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漁樵問答圖 硏究

Title
漁樵問答圖 硏究
Other Titles
Study on the Painting on "Fisherman and Woodcutter in Conversation" owned by Gansong Art Museum
Authors
李銀兒
Issue Date
2003
Department/Major
대학원 미술사학과
Keywords
어초문답도간송미술관Fisherman and Woodcutter in ConversationPainting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bstract
본 논문은 조선중기 인물화를 대표하는 간송미술관소장 <어초문답도>를 畵題적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인물화의 양식적 맥락에서 고찰한 것이다. 예로부터 중국에서는 문학작품 속에서 어부와 함께 초부를 등장시켜 자연에서의 은일 염원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았다. 어부와 초부는 물외한객으로서 세속을 멀리하고 산수자연에 유유자적하며 한거하는 은일자의 표상으로 다루어지고 있었다. 宋代에 이르면 철학자와 문인들은 고상한 대화의 주체를 이전부터 隱者의 상징으로 알려진 漁夫와 樵夫라는 인물에 대입시킨다. 邵康節의 「漁樵對問」와 蘇軾의「漁樵閒話」 에서 어부와 초부는 철학적 이론을 토론하거나 세상을 다스리는 일과 같은 고담을 나누는 賢者로 등장 한다. 어초문답류의 저술이 저작되면서 같은 송대로부터 어초문답도가 제작되었다. 중국의 경우 초기에는 텍스트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으나 후기로 갈수록 작가의 주관이 개입되어 여러 유형의 어초문답도가 등장하였다. 시대적 특징으로 말하자면 어초문답의 畵因이 되는 「漁樵對問」이 저술되었던 시기에 가까운 南宋, 元, 明初의 경우는 텍스트를 충실하게 반영하려고 노력한 船上坐磐石式이 많이 그려졌다. 明代에 들어서면서 吳偉派 화가들에 의해서 兩人同行式 유형의 작품이 등장하였다. 그 대표적인 작품은 汪肇의 <어초문답도> 였다. 兩人同行式은 배경은 거의 생략되고 화면 가득하게 인물을 클로즈업하고 두 인물이 걸어가면서 서로 돌아보고 이야기하는 형식을 취한다. 이 兩人同行式이 조선시대 초·중기 회화에 유입되어서 조선중기 여러 어초문답도 작품에 전형이 되었다. 淸代에는 이 두 가지 유형에서 보다 확대되어 江畔對坐式, 耕讀式이 새롭게 등장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고려시대부터 詩 속에 漁樵가 등장하는데 어부와 초부는 탈세속의 인간으로 평화를 찾아 은둔한 평범한 인간을 지칭하였다. 조선초기에 이르러 송대 철학서 소강절의 저서가 유입되었고, 자연스럽게 그 장면을 그린 어초문답도가 조선 선비들 사이에 알려지게 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후 유사한 형식의 어초문답류의 글들이 조선시대 저작되어, 어초문답 전통의 형성과 유행의 일면을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조선초기에 수용된 어초문답을 繪畵化하는 과정에서 조선의 화가들은 중국 明代 吳偉派 화가들의 어초문답도인 兩人同行式 유형을 채택하였다. 대표작으로 간송미술관소장 李明郁 〈어초문답도>, 傳 洪得龜 <어초문답도>, 국립중앙박물관소장 작가미상의 <어초문답도>등이 있다. 조선중기 어초문답도의 양식적 특징은 매우 복합적인 양상을 보이고 있었다. 간송미술관소장 <어초문답도>를 중심으로 보다 구체적인 인물화 분석을 시도한 결과는 아래와 같았다. 첫째, 구도에 있어서는, 이 작품은 화면의 핵심지점에 인물의 얼굴을 포치한 빈틈없이 짜여진 구도를 보이고 있었다. 서로 약간 비껴선 자세에서 몸의 방향을 달리하여 적당한 거리에서 마주보는 인물의 배치는 기본적으로 인물화의 古式 구성법을 따른 것이다. 이렇게 배경은 간략하게 처리하고 인물의 얼굴을 화면의 정중앙에 두는 짜임새 있는 화면처리는 江夏派 화가들의 고사인물화와 도석인물화에서 보인다. 둘째, 인물의 형체묘사와 얼굴표정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어부의 경우 明代 도적 인물화에 등장하는 인물의 팔과 다리에서 보이는 세련된 화법의 일면을 보이고 있어서 이 작품의 작가가 인체의 해부학적 표현에 대한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明代 도석인물화의 형체묘사를 수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얼굴 표정의 표현에 있어서 어부와 초부의 하얀 이가 드러난 입에 드리워진 미소는 산수자연을 벗삼아 유유자적하는 은일자의 삶에 대한 자족이 담겨있다. 셋째, 服裝과 衣紋描法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중국 南宋과 元代의 어초문답도의 경우 어부와 초부 모두 문인의 복식이었으나 明代의 어초문답도에서는 보통의 고기잡이와 나무꾼의 복장을 하고 있으며, 조선시대의 어초문답도 또한 이러한 복장을 채택하였다. 묘법에 있어서 이 작품은 다양한 묘법의 사용을 보이고 있었다. 세부적으로 살펴본 결과 조선중기 화가 이경윤과 김명국의 인물 묘법의 연장선상에서 元·明代 도석화인물화 묘법에의 영향을 감지할 수 있었지만 각 묘법이 약간의 변형과 재해석의 현상을 보이고 있었다. 넷째, 인물화의 채색법에 있어서는, 특히 정밀한 얼굴묘사를 통해 볼 때 어초문답도의 인물들이 초상화를 방불케 할 정도의 수준작임을 알 수 있었다. 초상화를 방불케 하는 실제인물 같이 개성이 강하고 생생한 얼굴묘사와 이지적인 얼굴은 그들이 직업적 '漁父와 樵父'가 아닌 隱逸者로서의 '漁夫와 樵夫'임을 말해 주는 기능을 하고 있다. 