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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帝末期 '朝鮮增米計劃'에 對한 硏究

Title
日帝末期 '朝鮮增米計劃'에 對한 硏究
Other Titles
(THE) CHARACTERISTICS OF 'CHOSUN RICE PRODUCTION INCREASE PLAN(朝鮮增米計劃)' AT THE END OF JAPANESE IMPERIALISM
Authors
崔由利
Issue Date
1986
Department/Major
대학원 사학과
Keywords
일제말기조선증미계획증미계획농업통제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bstract
日帝의 朝鮮에 대한 植民地 農業政策은 크게 1920년대의 '産米增殖計劃,' 1930년대의 '農村振興運動,' 그리고 1940년대 전반기의 '朝鮮增米計劃'으로 구분되며, 각 시기에 따라 그 성격이 변화하고 있다. 本槁는 일제의 식민지 농업정책을 체계적으로 파악하고자 1940년대 전반기의 '朝鮮增米計劃'을 중심으로 그 실태를 규명하고자 한다. 일제는 1920년대의 '産米增殖計劃'을 통해 조선을 日本의 食糧供給基地로 확정하고, 米穀의 單作化 및 미곡의 日本 搬出을 강제하였을 뿐만 아니라, 植民地 地主制를 강화함으로써 식민지 지배의 사회·경제적 기반으로 삼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이 1930년대초의 大恐慌과 그로 인한 米價의 폭락 및 조선농민들의 동요로 실패로 돌아가자 '産米增殖計劃'을 중지하여 공황의 피해를 조선에 전가하였다. 그리고는 이를 무마하기 위한 수만으로 '農村振興運動'을 실시하여 농민들에게 自力更新, 多角的 農業經營등을 장려하는 한편, '農地令'과 같은 기만적인 법령을 통해 농민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小作人들을 회유하고자 하였다. 그 후 1937년 中·日戰爭이 일어나면서 식량문제가 더욱 중요성을 띄게 되자 일제는 다시 농업정책을 전환하여 '朝鮮增米計劃'을 立案하게 되었다. 그러나 '朝鮮增米計劃'에서는 1920년대의 '産米增殖計劃'과는 달리 매우 미봉적이고 응급적인 성격이 나타나고 있었다. 즉 1939년에 增米計劃을 실시하고, 1940년 '朝鮮增米計劃'을 입안·실시할 때까지도 農事改良事業에 의해 增産을 도모하는 입장을 堅持하여, 戰時下에서의 資材難을 피하면서 급속히 증산을 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당시 조선에서는 水利問題가 매우 불량한 상황이었고, 또한 농사개량사업에 의한 증산은 거의 한계에 도달해 있는 형편이었으므로 土地改良事業을 외면한 미곡증산계획은 곧 그 허구성을 드러내고 말았다. 그러자 일제는 할 수 없이 1942년 '朝鮮增米計劃'을 更新하여 대규모의 토지개량사업을 실시하고자 하였으나, 擴大一路를 걷고 있던 전쟁의 와중에서 勞動力과 資材의 부족에 허덕이고 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뒤늦게 실시한 토지개량사업은 별다른 성과를 거둘 수 없었고, 그 진척도 부진하였다. 이처럼 점차 長期 計劃이 무의미해졌을 뿐만 아니라, 계속되는 旱魃로 미곡 수확고는 平年作의 70%에도 못미치게 되었다. '朝鮮增米計劃'이 이처럼 계속 실패를 거듭하자 일제는 전시하의 農業統制政策을 더욱 강화함으로써 일본에의 미곡 搬出을 강행하였다. 즉 米穀管理機構를 再編成하여 미곡의 관리·통제를 확립하는 한편, 미곡 수확고가 이미 조선내 소비의 절대량에도 못미치는데도 조선내에서의 미곡 소비량을 계속 낮추어가면서 일본에의 미곡 반출량을 더욱 증대시켜 가고 있었다. 그리고 1930년대 실시된 기만적인 식민지 농업정책인 '農村振興運動'을 폐기하고 反動的인 성격을 노골화하면서 地主制를 강화하였으며, 이를 매개로 미곡의 增産과 供出을 용이하게 하고자 획책하였던 것이다. 일제말기 식민지 농업정책은 일본의 식량공급기지로서의 조선의 역할을 보다 확대시켜 가는 한편, 전시하에서의 농업통제정책을 통해 이를 보다 강력한 형태로 뒷받침하였다. 그리고 1920년대 확립된 식민지 지배의 사회·경제적 기반인 식민지 지주제를 일제말기까지도 강고하게 온존시켰을 뿐 아니라, 오히려 이 시기에 이르러 더욱 강화시킴으로써 식민지 농업정책을 용이하게 수행하고자 시도하였다.;The characteristics of Japanese agricultural policy to Chosun(朝鮮) had undergone a change; 'Rice Production Increase Plan(産米增殖計劃)' in the 1920's, 'Rural Develop Movement(農村振興運動)' in the 1930's and 'Chosun Rice Production Increase Plan(朝鮮增米計劃)' in the early 1940's. This thesis aims to grasp the agricultural policy of imperialist Japan systemically by studying the process, the peculiarity of each stage and the structural characteristics of 'Chosun Rice Production Increase Plan(朝鮮增米計劃)'. By 'Rice Production Increase Plan(産米增殖計劃)' imperialist Japan decided upon Chosun(朝鮮) as a provision base and forced to export rice. Moreover they established the social and economical support to the colonial Policy by bringing up the landlord system. But when this policy failed because of a great panic in the early 1930's, a crash in the rice price and Chosun(朝鮮) peasant's uprising, they practiced 'Rural Develop Movement(農村振興運動)'. In this movement imperialist Japan conciliated tenants who bolded a large majority of the peasant with a deceptive act, 'the Agricultural Land Act(農地令)' and encouraged them to rehabilitate by their own effort and to manage argricultural multiplication. In 1937, when the Chinese-Japanese War broke out and the food problem acquired greater importance, Japan revitalized the rice priority policy of the 1920's and drew up 'Chosun Rice Production Increase Plan(朝鮮增米計劃)'. But unlike the 'Rice Production Increase Plan(産米增殖計劃)' in the 1920's, the 'Chosun Rice Production Increase Plan(朝鮮增米計劃)' was a kind of makeshift. In this plan, by maintaining firmly the plan to increase the production with an agricultural improvement enter prise, Japan tried to manage a shortage of war materials and to make rapid increase. But because irrigation facilities of Chosun(朝鮮) were very poor and the production increase by an agricultural enterprise reached at the uttermost limit, the plan to increase without paying attention to a land improvement enterprise revealed its falsehood immediately. So Japan could not help practicing a land improvement enterprise in the second stage. But this enterprise was of no good in making up for the shortage of labor and materials in the war and made slow progress. This long-term plan became meant nothing and additionally the rice crop was below 70 percent of the normal crop because of a long drought. At repeated failures of 'Chosun Rice Production Increase Plan(朝鮮增米計劃)' the rice export by tightening an agricultural control policy and reorganized a rice managing agency as a rice control system. Even though a rice crop was below the absolute quantity of domestic consumption, imperialist Japan was aggressive in decreasing the amount of rice consumption in Chosun(朝鮮) and exporting rice. Abolishing the deceptive agricultural policy, the so-called agricultural administration for the peasant in the 1930's, they reinforced the lanlord system by which they tried to make easy the rice production increase and the rice export. At the end of the Japanese rule , Japan intensified the role of Chosun(朝鮮) as a provisions base. The landlord system which was established as the social and economical support to the colonial policy in the 1920's was preserved until the end of Japanese Imperialism and at this period, that system was practiced more firm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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