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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이분법적 여성주의 인식론을 향하여

Title
탈이분법적 여성주의 인식론을 향하여
Other Titles
Toward a nondualistic feminist epistemology : Focusing on Emptiness of Buddhism
Authors
고미라
Issue Date
2008
Department/Major
대학원 여성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Doctor
Abstract
본 연구는 여성주의에서 피해자의 정치학을 보다 심도 있게 성찰할 필요가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였다. 남성 주체가 여성 타자를 대상화함으로써 왜곡하고 있다는 사실 이외에도, 피해자 여성 주체 역시 가해자(혹은 지배집단)에 대한 대상화를 행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대상화의 문제는 자아가 타자와의 경계를 통해 발생한다는 점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결과이다. 자기동일성으로서의 자아의식은 배제를 통해서 구성되며 자아는 자기중심성을 반복적으로 재생산하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존재케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권력관계를 타파하는 일에 대한 관심은 결국 이러한 자아의 자기중심성의 문제 즉 이분법적 인식의 문제를 파고들어야 한다고 보았다. 불교에서 이야기되는 무아(無我)는 바로 이러한 자기중심성이 이원성이라는 착각에서 비롯된 효과에 불과함을 말해주고 있다. 무아에 대한 이해는 이분법적 관점을 연기법으로 보도록 하며, 연기법의 궁극적인 의미는 바로 공(空)이기에 공사상에 대한 이해는 이분법의 폐해를 줄여나가는 데에 기여할 수 있다고 보았다. 『중론』을 통해 살펴본 공사상의 핵심내용은 쌍을 이루는 두 개의 대립항의 관계는 상호의존적이며, 상호의존적인 것들은 각기 실체로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여성주의 논의들 속에서는 이미 자아와 타자, 정신과 육체, 자연(사적영역)과 사회(공적영역), 주체와 행위의 이분법이 허구임을 강조해왔다. 특히, 행위에 선행하는 행위자가 있지 않음에 대한 버틀러의 논의는 선형적 인과성을 해체하는 논의로 이해될 수 있다. 불교적 관점의 특징은 이러한 선형적 인과성의 해체를 가능한 모든 차원에서 완전하게 적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주체(사물)와 속성의 이분법, 인식기관과 인식대상의 이분법, 있음과 없음의 이분법마저도 허상임을 말해주고 있으며, 일체 모든 현상이 공하다고 하면서도 공성을 표현하는 ‘실상계’와 가상현실인 ‘현상계’의 이분법조차 부정함으로써 그 무엇에도 분리된 존재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해체철학 역시 실체론적 사고 및 선형적 인과성에 대한 해체이어서 공사상과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유사하다. 그러나 해체론이 끊임없는 해체이자 반복으로서 시간과 공간 속에 위치하고 있는 점과는 달리, 공성은 시간과 공간마저도 해체한다. 시간과 공간은 마음의 구성물이며, 시공과 마음은 상호의존적이므로 각각 실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해체는 허구적 관념에 대한 해체이기 때문에 이미 그 자체로도 해방적이지만, 불완전한 해체는 자아의 자기중심성 - 즉 은폐된 혹은 자각되지 못한 이분법 - 으로 인해 언제든지 타자에 대한 배제와 경계를 강화하는 잠재적인 폭력성을 담고 있다. 이와는 달리 불교의 무아(無我)는 모든 것을 해체하는 해체적 인식의 주체(1인칭의 나)가 바로 최후의 착각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무아의 깨달음은 개인적인 수행을 통해서만이 실현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수행은 사회적 조건 속에서 가능해지는 것이라는 점에서 사회적 현실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작업은 중요하며 이러한 변혁적 맥락에서 불교적 수행은 여성주의와 만나게 된다. 불교적 수행이 여성주의에 기여할 수 있는 바는 다음과 같다. 첫째는 불이(不二)에 대한 이해를 통해 자비와 용서의 패러다임으로 현실을 접근하는 일이다. 이분법적 사유는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억압의 원인을 실체화하는 경향으로 나타나지만 이것은 피해자 내부적 원인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차단하며 가상의 적을 개념적으로 구축하는 작업이다. 이와는 달리 고통의 원인을 업의 개념으로 이해할 경우 인과의 영역을 마음의 차원으로 확장시켜준다. 마음은 주체와 객체를 포괄하는 관점을 반영하며 - 나와 타자/세상이 모두 내 마음에 의해 인식된다는 의미에서 - 그 특성상 무한한 가능성을 향해 열려있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마음이 어떻게 스스로를 고통스럽게 하는 악업(피해의식)을 통해 현실을 재생산하는지를 자각할 수 있게 해준다. 이를 통해 피해자와 가해자를 이분법적으로 보는 방식을 넘어서 용서의 가능성을 개념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용서는 고통에 대한 치유를 가져오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용서행위와 용서의 사회적 맥락을 선형적 인과로 볼 경우에는 조건이 변화되어야만 용서가 가능한 것으로 개념화되고 만다. 그러나 상호적 인과성의 논리에서 본다면 원인 - 용서의 조건으로서의 사회적 맥락 - 이 변화되어야 만이 용서라는 결과가 가능하다고 보는 제한된 관점을 극복할 수 있게 된다. 원인과 결과가 상호의존적이어서 공하다는 것을 이해할 때 결국 마음이 갖는 자체적인 자유에 눈을 뜰 수 있으며 객관적 조건에 대한 종속성을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 둘째로, 불이(不二)에 대한 이해는 믿음을 통해서 실천될 수 있음을 제시하였다. 