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乾隆年間 博古花卉畵 硏究

Title
乾隆年間 博古花卉畵 硏究
Other Titles
A Study on paintings of Antiques and Flowers during the Qianlong reign of Qing dynasty
Authors
황해진
Issue Date
2008
Department/Major
대학원 미술사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dvisors
홍선표
Abstract
博古花卉畫是指清代繪畫花瓶和各種器物的吉祥畫。但是,因爲如今在中國研究繪畫的傾向是以山水畫爲中心,所以對博古花卉畫的研究沒有具體的進行。本文討論的博古花卉畫顯示了與明代以前出現的瓶花畫不同的特徵。這反映了明清時代新出現的社會文化要素。因此本文以觀察明清時代博古花卉畫的形成過程爲主,研究範圍限於博古花卉畫的特點開始明確的乾隆年代。本研究的目的是把握博古花卉畫的根本特點。 明清时代是大部分的視覺文化反映文人趣味的文人文化的深化期。博古花卉畫在明代形成,明末清初正式流行。這也與当时擴散的文人文化有密切的关系。通過博古花卉畫里出現的器物,可以了解到博古花卉畫是在文人文化的擴散中出现的萌芽性质的繪畫。因博古花卉画的器物與從明代大量出版的文房清玩書籍的項目一致。即博古花卉畫的素材是文房清玩品的組合這一方面反映了博古花卉畫的特点。但是博古花卉畫是包含吉祥性質的繪畫。通過博古花卉畫的題詩可以了解到拿器物的寓意性来显示吉祥性。 追求文人趣味與吉祥性的博古花卉畫的兩面性是從形成時期已經存在。從瓶花畫到博古花卉畫的發展的變化顯示從它的形成初期已經存在了兩個特點。同樣博古花卉畫的題“歲朝清供”證明了博古花卉畫的複合性。 像這樣的博古花卉畫的特點與乾隆帝的興趣相符合,博古花卉畫是從乾隆年間開始歲朝圖的代表性的素材。從乾隆時期開始以博古花卉畫爲歲朝圖來經常繪畫的原因是與乾隆帝對博古花卉畫的關心有關。在『石渠寶笈』上有記載,乾隆帝每年親自制作歲朝圖,其中多數是博古花卉畫。當時皇帝的趣味是制作宮廷繪畫的一種典範。乾隆帝親自制作和他的愛好的這一點是固定以博古花卉畫爲歲朝圖的決定性的原因。 在形式上乾隆年間是備受矚目的時期。從乾隆年間開始在文房清玩品的範圍內一定程度上帶着自由性的圖像變成規範的性質。乾隆年間在清宮廷制作的博古花卉畫的大部分是用水墨來仿制的傳宋代的繪畫。繪畫裏的器物類型不會超過瓶花、如意、水仙花盆栽等,由3~4件器物簡單地構成。反而,在民間繪畫的博古花卉畫是保持清宮式樣的類型、清宮廷式樣上加器物的較繁多的類型、畫瓶花和如意而在後壁上像挂着的器物的類型、共有三種類型來固定化。 這樣按照階層來分開的博古花卉畫的類型是不是從上到下的簡單的結果。而是各個階層之間互相作用而首創的結果。這是把博古花卉畫的器物的特點再檢查的時候可以把握的。在博古花卉畫裏面出現的器物不是簡單的書房的器物。文人階層的話,是表示自己是文人的指標。同時非文人階層的話,是享受文人文化而誇示文化上的能力與富貴的手段。所以這樣把器物當作素材的博古花卉畫是文人階層與非文人階層的欲望都反映出來幷且互相影響發展起來的結果。 吉祥畫到今天不能成爲畫壇的主流的原因在於繪畫史研究的忽略或把它的意思只是簡單地歸結爲吉祥性。特別是中國繪畫史上對吉祥畫的研究只在初步階段。筆者認爲到今研究成果極少的原因是把吉祥畫用固定的意義來解釋而認爲它不會反映相當時代特徵的固定觀念的存在。但是要注意的是吉祥畫裏面也有反映當時的社會文化上的要素和美術上的特徵。博古花卉畫裏面內在的文人趣味和吉祥性是從文房清玩的風潮和起伏性質的文化興盛的明清時代的特殊性上起因的。幷一方面的是用珐琅、玉器等不同材料來制作博古花卉畫。這樣體裁之間緊密的互相關系、不同材料來制作的辦法來能感覺的視覺上的游戲是博古花卉畫的特徵,也是清代美術的特徵。 本論文從這一側面上研究了到今不太被注目的中國繪畫史上的一部分——博古花卉畫。意義在於進行了較具體的了解。最後,博古花卉畫不僅在中國的繪畫。在韓國和日本也有繪畫過。考慮過在韓國三國時期都有的這一點,本論文的意義幷不局限於中國繪畫史。特別是跟韓國繪畫史上的冊巨裏圖、器皿折枝圖有關系的側面。這樣的情況下研究可以再擴展。這一點上本論文會更有意義。;As a painting of flower vases and articles, the Boguhauhuihua (博古花卉畵) or paintings of antiques and flowers represents the auspicious paintings of the Qing Dynasty. Studies on the Boguhuahuihua have been neglected as studies in Chinese paintings have leaned towards mainstream landscape paintings. The Boguhuahuihua, which is the focus of this dissertation show different characteristics from flower vase paintings drawn before the Ming Dynasty, which is a result of new social and cultural factors of the Ming and Qing Dynasties. This study aimed at examining the formation and characteristics of the Boguhauhuihua in the history of Ming and Qing Dynasties, and especially the Qianlong era when characteristics of the Boguhauhuihua become distinct. The Ming and Qing Dynasties was a period of flourishing literati culture, which is also reflected in the visual arts of the time. It can be understood that the formation of the Boguhauhuihua during the late Ming and early Qing Dynasties has intimate relations with the expansion of literati culture. The articles painted in the Boguhauhuihua is an influence of literati culture as books on scholar's elegant things (文房淸玩 Wenfang-qingwan) was widely published during the Ming Dyanasty. Thus the subject of the Boguhauhuihua can be understood to be the combination of the Wenfang-qingwan. However, the Boguhauhuihua also holds auspicious meanings as elucidated with textual documentation of poem inscriptions on the paintings. The Boguhauhuihua pursued characteristics of both