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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고분벽화에 나타난 직물문양 분석

Title
고구려 고분벽화에 나타난 직물문양 분석
Other Titles
An Analysis on Textile Design of Koguryo(高句麗)
Authors
이유안
Issue Date
2009
Department/Major
대학원 의류직물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dvisors
홍나영
Abstract
본 논문에서는 고구려 고분벽화에 나타나는 직물문양의 지역적 특징과 시기별 변화 및 그 요인을 분석하였다. 고구려의 직물문양은 집안권과 평양권, 두 지역이 뚜렷한 차이를 두고 시문되었다. 집안권 직물문양의 가장 큰 특징은 다양한 형태의 기하문이다. 이 기하문은 묘주부부, 시종, 시녀, 무용수를 망라한 모든 계층의 복식에서 시문되고 있어 신분의 제약 없이 집안권에서 널리 사용되었던 문양으로 볼 수 있다. 본 연구에서는 이 기하문들을 ‘집안권 직물문양’으로 규정하였다.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점문’은 인물의 크기가 작게 그려지는 과정에서 실제 문양이 소략하게 표현된 결과일 가능성이 높았다. 대부분의 기하문은 밝은 색 바탕에 어두운 색으로 시문되었다. 백색 바탕에 흑색 기하문이 가장 많이 나타났고 그밖에 백색 바탕에 홍색 기하문, 황색 바탕에 홍색 기하문 등이 보였다. 이렇듯 문양색과 배경색을 달리 하여 문양을 화려하게 부각시키는 방식은 평양권의 직물문양과 확연한 대비를 이룬다. 또한 5세기 중반에 접어들면서 그 형태가 훨씬 다양해지는 양상을 보이는데 이는 당대 고구려의 활발한 대외교류활동에 기인하는 것으로 본다. 기하문은 유(襦), 고(袴), 장유(長襦)에 시문되었으며 주름치마에는 시문된 경우가 없었다. 한편 문양이 시문되지 않은 예도 종종 보였다. 묘주복식에서는 기하문의 고 위에 문양 없는 단색의 유를 착용한 방식이 일관되게 나타났다. 묘주부인의 장유에도 문양이 시문되지 않은 경우가 종종 보였으며 하류층의 복식도 마찬가지였다. 문양의 유무가 신분에 의해 결정된 것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집안권의 기하문은 동시대 유목민족국가의 출토직물에서 유사한 형태가 발견되어 이들이 북방유목민족의 공통된 복식문화권 안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이 출토직물들 중에는 금(錦) 종류가 상당부분 포함되어 있어 집안권 기하문의 실제 시문방식에 대해서도 재고의 여지를 남겼다. 고구려 벽화의 기하문은 염색에 의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나 여기에는 몇 가지 오류가 있을 수 있다. 문헌기록과 출토직물 자료를 고려했을 때 직조를 통해 만들어진 문양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본다. 평양권의 직물문양은 집안권과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인다. 4세기 중 ~ 후반 평양권의 직물문양은 대부분 소문(素紋)으로 나타나며 일부 여자복식에 수유문(茱萸紋), 운문(雲紋), 색동문 등이 나타난 사례가 있다. 본 연구에서는 이 문양들을 ‘평양권 직물문양’으로 규정하였다. 평양권 직물문양은 한(漢)문화권의 직물문양에서 유사한 형태가 많이 발견되는데, 이는 평양지역이 한사군 설치 이래 지속적으로 한문화의 영향권 안에 있어온 사실에서 그 요인을 찾을 수 있다. 물론 이들 벽화에 문양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해서 이들의 실제 복식에도 문양이 시문되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라(羅)나 사(紗) 종류의 직물은 그 문양이 뚜렷하게 부각되는 종류가 아니므로 그림으로 그려지는 과정에서 생략되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확실한 것은 집안권이 기하문의 문양을 화려하게 부각되는 양식을 선호한 반면 평양권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며 이는 두 지역의 미의식이 상이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5세기 초 평양권 고분벽화에서는 집안권 직물문양과 평양권 직물문양이 함께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러나 두 지역의 직물문양이 동일한 벽화에서 동시에 나타나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대부분의 벽화들은 각 지역의 특성을 분명하게 나타내고 있다. 따라서 이 시기 평양권은 서로 다른 복식문화를 향유하는 두 세력이 공존하되, 이들의 복식문화가 완전히 혼합되는 단계는 아니었던 것 같다. 또한 바로 앞 시기인 4세기 후반에서조차 집안권의 기하문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 변화속도가 상당히 빠른 편이며, 이는 점진적인 문화교류에 의한 변화가 아니라 집안권 세력의 급격한 평양권 유입으로 인한 결과로 해석된다. 당대 정치적 상황을 고려할 때 이 세력이동은 장수왕대에 행해졌던 평양천도에 기인하는 것으로 본다. 5세기 후반에 들어서면 한 개의 벽화 안에서 집안권과 평양권의 직물문양이 동시에 관찰된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의 시문양상이 계층에 따라 분화되어 나타난다는 것이다. 묘주의 복식에서는 평양권 직물문양이 지속적으로 나타나며, 묘주부인 복식 역시 일부 요소에서 집안권의 양식이 나타난 것을 제외하면 집안권의 기하문이 직물문양으로 나타난 사례는 없었다. 반면 시종, 시녀나 묘주부부의 자녀 복식에서는 집안권의 기하문이 종종 나타난다. 복식의 이중구조에 의하면 5세기 후반의 이러한 양상들은 남하한 집안권의 상류층이 평양권의 복식양식을 수용한 결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물론 각 고분의 피장자 신분이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복식양식만으로 이들의 신분을 추정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그러나 당대 문헌기록에 의하면 당시 평양권의 토착세력이 집안권의 복식문화를 바라보는 시각에는 어느 정도의 문화적 우월감이 실려 있음을 알 수 있으며, 이러한 정황을 고려할 때 평양권의 지배층이 집안권의 복식양식을 수용했을 가능성보다는 남하한 집안권의 지배층이 평양권의 복식양식을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더 높다. 이상으로 고구려 고분벽화에 나타난 직물문양에 대해 분석해 보았다. 본 논문에서는 각 고분에 표현된 등장인물의 크기와 전체적인 표현의 섬세도를 고려하여 고구려 직물문양의 종류와 그 실제에 대해 보다 분석적으로 접근하고자 하였다. 또한 집안권과 평양권의 직물문양이 뚜렷한 차이를 두고 발전해 왔고 이는 두 지역이 문화적 근간을 달리 하기 때문임을 논증하였다. 나아가 두 지역의 직물문양이 흡수, 융합되는 과정을 당대 사회 정세에 기반하여 분석하였다. 그러나 직물문양은 복식이라는 큰 범주의 일부분임에도 불구하고 당대 복식에 대한 통합적인 분석 없이 직물문양만을 분석한 것은 본 연구가 갖는 한계이다. 주요 분석자료가 사진의 형태로 남아있는 벽화자료라는 점 또한 아쉬운 부분이다. 벽화 자체가 화가의 주관이 개입된 자료인데 사진자료는 사진가의 주관까지 개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색상이나 형태의 왜곡은 차치하더라도 대부분 사진이 복식전문가에 의해 촬영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복식사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는 부분들이 선명한 사진자료로 남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 추후 보다 다양한 사진자료들이 입수되어 고구려 복식연구에서 많은 성과를 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analyze various patterns of textiles shown on murals of Koguryo. The analysis is especially focused on special features that differ according to the area and period. Also, it traces the process in which different kinds of patterns are mixed over time and examines the factors that influenced this.  