개인과 사회를 상입(상호포함) 관계로 이해할 때 개인의 경험이나 행위, 즉 개인의 마음(현실)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은 바로 전체사회에 그대로 반사되며 투영되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된다. 특히 주체와 주체가 서로를 인식론적으로 무한히 상호포함하고 있는 측면에 대한 이해는 자신의 마음을 바로잡는 수행이 어떻게 실질적으로 소위 사회라는 외부적 현실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줌으로써 긍정적인 믿음이 그 자체로서 유의미한 실천이 될 수 있음을 알려준다. 따라서 믿음은 개인적인 취미선택의 수준에서 취급될 일이 아니라 현실창조의 가장 기본적인 도구인 것이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볼 경우 자신의 외부에 존재한다고 여겨지는 억압체계조차 이미 자신의 마음(무의식)에 합체된 정보로서 자리매김 될 수 있으며 바로 그렇기 때문에 반대로 해방적인 방식으로 다르게 창조될 수도 있다. 즉 공통의 피해의식이 아니라, 공통의 긍정적 믿음에 의한 연대를 실천하는 일을 두고 믿음의 정치학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셋째로, 불교의 공사상에 입각한 불교적 수행은 사회적 실천을 이분법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전개시켜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여는 데에 기여할 수 있다고 보았다. 상황을 적대적이지 않은 평화적인 인식론으로 바라볼 수 있을 때 변화를 보다 효율적으로 창조할 수 있게 된다. 일어난 사건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일은 피해자적 관점을 넘어서는 실천으로서 이해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보다 나은 현실을 창조하는 일에 장애가 줄어든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상호인과성의 논리에 따라 조건 없는 변화를 선택할 수 있는 마음의 능력 때문이고, 마음의 외부 즉 궁극적으로 ‘남’이라는 것이 없음을 인식함으로써 공동의 책임의식을 극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억압체계에 대해 책임을 지는 - 즉 그것이 자신의 일부임을 인정하는 - 여성주의가 보다 성공적일 수 있음을 인식하게 된다. 왜냐하면 여성의 실체성과 더불어 남성의 실체성도 구성된 허구로서, 이를 다르게 인식/창조하는 작업이 보다 수월해지기 때문이다. 탈이분법적 여성주의는 억압의 (집단적) 주체 혹은 가해자를 대상화하지 않는 방법들에 대해 더욱 깨어있게 됨으로써 보다 효율적이 될 것이다.;This study starts from the necessity of a deeper introspection of the politics of the victim in feminism. The androcentric subject is said to objectify women, but objectification necessarily occurs also from the victim subject to the oppressor or dominant group, because the Self is constructed by what it excludes, by boundaries with the other, and exists only by reproducing one's self-centeredness repeatedly. If we want to overcome power relations, then we need to investigate the inherently dichotomous nature of the Self. Buddhist teachings of selflessness shows that self-centeredness is an effect of dualistic delusion, and that dichotomy should be rediscovered as co-dependent arising, whose ultimate meaning is Emptiness. From the teachings of Madhyamaka-Sa?stra we can conclude that two items which are co-dependent can not exist each one as a substance. Much feminist theorists have discussed on the false dichotomy of self/other, mind/body, nature/society, private/public. Judith Butler's theory on 'the deed without a doer behind' can be understood as the deconstruction of linear causality. But Buddhism differs in that it applies this deconstruction in every dimension and completely. The dualism of entity and its attribut, the sense organs and the perceived objects, existence and non-existence are all said to be an illusion, and even the Emptiness is empty. The philosophy of Deconstruction is very similar to Emptiness in that it deconstruct essentialism and causality, but differs from Buddhism by being situated in time and space, incessantly repeating and deconstructing itself. From the Buddhist point of view, even time and space is a mind-made construction. Incomplete deconstruction involves an unacknowledged dichotomy of selfishness, being a potential threat which enforces boundaries and excludes other subjects. Buddhism emphasizes that the first person I, the subject itself of the deconstruction movement is the ultimate delusion. This practice can only be achieved by oneself but as it must be displayed in social