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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 前期 譯官의 性格에 대한 一考察

Title
朝鮮 前期 譯官의 性格에 대한 一考察
Other Titles
(A) Study on the characteristic of the Interpreter in the early Yi-Dynasty
Authors
白玉敬
Issue Date
1988
Department/Major
대학원 사학과
Keywords
조선 전기역관외교정책한국역사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bstract
譯官은 外交關係에서 通譯을 담당했던 技術職 官員이다. 이들의 존재는 이미 高麗時代에도 나타나지만, 그 重要性이 부각되는 것은 麗末鮮初의 時期를 지나면서부터이다. 이때부터 國家에서 적극적으로 譯學의 敎育이나 譯官의 養成에 주력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즉, 恭讓王 元年에는 十學의 하나로 譯學이 설치되었으며, 朝鮮 建國후에도 司譯院 및 譯學·譯料가 존재하였던 것이다. 이것은 政治的인 변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는 하지만, 이전까지는 譯學이 雜學에도 포함되어 있지 않았고 譯官의 정식 職制도 없었던 상황과 비교한다면 매우 발전적인 조치였다. 그런데 譯官은 朝鮮 中·後期 이후 中人階層의 하나로 포함되어 있다. 그 이유는 기존의 연구에 의하면 技術官에 대한 賤視觀念의 결과로 설명된다. 譯官을 포함한 技術官은 技術學賤視라는 觀念에 의해 兩班들이 종사하기를 꺼리는 각종 技術職을 전담·세습하여 나갔으며 朝鮮前期 약 100여년간에 中人으로 성립되어 왔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譯官의 역할에 대한 重要性은 兩班 지배층에 의해서도 인식되었고, 譯官의 活動은 매우 다양하면서도 활발하였다. 이에 本稿는 譯官에 대한 兩班 지배층의 인식, 譯官이 진출할 수 있었던 官職과 그들의 役割을 중심으로 하여 譯官의 性格을 考察해 보고자 하였다. 그 結果 다음과 같은 結論을 얻을 수 있었다. 譯官에 대한 兩班 支配層의 認識은 이중적인 것으로서 그 役割을 重要視하면서도 同時에 그들의 임무의 性格·學問 水準·出身에 대해 賤視하는 兩面이 共存하고 있었다. 이 사실은 譯官의 社會的 地位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서, 특히 重要性을 認識하였다는 점은 譯官의 활동이 다양해지는 것과 더불어 그 위치를 상승시켜 나갈 수 있는 可能性을 譯官들에게 제시해 준다. 譯官들은 이러한 兩班 支配層의 認識下에서 대개는 司譯院의 官職이나 軍職에 진출하고 있었다. 이러한 官職의 性格은 遞兒職으로서 正三品에 한정되었으며, 그 녹봉도 돌아가면서 官職에 在任할 때에만 받을 수 있고, 職田도 주어지지 않는 열악한 것이었다. 그러나 譯官의 役割이 政治·經濟·文化的으로 다양해지고,그 重要性이 계속 부각되면서 譯官에게는 상승 진출할 수 있는 기회가 여러모로 제공되었다. 즉, 政治·外交的으로 譯官들은 外交實務의 處理·相對國의 動靜把握 등의 役割을 담당함으로써 朝鮮의 外交的 對應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하였다. 經濟的으로도 官司의 貿易을 代行하거나 자신들에게 許容된 私貿易을 행하면서 그 活動을 해나가고 있었다. 文化的으로는 先進 中國文化의 수용 및 技術導入에 先導的인 役割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譯官의 重要性을 부각시키는 요인이 되었고, 국가에서는 이에 대해 優待策을 實施하기도 하였다. 한편 譯官들은 이러한 기회를 잘 이용하여, 자신들의 불리한 여건을 克服하려는 努力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현상을 우려하였던 兩班 支配層은 이들의 움직임을 견제하게 되고, 자신들의 旣得權을 維持하고자 한다. 즉, 자신들과는 여러 側面에서 區別되어야 할 譯官들이 兩班 支配層의 位置에 도전하게 되자 그것을 抑制하려고 하였던 것이다. 結局 이러한 過程을 통해 譯官들은 朝鮮 中·後湖이후 中人으로 고정된다. 이상과 같이 볼 때 譯官의 中人化 過程은 身分下降의 側面이 아니라 오히려 身分上昇 欲求를 가진 부류들에 의한 身分 上昇的인 側面이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According to existing study, Specialists (技術官) who occupied the highest position in chungin (中人) class, took complete charge of various jobs of technique which Yangban (兩班) class were reluctant to engaged in due to the conception of despising technical fields at that time, transmitted their jobs from generation to generation to the extent that specialists were established as chungin class for a period of about 100 years of the early Yi-Dynasty. And an emphasis has been placing to the dropping of their social status as a class detached from Yangban class. Nevertheless, an individual and substantial investigation into specialists is required in the fact that the characteristics and positions of the specialists were different among them. As a part of such investigation, a study on the existence way of the Interpreters (譯官) was made in this context focusing on the social status and activities of them. The duty and the learning of the interpreters were regarded as ancillary in the confucian society of the Yi-Dynasty since they were generally forced to serve and preponderance was given to enhancement of their language abilities. Those who advanced into the interpreter careers as a whole were the group who had difficulties to enter into official posts with their confucian knowledge, who were described as men of humble origin or not as the noble (衣冠之族). They were the ones who had a desire to upgrade their positions by advancing into the interpreter careers. However, such a characteristic of the interpreters acted as a factor to be subject to restriction in entering to official posts and to be treated badly as follow. Their positions were limited to 3rd rank (3品) in promotion of official posts and cheajik (遞兒職) which provided them with salary only when they received the official posts in turns and didn't even provide them with Jikjen (職田). They had exerted continuous efforts in order to improve their conditions against the above stated treatments and had diversified their roles in the areas such as politics, diplomacy, economy and culture. The above facts threw a new light upon their roles, so the state came to recognized the importance of them. Therefore, during the rule of king Sengjong (成宗) a trial was made to appoint them as prominent posts of civil and military officials. But these attempts were frustrated by ruling classes who were trying to maintain their domination and vested rights and they came to remain as middle class in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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