literati taste and auspicious meanings since the development stages, as seen in the changes from flower vase painting to the Boguhauhuihua. This kind of complex meaning and characteristic can be seen with Suizhaoqinggong (歲朝淸供 offering an elegant thing in the morning of the New Year) written in the inscription. During the Qianlong era, Emporor Qianlong's interest and fondness of the Boguhuahuihua was reflected in its establishment as a type of Suizhaotu (歲朝圖 New year paintings), actively produced starting from his reign. Emperor Qianlong drew Suizhaotu every year, and the majority of the paintings were the Boguhuahuihua as documented in the imperial catalogue 《Shiqu Baoji (石渠寶笈 Precious Collection of the Stone Canal Hall)》. Under the circumstances of the Emperor's taste becoming a canon, it is thought Emperor Qianlong's paintings by himself played a crucial opportunity in establishing the Boguhuahuihua as a type of Suizhaotu. Regarding the form of the Boguhuahuihua, the Qianlong era is noticeable in that scholar's elegant articles (文房淸玩品 Wenfang-qingwanpin) shows a set form. The majority of the Boguhuahuihua produced in the court of the Qianlong era, have copied the Boguhuahuihua painted in the Song Dynasty. The screen is constituted of 3-4 articles of flower vases, ruyi scepter (如意), and dwarf narcissus. On the other hand, the Boguhuahuihua produced in the popular follow three major forms: Qing court style, Qing court style with lots of articles, and painting articles seemingly hanging from the wall with flower vessel and ruyi scepter in the center of the screen. The separation of the Boguhuahuihua's pattern by class is not a simple effect of characteristics spreading from the upper class to the lower class, but can be understood as an outcome of mutuality between classes. This can be understood by examining the characteristics of the articles drawn in the painting. In this respect, it is considered that the increasing expression of the objects of scholastic taste in the Boguhuahuihua was attributed to the fundamental features of the Boguhuahuihua and conflicting goals of people from different classes regarding literati culture. Therefore, the Boguhuahuihua is defined as literary‘s style of auspicious paintings. Furthermore, the different forms of the court style and popular style can be understood to be a result of the different purposes of the classes, adjusting the form to their intended painting. There has been minimal research on auspicious paintings as there have been stereotypes that the paintings are not reflecting the characteristics of the period. However, the paintings do reflect the period's social and cultural aspects with literati tastes inherent in the paintings. Also, as a characteristic of art in the Qing Dynasty, enamel, jade and other materials were drawn in the Boguhuahuihua, adapting pleasurable items into the painting. Considering this, this study is significant in that it comprehensively examined the Boguhuahuihua as part of Chinese art. Also, the Boguhuahuihua is not limited to Chinese art, and can be seen in Korean and Japanese paintings as well. Therefore, this study has significance as it can be extended and related to other painting such as paintings of Books and Scholar's Accouterments (Chaekkorido 冊巨裏圖) and paintings of Vessel and Flower (Kinyungchuljido 器皿折枝圖).;博古花卉畵는 甁花와 각종 器物을 함께 그린 그림으로, 淸代의 대표적인 吉祥畵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박고화훼화에 대한 연구는 중국회화사의 산수화 중심의 연구경향으로 인해 구체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본 논문에서 대상으로 하는 박고화훼화는 明代 이전부터 그려지던 甁花圖와는 다른 특징들을 보이고 있는데, 이는 明·淸代에 새롭게 나타난 사회문화적인 요소가 반영된 결과로 생각된다. 