environments, efforts to improve social conditions are thus of great importance and then naturally meets with concerns of feminism. The contribution of Buddhist epistemology to feminism are as follow. First, comprehension of Buddhist non-duality leads to a paradigm of compassion and forgiveness. In painful situations, dichotomous thinking appears as a tendency to reify the causes of oppression, preventing from deeper understanding of one's own contribution. On the other hand, the concept of karma enables expansion of causality in the mindfulness dimension. The Mind as an all-encompassing view comprehending subject and object - for all that is perceived is part of oneself - is open to unlimited possibilities. The concept of karma also helps to become conscious of how the mind reproduces painful reality by its own feeling of being victimized. This can help to conceptually understanding the possibility of forgiveness. If we see the relation of 'forgiveness' and 'the social context of forgiveness' in a linear causal way, forgiveness appears to be possible only when conditions are changed. But in an inter-causality logic we can get over this limited view. When we realize that cause and effect are inter-dependent and thus empty, we finally understand the inherent freedom of the Mind and the possibility of getting out of subjection from objective conditions. Secondly, comprehension of Buddhist non-duality can be practiced by faith. Once we perceive the relation of the individual and the society as mutual penetration, we can know that all the phenomena arisen in the personal scale are at the same time reflected in the whole society. This shows that the mindfulness practice have an effect on the 'reality outside' and thus make realize that positive faith is in itself an important social practice. Faith is not just a matter of personal choice but can be one of the most powerful reality creating tool. In that point of view, even the systems of oppression once thought to be outside oneself are recognized as informations incorporated to one's own mind(unconscious) and that is the very reason why they can be recreated in a different way. Solidarity in common positive faith - instead of common feeling of being a victim - can be understood as the Politics of Faith. Thirdly, Buddhist practice based on realization of emptiness can contribute to social movements unfolded in a non-dualistic ways. When we perceive situations with a peaceful epistemology we can create changes more efficiently. To take in events that happened as they are means to get over the perspective of the victim and having less obstacles in creating reality. This is due to the mind's capability to choose change unconditionally as the logic of inter-causality makes it possible, and also because when we realize that there is no outside thus no others, common sense of responsibility becomes maximized. Then we understand that a feminism which takes responsibility of the systems of oppression - by recognizing it as part of oneself - will be more successful. Because just as women are not essentially existing so neither do men, and their existence is a fictional construction waiting to be perceived/created in another way. Non-dualistic feminism would certainly be aware of more efficient ways that will not objectify neither oppressor nor collective agent of opp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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