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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後期 譯官의 身分과 그 役割

Title
朝鮮後期 譯官의 身分과 그 役割
Other Titles
(The) Social status and the Role of Interpreters(譯官) in the late Chosun(朝鮮) Dynasty
Authors
全允珠
Issue Date
1993
Department/Major
대학원 사회생활학과
Keywords
조선후기역관신분사회생활학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bstract
This study aims to analyze the status and role of interpreters(譯官) in the late Chosun dynasty. Interpreters who were typically from the Choong-in(middle stratum, 『中人』) performed a substantial portion of their duties in regard to foreign affairs. In a rapidly changing environment in the late Chosun dynasty, they made efforts to improve their social status by broadening their scope of duties. This study examines the education, process of employment, roles, as well as the upwardly mobile status of interpreters and its realities as follows: First, the Chosun dynasty established the Sayokwon(bureau of interpretation, 『詞譯官』), an institute for interpreters, and the nation selected and educated the applicants for interpreters to cope with a changing international environment. Interpreters could be promoted to the rank of Nok-jik(祿職), Wijik(衛職) or Bookyung-jik(赴京職),, however, the quantity of government positions had been periodically modified due to any changes in the international environment or the national economy. Secondly, interpreters also reported information about the international affairs to the government as part of their diplomatic duties. Based upon such diplomatic experience, interpreters began participating in state affairs, however, the efforts proved fruitless. The official position of interpreters did not guarantee their living. Accordingly, they took advantage of their position and engaged in foreign trade. They intervened in a trade between China and Japan in collusion with merchants until the late 17th Century, and thereby, acquired a large fortune. From the middle of the 18th Century, however, trade by interpreters showed a gradually decline due to conflicts with Sasang, and direct trade relations between China and Japan. Interpreters took a leadership role in importing publications and scientific technology by the envoy which contributed to the cultural development in the latter period of Chosun. Because interpreters were in contact the foreign cultures, or their status was restricted and thus could not participate politics, they immersed themselves in the Christianity. As a consequence of such economic, social and cultural actiyities, their consciousness was awakened. Thirdly, when the system of hierarchy changed, interpreters concentrated on their status and made efforts to raise their unfair status. Therefore, taking advantage of the Joong-jik(贈職) or Mooban-jik(武班職), interpreters attempted to raise their personal status, and participated in the Choong-in Tong-chung Movement(opening up promotion route to Yang-ban for intermediate class, 『中人通淸運動』). Consequently, the social status or political position of interpreters still could not match those of the Yang-ban(nobleman, 『兩班』), however, they were in the forefront of economy and culture in the late Chosun dynasty.;本 論文은 조선후기 譯官의 신분과 그 역할을 고찰하는 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조선후기에는 지주전호제의 확대와 농업경영에서의 생산력 증대, 그리고 상공업의 발달 등 경제면에서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이같은 변화를 토대로 하여 富를 축적한 새로운 계층의 신분상승과 봉건적 수취체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양인 및 노비들의 신분상승 도모, 그 위에 양반 상호간의 극심한 정치적 갈등으로 인한 양반층의 자기도태 등으로 기존의 신분질서가 동요하게 되었다. 本 論文에서 살펴 보려는 譯官은 대표적인 技術職中人으로서 通譯의 임무를 맡아 조선의 대외정책을 실직적으로 수행하였다. 譯官은 급변하는 조선후기의 사회에서 활동의 범위를 넓혀가며 자신들의 지위를 개선시키기 위해 노력하였다. 本 論文에서는 조선후기에 譯官의 교육과 임용과정, 譯官이 담당하였던 외교·정치·경제·문화적 역할, 그리고 譯官의 신분상승운동과 그 실태에 대해 살펴 보고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조선왕조는 효과적인 외교활동을 위해 건국츠부터 司譯院을 설립하여 국가의 주도하에 譯官을 교육시키고 선발하였다. 譯官의 선발과 각종 자격부여를 위한 시험에는 譯科·考講·院試·取材 등이 있었는데, 시험과목과 내용, 방법은 시험의 종류에 따라 달랐다. 譯官들은 司譯院의 祿職과 衛職, 赴京職으로 진출할 수 있었는데, 관직의 직과수는 국제관계의 변동과 재정상의 이유로 여러 차례 변화하였다. 둘째, 譯官은 외교업무의 수행과정에서 외국의 정세를 보고하고 실무를 처리하였다. 이러한 외교적 경험과 무역을 통해서 축적된 경제력을 가지고 譯官은 숙종대에는 국내정치에의 참여를 시도하기도 하였지만, 대개는 실패하였다. 譯官은 관직을 통해서 생활의 보장이 되지 않았다. 이에 譯官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赴燕使行의 기회를 이용하여 무역활동을 벌이게 되었다. 譯官들은 17세기 후반기까지는 私商들과 결탁하면서 淸·日 중계무역에 개입하여 富를 축적할 수 있었다. 그러나 18세기 중엽부터는 淸·日간의 직교역, 私商과의 마찰 등으로 譯官들에 의한 무역은 점차로 쇠퇴하였다. 또한 譯官은 使行을 통하여 서적의 구입과 과학기술의 도입에 앞장섬으로써 조선후기 문화발전에 기여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譯官은 譯學의 발전을 주도하였고 委巷文學運動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한편 使行을 통한 외국문화와의 접촉과 신분상의 제약, 정치적 좌절로 譯官은 西學에 깊은 관심을 보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譯官들의 경제·사회·문화적 활동은 궁극적으로는 譯官의 의식을 향상시켜 주었다. 셋째, 의식이 향상된 譯官들은 기존의 신분체계에 변동이 일어나게 되자, 자신들의 위치에 관심을 갖고 그들에게 가해진 신분차별의 부당성에 유의, 신분을 상승시키고자 노력하게 되었다. 그래서 譯官들은 贈職과 武班職을 이용하여 개별적으로 신분상승의 노력을 벌였으며, 1851년에는 中人通淸運動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譯科傍目을 분석해보면, 譯科合格者의 堂上官으로의 진출은 점차로 증가하였다. 그렇지만 그들이 차지한 堂上官職의 종류와 世傳性 등을 고려해보면 譯官의 신분은 실질적으로 상승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譯官 자신들의 한계성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요컨대 譯官은 신분이나 정치적인 면에서는 조선후기에도 여전히 양반에 미치지 못하였지만, 경제나 문화방면에 있어서는 점차 양반에 못지 않는 실력을 쌓아서 조선사회에서 점차로 그 존재가 부각되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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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대학원 > 사회과교육학과 > Theses_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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