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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옷의 역사와 조형성 연구

Title
활옷의 역사와 조형성 연구
Other Titles
A Study on the History and the Formative Characteristics of 'Hwalot'
Authors
권혜진
Issue Date
2009
Department/Major
대학원 의류직물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Doctor
Advisors
홍나영
Abstract
본 연구는 전통 혼례복이자 자수 복식인 활옷을 연구 대상으로 하여 그 역사성과 조형성을 고찰한 것이다. 『가례도감의궤』,『국혼정례』,『상방정례』,『궁중 발기』등의 궁중 혼례관련 문헌 기록을 통해 궁중 예복 중 활옷의 기원으로 여겨지는 장삼과 노의를 비교 고찰하였다. 궁중 혼례에 착용되었던 두 복식 모두 대홍색이며 비슷한 격의 옷감을 사용했기 때문에 장식기법에서 격의 차이를 나타내었을 것으로 판단되었다. 노의는 금원문으로 장식되었음을 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으나, 장삼은 특별한 장식에 대한 기록을 찾을 수 없었다. 다만 조선 말기 『궁중 발기』의 기록에 ‘직금 홍장삼’ , ‘다홍별문갑사수천만세부금홍장삼’ 등의 명칭이 있어 조선말기 궁중홍장삼이 직금이나 금박으로 장식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고궁박물관 소장 활옷 수본 중 1837년에 제작된 것으로 추측되는 ‘홍장삼 수초 저동궁’이라는 묵서가 적힌 수본이 있어 궁중홍장삼을 자수로 장식하였던 것을 알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유학자들이 쓴 예서와 편지글 등에서는 궁중의 홍장삼을 섭성(攝盛)하여 민간 혼례복으로 사용하였던 것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그 명칭 또한 홍장삼으로 기록하고 있다. 특히 민간의 홍장삼에는 연꽃과 동자 무늬 등을 수놓았다는 기록이 있어 홍장삼이 자수 혼례복인 활옷임을 알 수 있는 확실한 증거가 된다. 자수로 장식된 민간홍장삼의 기록이 18세기 이후에 나타나며 궁중홍장삼 수본 또한 19세기 초에 제작된 것이기 때문에 홍장삼이 자수로 장식되기 시작했던 시기를 기록이 나타난 18세기 이후로 볼 수 있으나, 고대 복식에서부터 조선시대 활옷에 까지 이어지는 우리 민족의 자수복식의 역사와 전통 자수 공예의 역량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자수로 장식된 혼례복은 기록 보다 훨씬 이전부터 존재하였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다음으로 문헌 기록에 나타난 활옷의 어원을 살펴보았다. 활옷과 가장 비슷한 한자어 복식 명칭인 ‘豁衣’와 ‘割衣’는 궁중 혼례복으로 착용되었던 복식이 아니었으며 색상 또한 아청색이기 때문에 활옷의 기원으로 볼 수 없는 복식으로 판단되었다. ‘할옷’·‘슈할옷’ ‘활옷’이라는 명칭은 근대 한글 소설이나 한글 잡지 기사 등 한글로 표기된 기록에 찾아볼 수 있었다. 비록 활옷이라는 명칭이 홍장삼의 기록보다 시기적으로 늦게 나타나지만 기록이 나타난 시기에 이미 활옷이 ‘화려한 복식’ 혹은 ‘혼례복’의 대명사처럼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아, 민간에서는 활옷이라는 명칭을 근대 이전부터 사용했었을 것으로 추측되었다. 즉 조선시대 왕실과 양반 계층에서는 한자어 명칭인 홍장삼이란 명칭을 사용하였고 민간에서는 ‘큰옷’이라는 의미의 활옷이라는 순우리말 명칭을 주로 사용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조선 왕실의 몰락과 신분계층의 혼란 이후로 홍장삼이란 한자어 명칭은 사라지고 활옷이라는 순 우리말 명칭이 현재 전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근대 이후 혼례사진에서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큰머리 장식에 활옷차림의 신부의 모습이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민간에서도 이러한 왕실혼례복 차림이 가능했던 것은 조선시대 세물전(貰物廛)과 수모(手母)를 중심으로 혼례복 일습(一襲)을 빌려주었던 대의(貸衣)풍속과 궁중 혼례복을 민간에서도 입을 수 있는 섭성의 풍속 때문이었다. 이상의 조선시대 궁중 혼례복과 민간 혼례복의 고찰을 통해 전통 혼례복인 활옷이 궁중홍장삼에서 기원한 복식임을 밝힐 수 있다. 활옷의 유형은 크게 궁중 활옷과 민간 활옷으로 구분할 수 있다. 궁중 활옷은 장식적 특성에 따라 다시 금박과 자수 장식이 혼합된 형태인 복온공주 활옷 유형과 길상무늬를 가득 수놓은 창덕궁 활옷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활옷 수본에 나타난 무늬 변화 과정을 통해 복온공주 활옷 유형에서 창덕궁 활옷 유형으로 변화 해가는 궁중 활옷의 변천 과정을 유추할 수 있다. 그 밖의 국내 소장 활옷 유물들은 출처가 확실치 않아 궁중과 민간 유물의 확실한 구분이 어렵다. 현재 활옷의 전형으로 생각되는 궁중 활옷인 창덕궁 활옷을 기준으로 민간 활옷을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 첫 번째 유형은 궁중 활옷의 조형성을 그대로 모방하여 민간에서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활옷 유물이다. 비교적 궁중 활옷의 전형을 따르면서도 민간의 정서에 맞는 길상 무늬가 삽입되어 나타나며, 궁중 활옷에서 보이는 세련된 도안과 충전구도에서 오는 경직감이 사라지고 자연스러운 구성을 보이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두 번째 민간 활옷의 유형은 시기가 많이 올라가지 않는 근대 이후의 활옷으로 전형적인 활옷 양식에서 벗어난 소박한 민간 활옷 형태로 모란을 중심으로 작은 새 한 쌍이 날아드는 회화적 도안이 특징이다. 자수의 색상이나 기법, 사실적 도상 등에서 근대 이후 일본자수의 영향이 일부 발견되기도 했지만 양식적 틀을 따르지 않고 민간 고유의 정서와 미감을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판단되었다. 19세기 말부터20세기 초에 걸쳐 서양의 수집가들에 의해 수집되어 국외로 유출된 해외박물관 소장 활옷 유물 중에는 복온공주 유물 유형이 일부 있었으며 창덕궁 활옷과 비슷한 조형적 특징을 가지고 있는 유물들이 상당 수 소장되어 있어 혼란기에 해외로 유출된 궁중활옷 유물들인 것으로 판단되었다. 자수복식인 활옷의 특별한 구조적 형태는 활옷을 장식하는 자수무늬의 변화에 따라 생겨난 것으로 판단되었다. 섬세하고 작은 도안으로 이루어진 복온공주 활옷 유형에서 길상문으로 가득 충전된 창덕궁 활옷 유형으로 변화되면서 무거워진 자수의 무게를 버티고 아름다운 자수를 효과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여러 겹으로 배접한 한지를 심지로 사용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에 따라 활옷의 제작 방법과 실루엣이 변화하였고 현재의 독특한 구성을 가지게 된 것으로 생각되었다. 활옷의 색상인 홍색은 전통적으로 벽사와 길상의 색상이자 가장 아름다운 색으로 동아시아 신부복에 공통적으로 사용되는 색이다. 음양의 조화를 상징하는 활옷의 홍색 겉감과 청색 안감의 배색은 ‘청실홍실’로 대표되는 전통 혼례의 색채 우의(寓意)를 반영하고 있다. 그 외에도 황, 홍, 청의 삼원색으로 이루어진 색동은 예복의 화려함을 꾸며주고 백색 한삼과 동정은 의례복의 정갈함과 정숙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풀이되었다. 