朝鮮中期의 인물화로서는 상당히 이질적인 화풍을 보여주는 <어초문답도〉는 작가와 더불어 국적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던 작품이다. 그러나 학계에 알려져 있지 않던 圖印이 해석되어 작가에 대한 의문에 실마리를 제공하였다. 또한 『列聖御製』에 보이는 이명욱 작품에 대한 제화시를 통해 볼 때 그가 이 작품의 우수성에 걸맞을 정도의 기량을 가진 화가임을 알 수 있었다. 어초문답도는 조선중기를 대표하는 인물화 화제이며 조선시대 사부대의 隱逸 염원과 동시에 철학적 담의를 내포하는 복합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다. 이 중 간송미술관소장 이명욱의 〈어초문답도〉 는 문헌자료와의 연관성을 가지고 깊은 상징적 의미를 내포한 주제를 다루었으며, 생동감 있는 옷주름, 인체묘사와 더불어 탁월한 안면묘사 등으로 조선중기를 대표하는 인물화라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이 작품은 이후 여러 어초문답도류의 작품에 범본이 되었으며, 조선후기 인물화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This paper intends to investigate the Painting on "Fisherman and Woodcutter in conversation "(漁樵問答圖) owned by Gansong Art Museum (which represents the portraits in the middle years of Joseon Dynasty) in terms of not only the subject of the painting but also the style. First of all, it has examined the background that the tradition of Conversation(問答) between a fisherman and a woodcutter had been made in China. The literary men of China tended to express their wish for a life in seclusion, making a fisherman and a woodcutter appear in their poetry. Fishermen and woodcutters were often treated a s an emblem of hermits living free from worldly cares. While examining the literatures of China, it analyzed "Conversation between Fisherman and Woodcutter"(漁樵問答) written by Shao Kang jie(邵康節), a philosopher of Sung Dynasty in China which has been identified as the main origin of the Painting on "Fisherman and Woodcutter in Conversation". The Paintings on "Fisherman and Woodcutter in Conversation" of China was closely connected with texts in the beginning, but in the latter days, artists' ideas were intervened in so various types of the paintings appeared. In South Sung Dynasty, Yuan Dynasty and Ming Dynasty (in the beginning), there were many paintings of '船上坐劈石 style' (A type : on a ship and sitting on a rock) which sincerely tried to reflect texts. With Ming Dynasty in, the painters of Wu Wei(吳衛) School painted paintings of '兩人同行 style' (B type : two people go together). The representative work is Wang Zhao (汪肇)‘s painting. In the works of B type, background was almost omitted for a close-up. Two characters talked to each other while walking. In the period of Ching Dynasty, '江畔對坐style' (C type characters were taken : sitting face-to-face around a river) and '耕讀 style' (D type : reading while plowing) newly appeared. As literary men of Joseon Dynasty started to read the works like Shao Kang jie's "Conversation between Fisherman and Woodcutter'' and Su Shi(蘇軾)'s "Fisherman and Woodcutter's Leisurely Talk"(漁樵閑話), The painting on "Fisherman and Woodcutter in Conversation" that painted the scene got known to the scholars of Joseon Dynasty. In the process of making into the paintings "Conversation between Fisherman and woodcutter" which was accepted in the early days of Joseon Dynasty, Painters employed B type of Wu Wei School in Ming Dynasty. The representative works are: the painting painted by