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玄川 元重擧의 通信使行錄 硏究

Title
玄川 元重擧의 通信使行錄 硏究
Other Titles
Study on the 'Tongsinsahaenglok' of Hyuncheon Won, Jung-geo : Centering on『Seungsalok』and『Hwagukji』
Authors
박채영
Issue Date
2009
Department/Major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dvisors
정하영
Abstract
본 연구는 현천 원중거(1719~1790)가 남긴 『승사록』과 『화국지』를 대상으로 작가와 그 저작이 갖는 의의를 밝히는 데 목적을 둔다. 본고는 조선 후기의 지식인이었던 원중거가 이국 체험을 함으로써 눈뜨게 된 새로운 인식에 초점을 맞추어 살펴보고, 그가 일본에서 했던 학술적 교류 및 그 일본 관련 지식의 국내 유통 양상을 고찰하고자 한다. 원중거는 1763~1764년에 이루어진 계미년 11차 조선통신사행에서 부사서기 직분을 맡아 일본에 다녀온 인물이다. 원중거는 서얼 출신이기 때문에 그가 45세에 통신사행에 참여한 일은 그의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다. 이 체험을 통해서 원중거는 일본에 관한 정보를 알고 저술을 남길 수 있었으며, 일본 정보 및 지식을 통해 당대 지식인들에게 영향력을 끼칠 수 있었다. 그가 기록한 『승사록』은 일본에 간 여정과 체험, 일본에 대한 자신의 감상 등을 총 1년여의 사행 기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기록한 일기체 기행문이다. 그리고 『화국지』는 그가 직접 확인한 일본에 대한 견문을 기록하고 기왕의 사행록과 비교 대조하면서 일본에 관한 정보 및 지식을 총망라하여 정리한 일본 안내서이다. 원중거는 별도의 문집은 남기지 않았으며, 그의 시는 필담창수집이나 다른 문인들의 문집에 산재해 있다. 『승사록』과 『화국지』에 나타난 원중거의 일본 인식은 이전의 조선인들이 했던 생각과는 다르다. 원중거가 참여했던 계미년 통신사행 이전에 조선에서는 일본에 대해서 일관되게 부정적으로만 생각했다. 한편, 원중거는 일본을 일본 본토와 대마도로 구분하여, 부정적인 인식을 대마도에만 국한시켰다. 이런 시각은 일본인을 파악하는 데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었다. 또한 원중거는 일본의 여러 문물 중에서 도로, 다리, 선박 등에 특히 주목하였는데, 이들은 모두 재화의 원활한 유통과 공급을 뒷받침하는 제도이다. 이는 현천이 조선과 달리 일본의 경제가 상업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깨달았다는 증거이다. 이런 원중거의 시각은 새로운 청나라 문물에 경도되어 국내에 유입하려고 했던 북학파 문인들의 시각에 비견될 만하다. 원중거는 문화교류의 최전선에 해당하는 시문창수의 소임을 맡았으면서도, 다른 동행 문사들보다 열성적으로 학술적 교류에 관심을 보였다. 그는 적극적인 태도와 성실한 겸양의 자세로 당대 일본의 걸출한 지식인들을 만났다. 그는 일본의 학술이 조선과 다름을 인식하기 위해 『조래집』을 구해 읽는 등의 노력을 하며 학자로서 지적인 호기심을 보였다. 그러나 원중거가 일본의 반주자학적 학풍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생각하며 정주학 중심의 사고를 했다는 점은 동시대 문사들의 시각에서 벗어나지 않으며, 오히려 더욱 견고한 양상을 보여준다. 원중거의 두 통신사행록은 통신사행체험 및 일본 관련 지식을 최대한 자세하게 기록으로 남기기 위한 노력의 결과물이다. 원중거는 그러한 자신의 기록태도를 ‘조응’과 ‘핵실’이라는 어휘로 표현했다. 원중거의 기록은 사건을 기술하는 데에 앞뒤가 서로 대응되어 전체적 맥락을 통해 사건 및 사실을 선명하게 드러내며, 핵심적인 사항을 끄집어내어 논증하는 특징을 보여준다. 또한 그의 기록은 그의 신분이나 직분의 한계성에도 불구하고 다각적인 고찰을 바탕으로 통신사행이나 일본 문화 등에 대한 비평을 남기고 있어서 주목된다. 원중거가 『승사록』과 『화국지』를 통해서 생산ㆍ재생산해낸 일본 관련 정보는 현천이 교유하던 이덕무, 유득공, 박제가 등 북학파 문인들을 중심으로 확대 유통되었다. 현천이 한국 문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는 이유는 이와 같이 박지원을 위시한 조선 후기 실학파의 지식인들과 교유가 빈번했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원중거의 통신사행기록이 지니는 의미는 외국의 문물에 관심을 갖고 조선의 발전을 이루고자 하던 당시 실학파의 학문적 풍토 위에 현천의 일본 지식이 더해지면서 보다 발전적 전환이 이루어지도록 도움을 주었다는 데에 있다. 또한 원중거의 기록은 기본적으로 바다를 중시하지 않았던 조선의 정책에 대한 비판을 암시하고 있다. 