활옷의 표면을 장식하는 자수 무늬는 조선시대 혼인을 통해 여성의 삶을 규정하는 온갖 상징성을 내포하고 있다. 신랑 신부가 자식을 많이 낳아 행복한 가족을 이루고 오랫동안 해로하며 복을 누리며 살기를 바라는 인간 본연의 소망들을 아름다운 무늬에 담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궁중과 민간에서 선호했던 무늬에 차이가 있었던 것으로 분석되어 계층에 따라 혼인을 통해 기원하는 소망이 달랐음을 알 수 있다.;This study shows the history and the formative characteristics of Hwalot, which is the traditional wedding robe with embroidery. The Jangsam and Noui are considered to be the origins of Hwalot among various court ceremonial robes. The literatures on the royal court wedding show that both dresses were worn at the court marriage ceremonies and used as similar classes of red-colored fabric. Thus, it is supposed that the difference in classes must have been indicated through decoration techniques. It is recorded that the Noui was decorated with gold foil or golden weaves. However, there is no record that the Jangsam has any kinds of decoration. The record of the decoration of the Jangsam can only be found in the 『Balgi』(documents of the royal wedding ceremony). This makes it possible to assume that Jangsams were decorated with golden foil or golden weaves. There is an embroidery design pattern at the National Palace Museum that is written, ‘The design pattern of embroidery of red Jangsam on 저동palace. It proves that the royal Red Jangsam were decorated with embroidery. Yeseo(禮書) or letters written by Confucian scholars record that Red Jangsam were used as the wedding robe of civilians through Supseong(攝盛)(a custom that allowed the royal wedding garments to be worn by civilians). Particularly, there are records saying that Red Jangsam were embroidered with patterns of lotus flowers and young boys(童子), which proves that Red Jangsam is a wedding robe with embroidery. Records on Red Jangsam decorated with embroidery appeared after the 18th century. The embroidery design pattern of the court Red Jangsam was created at early 19th century. Thus, it is possible to assume that the embroidery decoration of Red Jangsam started after the 18th century. However, considering the history of embroidered costumes and traditional embroidery craft of Korea, it can be assumed that the embroidered wedding robe must have existed even before what was recorded. Furthermore, the study of the possible origins of the word of Hwalot, ‘Hwalui(豁衣)’ and ‘Halui(割衣)’, shows that although they have very similar pronunciations to Hwalot, they were not worn as the royal wedding robes and they were also bluish in color. Therefore, this indicates that they cannot be the origin of Hwalot. The name 'Halot(할옷)', 'Su-Halot(슈할옷)', ‘Hwalot(활옷)’ are found in documents written in the Korean alphabet, Hangeul, such as novels in early 19th century or modern magazine articles in the early 20th century. Thus, the name Hwalot is considered as a pure Korean word meaning ‘big clothes’, and not as a Sino-Korean. In the days when these records were found, the name Hwalot was already used as a synonym for extravagant dress or wedding robe, which indicates that the word Hwalot must have been used among civilians even before that recorded time. It can be assumed that the royal families and the noblemen of the Joseon Dynasty must have used the word Red Jangsam, which is a Sino-Korean word, while the civilians used the word Hwalot, which is a pure Korean word. In wedding pictures taken after the early 20th century, all the brides, regardless of their social status, wore Hwalot with big hair wigs decorated with ornaments. The royal wedding robe was worn among civilians thanks to the custom of Supseong(攝盛) and a system that lent a full suit of wedding robes from the renter´s store and the bridesmaid(手母 or 首母) in the Joseon Dynasty. To conclude, the Hwalot, a traditional wedding robe, is a costume that generated from the royal Red Jangsam. Hwalot types can be largely classified into the royal court Hwalot and the civilian Hwalot. The royal court Hwalot can again be classified into the Princess Bokon’s Hwalot type that has mixture of