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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末 顧問官 J. McLeavy Brown의 硏究(1893-1905)

Title
韓末 顧問官 J. McLeavy Brown의 硏究(1893-1905)
Other Titles
(The) Politics of Foreign Advisers in Korea : with special reference to J. Mcleavy Brown
Authors
金賢淑
Issue Date
1988
Department/Major
대학원 사학과
Keywords
한말고문관J. McLeavy Brown한국역사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bstract
舊韓末 朝鮮政府의 改化政策 추진에 따라 많은 외국인 顧問官들이 雇聘되었다. 政府는 이들에게서 朝鮮의 近代化와 主權守護를 위한 國政改善에 협조할 것을 기대하였다. 그리하여, 일면 이들을 통하여 근대적인 文物制度가 收入, 개선되었으나, 디들은 朝鮮의 半植民地的狀況 조성 및 제국주의 세력침투에 크게 기여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顧問官들의 성격을 분석하기 위하여는 우선 개별 인물의 연구와 顧問官들의 국적 및 근무분야별 연구가 축적되어야 한다. 따라서, 舊韓末 顧問官들의 성격을 파악하기 위한 단계적인 사례연구로서 度支部 顧問官 兼 總稅務司인 존 맥리비 브라운(J.MacLeavy Brown: 朴 卓安)의 在朝鮮活動의 특성을 분석하고자 한다. 本稿에서는 브라운의 活動을 度支部와 海關을 運營하는 행정적인 측면과 貨幣, 金融, 차관 및 商務 등을 다루는 經濟政策的인 측면으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특히 그가 日本의 對朝鮮 經濟침투에 기여한 면을 중점적으로 분석해보고 그의 母國인 英國과의 政治, 經濟的인 관련성을 살펴보았다. 그 결과, 다음의 특성들을 도출해 낼 수 있었다. 브라운은 비록 經濟的인 이론과 구성을 결여하였지만 海關과 度支部를 運營하는 행적적인 차원에서는 능력을 발휘하였다. 특히, 합리적으로 원리원칙을 고수하는 그의 運營방침에 따라 海關과 度支部를 계획적, 합리적으로 運營하였다. 그러나, 緊縮財政의 결과로 얻은 잉여금을 改化事業에 쓰지 않고 對露차과능 저지하기 위한 日本차관의 상환금으로 사용한 점, 海關을 度支部의 지휘, 명령체계에서 독립시켜 브라운의 명령만 통하는 私機關으로 만든 점, 그리고 關稅行政을 전단한 검은 그의 行政政策으로 독단성을 잘 시사해 주고 있다. 또한, 國際政治的인 力學關係의 변화에 따라 그의 원리, 원칙적인 합리성은 모순점을 노출하였다. 즉, 1897년부터 그의 母國인 英國이 日本과 동반자적인 관계로 들어서자 친영, 친일적인 성격을 농후하게 띄기 시작했다. 日本의 刻印付円銀의 통용허용, 고의적인 日本차관 상환지연에 따른 第一銀行의 海關稅 예치권의 연장과 차관제공 독점권의 유보, 第一銀行券의 토용허용, 그리고 日本人 海關員들의 대거 등용 등 海關을 발판으로 日本의 金融, 貨幣 및 商權 進出에 크게 기여하였다. 한편, 英國의 經濟進出도 적극 후원하여, 각종 利權의 알선, 英國 金融進出의 後援, 英國의 무역증진 그리고 國家機密 제공 등 英國의 對朝鮮進出에 橋頭堡的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더욱이, 1900년 이후 英國同盟이 성립되자 양국과 브라운은 더욱 밀착되어 공동 보조를 취하게 되었다. 露佛의 차관도입 저지 및 李容翊의 해고기도 건, 브라운의 總稅務司職 고수등은 英國과 日本, 그리고 브라운의 협조체제에 의해 성공된 것 들이었다. 이에, 브라운을 통해 한반도에서 英日同盟이 강화되었다고 시사된다. 이상 브라운의 在朝鮮活動을 분석한 결과, 브라운은 朝鮮政府가 목적하였던 近代化와 主權守護와는 반대로 朝鮮의 半植民地的인 상황을 심화시키고 침투하는 帝國主義 列强의 안내자적인 역할을 당당하였던 것이다.;Shortly after the opening of Korea, the government began to launch modernization and to establish Maritime Customs. But, in the course of that, there was no experts who could take charge of these tasks. Therefore, the government decide to invite foreign experts to meet with the immediate needs. John McLeavy Brown, the Englishman who was the fifth Chief Commissioner (1893-1905), was sent to the Korean Customs by Robert Hart, the Chinese Chief Commissioner. Thus, in the initial stages of his custom administration, Chinese influence was predominant. But, after the outbreak of Sino-Japanese War, official relations between the Korean Customs and the Chinese Customs severed. Brown was then re-employed by the Korean government as a Chief Commissioner concurrently as financial adviser. The government entrusted him with broad authority needed in the management of Financial Department and Maritime Customs. Without his counter-sign, no penny could be dispensed from the budget. Until 1897, he carried out pro-Korean policy; he impeded Japanese infiltration in the Customs and he gave useful advices to the Government. But, most of all, by the dint of his retrenchment policy in finance, he could save two million won. On the other hand, he cunningly used his authority to make the Maritime Customs independent of the Finance Department and arbitrated customs administration by exercising his authority on the disposal of custom duties. Also, his retrenchment policy lacked with good purpose, which meant that he used the national savings not to the modernization, but to pay back Japanese loan before the due date in order to blockade the Russian loan. Especially after 1897, he openly pursued pro English and Japanese policy. He consented to curculate Japanese stamped silver coin, pro-longed Dai Ich Bank's right to receive custom duties and also allowed to circulate Dai Ich Bank's notes. Thus, Japan owed much to Brown in establishing solid base in this field. Brown's pro-Japanese policy concurrented with the British foreign policy. They worked with close partnership in all matters especially in blockading the Russian and French loan in 1901. Brown safeguarded the English and Japanese rights, while Britain and Japan provided him with whole-hearted support. In conclusion, Brown, as a financial adviser and Chief Commissioner, had played an active role in the infiltration and colonization of Britain and Japan. These were in contrary to the purposes of Korean Government in employing foreign advisers, which were to modernize the country and to maintain indepen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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