따라서 대륙에만 집중하던 북학파의 시각을 돌려 일본 및 해로를 재인식할 수 있도록 유도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study the scholar Hyuncheon Won, Jung-geo(1719~1790) and his 'Tongsinsahaenglok'(books of travel to Japan), 『Seungsalok』 and 『Hwagukji』. We shall see in this article that this scholar from the late Chosun Dynasty gaineda new perspective through his overseas experiences. We will also see his scientific exchange in Japan and how his study in Japan circulated into the Chosun Dynasty. Won, Jung-geo was a scholar who had gone to Japan as a 'Busaseogi' of 'tongsinsahaeng of Chosun' in 1763-1764. He wrote a book called 『Seungsalok』, which was ajournal of his trip to Japan for one year. He wrote this daily journal very specifically about every place he visited and his thoughts and impressions about these places. 『Hwagukji』is an information book covering facts and information about Japan which he compared with his past journal as well as his actual experiences. Won, Jung-geo's thoughts on Japan in 『Seungsalok』and 『Hwagukji』 are different from other scholars' of the Chosun Dynasty. Before his trip to Japan in 'tongsinsahaeng of Chosun' in 1763-1764, people of Chosun have always had a negative perspective when viewing the Japanese. However, Won, Jung-geo considered Japan its own island, and viewed Tsushima separately. He limited his negative thoughts only on Tsushima. He especially paid attention to the Japanese roads, bridges, and ships; these were the systems that supported Japan’s smooth circulation and supply of goods. This indicated that Won, Jung-geo realized that Japan's economy was based on a commercial business system unlike the Chosun Dynasty. Won, Jung-geo’s approach deserves to stand along withthe scholars who devoted themselves to the new cultures of 'Chung' and sought to develop them. Won, Jung-geo was more interested in scientific exchange than many of his colleaguesand he met with important gurus in Japan with an active and diligent attitude. He was also passionate to find and read a collection of Sorai's works to understand that Japan's science was different from Chosun's. However, Won, Jung-geo criticized the academic tradition of 'anti-Jujahak‘ like other contemporary scholars, and his criticism on this was even more severe than others. The information about Japan produced and reproduced through 『Seungsalok』and 『Hwagukji』was circulated widely from the 'bukhakpa‘ scholars like Lee, Deok-muㆍYou, Deuk-gongㆍPark, Je-ga. These literary works of Won, Jung-geo are meaningful because they were helpful to Chosun in converting constructively when 'Silhapa' was trying to develop Chosun through new foreign cultures. He hinted his criticism of Chosun’s lack of value towards the seas in his books. Therefore, we can find it meaningful that he tried to induce 'bukhakpa‘ who strayed from traditional focus on land, and emulated Japan's utilization of the s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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