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 : 28 Download: 0

高麗 高宗朝 科擧及第者의 政治的 性格

Title
高麗 高宗朝 科擧及第者의 政治的 性格
Other Titles
(A) Study of Political power through the passed examination for civilan at the period of Kojong
Authors
姜芝언
Issue Date
1986
Department/Major
대학원 사학과
Keywords
고려고종과거급제자한국역사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bstract
It is well known that the military rebellion (Uijong, 24, 1170) was a great turning point in changing the political, social and economic structures of Koryo. The purpose for this study is to understand society of the late Koryo by the use of political power's change. The Ch'oe's political power was different from that of another military's. In other words, Ch'oe's political power employed many civilian officials that had been excluded from the main political stage before. By doing so, it made every effort to maintain the balance of power between the civilian and the militarian. The period of Kojong was an very important time in the long Ch'oe's political power. It enforced the Passed Examination for Civilian to make its only political stage enlarge, which it also employed many civilian officials through Sobang and Chongbang, Ch'oe's private political mechanisms. In other words, the period of Ch'oe's tried to combine many new officials and new ones. The analysis of the civilian officials through the Passed Examination for civilian shows us the domination of new local-colored officials. Such new local-colored ones served for Ch'oe's political power devotedly and had more advantageous backgrounds than the old ones had. Their serving-time begins from Kojong to Wonjong or ChungRul. But, as time passed, their political trends differ from that of Ch'oe'. They began to grow criticizing consciousness for the civilian officials that had been protected under Ch'oe' period. They also felt the disastrous society that Mongols assault had produced, at that time. Namely, they wanted to renew the society. They tried to protested the military politics, to recover King's prestige and the stability of the political power. They revealed the crupted officials and the agonys of people directly. This new civilian officials developed the base for new social order. It also led to the start for revolntionary will toward the late Koryo.;毅宗24年(1170)에 일어났던 武臣亂이 高麗 社會의 政治·社會 經濟的 諸 變化의 커다란 계기가 되었음은 주지하고 있는 사실이다. 本槁는 이러한 變化중 특히 政治勢力의 變化에 주목해서 高麗後期 社會의 性格을 이해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崔氏執權期는 종래의 武人政權과는 다른 성격을 지닌다고 이해되어 왔다. 즉 정권에서 소외당해왔던 많은 文臣을 회유·등용함으로써 文·武의 勢力均衡을 유지하여 정권의 안정기반을 구축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高宗朝는 4代 60여년에 걸친 崔氏執權期의 태반을 차지하며, 崔氏政權의 文士 우대정책이 잘 드러나고 있는 시기이다. 崔氏政權은 계속적인 政權維持를 위한 지지기반 확보에 부심하였다. 그리하여 정권의 넓은 지지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科擧制를 强化해 實施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崔氏政權의 私的權力機構인 政房·書房을 통한 文士의 登用에 노력해 왔다. 이렇게 科擧制와 政房·書房의 권력기구는 崔氏政權 基盤 강화의 중요한 制度的 밑받침이 되었다. 高宗朝 科擧及第者를 여러 자료를 통해 추적해 보았더니,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 시기 급제자들은 前期부터 성장해 왔던 기존 文士들도 있었지만, 當代拔身하여 出仕한 地方出身의 新進士人들의 대두와 활동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시기 급제자들의 政治活動을 分析한 결과 이들은 주로 中央官職에서 活動을 보이고 있는 이들과, 政房에서 活動 得勢하고 있는 이들, 地方官으로서 治績을 보이고 있는 이들, 使臣으로 활약했던 이들로 분류되어질 수 있었다. 특히 高宗朝에 出仕한 자들이 주로 地方官과 使臣으로서의 역할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것은, 崔氏政權에서 그들의 위치를 가늠할 수 있게 한다. 이들은 高宗朝부터 元宗·忠烈王代에 걸쳐 활동하였다. 이들이 崔氏武人政權이 몰락하고 난 뒤인 元宗·忠烈王朝에 그동안 쌓았던 정치경륜을 바탕으로 주요 활동을 한다고 했을 때, 이들은 崔氏執權 期間의 文士와는 다른 政治的 性向을 띠게 된다고 할 수 있다. 崔氏政權의 성격 변화 및 그 후의 빈번한 武人政權의 교체와 관련되어, 그동안 崔氏政權 밑에서 보호받으며 성장해 왔던 文臣들에게 있어서 現實의 모순에 대한 批判意識이 싹트고 있었던 것이다. 政權을 천단하고 있는 權臣들에게 대한 비판, 附元勢力에 대한 이들의 비관에서 武臣政權에 대한 반발의식과 아울러, 실추된 王室의 權威를 높이고 정권의 안정을 꾀하고자 하는 의도를 살필 수 있다. 또한 地方官으로서 직접 民의 고통과 부패한 관리의 탐학을 목도함으로써 생성된 비판의식은 이들이 현실의 모순에 대해 자각하고 있었음을 생각케 한다. 이들의 비판의식은 아직은 새로운 社會秩序를 수립하고자 하는 改革에의 의지로까지 나아갈 수는 없었다. 그러나 이 시기 新進士人들에 의해 비판의식이 토로·누적됨으로써 다음 시기에 이르려 새로운 支配株序 모색의 사상적 기반으로서 성리학이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崔氏政文士 保護政策의 일환으로 科擧를 통해 中央政界에 등장하였던 이 시기 及第者들은 이렇게 高麗後期 社會를 이끌어가는 政治勢力의 변화를 배태하는 과도기적 성격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Fulltext
Show the fulltext
Appears in Collections:
일반대학원 > 사학과 > Theses_Master
Files in This Item:
There are no files associated with this item.
Export
RIS (EndNote)
XLS (Excel)
XML


qrcode

Items in DSpace are protected by copyright, with all rights reserved, unless otherwise indicated.

BROW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