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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世紀 靑畵白磁의 硏究

Title
18世紀 靑畵白磁의 硏究
Other Titles
Blue and White ceramics in the 18th Century
Authors
張南原
Issue Date
1987
Department/Major
대학원 미술사학과
Keywords
청화백자18세기미술사학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bstract
Blue and White ceramics are supposed to be introduced initially to Korean around the later part of Koryo. Lather part of Sejong reigning period, Blue and white certainly manufactured. From A.D 1463 to 1469, it was very difficult to import Mohamedan blue (回靑), therefore Blue-and-White had been manufactured with local cobalt(土靑) obtained. The disasstrous effects of the Japanese Invassion from A.D 1592 to 1597, had made stop the pottery industry. As a result, Blue-and-White were substitude with Chul-hway white ceramic of which material was easy to get, a few Blue-and-White ceramics were produced. In 18th century that Sukjong (1674-1720), Kyong Jong (1721-1724), Young jo (1724-1776), Jong Jo (1776-1800) period had impartant varity in the political economical, social, and cultural. Especially, new School of confucius, Sil Hak had broke old method and think. This study attempt to examine charactertstics and historical back ground that was considerd as a importan fact in the 18th century BLue-and -White. In Chapter Ⅱ, attempt to arrange a documents of historical back ground of 18th century concerned with manufactured of Blue-and-White. In Chapter Ⅲ, according to literay records, understand the produced of Blue-and-White. In Chapter Ⅳ, with considering characteristics of 18th centuries Blue-and-White, I intended to emphasize the importance of the Blue-and-white as a Koreaish and simpliciety. And I attempt to establish the chronloge of Blue-and-White in the 18th century. But it was very difficult and uncertuis that have no certain data. As a result, in the further part of 18th century, decoration in Blue-and-White was very simple, and had a number to the motifs of lower, bird bamboo, butterfly..., but in the latter half of 18th century had a number of the motifs of Landscope, animal... and had a decorative paintings.;고려末 중국에서 청화백자가 전래된 이래 조선 前期부터는 국내에서 생산되기 시작했으며 세조 때에는 土靑을 사용하여 번조하기 시작했다. 17세기의 난리로 인해 사회 각 방면에서 질서가 무너지기 시작했으며, 도자기 제작에도 영향을 주었다. 18세기 의 숙종 ( 1674 - 1720 ) , 景宗 ( 1712 - 1724 ) , 英祖 ( 1724 - 1776 ) , 正祖 ( 1776 - 1800 ) 在位시기는 역사적으로 정치·경제·사회·문화의 각 방면에서 기존의 질서와 체제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로 나타나는 현상이 바로 경제구조의 변화, 신분제의 변동, 그리고 새로운 사상의 발전 등이며, 구체적으로 文學, 藝術 학문의 변화, 경제적 富의 축적 등으로 나타난다. 특히 현실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서민문학, 眞景山水, 風俗圖 등의 방면에 관심이 커졌고, 우리의 역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싹텄다. 17세기의 백자는 대개 灰白色을 띠며 靑畵보다는 鐵繪가 많았으나 18세기에 오면 차츰 맑고 깨끗한 雪白色의 釉調를 띠며 청화가 많아지기 시작했다. 한편 청화백자 제작의 중심지라고 생각되는 分院은 1721년과 1751 년에 金沙里부근, 分院里로 이동하였고, 18세기 후반에는 일반의 사기수요가 증가되면서 私燔이 늘어났다. 따라서 이렇게 만들어지는 청화백자는 자연히 요구계층의 기호를 나타내기 마련이어서 18세기의 청화백자 문양 등은 그런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청화백자의 종류가 많아지고 18세기 후반으로 가면 대개가 더욱 당당한 비례로 어깨나 혹은 몸통 등 어느 한 부분이 강조된다. 또 角形器들과 각종 문방구류가 발달하는 것도 형태상의 큰 특징일 수 있다. 문양에서는 18세기 前半에 비해 後半에 가면 線이 굵어지거나 북잡해지며, 여러 가지 종류의 문양이 섞여서 표현된다. 즉, 대담하고 도식화되어 여러 장식이 가미되는 등 초기에 비해 기교가 많아졌으니 이는 匣燔청화백자가 18세기末경 대대적 유행을 하는 것과 함께 대량생산에서 오는 결과이기도 하다. 이러한 현상은 19세기에 들어서도 계속되었으며 차츰 거칠고 치졸해져서 18세기에 비해 유약이나 태토도 나빠졌고 청화발색 역시 탁해지는 경향을 보인다. 결국 18세기 청화백자는 형태, 문양 등을 종합해 볼때 , 수용자 층이 넓어져 일반화되었고, 18세기末의 현상에도 불구하고 문양에서는 前後의 어느 시기보다 한국적 수용과 발전이 돋보인다는 점이며 이 두 가지 성격은 서로 상관관계가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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