gold foil and embroidery decoration and the robe type of the Hwalot at Changdeok Palace that is fully embroidered with lucky signs. By looking at the changing pattern designs shown in the embroidery design patterns of Hwalot at the National Palace Museum, the transition from the Princess Bokon’s robe type to the robe type of the Hwalot at Changdeok Palace can be inferred. Most Hwalots in Korea do not have clear sources, thus it is difficult to identify whether they are from the royals or the civilians. The civilian Hwalot can be largely classified into two types. The first type of Hwalot looks as if it is manufactured by civilians by imitating the formative characteristics of Hwalot at Changdeok Palace. This follows the patterns found in the royal Hwalot while it also has lucky sign patterns that meet the sentiment of civilians. Moreover, it does not have the sophisticated design as well as the stiffness that comes from the royal Hwalot, but displays a natural design. The second type is the one found after the modern period, which is not too long ago. It has escaped from the typical Hwalot style of lucky style patterns and displays a simple design of small birds flying towards a peony. Some influence of the modern Japanese embroidery can be found in the color and techniques but it is deemed that they are not following the conventional style of the royal Hwalot but exhibiting the natural sentiment and beauty of the civilians. Hwalot relics at overseas museums were collected by the western collectors in the periods of the latter 19th century to the early 20th century. Among them, there were a few Hwalots with the same style as the Princess Bokok’s Hwalot and a lot of Hwalot relics that exhibited the similar formative characteristics as the ones at Changdeok Palace. This makes it possible to presume that they are the royal Hwalot remains taken to overseas during the period of chaos. Analysis on the formative characteristics of Hwalot indicates that the special structural style of Hwalot came from the changes in embroidery patterns of Hwalot. Through its transformation from the Hwalot type of Princess Bokon’s, which is composed of delicate and fine patterns, to the Hwalot type at Changdeok Palace, which is fully filled with lucky sign patterns. It seems that Hwalot started to interline several layers of Korean rice paper in order to support the heavy weight of embroidery and to display the embroidery patterns more effectively. With this, the manufacturing method and silhouette of Hwalot are also thought to have changed into its special composition found in these days. Red color used in Hwalot is the traditional color representing the protection of the evil spirits(辟邪) and the auspicious sign(吉祥). It is also known to be the most beautiful color, commonly used in bridal dress of the East Asian region. Red outer fabric and blue inner fabric of Hwalot symbolizes the harmony of yin and yang. The sleeves with stripes of three colors - yellow, red and green - makes the robe even more extravagant, and the white-colored wristband and collar stripe signify the cleanliness and virtue of the ceremonial robe. Embroidery patterns that decorate the surface of Hwalot have various connotations that define the life of a woman after marriage in the Joseon Dynasty. These beautiful patterns carry the natural hope of human beings. They wish the bride and groom to have many children, to become a happy family, to grow old together, and to enjoy all the blessings of the world. Patterns that were preferred at the royals show some differences with those favored by the civilians. The beauty of Hwalot costume has only been evaluated in fragments to establish a classified structure on formative characteristics of the Hwalot. However, there is a limitation in the research results as it emphasizes on certain periods due to the analysis of Hwalot relics that only concentrate on the latter period of the Joseo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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