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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忠獻政權의 成立과 그 性格

Title
崔忠獻政權의 成立과 그 性格
Other Titles
(A) study on foundation and characteristics of the Choi family military regime
Authors
林允卿
Issue Date
1982
Department/Major
대학원 사학과
Keywords
최충헌정권사학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bstract
국 영문초록 수록;This thesis is a study on the Choi Family Military Regime, which replaced the Lee Ui-min Military Regime and lasted sixty years (1196-1256) during the Koryo Dynasty. In a very broad sense Choi Regime was just another military regime founded by General Choi Choonghun in that it came into being by coup d'etat, overthrowing the preceding dictatorship. However, there are cretain distinctive characteristics in Choi Regime, when compared to the earlier military regimes. The study has tried to have a closer look at the way Choi Regime was founded and tried to identify and analyze major characteristics of Choi Regime by way of comparison. Three salient features characterize the military regimes that preceded Choi Regime. First, during the 25-year-period following the collapse of civilian regime in 1170, there was a strict confrontation between the military elite and the civilian officials. The military elite, who were in power, concentrated their effort on policing the civilian officials. It was more so, because the military regimes were not firmly established with power struggles in themselves. As a result, the military regimes more or less lacked in flexibility for adopting administrative knowledge and experience of civilian officials. Second, power was split among a group of military elite during the period with key power players being ousted over a short period of time. Therefore absence of any single centralized power gave birth to Choong Bang, which was a league of military elite, where major polices were formulated with concession. Third, King Myungjong(1170-1197), who was placed in the throne taking over King Uijong, maintained formal ritual authority required of a king. Thus neither the King nor the military elite, who scrambled for power, exerted a centralized control. Political disturbances and lack of a centralized control therefore triggered unstability in provincial areas, resulting in civil revolts of varying scale throughout the country. The revolts were against greedy local rulers who virtually threatened the well-being of people. It was this political environment, from which General Choi Choonghun emerged as a strong power. Although he had not been a key power player in the central prior to the coup, he was recognizing major problems then, as pointed out in his Bongsasipcho presented by him to King Myungjong. It is noted that Eongsasipcho quite specifically identified and well expressed the problems of the age. As General Choi gained more power, he gradually replaced the military supporters with growing number of civilian officials, whom he counciled for politics. He maintained an open posture in staffing key positions. Another distinction of Choi Regime was the existence of the two political institutions, i. e. Do Bang and Kyochung Do Gam. Whereas Choong Bang of the previous regime collectively represented the political interest of a group of military elite amidst power struggle, Do Bang and Kyochung Do Gam were controlled and disciplined under the command of General Choi, the single power. Do Bang primarily served the personal security need of General Choi, providing military power base with him. Kyochung Do Gam, in contrast, served more official need, carrying out key roles in planning and implementing major policies of the regime. The fact that these two important institutions were