Yi Myeong-uk(李明郁) and by Hong Deuk-ku(洪得龜), which are owned by Gansong Art Museum; and unidentified paintings owned by National Museum of Korea. In the middle years of Jaseon Dynasty, the paintings on "Fisherman and Woodcutter in Conversation'' showed a very complicated trend. Focusing on the Painting owned by Gansong Art Museum, this paper attempted to analyze the figure painting in detail. First, in this painting, the faces of the characters are placed in the center of the screen. They stand slightly aslant, facing each other at an appropriate distance, which is the ancient style of a portrait. This kind of screen-making the background simple and placing the faces of the characters in the center - is shown in the portraits of historical events and the portraits of high priests by the painters of Jiang Xia(江夏) School. Secondly, this paper has investigated description of the character shape and face. The fisherman reflects an aspect of the refined style which is shown on the arms and the legs of the characters in the Buddhist and Taoist figure painting during Ming dynasty, which tells that the artist of this work was quite interested in anatomic description of a human body and that he accepted the shape description style used in the portraits of high priests in Ming dynasty. In expressing the faces, a fisherman and a woodcutter smile with their white teeth opened, and the smile includes a hermit's satisfaction with living free from worldly cares. Thirdly, regarding the clothes and patterns, the fishermen and woodcutters in the paintings of South Sung and Yuan dynasty wore the costumes of literary men, but in the paintings of Ming dynasty, they had the costumes of fishermen and woodcutters. The paintings of Joseon dynasty had these costumes too. The Painting owned by Gansong Art Museum had various description styles(描法). It seems to be influenced by the Buddhist and Taoist figure paintings in Yuan and Ming dynasty, and it seems an extension of character description of Lee Kyung-woon and Kim Myung-kook who were the painters in the middle years of Joseon dynasty. However, each description was a transformation or a reinterpretation of them. Fourth, the coloring of the portrait is very detailed. The characters in the painting look like the characters in a portrait. Like real characters, they look to have strong personality and live and intelligent faces, which means that the characters are hermits, not fishermen or woodcutters. The Painting owned by Gansong Art Museum is a work that raised the question of nationality. In the process of this study, the seal which had not been known to the academic world so far was confirmed and interpreted so it has provided a clue to the question of the artist. In consideration of the title poem of Yi Myeong-uk's work in "Yeol-seong-eo-je"(列聖御製), the artist of the Painting is found to have talent suitable for the excellence of the 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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