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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祖 2년(1456) 단종복위사건의 성격

Title
世祖 2년(1456) 단종복위사건의 성격
Other Titles
Reanalyzing the Restoration Attempt of King Danjong Occurred in 1456
Authors
양지하
Issue Date
2008
Department/Major
대학원 사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bstract
단종복위사건은 세조 2년(1456) 6월 세조 조정에 출사하고 있던 집현전 출신 문신들 중 일부가 중심이 되어, 당시 세조의 즉위로 퇴출된 단종을 복위시키려다 실패한 사건이었다. 이것은 세조 즉위의 부도덕성을 드러낸 상징적인 사건이자 사건 주동자의 충절이 강조된 소위 死六臣 사건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존의 이해는 15세기 후반 신진 정치세력으로 등장한 소위 士林이 자신들과 갈등관계에 있었던 세조대 공신 출신의 소위 勳舊大臣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단종복위사건을 재평가한 논리를 그대로 수용한 것이기도 하다. 기존의 단종복위사건과 관련된 연구 역시 정통성에 어긋나는 즉위를 자행한 세조 정권에 대한 반발 차원으로만 논의되어 왔으며, 사건의 실체와 사건 주동자들의 특수한 입장에 대한 설명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단종복위사건 주동자들이 당대의 정치적 이해와 권력관계의 추이 속에서 어떠한 정치적 입장을 확립하고 있었는지, 그리고 그러한 정치적 입장이 어떻게 단종복위라는 구체적인 목적으로 귀결되고 있었는지를 규명하고자 하였다. 잘 알려져 있듯이 단종복위사건의 전제는 세조 즉위가 가진 정통성의 하자이다. 단종은 나이가 어린 것 이외에는 왕으로서 결격사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세조가 성리학적 통치이념으로 합의된 왕위 계승의 원칙을 힘으로 깨트렸다는 문제의식이 사건을 일으킨 주된 명분이 되어주었다. 그것이 복위사건에 도덕적 명분을 제공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현실정치의 맥락에서 주목되어야 할 것은 세조의 등극 후의 국정운영방식에 따른 세조와 관료들 간의 정치적 갈등이다. 즉 세조는 태종·세종대와 같은 강력한 왕권의 확립을 구상하였던 반면 집현전 출신 관료들은 군신공치를 지향하였던 사실 또한 중요하며, 그러한 권력 갈등과 관련된 구체적인 역사적 사실을 밝히는 것이 이 논문의 주요 목적이다. 단종복위사건을 구상했던 집현전 출신의 사건 주동자들인 성삼문, 박팽년, 이개, 하위지, 유성원은 관료들 중에서도 성리학적 통치이념에 투철하고자 하는 자들이었음은 분명하다. 그런데 이들 사건주동자들 중 일부는 세조 집권으로 제거된 정치세력인 안평대군, 김종서 등과 서로 인척관계로 인간적인 친밀성을 유지하고 있었다는 점이 주목된다. 이 점은 이들의 세조의 집권과 즉위에 대한 비판의식을 고양시킨 요소이기도 했다. 따라서 이들은 필연적으로 정국운영과정에서 세조와 마찰을 빚게 되었다. 그 결과 사건 주동자들은 권력 핵심부로부터 점점 배제되어 가는데, 여기에서 오는 불만 역시 단종복위모의를 촉발시켰다고 할 수 있다. 집현전 출신 사건주동자들의 그와 같은 정치적 명분 및 인간관계는 또한 복위사건에 참여한 단종외척세력 및 무신세력과도 이어진다. 단종의 외숙부인 권자신은 단종과의 연결을 담당하여 사건의 정당성 확보에 힘을 실어 주었고, 성삼문의 부친인 성승은 무신세력과의 연결에 핵심이었다. 이들은 모두 세조 집권과 즉위로 인한 정치세력교체로 상대적인 소외감을 느끼고 있던 자들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사건을 주도한 세력 외에 기타 참여자와의 관계분석을 통해서도 규명된다. 이러한 분석을 통하여 사건 주동자들이 단종복위를 계획하는 이면에는 가문의 이해관계가 결부되어 있었다는 점이 밝혀진다. 즉 세조 집권과 즉위에 대한 반감이 단종복위라는 구체적 목적으로 귀결된 데에는 세조의 집권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위축된 가문의 위상을 회복하는 문제가 직결되었다는 것이다. 세조의 집권으로 틀어진 정치질서를 바로잡으려는 통치이념에 입각한 이들의 정치관이 가문의 이해관계와 결부되어 직접적인 행동으로 촉발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이 단종복위사건의 참여자들이 내세운 명분에도 불구하고 폭넓은 참여자를 규합하지 못했던 사실을 설명하여 준다. 여타 관료들의 경우 세조의 즉위가 통치이념에 배치된다는 것을 인지하면서도 이미 집권한 현 정권에 대한 반역이라는 위험부담을 감수할 만큼 사건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할 절실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이것은 역으로 세조의 즉위로 이미 그의 집권이 공고화 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대다수의 관료들은 단종대 왕권의 행사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초래된 정치적 불안이 세조의 왕권 확립으로 해소되었다는 정치적 현실의 편에 섰던 것이다. 결국 단종복위사건은 세조의 집권과정을 통해 초래된 정치세력교체와 그로 인하여 변화된 가문의 위상 문제도 결부되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사건 참여자의 범위가 대개 소수의 주동자를 중심으로 혈연관계를 바탕으로 연결되고 있다는 점으로 뒷받침되며 이것이 곧 실패의 원인이기도 했던 것이다.;There was a palace-coup attempt in June 1456(the second year of King Sejo) led by five Jiphyeonjeon(集賢殿) scholars to bring back King Danjong(端宗) to the throne who was relegated by his uncle King Sejo(世祖) one year ago. This failed attempt which is also known as Six Martyred Ministers(Sayuksin, 死六臣)' movement, is widely accepted as an epitome of Confucian loyalty. Such a dominant view about the attempt is