founded and controlled by a single leadership, seem to have enabled the Choi Regime last 60 years, keeping quite a stable situation. Last, power of Kings seem to have weakened further during Choi Regime, probably because of more concentrated power. An analysis on the power relationship between the Kings and Choi Regime has been conducted. Further to this, several points were made as to whether the Bongsasipcho were consistently pursued by the Regime. Based on the above facts and analysis, conclusions were drawn with respect to foundation background and key characteristics of Choi Regime as a set of distinctions from the preceding military regimes.;崔忠獻政權은 60년에 걸치는 장기적인 武人政權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本 논문에서는 최충헌 개인에 대한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측면에서의 평가보다는 시대상황속에 부각된 崔忠獻政權의 실상이 어떠한 것이며 이 정권이 당시 사회가 지닌 모순을 해결할 수 있었느냐에 대한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자 하였다. 崔忠獻政權이 初期武人政權과는 달리 1人에게 권력이 집중되어 장기화할 수 있었던 요인을 우선 시대적인 상황과의 연관속에서 고찰해 보았다. 崔忠獻政權의 성립이 가능했던 요소는 무엇이었을까? 이를 위해서는 初期武人政權에 대한 성격규명과 이 시기가 가진 모순이 어떤 것이었느냐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전제 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初期武人政權의 특성을 세가지 면에서 고찰하였다. 우선 文班에 의한 권력에의 소외를 체험한 武臣들에 의한 정권이었다는 점과 두 번째로 정권이 어느 한 개인에게 장기적으로 집중되지 못한 상태에서 重房이라는 기존의 機構를 통해 武人들의 입장이 대변되었다는 것. 셋째로 武臣들에 의해 옹립된 明宗(1170-1197)의 王權이 初期武臣 집권자들의 권력수행과 어떤 관계에 있었는지를 보았다. 이와 같은 중앙에서의 지배세력의 변동으로 인한 혼란은 많은 사회적 문제를 야기시켰다. 武臣들내에서의 정권쟁탈 이라는 면의 自己抗爭과 地方制度의 해이를 틈탄 地方官의 貧虐 및 일반민중들의 생활위협을 들 수가 있다. 이를 알아보기 위해서 당시 시대상황이 잘 드러났다고 생각되는 明宗 5年의 詔書와 崔忠獻의 封事10條를 검토하여 보았다. 당시의 武人政權들은 이런 혼란을 극복할 만한 강력한 역량을 발휘할 수가 없었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등장한 것이 崔忠獻이었다. 崔忠獻政權은 이러한 시대적 배경속에서 성립된 것이므로 그 정권이 당시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할 역량이 있는 政權인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선 그의 정권이 前代와 달리 안정적이고 長期化 할 수 있도록 한 요인이 무엇이었는지를 살펴 보았다. 崔忠獻의 집권과정에서는 明宗代의 활동상황 및 이 시기의 정치적 경험이 그의 집권이후,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었는가와 정권수립시의 연합적 성격의 요인을 어떻게 1人 독재정권으로 유도해 나갔는가를 보았다. 그는 明宗代에 있어서 핵심적인 중앙권력에의 참여자는 아니었으나 地方官과 按察使의 경험을 토대로 당시 사회가 지닌 문제점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崔忠獻이 일단 政權을 잡고 난 뒤에는 그의 정권이 어떠한 제도적 정비위에 운영되어졌기 때문에 長期的인 政權의 유지가 가능했는지를 고찰하여 보았다. 崔忠獻의 정권장악 요소를 人的構成과 제도적 장치로 볼 때 後者의 측면에 있어서는 그가 이전의 重房이라는 기존기구를 통해서 정책을 내던 前期執權者들과는 달리 독자적인 機構를 조직 소유하였으며 이러한 역할을 담당한 것이 都房과 敎定都監이었음을 알았다. 都房은 최충헌 개인의 신변보호를 우선으로 하는 私的武力基盤이었고 이에 비해 敎定都監은 公的인 성격이 강하고 崔忠獻武人政權의 중요업무가 이를 통해서 시행되었다. 敎定都監과 같은 性格을 가진 기구가 한 사람의 이름으로 설치되고 이를 통한 권력행사가 가능했다는 것은 비로서 1人절대정권이 안정권안에 들어가고 長期化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崔忠獻政權에 참여한 人物의 性格이 어떠했는지를 정권장악을 가능하게 한 하나의 요인으로 꼽을 수 있다. 이는 封事10條와 같은 것이 뛰어난 政治的識見과 文學的 소양을 가진 者에 의해 씌여졌다는 추측과 실제 崔忠獻 주변인물들의 보좌가 그의 政權 기초확립에 중요한 요인이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와같이 前代에 비해 훨씬 독자적이고 강화된 支配機構를 소유할 수도 있었고 人物 등용에 있어서도 개방적이던 崔氏武人政權이 당시 사회가 안고 있던 문제점을 해결할 意志를 갖고 있었고 실제 그런 역할을 담당할 수 있었는가에 대한 문제가 제기된다. 崔忠獻이 政權을 잡으면서 前代의 모순으로 지적하고 나선것이 封事10條였다. 이는 차후 崔忠獻政權이 이와같은 현실 인식을 토대로 정책을 펴 나가겠다고 하는 정치적 소견이라고도 볼 수가 있다. 따라서 封事10條에서 지적된 모순들이 崔忠獻政權下에서 적극적으로 개선되어 갔는지에 대한 고찰은 崔忠獻政權의 性格을 이해하는데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史料를 통해 볼 때, 崔忠獻政權下에서는 그가 지적했던 사회적 모순들이 再現되고 있었다. 이는 崔忠獻政權이 前代와는 분명히 구별되는 강화된 안정적인 正權의 유지와 자체내의 支配力의 확대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문제점들을 해결할 수 없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는 崔忠獻이 執權하고 나서 全力을 기울인 권력의 강화가 자신의 정권 유지를 위해 경주되었고 효율적인 政治機構 및 人物登用도 결국은 1人絶對政權의 권력행사를 용이하게 하는 측면으로 강조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제요소의 考察을 통해서 崔忠獻政權의 성립과정 및 성격규명에 대한 이해가 증진될 수 있으리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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