된 표현과 교차적 서술을 들었다. 전자는 다시 당대 사실의 객관적 증언과 人物의 세밀한 觀察과 評價로, 후자는 事實 기록과 感情의 표출의 조화, 과거 回想과 현재 所懷의 교차로 나누어 설명하였다. 일기문학적 의의에서는 미암의 일기가 문집의 초고로 기능하였다는 점과, 公·私 일기의 성격을 공유하고 있는 점을 들었다. 『미암일기초』가 문집인 『미암집』의 초고로 기능한 점에 대해서는 미암의 문집에 수록된 詩文과, 일기에 삽입된 시문을 비교하여 미암의 일기가 시문과 어떠한 점에서 차별되고 의의를 지니는지 밝혔다. 公·私 일기의 성격을 공유하는 점은 미암이 공적인 일뿐만 아니라 주변의 일에 관해 사적으로 기록한 면에서, 公日記에서 벗어나 私日記로 나아가는 조선 후기 일기문학에 끼친 영향을 파악할 수 있다. 이는 미암 바로 다음 대에 임란을 거치면서 나오는 전쟁 관련 일기문학에 반영되어 타난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상 미암의 일기문학에 대한 총체적 연구를 통해 그동안 미암의 연구 가운데 크게 주목되지 못하고 소홀했던 미암의 작가로서 측면과 일기문학의 의의가 밝혀질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This study was attempted to consider a Jounal Literature of Mi-Am Yu Hi-Chun(眉巖 柳希春, 1513~1577) and establish the meaning of a literary history. Mi-Am Yu hi-chun was one of the Honam Sarim(湖南士林) with Ha-Sue Kim In-Hoo(하서 김인후) and Go-Bong Ki Dae-Seuing(고봉 기대승) in 16C. But He was condemned to exile and spend 19 years in Jong-Sung, with enthronement of King Sun-jo, was appointed as a gyeong'yeongwan(經筵官), one of the Eulsa sarim(乙巳士林). Mi-Am(미암)'s learning was appraised a respect of Juja(주자), with propound knowledge. Then he showed the course of Jujahak(주자학)'s internalization at large. And at that time, he publicated Jujaeoryu munjip juhae(주자어류문집주해), which is a match for Toegye(퇴계). But due to the shortage of existing work, the study of his learning was not accomplish in depth. Then this article made clear his learning with Mi-Am ilgi (미암일기), which was written for ten years before he die. Chapter Two looks at the background of Mi-Am ilgi's writing. It discusses the development of Jounal Literature in Chosun, and in the century of sixteenth, prosperity of Jounal Literature under the influence of the calamity of literati and war. Chapter Three looks into Mi-Am's record mind and Jounal Literature. Secondly, about Mi-Am ilgi's subject matter, it discusses self confession, family's everyday life, and the public concern. Mi-Am(미암)'s learning was appraised a respect of Juja(주자), with propound knowledge. Then he showed the course of Jujahak(주자학)'s internalization at large. First, He respected the work of Juja(주자)'s Daehak(大學) revision, and judged the reading of Lee yen-jeok(이언적). Also, he followed the point of Daehak(大學), and value on gungni(窮理). This is the feature contrasted to No Su-Sin(노수신), who value on jonsim(存心). He understood the literature of Juja(주자) in depth, considered the poet Juja(주자) as the next Sigyeong(시경). And he read that the prose of Juja(주자) light Uiri(義理) and is as good as bonui(本義). Then Chilseok(七夕) poetry and Bujagimun(不自棄文) was not Juja(주자)'s work. This is the same view with Ki Dae-Seuing(기대승), Lee Hwang(이황), and show Mi-Am(미암) did not followed Juja(주자) blindly. Chapter Four examine the feature and meaning of Mi-Am ilgi. First, the feature of Mi-Am ilgi is objective record, and strictly appraise about person and event. Secondly, the meaning of Mi-Am ilgi is that it was based on a collection of works, and own public and private Jounal Literature joint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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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대학원 > 국어국문학과 > Theses_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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