actually a reflection of the political and ideological position of Sarim-party(士林派), which was developed in the late 15th century while the party were criticizing the ruling party, Hoongu(勳舊派). The previous studies on the attempt have mainly focused on examining Sejo's immoral enthronement and the legality of the participants' conduct. Accordingly, they mainly dealt with its ideological character without giving due consideration of the political realities around it. This thesis will discuss the participants' self-interests and personal situations in relation to the political landscape at the time and attempt to demonstrate how those factors resulted in their decision to help restore Danjong to the throne. The ideological side of the attempt was that Sejo did not assume the throne through the legitimate process of succession based on Confucianism's credo. In a word, Sejo took the throne by way of succession of the strongest. Such an illegitimate succession of the kingship those Jiphyeonjeon scholars could not tolerate. But what made the conflict between them and Sejo more acute was the differences between his political views and that of the government bureaucrats. On the one hand, Sejo wished to develop a strong royal authority like former Taejong(太宗) and Sejong(世宗). Jiphyeonjeon scholars intended to preserve the old political system in which bureaucrats could control the kingship. The five Jiphyeonjeon scholars, who led the coup attempt were Sung Sam-Moon(成三問), Park Peng-Nyun(朴彭年), Lee Gae(李塏), Ha Wi-Ji(河緯地), and Yoo Sung-Won(柳誠源), who subscribed to Confucianism ideology. They were not only excluded from Sejo's political inner circle, but were personally in family ties interwoven with the families of Grand Prince Anpyeong(安平大君) and Kim Jong-seo(金宗瑞) who had been assassinated in the tumult of Sejo's cout-d'eta in 1453. This is one of the main factors that enhanced participants' antipathy toward the Sejo's throne and his regime, and thereby contributed to their determination of the revolt. Despite its ideological justification, the restoration attempt failed because the participants were grouped by small numbers of their blood ties and were unable to garner wide support. They were but a small circle among the large group of bureaucrats. Although other Jiphyeonjeon scholars, who did not participate for the restoration attempt believe that Sejo's succession of the throne were not legitimate, they hesitated to involve the restoration attempt because they were either afraid of being caught as a traitor or did not feel it necessary at the time. The small number of participants also indicates that Sejo's throne had assumed stable control of the country. Of course most bureaucrats did not totally agree with Sejo's political position. However, those who have experienced political anarchy during the reign of Danjong desired to stabilize the political situation by supporting Sejo's throne. In short, the motives and inducements that led the 'Sayukshin' to the restoration attempt need to be reconsidered. There is no doubt that the action was justified by the confucian political ideology dominating Chosun(朝鮮) political system. But that was just one side of the coin. This thesis is an attempt to explore the political realities surrounding their action. Much more about them, however, remains to be studied in the fu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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