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牡丹文 硏究

Title
牡丹文 硏究
Other Titles
(A) STUDY OF PEONY PATTERN
Authors
柳惠英
Issue Date
1987
Department/Major
대학원 의류직물학과
Keywords
모란문중국고려시대조선시대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bstract
Peony is a typical flower of China and therefore its pattern was originated from China. Popularity of planting peony, development of the decorative culture and tendency of naturalistic arts of Chinese T'ang Dynasty brought about the origination of peony pattern. The pattern was used for ornamental designs in various craftworks-potteries, folk paintings, embroideries, etc.-in the Koryo and Yi Dynasty of our country as well as in China. Since the flower was a symbol of wealth and prosperity, it could be easily an attractive pattern. The common people of Yi Dynasty, preferred to put its natural shape on their folk paintings and embroideries. However, the peony designs of royal Koryo Celadon and Bun Cheong (粉靑) had developed into the different modes which were not a natural peony shape. Koryo Celadon's peony patterns had tended towards a planning tendancy and Bun Cheong's towards an abstract tendancy, but both gradually changed into different shapes of non-peony patterns. Korea has its own mode of expression in accordance with its indigenous artistic volition separately from China. Peony's big and gorgeous petals are matched well with Chinese beauty. Therefore in spite of varieties of expression in Chinese design history, most of Chinese peony patterns represent the flower's characteristic beauty. On the other hand, the big and gorgeous appearance of peony is not matched well with Korean beauty, for Koreans have a preferrence of simple and neat ornamental designs. The concept of peony's wealth and prosperity was the strongest motive to be used for designs in the folk paintings and embroideries of Yi Dynasty, and therefore the natural shape of peony was designed in those goods to make sure of the concept. But in Koryo Celadon and Bun Cheong the peony pattern had been transformed into non-peony pattern according to our Koreans' artistic volition.;牡丹은 傳統的인 中國의 꽃이며 따라서 牡丹文도 中國에서 발생한 中國傳統文樣이다. 唐代에 盛行한 牡丹의 觀賞과 장식문화의 발달 및 사실주의 양식의 傾向은 牡丹文發生의 背景이 되었다. 이러한 背景아래 보상화문 안에 存在하던 牡丹의 要素가 牡丹文으로 便化 發展하게 되었고 또한 花卉畵의 素材로 등장하던 牡丹이 회화적 牡丹文의 母胎가 되었다. 中國에서 工藝品의 장식도안으로서 우리나라에 傳來된 牡丹文은 통일신라시대에 들어왔으나 단독목단문은 보이지 않고 고려시대에 靑磁, 銅鏡, 朝鮮朝의 粉靑沙器와 民畵 및 刺繡에 널리 사용되었다. 高麗時代 靑磁에 施文된 牡丹文은 主로 단독立枝形으로 寫生風이었는데 象嵌靑磁 後期로 가면서, 점점 文樣의 크기가 작아지고 圖案風의 樣式化속에 牡丹의 花瓣도 6~7個 정도로 적어지고 量感이 상실되어 牡丹의 특징적인 모습을 잃게 되었다. 朝鮮時代 前期의 粉靑沙器는 그 民藝的 性格으로 시원, 활달하게 단독花文형식으로 施文되었는데 점점 대담한 생략에 의한 단순화, 추상화로의 양식변천 속에 牡丹은 그 具體的인 形象을 또다시 잃어버리게 된다. 朝鮮時代 後期의 民晝와 刺繡製品에서 牡丹은 사실풍과 도안풍이다. 存在하고 이들의 화려하고 豊盛한 形態特性이 모두에 충실하게 表現되었다. 특히 婚禮品에 집중적으로 사용되었던 것이 牲丹의 富貴삼징에 연유한 것이고, 民畵의 性格도 生活畵로서 그 主題가·現實生活 에서의 바램을 담은 吉祥, 벽사 등에 관한 상징을 나타내는 '事物들이었던 것으로 보아서, 民畵와 刺繡에 나타난 牡丹文은 부귀상징을 전달하기 위한 매체로서 牡丹이라는 특정 事物을 表現하였던 것으로 부귀상징이 확실하게 나타나기 위해서는 牡丹이 確實하게 表現되어야 했으므로 당연히 牡丹이 충실하고 정확하게 묘사되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바꾸어 말하면 부귀 상징성의 전달이 造形意志로 作用하여서 牡丹의 구조적특성을 表現하였기 때문에 靑磁, 粉靑에서와 다른 현상이 나타난 것으로 보겠다. 靑磁와 粉靑에서 나타난 牡丹文은 실제의 牡丹에 대한 사생이 아니고 中國에서 傳來된 장식문양으로서 韓國人의 固有한 美意識에 따른 純藝術的 장식사의 발전과정을 전개해 나아갔기 때문에 脫牡丹化의 現象에 이르른 것이라고 보며, 靑磁와 粉靑에서의 差異는 고려시대의 貴族文化와 朝鮮時代의 民藝的인 文化(특히 粉靑에서 강하게 나타난)의 性格差와 연관지을 수 있다. 中國과 韓國은 各己 고유한 美意識을 지였으므로 牡丹에 대한 選好도 다르게 나타나고 따라서 表現方式도 다른 樣相으로 전개되었다. 中國에서는 우리나라와 달리 時代的, 樣式的 변화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꽃잎으로 이루어진 화려한 牡丹의 本質的 特性이 항상 잘 나타나고 있다 고려청자의 독자적인 文樣이 野菊, 雲鶴이었던 것에서도 잔잔하고 조촐한 것을 선호했던 氣質을 알 수 있지만 같은 牡丹을 素材로 하여 나타난 表現樣式의 차이를 볼 때 中國의 완벽에 가까운 形式美에 비해 우리는 未完成의 自然美로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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