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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contributor.author金稔子-
dc.creator金稔子-
dc.date.accessioned2016-08-25T06:08:23Z-
dc.date.available2016-08-25T06:08:23Z-
dc.date.issued1964-
dc.identifier.otherOAK-000000030300-
dc.identifier.urihttps://dspace.ewha.ac.kr/handle/2015.oak/182145-
dc.identifier.urihttp://dcollection.ewha.ac.kr/jsp/common/DcLoOrgPer.jsp?sItemId=000000030300-
dc.description.abstract劉向의 古列女傳, 范曉 後漢書 列女傳, 그 以後의 正史의 列女傳序를 살펴 보므로써 古代 中國의 女性倫理觀과 「列女」의 槪念 및 그 性格의 解釋에 있어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 할 수 있게 되었다. 우선 古代中國女性들에게 있어서는 後世와는 달리 「節操」가 그렇게 重視 되었던 것은 아님을 알 수 있으니 例를 들면 秦始皇 泰山刻石에, '‥‥아들이 있고서 改嫁하면 두 번 죽어도 不貞하다'(‥ 有子而嫁 培死不貞 ‥) 라는 紀錄이 있으니 改嫁女의 數가 많았고 또 아들이 없으면 改嫁 할 수 있었음을 意味한다는 해석이 可能할 것이다. 또 방망계문초에는 무릇 周 以前에 婦人이 改嫁 하지 않는 것은 옳지 않고 남자 역시 再娶를 얻지 않은 것을 부끄러히 여겼다.(蓋自周以前 婦人不以改適爲非 男子亦不以在家自爲恥.)고 했으며, 또 正史 및 天下郡縣志를 상고 해 볼 때 婦人이 守節하여 죽은 자는 周秦前에는 손으로 헤일 수 있고 漢으로부터 唐에 이르러서도 역시 數가 적다. 北宋以後부터 그 수효를 헤일 수 없음을 알 수 있다.(當改正史及天下卽縣志 婦人守節死義者 周秦前可指計 自漢及唐亦寥寥焉 北宋以降 則惡數之不可更僕矣)라고 했다. 실제로 後漢書의 경우만 보아도 改嫁를 두 번이나 했던 董祀妻 蔡琰이 列女傳에 收錄 되었고 父母로부터 改嫁를 勸誘받았던 許弁妻, 陰瑜妻의 例로 보아 「守節」을 해야한다는 절실한 觀念이나 社會的인 制約이 稀薄 했던 것 같다. 이러한 관념은 隋唐에 있어서도 별로 變化되어진 것 같진 않으니 蘭陵公主가 在家했고 光武帝의 寡婦 동생이 朱廣에게 改嫁했고 唐代의 丈價 韓念의 딸이 改嫁 했다는 紀錄들이 傳해지는 것으로 미루워서 隋唐에 이르기 까지는 社會制度上으로 어떤 制約을 받았던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고 할 수 있다. 그 後 價敎的인 思考가 짙었던 宋價들에 依해서 적극적인 反對를 받았고 明代에 이르러서 制度化 되었고 守節女의 家族은 公式的인 勞役을 免除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古代中國女性 모두가 改嫁를 한 것은 아니며 後世에 못지 않는 德行의 所有者들이 許多 했음은 물론이다. 다음으로 우리는 「列女傳」의 收鋏人物들이 반드시 이른바 後世의 節操를 잘 지킨 節婦積인 行爲자로서의 「烈女」가 이님을 알게 되었다. 즉 晉書, 唐書의 경우를 제외 하고는 「列女」로서 一貫하여 傳의 이름이 紀錄 되어졌다. 「列」과 「烈」은 冬日한 글자로 알려지고 있으나 「列」은 「陳也」(편다, 베푼다), 「位也」(둔다), 「仲間也」(무리에 들어간다)로, 「烈」은 「暴也」(사납다), 「毒也」(독하다), 「□氣也」(매울), 「題也」(빛날) 등이니 同一한 意味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列女傳」은 列傳속의 獨行 儒林, 忠孝등과 같은 「列傳」의 한 項目이라는 해석이 可能 할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그들의 活動範圍가 家族이라는 限定된 社會였으므로 그들의 行爲內容은 學文이나 政治와는 관련된 바가 적고 자연히 부모, 남편 女子에 국한되는 것이였으므로 해서 孝行 節行등 아름다운 내용의 것이 특히 강조되었던 것이라고 하겠다. 要컨대 古代中國女性倫理觀 考察의 一齒句로서 是圖되었던 本 硏究를 通해서 우리는 「列女」 특히 古代中國의 列女는 지금까지 一般的으로 認識 되어져 있는바 「列女」의 性格과는 달리 才辯과 文才에 뛰어났던 여성들이였고 守節등의 徹底한 倫理道德的인 觀念을 지녔던 것만은 아니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내용의 列女傳이 모두 남성의 觀點에서 取扱 紀錄 되었음에 反하여 女性인 班昭에 依해서 만들어진 「女誡」만은 철저히 價家的인 男尊女卑思想에 젖어 있음은 對照的인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古代中國에 살았던 女性들은 後代의 女性보다는 어떤 倫理的인 얽매임이 적었던 것으로 추측 할 수 있겠으나 결코 古代에 있어서도 역시 女性이 하나의 獨立的인 存在로서 取扱 되어지지는 못했던 것을 아울러 알 수 있는 것이다.-
dc.description.tableofcontentsⅠ. 序言 = 1 Ⅱ. 列女傳의 立傳 = 5 A. 劉向의 古列女傳 = 8 1. 體制 = 9 2. 立傳 綠由 = 11 3. 內容 = 13 B. 諸正史의 列女傳序 = 15 Ⅲ. 後漢書 列女傳 分析 = 26 A. 後漢書 列女傳의 位置 = 26 B. 立傳綠由 및 그 對象 = 29 C. 體制 = 31 D. 內容 = 33 E. 評價 = 45 1. 地域別 = 45 2. 身分別 = 46 3. 內容面 = 50 Ⅳ. 女誡 = 54 A. 著述目的 = 54 B. 內容分析 = 56 C. 女誡에 나타나는 女性倫理觀 = 61 D. 女誡에 對 한 評 = 62 Ⅴ. 結言 = 66 附錄 (正史列女傳의 名稱別 分類表) = 70 參考文獻 = 71-
dc.formatapplication/pdf-
dc.format.extent2599946 bytes-
dc.languagekor-
dc.publisher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c.subject고대 중국-
dc.subject여성윤리관-
dc.subject후한서-
dc.subject열녀전-
dc.subject중국역사-
dc.title古代 中國 女性倫理觀-
dc.typeMaster's Thesis-
dc.title.subtitle後漢書 烈女傳을 中心으로-
dc.format.page74 p.-
dc.identifier.thesisdegreeMaster-
dc.identifier.major대학원 사학과-
dc.date.awarded1965.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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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대학원 > 사학과 > Theses_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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