따라서 본 논문은 明·淸代의 시대상 속에서 박고화훼화를 살펴, 박고화훼화의 형성과정을 살펴보고자하였다. 또한 박고화훼화의 성격이 명확해지는 시점인 乾隆年間으로 시기를 제한하여, 박고화훼화의 보다 근본적인 성격을 파악하는데 목적을 두었다. 명·청대는 문인문화의 심화기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대부분의 시각문화가 문인취미를 반영한 시대이다. 박고화훼화가 명대에 성립되어 明末·淸初에 본격적으로 그려지기 시작한 것 역시 명·청대에 확산되었던 문인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박고화훼화가 문인문화의 확산 속에서 배태된 그림이라는 것은 박고화훼화에 그려진 기물을 통해서 알 수 있는데, 박고화훼화의 기물들이 명대부터 다량으로 출판되기 시작하던 文房淸玩 서적들의 항목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즉 박고화훼화의 소재는 文房淸玩品의 조합이라는 측면에서 이해되어야 할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박고화훼화는 길상적인 뜻을 내포한 그림이기도 하다. 기물의 우의적인 뜻을 이용하여 길상성을 드러내고자 한 것은 박고화훼화에 쓰인 題詩들을 통해서도 파악된다. 문인취미와 길상성의 추구라는 박고화훼화의 重層的인 성격은 이미 성립시기부터 존재하던 것이었다. 甁花圖에서 박고화훼화로 발전해나가는 변화과정은 이러한 두 가지 성격이 박고화훼화의 성립초기부터 이미 내재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마찬가지로 박고화훼화의 題로 쓰였던 ‘歲朝淸供’은 박고화훼화의 복합적인 면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이 같은 박고화훼화의 성격이 乾隆帝의 취향과 부합하면서, 박고화훼화는 건륭년간부터 세조도의 대표적인 소재로 정립되었다. 건륭제 재위 기간부터 박고화훼화가 세조도로 자주 그려지게 된 것은 박고화훼화에 대한 건륭제의 관심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건륭제는 매년 세조도를 직접 제작하였는데 이 중 다수가 박고화훼화라는 것이 『石渠寶笈』의 기록을 통해 파악된다. 황제의 취향이 궁정회화 제작에 있어 일종의 典範이 될 수밖에 없던 당시의 상황을 생각한다면 건륭제의 직접 제작과 애호는 박고화훼화가 세조도로서 정착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박고화훼화의 형식에 있어서도 건륭년간은 주목되는 시기이다. 문방청완품이라는 범위 안에서 어느 정도 자율성을 가졌던 도상은 건륭년간부터 정형성을 띄기 시작하였다. 건륭년간 청 궁정에서 제작된 박고화훼화는 대부분 宋代로 전칭되었던 박고화훼화를 倣하여 수묵으로 그려졌다. 그려진 기물은 병화와 如意, 수선화 분재 등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며, 3~4개 정도의 기물만으로 간략히 구성되었다. 이에 반해 민간에서 그려진 박고화훼화의 경우는 청 궁정 스타일을 유지한 유형, 청 궁정 스타일에 기물이 번다하게 들어가는 유형, 병화와 여의를 그리고 벽 뒤에 기물이 걸려있는 것처럼 그리는 유형, 총 3개의 유형으로 고착화되었다. 이 같이 계층에 의해 분리되는 박고화훼화의 유형은 각 계층의 상호작용을 통해 창출되어진 결과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박고화훼화 안에 그려지는 기물들의 성격을 다시 한 번 검토하였을 때 파악된다. 박고화훼화의 기물들은 단순히 서재의 기물이라기보다는 문인층에게는 문인임을 보여주는 지표임과 동시에 非문인층에게는 문인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문화능력과 부의 능력을 과시하기 위한 수단이다. 따라서 이러한 기물들을 소재로 한 박고화훼화는 문인층과 非문인층 모두의 욕구가 서로 영향관계를 주면서 발전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길상화는 그 동안 화단의 주류가 아니었다는 이유로 회화사 연구에서 배제되거나 그 의미가 단순하게 길상적인 의미만으로 도출되었다. 특히 중국회화사에 있어 길상화에 대한 연구는 시론적인 단계에만 머물러 있다. 이 같은 미비한 연구성과는 길상화가 고착화된 의미만을 갖고 있어 해당시대의 특징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길상화에도 역시 당대의 사회문화적인 요소와 미술의 특징이 반영됨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박고화훼화에 내재된 문인취향과 길상성은 문방청완 풍조와 기복적인 문화가 성행하였던 명·청대의 시대적인 특수성에서 기인한 것이다. 또한 박고화훼화는 법랑, 옥 등 여러 재질로 번안되어 제작되기도 하였는데, 이 같은 장르간의 긴밀한 상관관계, 다른 재질로의 번안을 통한 시각유희는 박고화훼화의 특징이기도 하면서도 청대 미술의 특징이기도 하다. 이 같은 측면에서 본 논문은 지금까지 주목되지 않았던 중국회화사의 한 부분으로서의 박고화훼화를 연구함으로써, 박고화훼화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를 시도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마지막으로 박고화훼화가 중국에만 국한된 그림이 아닌 한국과 일본에서도 모두 그려졌던 그림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본 연구의 의의는 비단 중국회화사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한국회화사에 있어서는 책거리도, 기명절지도와 연결되는 측면이 있기에, 연구의 확장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본 논문의 의의를 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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