In the Jip-An(集安) area, the most common pattern motif is geometric. These patterns are widespread regardless of class and gender - they are seen in costumes of the upper to lower class, for both men and women. So for, these patterns have been called merely a ‘dot pattern'. However their shapes are more specific than a dot, i.e. a circle, diamond, square, etc. So it is proper to designate them as a geometric pattern. Typically the colors were dark on a bright background. A black pattern on a white background was seen most frequently, and a red pattern on a white background, a red pattern on a yellow background was found also. It is assumed that people in the Jip-An area have preferred the style in which the pattern stands out in strong emphasis. Geometric patterns are shown on You(襦: upper garment) and Go(袴: trousers) which are men’s basic costumes. As for women, their basic costumes are Jangyou(長襦: jacket, longer form of you) and Jurumchima(주름치마: pleats); geometric patterns appear on Jangyou only. These geometric patterns developed more diversely in the mid – 5th century due to active trade of Koguryo during that period. The geometric pattern styles typical of the Jip-An area are found on the textiles of nomadic tribes during that age. They are quite similar, so it is assumed that the Jip-An area shared a common costume culture with neighboring nomadic tribes. This assumption is supported strongly by the fact that Koguryo had active trade activity with not only Southern Song(南宋), but also Northern Wei and the countries bordering on Western China which were established by nomadic tribes. Most of the geometric-patterned textiles from nomadic tribes were of Geum(錦: compound weave). Thus it is possible that the geometric patterns of Koguryo might be of Geum also. Even though most of the studies on the origin of these patterns have concluded that dyes were used, the possibility that weaving was involved can’t be excluded. Documents written in that period, and excavated textiles, support the possibility. The textile designs found in the Pyeongyang(平壤) area are totally different from those of the Jip-An area. From the mid- to late 4th century, most of these textiles have no any specific patterns. Dogwood, clouds and stripes, these three are the only patters found in the Pyeongyang(平壤) area. Even though the textile patterns are not shown on the murals, we should not conclude that their real textiles didn’t have any patterns on them either. Other textiles, like Gauze(羅, 紗), don’t have readily visible patterns, so those patterns were probably omitted from the murals. What is clear is that in the Pyeongyang area people preferred the style in which the pattern does not stand out in strong relief, in contrast to those in the Jip-An area. And the pattern style in the Pyeongyang area seems to have a strong link to the Han(漢) dynasty culture. In the early 5th century, geometric patterns typical of the Jip-An area suddenly showed up in the Pyeongyang area. But they seldom appear in the same murals with the Pyeongyang style. This indicates that each style was maintained by different entities and did not integrate. Nevertheless, the appearance of geometric patterns in Pyeongyang was quite a radical shift, and it is understood that this is due to the sudden change in Jip-An’s scope of influence — based on the movement of the capital from Jip-An to Pyeongyang. By the latter part of the 5th century, however, the patterns of Jip-An and Pyeongyang did start to show up in the same murals. What is notable is that these patterns are shown differently in accordance to the class they represent. In the upper class, the pattern of Pyeongyang appears consistently; whereas in the lower class the geometric pattern of Jip-An appears often. According to the dual structure theory of costumes, these tendency is based on the idea that the upper class of Jip-An accepted the style of Pyeongyang. Also, this is supported by the documents that claim that the native rulers in Pyeongyang had a sense of superiority over those in Ji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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