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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羅 下代의 農民叛亂

新羅 下代의 農民叛亂
Other Titles
Peasantry Revolt at the end of the Silla
Issue Date
대학원 사학과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본 연구는 新羅下代의 農民鈑亂에 주목하여 변혁기에 이르는 전기간 동안 피지배층의 움직임이 갖는 의의를 살펴 보았다. 농민은 국가 기반의 주요 구성원으로서 통일전쟁 및 中代 武烈王權을 통해 自覺的인 존재로 인식될 수 있었다. 그러나 下代의 제반 정책은 농민의 意識을 외면하고 역기능을 하였다. 이에 농민들은 구조적인 모순에서 오는 收奪의 심화를 인식하였다. 이 때 國西지방민은 지역적인 특징으로 보다 절실할 수 있었다. 이와같은 인식은 결집된 행동으로 나아가는 勳因이 되어 농민층은 폭넓고 강하게 단결되었다. 이에 농민의 抗爭은 역사적인 체험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보다 성숙되어 단계적인 발전양상을 보인다. 처음 단계에서는 농민의 봉기로 나아가기 전단계로서 勳搖되는 시기이고 둘째 단계에서 농민의 힘이 결집되어 蜂起로 실현된다. 세째 단계는 이전의 동요, 봉기와는 차원을 달리하여 신라국가를 全面的으로 否定하는 반란의 형태로 진전된다. 농민층의 이와같은 움직임은 국가 기반 자체가 흔들리게 되는 것이므로 국가의 存亡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農民抗爭의 거대한 물결은 현존질서를 변화시키는 과정에서 새로운 질서수립의 원동력이 되었다. 그러므로 고려를 개창한 왕건은 이와같은 피지배층의 항쟁을 목도했기 때문에 民生安定에 기초를 둔 정책을 편 것이다. 따라서 전근대 사회에서 이와같은 규모의 농민항쟁은 물론 역량상의 한계는 있었으나 한국사 발전선상에서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고 본다.;On this study I concentrated on the peasants' insurrection at the end of the Silla, and studied the significance of the oppressed's movement at the time of a change. Peasantry was regarded as a essential part on which the state was based and was able to be understood as a conscious being through a Muyeol royal authority under middle age as well as a unit war. But the Central Government carried our a various policy, which tended to ignore the peasants' consciousness. Consequently, Peasantry could recognized the deepening of exploitation that came of the contradiction of the structure. Peasantry moved up to the united action on this base and became strongly broadly a gradual growth of the course of historic experience. In the first stage, it was time that peasantry had been agitated as former stage to the insurrection. In the second stage, Peasants' power was concentrated and realized as a insurrection, in the third stage, Peasants' insurrection improved to the revolt that never accepted the Silla kingdom beyond former step of a insurrection. Therefore, the huge wave of Peasants' resistance became a motive power that establised a new order on the course of changing old order. Wang Keon(왕건) who had experienced the resistance of the oppressed opend the Koryo(고려) and carried out the policy on the base of stabilizing national life. Consequently in the Pre-modern society, peasants' resistance was short of ability but is highly estimated on the growing of the Korea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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